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해라
앤드류 매튜스 지음, 노혜숙 옮김 / 생각의나무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우리는 일이 어렵게 돌아갈 때 가장 큰 교훈을 배운다. (15면)

 

2.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대체로 '시련'이 전환점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16면)

 

3. 삶은 끊임없는 교훈을 제공한다. (18면)

 

4. 그러나 실제로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면)

 

5. 나의 변화는 내 주변을 바꾸게 된다. 단 나의 변화가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22면)

 

6. 대체로 새로운 출발을 할 가장 좋은 장소는 지금 있는 바로 그곳이다. (22면)

 

7.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기에 맞서는 것이다. (23면)

 

8. 고통은 우리를 진실하게 만든다. (25면)

 

9.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다. (26면)

 

10. 쉬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삶을 좀더 잘 다루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28면)

 

11.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29면)

 

12. 어떤 와중에도 쉬면서 즐겨야 한다. (29면)

 

13.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라. '이 일에서 내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29면)

 

14. 첫째는 노력이고 그 다음이 수확이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 과정을 거꾸로 갈 수는 없다. (36면)

 

15.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내 인생에는 좋은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군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38면)

 

16. 인생은 우리가 투자한 것만큼 돌려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자신이 희생자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38면)

 

17. 인생은 서서히 발전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그 대답이 '별로 하는 것이 없다'라면 앞으로도 나아질 수 없다. (42면)

 

18. '저들의 인생은 어찌 저리도 달콤할까?' 나는 그들이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작은 시작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그리고 또 다른 것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42, 43면)

 

19. 무서운 사실은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얻는 것이 없다면 잃고 있는 것이다. (45면)

 

20. 훈련이란 모든 사람이 달가워하지 않는 말이다. 인기도로 치자면 치과와 설사병의 중간쯤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훈련은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인생은 당장의 즐거움이나 장기적인 보상이냐를 선택하는 거래이다. (46면)

 

21. 자기 훈련의 열쇠는 강철 같은 의지력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왜 원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다. (47면)

 

22. 뒤죽박죽 속에서는 아무것도 꽃을 피울 수 없다. 파일 캐비닛을 정리하라. 창고를 정리하라. 그러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48면)

 

23. 사실은 이미 그 에너지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계속해서 에너지를 투입하면, 분명 어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 법칙을 기억하고 너무 허둥대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49면)

 

24. 1927년 워너 브라더스 영화제작사의 해리 워너는 말했다.

"세상에 배우들이 말하는 걸 누가 듣고 싶어하겠어?"

1943년 IBM의 회장인 토마스 왓슨은 말했다.

"컴퓨터를 세계 시장에 내놓으면 다섯 대나 팔릴까?"

1977년 디지털 설비 회사의 회장인 켄 올슨은 말했다.

"집 안에 컴퓨터를 갖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52면)

 

25. 우리가 항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일은 바로 그 믿음대로 이루어진다. (프랭크 라이트) (55면)

 

26. 정말 신기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대해 서로 다르게 믿고 있으면서 모두 자신이 믿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57면)

 

27. 자신의 '사연'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만일 내가 자신을 '나는 학교 교사이다'라고 규정해 놓았다면, 직장을 잃었을 경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 우리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자신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남들은 그런 사연 따위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59면)

 

28. '중요한 존재'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자. 그건 일종의 스트레스이다. '중요한' 인물이 될 필요가 없는 순간부터 우리는 편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60면)

 

29. '해야 한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런 믿음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현실을 비난하면 언제나 현실이 이긴다. (62면)

 

30.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믿음이다. (64면)

 

31. 우리의 인생을 조절하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다. (67면)

 

32. 부유해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71면)

 

33. 세상이 날 대접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해야 한다. (72면)

 

34.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것처럼 살기 시작하고 지금 성공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 (74면)

 

35. 풍족함이란 반드시 돈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74면)

 

36.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질병, 나의 청구서, 나의 주정뱅이 남편 때문이야."

정말 그것은 나의 문제이다. (77면)

 

37.시간을 내서 외출해서 단지 재미를 위한 무언가를 해보라. ... 느긋하게 생각하자. 인생을 즐기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 "왠걸. 점점 나아지는 것 같은데." (78면)

 

38. 느긋하게 기다리면 때가 온다. (83면)

 

39. 우리는 무언가에 연연해질수록 그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된다. (85면)

 

40. 가난한 사람의 태도, 즉 돈을 벌고 싶다는 믿음과 부유한 사람들의 사고방식, 즉 돈을 벌게 되리라는 믿음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86면)

 

41. "그것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다." (86면)

 

42. 우리가 버리는 것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88면)

 

43. 주는 것의 비결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 (89면)

 

44.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변화시킬 수가 없다. (칼 융) (91면)

 

45. 긍정적 사고의 본질은 확실한 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95면)

 

46. 가능성에 집중하면 실제로 가능하게 된다. (95면)

 

47. 하루동안 긍정적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다. 우리의 생각을 강화하는 것은 체력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 스무 번 팔굽혀펴기를 하고 거울로 달려가 보면 아무런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4시간 동안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생각을 훈련하면 체육관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서 더 큰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98면)

 

48. 만일 우리의 삶 속에서 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한 걱정과 그것에 대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100면)

 

49. 무시해 버리면 소문은 곧 지나갈 것이다. (101면)

 

50.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그 자글라) (104면)

 

51.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할 때 더 풍족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이 주어진다. (105면)

 

52. "무슨 일이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마음 가는 대로 하라." (109면)

 

53. 우리는 100센트를 다할 때 좀더 즐거울 수 있다. (111면)

 

54. 졸업한 지 50년이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숙제법칙'이 적용된다. (111면)

 

