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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12
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 갈무리 / 2007년 5월
평점 :
1. 이 책에서 펼쳐질 생각들은 아마 독자들의 평소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식이 ‘저기 바깥에 있는 바로 저’ 세계의 표상(Repraesentation)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어느 한’ 세계를 끊임없이 산출하는 일(Hervorbringen)이라는 관점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7면)
2. 이 점에 대해서는 마뚜라나 본인도 1960년에 모든 인식활동의 바탕에 깔린 재귀성이 불러올 결과들에 접근하면서 땅이 꺼지는 듯했고 자기 머리가 정상인지 의심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12면)
3. 그에 따르면 우주를 기술하는 일은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 곧 관찰자의 기술도 포함해야 한다. (13면)
4. 여기서 실재(Realitaet)란 관찰자의 인식행위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관찰자가 가르는 구분들을 통해 비로소 관찰할 개체들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렐라는 이 창조적 인지과정을 가리켜 ‘있게 하기’(Ontieren)라 부른다. (13면)
5. 모든 인지적(kognitiv) 경험은 자신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매우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인식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확실성의 경험이란 타인의 인지적 행위를 보지 못하는 개인적 현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독이며, 오로지 우리가 타인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의 세계 안에서만 극복할 수 있다. (22, 23면)
6. 우리는 나타나야만 할 것 같은 비연속적 공간을 사실상 지각하지 못한다. 맹점의 실현이 극적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26면)
7. 지은이들이 쓰는 ‘섭동(작용)’(스페인어로 perturvacion)이란 개념은 부정적 의미가 꽤 담긴 ‘방해’(disturbacion)와 달리 어떤 체계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상태변화가 환경의 어떤 상태에 의해 바로 ‘야기’(verursachen)되는 것이 아니라 ‘유발’(ausloesen)됨을 가리킨다. (29면)
8.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visuelles Feld)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chromatischer Raum)을 체험하는 것이다. (30면)
9. 거울에 반사된 순간이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일부를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구조를 보여주는 맹점이 드러날 때와도 같다. 나아가 맹점 때문에 생긴 눈먼 상태가 그 틈이 메워짐으로써 사라질 때와도 같다. 반사 또는 성찰(Reflexion)이란 자기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눈 먼 자신을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확신도 마찬가지로 굳고 드세지만 결코 확실하지 않음을 깨닫는 유일한 순간이다. (31면)
10.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33면)
11.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hervorbringen)을 뜻한다. (34면)
12. 모든 성찰은, 따라서 인식의 기초에 관한 성찰도 언제나 언어 안에서 일어난다. 언어는 인간 존재와 행위의 특수한 존재다. 때문에 언어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인식도구이자 문제이기도 하다. (34면)
13.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성찰 자체는 언제나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한 장소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35면)
14.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이 인식자의 행위라는 사실, 나아가 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데 있었다. (43면)
15. 인식자의 행위인 인식은 인식자의 생물학적 본성, 곧 생명체의 조직(Organisation)에 뿌리내리고 있다. (43면)
16. “우리는 구분(distinction)의 개념과 지시(indication)의 개념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나아가 구분하지 않고는 지시할 수 없다는 것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우리는 구분의 형태를 형태(the form)로 간주한다. ... 어떤 경계로 두 쪽을 분리하여 한 쪽에 있는 어떤 점이 경계를 건너지 않고는 다른 쪽에 이를 수 없을 때 구분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는 구분을 낳는다.” (G. Spencer Brown, Laws of Form, London 1969, 1면) (51면)
17. 조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떤 것이 어떤 것이기 위해 있어야만 하는 관계들이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대답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물체를 의자라고 말하려면 내가 다리, 등받이, 앉는 곳이라고 부르는 부분들 사이에 앉는 일을 가능케 하는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먼저 확인해야만 한다. 그 물체는 나무와 못으로 되어 있든 인공물질과 나사로 되어 있든 그것은 내가 그 물체를 의자로 정의하거나 분류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53면)
18. 생물을 특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생성(erzeugen)하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성조직(autopoietische Organisation)이라 부르고자 한다(그리스말로 ‘autos'는 '자기자신', 'poiein'은 ‘만들다’를 뜻한다). (56면)
19. 따라서 우리의 견해로는 생물을 자율적 체계이게끔 하는 기제인 자기생성이야말로 생물을 자율적인 것으로 특징짓는다. (59면)
20. 다만 생물에게 독특한 점은 조직의 유일한 산물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 곧 생성자와 생성물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생성개체의 존재와 행위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기생성조직의 특성이다. (60면)
21. 그러므로 생식이 있으려면 당연히 두 가지 기본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곧 원래의 개체와 생식과정이 있어야 한다. (70면)
22. 세포의 경우에 분열이 일어나도록 작용하는 것은 바로 세포의 자기생성적 역동성 자체다. 세포는 외부의 어떤 작용물이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80면)
23. 개체발생이란 개체가 조직을 잃지 않은 채 겪는 구조변천의 역사다. 개체의 구조변천은 매순간 일어난다. 이것은 주위환경에서 온 상호작용이 유발한 것일 수도 있고 개체가 지닌 역동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 세포라는 개체는 환경과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언제나 자기 구조를 바탕으로 ‘바라보고’ 처리한다. 이때 구조는 세포의 내부 역동성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89면)
24. 따라서 관찰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개체와 환경의 재귀적 상호작용은 둘의 상호섭동(reziproke Rertubationen)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호작용에서 환경의 구조는 자기생성개체의 구조에 변화를 유발(ausloesen)할 뿐, 그것을 결정(determination)하거나 명령(instruieren)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꾸로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체와 환경이 해체되지 않는 한, 이런 재귀적 상호작용은 구조변화를 서로 주고받는 역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조접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91면)
25. 어쨌든 우리는 메타세포체의 조직이 작업적 폐쇄성(operatinale Geschlossenheit)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104면)
26. 다시 말해 오직 체계의 변화 전체가 그것의 구조에 따라 (그 구조가 어떤 것이든) 결정되는 체계만 다룰 수 있으며, 이때 체계의 구조변화는 체계 자신의 역동성을 통해 생기거나 아니면 환경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유발된 것이다. (114면)
27. 섭동작용의 영역: 상태변화를 유발하는 모든 상호작용 (115면)
28. 다른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펫에게도 네 영역이 존재한다. a) 상태변화, b) 파괴적 변화, c) 섭동작용, d) 파괴적 상호작용 (116면)
29. 구조적으로 결정된 역동적 체계에서는 구조가 끊임없이 변함과 동시에 (물론 이 변화도 언제나 체계의 매순간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구조에 따라 정의된 영역들도 함께 변한다. (116면)
30. 이렇게 양립할 수 있는 한, 환경과 개체는 서로 섭동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상태변화를 유발할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과정을 우리는 구조접속이라 표현한 바 있다. (117면)
31. 생물에게 독특한 점이란 1차 등급의 개체든, 2차 등급의 개체든 자기생성을 줄곧 유지하는 가운데 구조적 결정과 구조접속이 실현된다는 사실, 그래서 생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 자기생성과정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있다. ... 생물의 모든 구조변천은 생물이 자기생성을 유지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자기생성의 유지와 양립할 수 있는 구조변화를 유발하는 상호작용들은 모두 섭동작용일 것이다. (117면)
32.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개체에게 실제 일어난 구조변화는 마치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면 환경은 유기체의 구조변화에 대한 ‘선택자’인 셈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일은 거꾸로 환경에게도 일어난다. 곧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생물은 환경의 구조변화에 대해 선택자로 작용한다. (119, 120면)
33. 관찰자에게 이 상관변화는 환경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지만 환경변화가 이 상관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작업상 서로 독립적인 유기체와 환경이 만나서 생긴 구조적 표류의 산물이다. 이 만남과 관련된 모든 요인들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표류란 우연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135면)
34. 진화란 자기생성과 적응이 보존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자연표류다. ... 진화란 오히려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135면)
35. 따라서 환경의 구조는 신경계에 변화를 유발할 뿐 그것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151면)
36. 신경계가 세계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가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신경계가 작업적 폐쇄성을 지닌 결정된 체계로 매순간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가능성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행위이다. ... 다른 한쪽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타당한 진공상태에서 신경계가 작동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주위 환경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인지적 고독, 곧 유아론(Solipsismus)의 극단이다. (152, 153면)
37. 다세포생물의 작업에 참여하는 신경계란 그물처럼 서로 얽힌 여러 순환관계들로 된 기제이며 유기체가 조직을 보존하는 데 본질적인 내부 상태들을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이렇게 볼 때 신경계는 작업적 폐쇄성(operationale Geschlossenheit)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186면)
38.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물로서 구조접속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이) 바로 그 생물의 존재영역에서 일어나는 인식활동이다. 경구로 나타내자면, 삶이 곧 앎이다. 다시 말해 생명활동이란 생물로서 존재하는 데에 효과적인 행위이다. (197면)
39. 의사소통의 특수성이란 그것이 산출되는 기제가 다른 행동의 산출기제와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사회적 행동의 영역에서 나타난다는 데 있다. (218면)
40. 언어적 재귀현상인 언어가 없다면 자기의식도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의식, 의식, 정신 등은 언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그것들 자체는 오직 사회적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259면)
41. 인식활동은 언어를 구성하는 행동조정을 통해 언어 안에 존재함으로써 세계를 오히려 산출한다(hervorbringen). (263면)
42. 이 책에서 한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독자라면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다시 말해 무엇을 보거나 맛보거나 고르거나 물리치거나 말하거나 하는 모두가 타인과 공존하면서 (우리가 기출한 기제를 통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70면)
43. 두 극단, 다시 말해 표상주의(객관주의)와 유아론(관념론)에 빠지지 않도록 또다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이 책의 한 목표는 바로 그 중간길 찾기였다. 곧 우리의 기술과 인지적 가정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게 할 어떤 준거가 우리로부터 독립해 있다고 전제하지 않은 채, 우리가 늘 경험하는 세계의 규칙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270, 271면)
44. 곧 인식(활동)이란 객체들과 아무 관계도 없다. 인식활동이란 효과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산출한다. (273면)
45. 앎을 알면 얽매인다. (275면)
46. 앎의 앎은 확실성의 유혹에 대해 늘 깨어 있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또한 우리가 가진 확실성이 진리의 증거가 아님을, 누구나 다 아는 이 세계는 오직 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산출한 어느 한 세계임을 깨닫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그것은 우리가 다르게 살 때만 이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앎의 앎은 우리를 얽어맨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우리 자신이나 타인 앞에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275면)
47. 다툼을 극복하려면 공존할 수 있는 다른 영역으로 옮아가야만 한다. 이 앎에 대한 앎이야말로 사람다움에 바탕을 둔 모든 윤리의 사회적 명령(Imperativ)이다. (276면)
48. 곧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우리는 이 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 (278, 279면)
49.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데, 앎을 모르는데 있다.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앎이 아니라 앎의 앎이다. (279면)
50. 첫째로 우리는 이 책에서 표상주의에 근거하지 않는 지식관을 제시하였다. ... 비표상주의적 관점이 대안이 되려면 생명체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은 자율성의 진정한 뿌리인 세포의 자기생성(autopoieis)을 살피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2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