55. 항상 받는 돈만큼보다 더 많이 일하면, 언젠가는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113면)

 

56. 인생의 목적은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사는 것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사는 것이다. (107, 135면)

 

57.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최선을 다할 때만이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5면)

 

58. 부유하고 저명한 집안 자녀들이 마약을 과다 복용하면서 두뇌를 혹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도전할 일이 없다. 일을 하거나 안 하거나 물질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이다. (117면)

 

59.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깨닫는다면 '무슨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할 수 있다. (119면)

 

60. 내가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별로 시도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121면)

 

61. 일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130면)

 

62.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말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130면)

 

63. 종종 박사와 석사라는 학위로 경력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는 중요한 요지를 빠뜨릴 위험이 있다. 즉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131면)

 

64.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133면)

 

65. 조건이 불리할수록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발전시키는 힘이 바로 비장의 무기이다. (142면)

 

66.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한 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행동한다. (147면)

 

67. 일단 일에 뛰어들면 일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이 생긴다. 우리는 일에 휩쓸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 비결은 시작에 있다. (148면)

 

68. 일을 시작할 때 알아야 하는 또 다른 사실은, 어떤 일이건 결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148면)

 

69.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편안함에 대한 중독증 때문에 생겨난다. ... 지나친 편안함은 지루함을 낳는다. (151면)

 

70. 역경이 찾아오면 그것을 과정의 일부로 생각하라. 열정을 가져라. 흥미를 가져라. 즐거움을 찾아라. 불리한 위치에 서있는 상황에서 재미를 느껴보라. (152면)

 

71. 보상은 우리가 자신의 명성이나 돈, 아니면 그 두가지를 모두 희생할 각오로 모험을 할 때 주어진다. (152면)

 

72.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불사하는 것이다. (153면)

 

73. 열의란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는 진지한 다짐이다. (164면)

 

74. 자신의 생각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우리는 환경이나 날씨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조절할 수가 없다. 우리가 완전하게 조절할 수 있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각뿐이다.

- 외부 세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175면)

 

75.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단서를 주고 있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돕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 중심 목표가 개인적 안전에 국한된 사람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178면)

 

76. 무슨 일을 하든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들여라. 인생을 서두르면서 살지 말라. (181면)

 

77. 주위가 산만하지 않은 이른 아침에 하루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 (185면)

 

78. 우리의 건강과 감정이 환경의 미묘한 에너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에너지가 고양되면, 질병과 다른 사람의 우울함에 저항할 수 있다. 반대로 에너지가 저하되면 좌절과 질병을 불러들인다. (187면)

 

79. 우리는 무언가에 매번 감사할수록 점차 마음이 편안해진다. (191면)

 

80.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불행은 선택이다. (202면)

 

81. 자신의 단점을 용서하면 우리와 같은 단점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용서하게 된다. 타인은 우리 자신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언제나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메세지를 받게 된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204면)

 

82. 그의 기도는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에서 '나를 바꾸게 해 달라'로 바뀌었다. 그는 기본 원칙을 발견하고 그 관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갖는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18면)

 

83. 그러나 오늘날의 양자 물리학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원리는 그와는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즉 물체의 성질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219면)

 

84. 우리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의 시각으로 판단한다. 우리의 세상 경험은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경험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탓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221면)

 

85. 그 의미는 현재에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건 마찬가지이다. 만일 의미를 찾고 싶다면 순간순간에 주목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란 현재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2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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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 선집 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하에서 나는 지난 16년간 내가 몰두해 왔던 사고들, 철학적 탐구의 침전물을 출판한다. ... 나의 결과들을 그러한 하나의 전체 속에 모두 용접하려는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한 후에, 나는 이것이 나에게는 결코 잘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내가 쓸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은 언제나 단지 철학적 소견들로서만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 만일 내가 나의 사고들을 그 자연스러운 경향에 반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더 강요한다면 나의 사고들은 곧 절름발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 그런데 이것은 물론 탐구 자체의 본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탐구는 광대한 사고 영역을 종횡무진으로, 모든 방향으로 편력하도록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 이 책의 철학적 소견들은 말하자면 이 길고 얽히고설킨 여행에서 생겨난 다수의 풍경 스케치들이다. (15, 16면)

 

2. 그러나 4년 전에 나는 나의 최초의 저서 '논리 철학 논고'를 다시 읽고 그 사고들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나는 그 옛 사고들과 새로운 사고들을 함께 출판해야 할 것이라고; 후자는 오직 나의 옛 사고방식의 배경 위에서 그것과의 대조에 의해서만 올바른 조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16년 전에 다시 철학에 몰두하기 시작한 이래, 나는 내가 저 첫 번째 책에 수록해 두었던 것 속에서 중대한 오류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16, 17면)

 

3. 아마 우리들은 낱말의 의미라는 일반적 개념이 어느 정도까지 언어의 기능을 안개로 둘러싸는지, 그리하여 명료하게 보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를 짐작할 것이다. - 그 안개는 우리가 언어 현상들을 그것들의 원초적인 사용 방식에서 연구한다면 사라진다. 거기서는 낱말들의 목적과 기능이 명료하게 조망될 것이다. (24면)

 

4. '언어놀이'란 낱말은 여기서, 언어를 말하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시키고자 의도된 것이다. (37면)

 

5. 우리들은 때때로, 동물들은 정신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동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말하지 않을 뿐이다. 또는 더 잘 표현하자면, 그것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38면)

 

6. 한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것의 사용이다. 그리고 때때로 한 낱말의 의미는 그 소지자를 가리킴으로써 설명된다. (52면)

 

7. 어떤 한 사물의 명명에 의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행해지지 않았다. 놀이 속에서가 아니면, 사물은 심지어 이름조차도 가지지 않는다. 하나의 낱말은 오직 문장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말로써 프레게가 뜻한 것도 역시 이것이었다. (58면)

 

8. 그러나 우리는 그 놀이가 이러이러한 규칙들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관찰자가 그 놀이의 실천으로부터 그 규칙들을 - 그 놀이 행위들이 따르는 자연법칙처럼 -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비록 우리가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인식가능할 것이다. (62면)

 

9. 더 올바르게는: "x가 존재한다"가 "X"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X를 다루고 있는 명제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 사용, 즉 X란 낱말의 사용에 관한 하나의 명제이다. (64면)

 

10. 나는 이러한 현상들에는 우리로 하여금 그 모두에 대해 같은 낱말을 사용하게 만드는 어떤 일자가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것들은 서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근친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친성 또는 근친성들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언어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69면)

 

11. 당신은 그 모든 것에 공통적인 어느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유사성들, 근친성들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제 이러한 고찰의 결과는, 우리는 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을 본다는 것이다. 큰 점과 작은 점에서의 유사성을. (70면)

 

12. 나는 이러한 유사성들을 "가족 유사성"이란 낱말에 의해서 말고는 더 잘 특징지울 수 없다. (71면)

 

13. 대체 놀이의 개념이 어떻게 폐쇄되어 있는가? 당신은 그 한계를 진술할 수 있는가? 없다. 당신은 그 한계를 그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 한계도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72면)

 

14. "놀이"란 개념은 테두리가 희미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희미한 개념이 도대체 개념인가? ... 프레게는 개념을 하나의 영역과 비교하면서,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은 도대체가 영역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말한다. 아마 이는 우리가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73면)

 

15. 물론 그렇게 봄이 있는가 하면 다르게 봄도 존재하낟. 또한 하나의 견본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그리고 그것을 달리 보는 사람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들도 존재한다. (76면)

 

16.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이, 이해한다, 뜻한다, 생각한다란 개념들에 관해서 더 큰 명료성을 획득했을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빛 속에서 드러날 수 있다. (81면)

 

17. 나는 한 낱말의 적용이 언제 어디서나 규칙들에 의해서 경계지어져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82면)

 

18. 규칙은 이정표처럼 있다. (83면)

 

19.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연구로써 어떠한 새로운 것도 배우려고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연구에 본질적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눈앞에 명백히 놓여 있는 어떤 것을 이해하고자 원한다. (87면)

 

20. 아우구스티누스(고백, XI/14): "그러므로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그 물음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한다." (88면)

 

21. 우리는 우리의 표현을 더 정확히 만듦으로써 오해들을 제거한다. (89면)

 

22. 우리는 우리의 탐구의 특색, 깊이, 본질은 그것이 언어의 비할 바 없는 본질을, 즉 명제, 낱말, 추론, 진리, 경험 등의 개념들 사이에 있는 질서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데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러한 질서는 -말하자면- 초-개념들 사이의 초-질서이다. 하지만 '언어', '경험', '세계'라는 낱말들이 어떤 사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책상', '램프', '문'이란 낱말들처럼 낮은 사용을 가져야 한다. (91면)

 

23. 우리는 이제, 이상이 실재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관념 속에서 산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직 그것이 거기서 어떻게 발견되는지는 알지 못하며, 또 이 "되어야 한다"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한다. (93면)

 

24. 그 관념은 말하자면 우리의 코에 걸쳐 있는 안경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그것을 통해서 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벗어버리려는 생각에는 전혀 이르지 못한다. (93면)

 

25.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경험의 제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나란히 놓음에 의해서 풀린다. 철학은 우리의 언어 수단에 의해 우리의 오성에 걸린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다. (96면)

 

26. 우리는 그림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 속에 놓여 있었고, 우리의 언어는 그것을 우리에게 그저 무자비하게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97면)

 

27. 우리가 하는 일은 낱말들을 그것들의 형이상학적 사용으로부터 그것들의 일상적인 사용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다. (98면)

 

28. 우리의 몰이해의 한 가지 주요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사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이해를 성사시키며, 이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연관들을 본다'는 데에 있다. 그런 까닭에 중간 고리들의 발견과 발명이 중요한 것이다. (100면)

 

29. 철학적 문제는 "나는 (길을) 훤히 알지 못한다"란 형식을 가진다. (100면)

 

30. 하나의 철학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방법들은 존재한다; 흡사 다양한 치료법들처럼. (103면)

 

31. 그러나 우리가 한 낱말을 듣거나 발화할 때, 우리는 그 낱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우리는 그것을 일거에 파악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파악하는 것은 시간 속에 뻗쳐 있는 '사용'과는 아무튼 다른 어떤 것이다! (107면)

 

32. "알다'란 낱말의 문법은 "할 수 있다"란 낱말의 문법과 명백히 밀접한 근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해한다"란 낱말의 문법과도 역시 밀접한 근친관계에 있다. (하나의 기술을 '숙달하다') (116면)

 

33. 그것은 우리가, 미래의 전개는 그 어떤 방식으로 이미 파악 작용 속에 현재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로 이끌리게 될 때 이상해진다. (149면)

 

34. 즉, 모든 해석은 해석되는 것과 함께 공중에 떠 있다; 그것은 해석되는 것에 대해 발판으로서 쓰일 수 없다. 단지 해석들만으로는 의미를 확정하지 못한다. (149면)

 

35. 언어는 하나의 미로다. 당신이 어떤 한 측면으로부터 오면, 당신은 길을 훤히 안다; 당신이 다른 한 측면으로부터 그 동일한 자리에 오면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152면)

 

36. '일치'라는 낱말과 '규칙'이라는 낱말은 서로 근친적이다. ... '규칙'이란 낱말의 사용은 '같은'이란 낱말의 사용과 밀착되어 있다. (159면)

 

37. 철학자는 문제를 마치 질병처럼 다룬다. (168면)

 

38. "언젠가 당신이 그 낱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면, 당신은 이 낱말을 이해한다. 이 낱말의 전작용을 안다." (171면)

 

39. "사적 언어"란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해 못하지만 나는 '이해하는 듯 보이는' 소리들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173면)

 

40. 한 낱말을 정당화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 그 낱말을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81면)

 

41.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을 본보기로 해서 상상해야 한다면,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느끼는 고통에 따라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상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85면)

 

42. "나는 다른 사람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단지 믿을 수 있을 뿐이지만, 내가 고통스러울 경우에는 나는 그것을 안다." (185면)

 

43.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198면)

 

44. 우리는 현상(예컨대 생각)이 아니라 개념(예컨대 생각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며, 따라서 낱말의 적용을 분석한다. (212, 213면)

 

45. 기대와 충족은 언어 속에서 맞닿는다. (234면)

 

46.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무의미로부터 명백히 드러난 무의미로 넘어가는 것이다. (240면)

 

47. "낱말의 의미는 의미의 설명이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의미'란 낱말의 사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의미의 설명'이라고 일컬어지는가를 살펴보라. (267면)

 

48. 개념들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들은 우리의 관심의 표현이며, 우리의 관심을 조종한다. (270면)

 

49. "희망하다"란 낱말은 인간의 삶이라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273면)

 

50. 철학적 질병들의 한 가지 주요 원인은 편식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사유를 오직 한 종류의 예들로 먹인다. (277면)

 

51. 철학에서는 결론들이 내려지지 않는다. "사정은 실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철학의 명제가 아니다. 철학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279면)

 

52. 우리의 잘못은, 우리가 사실들을 '원현상들'로 보아야 할 곳에서 어떤 설명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언어놀이가 행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곳에서. (296면)

 

53. 오직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희망할 수 있는가? 오직 언어의 사용을 숙달한 자만이 희망할 수 있다. (309면)

 

54.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을 의미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로써 어떤 시점과 낱말 사용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311면)

 

55.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다른 맥락 속에서, 즉 그것이 등장하는 특별한 상황들의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 (323면)

 

56.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감각들을 불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믿음을 불신할 수는 없다. (337면)

 

57. 소심한 주장을 소심함의 주장으로 간주하지 말라. (341면)

 

58.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도해를 한 번은 한 사물로, 한 번은 다른 사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것을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는 것처럼, 그것을 본다. (343면)

 

59. 사용이 그 의미를 당신에게 가르치게 하라. (376, 389면)

 

60. 본다는 것에서 어떤 것이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본다는 것 전체가 충분히 수수께끼 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77면)

 

61. 여기서 우리들은 한 낱말의 '일차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의미로 낱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만이 후자의 의미로 낱말을 사용한다. (3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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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30주년이 지난 지금 인간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제가 유전자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옮긴이의 말, 5면)

 

2. 그(톰 매스러)는 책의 내용은 마음에 들어 했으나 제목엔 불만이었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음울한 의미의 단어down word"라는 그는 말했다. 왜 '불멸의 유전자The immortal Gene'라고 하지 않느냐? '불멸'이란 단어는 "명쾌한 의미의 단어up word"였으며 유전 정보의 불멸성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인 데다가 '불멸의 유전자'도 '이기적 유전자' 못지않게 매혹적인 어감을 지니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모리스가 옳았던 것 같다. ... (8면)

 

3.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또 하나의 훌륭한 대안은 "협력적인 유전자The Cooperative Gene"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정반대 의미로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들 사이의 협력의 형태를 중심적으로 논하고 있다. (11면)

 

4. 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다윈이 존재조차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고쳐질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 책의 의도는 다윈니즘의 일반적 옹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논점에 대하여 진화론의 중요성을 추구함에 있다. 나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41면)

 

5. 그들은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체(또는 유전자)의 이익이 아닌 종(또는 집단)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41면)

 

6.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의 기대되는 특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보통 이기적인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된다. (42면)

 

7. 나는 진화에 따른 도덕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를 말한 따름이다. 또한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을 구별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43면)

 

8. 만약 당신이 나처럼 개개인이 공통의 이익을 향하여 관대하게 비이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43면)

 

9.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 (46면)

 

10. 진화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행되고 자연 선택은 '최적자'의 차별적 생존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최적자'의 단위란 개체일까, 품종일까, 종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49면)

 

11. 다시 말해서 각 개체가 사회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종 내지는 종내 개체군과 같은 집단은, 각 개체가 자기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경쟁자 집단보다 아마도 절멸의 위험이 적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자기 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이 대부분 점령하게 된다. 이것이 '그룹 선택설'이다. 이 학설은 윈 -에드워드의 유명한 저서를 통해 소개되었고, 아드리의 '사회계약'이란 책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 나는 개인적으로 '유전자 선택설'을 더 선호한다. (50면)

 

12. 아마도 그룹 선택설이 큰 매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이상적인 면에서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이란 말을 어느 범위까지 설정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다소 혼란이 있다. 흔히 집단 내의 이타주의는 집단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다. 이것이 노동조합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52면)

 

13. 보통 종의 윤리를 가장 확신하고 있는 이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타주의를 확장하여 다른 종까지 포함시키려고 하는 사람을 매우 경멸하는 것을 자주 본다. (53면)

 

14. 아메바보다도 인간적 감정이 없는 배아는 성숙한 침팬지보다 경의와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 태아는 우리의 종에 속하므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라이더가 말하는 '종 차별주의'윤리가 '인종 차별주의' 윤리보다 확실한 논리적 기초를 가질 수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53면)

 

15.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그룹도 개체도 아님을 논하고자 한다. 그것은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이다. (55면)

 

16. 다윈의 '최적자 생존'은 실제로 '안정자 생존'이라는 보다 더 일반적인 법칙의 특수한 예이다. 세계는 안정된 것들로 유지된다. 안정된 것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지속적이거나 보편적인 원자 집단이다. (59면)

 

17. 진화란 자기 복제자(오늘날의 유전자)가 오류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생겨난 일이다. 모노는 스펜서Herbert Spencer의 강연에서 이 점을 잘 지적했는데, 그는 비꼬아 말하기를 "진화론의 또 하나의 괴이한 점은 누구나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66면)

 

18.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인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72면)

 

19. 유전자는 자기의 목적에 따라 자기의 방법으로 몸을 조절하며, 몸이 노쇠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전에 죽을 운명에 있는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해 버림으로써 세대를 거치면서 몸에서 몸으로 옮겨간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이다. (92면)

 

20. 유전자가 자연 선택의 기본 단위의 훌륭한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은 유전자의 잠재적 불멸성 때문이다. (94면)

 

21. 이 책에 특히 관심 깊은 특성은 바로 유전자 수준에 있어 이타주의는 열세하고 이기주의는 우세하다는 것이다. (95면)

 

22.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 (95면)

 

23. 여하튼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이고,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적으로 제어되는 차이'이다. (96면)

 

24. 어떤 유전자의 작용은 이와 같은 환경에 좌우되며, 그 환경에는 다른 유전자도 포함된다. 하나의 유전자는 다른 특정 유전자가 존재하면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또 다른 한 세트의 동료 유전자가 존재하면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97면)

 

25. '우수한 유전자'의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그리고 '이기성'이 그중 하나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성공한 유전자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일반적인 특성은 자기 생존 기게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 활동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101면)

 

26. 복잡한 세계를 예측하는 일은 불확실한 결과를 동반하는 것이다. (124면)

 

27. 이처럼 컴퓨터는 과거의 의사 결정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길 때마다 승리로 이끈 전술의 비중을 더 크게 하여 다음에 그 전술을 선택할 확률을 더 높게 하는 것이다. (126면)

 

28.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 중의 하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모의실험)이다. (127면)

 

29. 시행착오의 곤란한 점은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 보다 신속하다. (129면)

 

30. 커뮤니케이션의 예는 무수히 많다. ... 그 커뮤니케이션의 교묘함은 인간의 언어에 필적할 만하다. (135면)

 

31.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진화할 때에는 누군가가 그 시스템을 자기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138면)

 

32. 모든 일이 잘되면 모델은 복잡해질수록 현실 세계를 보다 잘 묘사할 수 있다. (152면)

 

33.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편이 좋은 것은 왜 그럴까?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안정된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156면)

 

34. ...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다. (173면)

 

35.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떠한 시스템도 본래 불안정한 것이다. 그것은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이기적 개체에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16면)

 

36. 여성은 자신의 용모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신문과 잡지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남성용 잡지는 남자의 성적 매력 문제에 그렇게 집중하지 않는다. 자기의 의상이나 용모에 이상하게 관심이 있는 남성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멀리하기 쉽다. 사람들의 대화 중에 여성이 화제가 될 때에는 대개 그녀의 성적 매력이나 그것의 부족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대화 상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변함없다. 하지만 남성이 화제에 오를 때 사용되는 형용사는 성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더 많다. (291면)

 

37. ... 혁명적인 사고란 이 사고에 익숙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위의 설도 이와 같은 생각 중의 하나이다. (318면)

 

38. 유전자는 선견지명이 없다. (320면)

 

39. 나는 상호 작용하는 유전자 복합체의 진화와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취하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346면)

 

40.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히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오히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348면)

 

41. 자기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경쟁자를 누를 필요는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 법칙에서 이탈하지 않고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도 협력과 상호 부조가 어떻게 번창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액셀로드가 말하는 의미로 왜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383면)

 

42. '협력'의 카드를 내는 것은 자기의 차례가 돌아올 때에 암놈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암놈의 역할을 할 차례가 됐을 때 수놈으로 행동하려는 유혹은 '배신'의 카드를 내는 것에 상당한다. '배신'은 보복의 대상이 된다. (392면)

 

43. 크다는 것이 꼭 좋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박테리아이며 코끼리는 극히 적다. (434면)

 

44.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실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상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보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져 있다는 것이다. (4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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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범우고전선 17
니체 / 범우사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1. '비극의 탄생'은 니체(1844-1900)의 처녀작으로 바그너에게 헌정한 저서다. (역자서문, 7면)

 

2. 니체는 이 책 속에서 그리스 비극이 발생하여 멸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쇼펜하우어 철학에 의거하여 해명하면서 종래 아폴로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온 그리스 문화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을 발견해 내고 있다. 그리고 이 디오니소스적인 예술 충동이야말로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독일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바그너를 스승으로 삼고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창하고 있다. (역자서문, 7면)

 

3. 그리스 비극은 아폴로적 몽환의 이데아계와 디오니소스적 충동계 와의 긴장된 일체관계에 있어서 삶을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서, 지적 합리성에 의거하여 형태를 갖추어 보려고 하는 천박한 인생 파악보다 훨씬 심원한 예지의 결정인 것이다. (역자서문, 8면)

 

4. 그 과제란, 즉 과학을 예술가의 견지에서 보고, 한편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본다는 과제다. (15면)

 

5. 기독교야말로 도덕적 주제의 철저한 도식화라는 점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경청한 것 가운데 가장 방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르치고 있는 순전히 미적인 세계 해석과 세계 정당화에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기독교의 교리보다 더 큰 대립은 없다. (20, 21면)

 

6. "모든 비약적인 것에 마음을 고양시키고 독특한 비약력을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 즉 세계와 인생은 어떠한 참된 만족도 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세계와 인생은 우리들이 집착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극적 정신이 있다. 그러기에 비극적 정신은 체념과도 통한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편, 23면)

 

7. 나의 젋은 친구들이여! 어디까지나 비관주의자로 머물기를 원한다면 너희들은 웃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26면)

 

8. '짜라투스트라'라고 불리는 저 디오니소스적인 괴물의 말을 빌어 말하면, ... 너희들 높은 인간들이여! 나에게 배울지어다 - 웃는 것을! (26, 27면)

 

9. 예술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과제이며 인생 본래의 형이상학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을...(29면)

 

10. 예술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으로 말미암아 발전하고 있다. (29, 30면)

 

11. 이 두 가지의 충동은 크게 성격이 다르면서도 서로 평행하고 있고, 대체로 공공연하게 반목하고 상호 자극하여, 항상 새롭고 힘찬 출발을 계속한다. (30면)

 

12. 꿈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은 완전한 예술가이다. (31면)

 

13.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작품 제1부에서 "망마하기 그지없고, 산더미같은 파도가 표효하며, 성난 바다 위의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처럼 개개의 인간은 고난의 세계의 한복판에서 개별화의 원리에 의지하고 이를 믿고 앉아 있다"고 했다. (34, 35면)

 

14. 인간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 즉 인간이 되는 것이다. (36, 37면)

 

15.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미학의 근본개념. 예술의 본질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에 있다고 하였다. (38면)

 

16. 근원적 욕구가 보다 더 차원 높은 만족을 얻으려면 그 이상의 가상을 찾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49면)

 

17. 보라! 아폴로는 디오니소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거인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은 결국 아폴로적인 것과 똑같은 정도로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51면)

 

18. 서정시인은 어느 시대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항상 '나'를 말하며, 자기의 정열과 욕망의 모든 반음계를 우리들에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55면)

 

19. 자기 자신이 근원적 고통이며, 고통의 근원적 반향인 것이다. (57면)

 

20. ... 음악은 그 본질상 의지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음악이 의지라고 한다면, 예술의 영역에서 완전히 추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지는 자체가 비심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은 의지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음악 현상을 형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서정시인은 사랑의 속삭임에서부터 광기의 노여움에 이르기까지 정열의 모든 감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65면)

 

21.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는 오늘날 자연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존중하는 나머지 현대는 모든 이상주의와 정반대의 극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71면)

 

22. 인식은 행동을 죽인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환상의 베일에 싸일 필요가 있다. (73면)

 

23. 왜냐하면 아폴로가 개개의 사물을 안정시키려는 수단은 개체의 경계선을 긋는 것이고, 이 경계선을 가장 신성한 세계 법칙으로서 계속 상기시켜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저 절도를 요구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폴로적 경향 때문에 형식이 굳어져서 차칫하며 이집트적인 딱딱함과 차가움에 빠질 위험이 있다. 즉 호수 위의 개개의 물결에 그 궤도와 영역을 지정하려고 노력하는 나머지 호수 전체의 움직임이 죽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도록 때때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높은 밀물이 일어나, 아폴로적인 '의지'가 그리스 정신을 흐리게 하려고 한 저 조그마한 둥근 둘레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92, 93면)

 

24. 이렇게 아이스퀼로스의 프로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는 이중의 본질, 디오니소스적인 동시에 아폴로적인 그의 성질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현존하는 것은 정당한 동시에 정당하지 않다. 그리고 양쪽 다 같은 자격을 갖고 있다"고. (92면)

 

25. 결국 우리는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은 서로 얽혀있는 두 개의 예술 충동, 즉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하는 저 이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07면)

 

26.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의식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그(유리피데스)의 미학의 근본 원칙은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선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원칙과 병행하는 명제이다. (115면)

 

27. 가장 정직한 이론적 인간이었던 레싱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의 탐구라고 말하였다. (130면)

 

28. 논증을 철저하게 하고, 참된 인식을 가상과 오류로부터 구별하는 것이 소크라데스적 인간에게는 유일하고 가장 고귀한 사명처럼 생각된다. 따라서 개념, 판단, 추리의 저 매카니즘은 소크라데스 이후, 자연의 최고의 활동이며 가장 감탄할 만한 선물로서 다른 모든 능력 이상으로 평가되었다. (132면)

 

29. 그러나 강력한 망상의 자극을 받아서 제기하기 어려운 과학의 한계에까지 급히 가면, 거기에서 논리의 본질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의 낙천주의는 제거된다. (133면)

 

30. 나는 아폴로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 사이의 엄청난 대립을 알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 비극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럼으로써 그리스 정신의 가장 깊은 계시에 접해 보려고 하는 절실한 요구를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비로소 현대의 속류미학의 용어법에서 벗어나 그리스 비극의 근본 문제를 생생하게 나의 마음에 제시할 수 있는 마법을 갖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그리스적인 것을 볼 때에 이상할 정도로 독자적인 눈을 갖게끔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금 뽐내고 있는 현대의 고전 그리스학 같은 것은 대개는 그림자놀이와 외면적인 것에만 즐거워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37면)

 

31. "나는 너를 원하노라. 너는 인식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50면)

 

32. 우리는 근대 알렉산드리아 문화와 새로 영접되는 디오니소스적 지혜의 문화라고 하는, 이 두 개의 이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경계선 근처에 서 있다. 시대에서 시대로 옮겨져 가는 과정과 그 사이의 여러가지 알력은 고대 그리스라고 하는 모범 속에 고전적, 교훈적 형식으로 새겨져 있기에 경계선상에 서있는 우리에게 고대 그리스는 모범으로서 한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167면)

 

33. 나의 벗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생명과 비극의 재생을 믿자.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172면)

 

34. 아폴로적 착각은 가장 중요한 점에서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 중요한 제한이라는 이것이다. ... 비극이 가져오는 전체적 작용에 있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다시 우위에 이른다. (182면)

 

35. 주의 깊은 독자는 참된 음악적 비극의 작용을, 자기가 경험한 그대로 순수하게 섞임 없이 눈앞에 떠오르도록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183면)

 

36. 이 책에서 이때까지 우리들의 미적 인식을 순화하기 위하여 그리스인으로부터 두 가지 신의 모습을 빌어왔다. 이 두 신들은 각각 독립하여 별개의 예술 영역을 지배하고, 서로의 접촉과 고양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빌어 지금까지 대강 그 관념을 얻었다고 본다. 그리스 비극의 몰락은 예술적 근원 충동의 지나친 분리에 의하여 유도되었다고 생각된다. (193면)

 

37. 타국의 신화를 이식하는 데 오랫동안 계속하여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나무가 이식에 의하여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무가 이 타국의 요소를 무서운 투쟁에 의하여 다시 한 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건장하고 강력한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무는 쇠약하고 위축되며, 병 때문에 무성한 채로 고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적 본질의 순수하고 강력한 핵심을 극히 높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폭력적으로 심어진 타국적 요소를 독일적 본질로부터 일소할 것을 감히 기대하며, 독일 정신이 본래의 자기를 자각하고 이것에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독일 정신은 라틴적인 것의 배제를 갖고 그 투쟁을 개시해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195면)

 

38.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라는 이 두가지 예술적 충동은 그의 힘을 서로 엄밀하게 조화함으로서 영원한 공정의 법칙에 따라 발휘하게끔 강요되고 있다. (204면)

 

39.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아폴로적인 것으로만 해석한 빈켈만의 견해가 오래도록 널리 인정받아 왔었다. (해설, 206면)

 

40. 이처럼 빈켈만과 괴테에 의해 정설로 굳어진 고대 그리스 문화 개념을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존재의 본질 속에서 허무를 보았지만,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비극 예술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해설, 207, 208면)

 

41. '비극의 탄생' 속에서는 또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로적인 것이 대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니체가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부터 읽기 시작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대비'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동시에 쇼펜하우어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 즉 그리스인들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주장하는 비극적인 예술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따라서 비극의 완성된 형식은 아폴로적인 동시에 디오니소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8면)

 

42. '비극의 탄생'은 그 당시 니체가 바그너에게 걸고 있었던 가장 절실한 소망, 즉 디오니소스적인 근원적 힘에 의거한 게르만적인 독일문화에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백이었다. ... 그러나 가장 기독교적인 바그너의 '파르치발'이 상연되었을 때 니체는 알았다. 바그너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배반당했음을. 바그너는 '파르치발' 가극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두 사람의 공통 투쟁 목표였던 그리스적이며 비기독교적인 기반 위에 선 게르만 문화의 재생이라는 과업에의 고별을 알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210, 2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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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사람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열등의식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 (57면)




2. 열여설 살 나이에 이미 전태일은 서울이라는 ‘부유한 환경’이 그와 그의 여동생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했다. 냉혹한 현실은 남매간의 정도 갈라놓았다. 그는 어린 동생을 버렸다. 버리면서 “피를 말리는 듯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떨었다. 그러나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76면)




3.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믿겠습니까? 벌레보다 못한 인생이요, 주인 있는 개보다도 천한 인간입니다. (79면)




4.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인 것이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 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81면)




5. 우는 그 순간은 아버지의 학대와 주위의 환경이 주는 모든 슬픈 여건 때문에 설움에 설움을 더해갔다. (82, 83면)




6.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 전태일의 1970년초 작품 초고에서 (92면)




7.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면)




8.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되는 일당 50원, 기막힌 저임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100면)




9. “... 평화시장의 여공생활 8년 만에 남는 것은 병과 노처녀 신세뿐이더라. 너만한 나이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일찌감치 평화시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야.” (106면)




10.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극히 불량한 직업환경이었다. (111면)




11. 나쁜 작업환경 속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락방이란 것이었다. ...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멀쩡한 육신을 제대로 바로 펴지 못하고 비좁은 작업장 사이를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다니는 노동자들을 상상해보라. (112면)




12. 한 가지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작업이 힘들게 작업시간이 길고 힘에 겨운 야간작업을 시키는 것이다. 공장 안에서는 절대적인 책임자인 재단사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 하기 싫은 야간작업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평일보다 작업량이 형편없이 떨어지지만, 공장 주인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 직공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 (116면)




13. 이 시기에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이때 처음으로 그 억울함을 없애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데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전태일이 그의 목숨을 걸게 되었던 고난에 찬 노동운동을 향한 첫걸음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18면)




14. 그는 가족들에게 돈 몇 푼을 다달이 더 보태려고 고분고분 죽어지내는 것보다 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여 무언가 싸움에 나서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121면)




15.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고통받는 사람들은 항상 고통만 받고 있는가? (136면)




16.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137면)




17. 만약 그들이 이 노예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137, 138면)




18. ...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138면)




19.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144면)




20. 이제 태일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그전에는 드물었던 아버지와의 대화가 잦아진 것이다. 밤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을 생각도 않고 아버지가 알고 있는 노동운동에 관한 모든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렇게 하여서 된 것이었다. 그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며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또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아버지의 체험담을 통해서였다. (145면)




21. 중요한 것은 이 바닥에서는 최소한의 인정을 베푸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47면)




22.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다른 직장으로 옮겨 여전히 재단사로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전태일은 이미 어제까지의 전태일이 아니었다. 그는 낮이면 직장에서 재단사 친구들을 틈틈이 찾아다니며 ‘바보회’를 조직하는 노동자였고, 밤이면 그의 판잣집에서 ‘근로기준법’ 조문을 뒤지며 밤이 새는 줄을 모르고 내일의 밝은 노동조건을 꿈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147면)




23. 노동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자신과 그 가족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상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보장 방법으로써 보충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여기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의 3, 4항) (150면)




24.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도 및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는 휴식과 여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 (150면)




25. “노동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하였을 때는 무척 실의에 잠기기도 하였다. (153면)




26. 이제껏 ‘모든 환경으로부터 거부’당하며 살아온 전태일에게는, “근로자의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하여 법률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암흑의 동굴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발견한 듯한 놀라운 환희였다. (153면)




27. 유해위험작업에 관한 규정(43조), 여공에대한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59조), 18세 미만의 어린 근로자들에 대한 교육시설 규정(63조), 건강진단(71조), 재해보상(제8장), 여자와 18세 미만 근로자에 관한 야간작업 금지규정(56조) 등등의 꿈같은 신천지가 눈앞에 열릴 때, 전태일은 그 모든 규정들과는 너무나도 어긋나게 벌어지고 있는 평화시장의 비인간적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가 새삼스럽게 끊어올랐다. (154면)




28. 전태일은 이제 그때까지의 자신이 ‘바보’였다는 것을 통절히 깨달았다. 또 나라의 법으로까지 보장되어 있는 보다 나은 근로조건을 쟁취하지 못하고 죽은 듯이 혹사당하고만 있는 평화시장 일대의 모든 노동자들이 다 ‘바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바보’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만든다. (155면)




29. 전태일고 그의 친구들이 택한 길은 인간의 길이었다. 그것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스스로의 힘을 확신하는, 진리가 반드시 드러날 것을 의심치 않는 억압과 착취의 저 깊은 고통의 밑바닥에서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솟아오르는 새시대의 목소리였다. (166면)




30. “당신 ... 남편은 잘못 만났지만 아들 하나는 잘 둔 것 같애. 그놈 하는 일 너무 말리지 마오...” (168면)




31. 깊은 체념과 침묵과 굴종의 얼음과도 같은 벽을 뚫고, 이제 착취와 억압과 흡혈의 만리장성인 평화시장 일대에 버려진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타개하려는 젋은 노동자들의 최초의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172면)




32. 조직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이제 전태일은 그 자신의 의지만으로 움직인다기보다 조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욱 집요하고 열렬하게 노동운동에 달라붙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보회가 창립된 지 얼마 후 그는 어머니에게 빚을 내어 책 한 권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느 노동법 학자가 쓴 근로기준법 해설서(심태식 저, 축조 근로기주넙 해설)였다. (173면)




33. 이 근로감독관이란 사람은 평화시장의 실정에 대하여 대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 노동청의 저 무성의한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치 업주들을 싸고도는 듯한 태도는 아닌가? 만약 노동청이 기업주들과 결탁하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태일은 가슴이 가위에 눌린 듯 답답해왔다. 그렇다면 나는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기를 도대체 어떻게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저들 모두를 상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저 (악마와 같은) 현실의 벽은 얼마나 두꺼우며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인가? (182, 183면)




34. 밑바닥 인간인 전태일은 ‘소외’라는 어려운 철학용어를 알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 (200면)




35. 밑바닥의 체험 속에서, 시대의 모순에 못박혀 존재의 극한상황에 선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전체 인간조건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태일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또한 관념과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의 세계였다. (201면)




36. 노예의식의 출발은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스스로 업신여김’, 억압자의 가치관에 대한 무비판적이며 굴욕적인 동조에 있는 것이다. (203면)




37. 기존 현실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비판으로 인하여 전태일 사상은 완전한 거부-완전한 부정의 사상으로 된다. 우리는 그가 현실의 ‘덩어리’ 속에 뭉쳐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데에 주목하여야 한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참된 희망과 관심과 가치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그를 단순히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기 위하여 야합하고 있는 기존 사회의 덩어리, 그것은 완전히 무가치한, 완전히 부정되어야 할, 완전한 추악한 덩어리였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버리는 일뿐이었다. (205면)




38. 교차로에서 저는 언제나 좌회전입니다. 세상에서 우회전의 우선권이 있다는 법칙 속에서, 우회전의 부러운 우선권을 바라보며, 알파와 오메가 (206면)




39. 기업주들의 비위를 폭로하기만 하면 근로감독관이니 노동청이니 혹은 사회의 다른 기구들이나 힘들이 그것을 시정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착각이 그의 지금까지의 투쟁을 좌절시키고 바보회를 해체상태로 몰아넣게 한 근본원인이 아니었을까?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억압하는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힘이 아니었을까? (208면)




40.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한반도는 강대국 냉전의 재물로 떨어진 세계 사상 유례가 드문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이었다. 좌우익이 대립한 동족전쟁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학살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에는 침미파인 우익정부가 자리잡고 좌익세력을 철저하게 말살해버렸다. 이 과정은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좌익 탄압을 핑계삼아 일체의 비판세력 제거, 일체의 대중운동 말살로 연결디었다. 이때부터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침묵이 시작된 것이다. “노동운동이란 곧 좌익운동”이라는 역사적인 낙인이 찍혀졌고, 노동운동이니 노동자니 하는 ‘노’자만 발음해도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없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란 용어가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이승만시대부터 정치권력의 철저한 통제 아래 놓여진 어용단체, 어용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286면)




41. 11월 13일을 며칠 앞두고나서 전태일은 마음이 고요하지를 못했다.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기로 했다... (289면)




42.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 (2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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