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 선집 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하에서 나는 지난 16년간 내가 몰두해 왔던 사고들, 철학적 탐구의 침전물을 출판한다. ... 나의 결과들을 그러한 하나의 전체 속에 모두 용접하려는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한 후에, 나는 이것이 나에게는 결코 잘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내가 쓸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은 언제나 단지 철학적 소견들로서만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 만일 내가 나의 사고들을 그 자연스러운 경향에 반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더 강요한다면 나의 사고들은 곧 절름발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 그런데 이것은 물론 탐구 자체의 본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탐구는 광대한 사고 영역을 종횡무진으로, 모든 방향으로 편력하도록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 이 책의 철학적 소견들은 말하자면 이 길고 얽히고설킨 여행에서 생겨난 다수의 풍경 스케치들이다. (15, 16면)

 

2. 그러나 4년 전에 나는 나의 최초의 저서 '논리 철학 논고'를 다시 읽고 그 사고들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나는 그 옛 사고들과 새로운 사고들을 함께 출판해야 할 것이라고; 후자는 오직 나의 옛 사고방식의 배경 위에서 그것과의 대조에 의해서만 올바른 조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16년 전에 다시 철학에 몰두하기 시작한 이래, 나는 내가 저 첫 번째 책에 수록해 두었던 것 속에서 중대한 오류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16, 17면)

 

3. 아마 우리들은 낱말의 의미라는 일반적 개념이 어느 정도까지 언어의 기능을 안개로 둘러싸는지, 그리하여 명료하게 보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를 짐작할 것이다. - 그 안개는 우리가 언어 현상들을 그것들의 원초적인 사용 방식에서 연구한다면 사라진다. 거기서는 낱말들의 목적과 기능이 명료하게 조망될 것이다. (24면)

 

4. '언어놀이'란 낱말은 여기서, 언어를 말하는 것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시키고자 의도된 것이다. (37면)

 

5. 우리들은 때때로, 동물들은 정신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동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말하지 않을 뿐이다. 또는 더 잘 표현하자면, 그것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38면)

 

6. 한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것의 사용이다. 그리고 때때로 한 낱말의 의미는 그 소지자를 가리킴으로써 설명된다. (52면)

 

7. 어떤 한 사물의 명명에 의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행해지지 않았다. 놀이 속에서가 아니면, 사물은 심지어 이름조차도 가지지 않는다. 하나의 낱말은 오직 문장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말로써 프레게가 뜻한 것도 역시 이것이었다. (58면)

 

8. 그러나 우리는 그 놀이가 이러이러한 규칙들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관찰자가 그 놀이의 실천으로부터 그 규칙들을 - 그 놀이 행위들이 따르는 자연법칙처럼 -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비록 우리가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인식가능할 것이다. (62면)

 

9. 더 올바르게는: "x가 존재한다"가 "X"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X를 다루고 있는 명제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 사용, 즉 X란 낱말의 사용에 관한 하나의 명제이다. (64면)

 

10. 나는 이러한 현상들에는 우리로 하여금 그 모두에 대해 같은 낱말을 사용하게 만드는 어떤 일자가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것들은 서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근친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친성 또는 근친성들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언어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69면)

 

11. 당신은 그 모든 것에 공통적인 어느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유사성들, 근친성들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제 이러한 고찰의 결과는, 우리는 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을 본다는 것이다. 큰 점과 작은 점에서의 유사성을. (70면)

 

12. 나는 이러한 유사성들을 "가족 유사성"이란 낱말에 의해서 말고는 더 잘 특징지울 수 없다. (71면)

 

13. 대체 놀이의 개념이 어떻게 폐쇄되어 있는가? 당신은 그 한계를 진술할 수 있는가? 없다. 당신은 그 한계를 그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 한계도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72면)

 

14. "놀이"란 개념은 테두리가 희미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희미한 개념이 도대체 개념인가? ... 프레게는 개념을 하나의 영역과 비교하면서,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은 도대체가 영역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말한다. 아마 이는 우리가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73면)

 

15. 물론 그렇게 봄이 있는가 하면 다르게 봄도 존재하낟. 또한 하나의 견본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그리고 그것을 달리 보는 사람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들도 존재한다. (76면)

 

16.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이, 이해한다, 뜻한다, 생각한다란 개념들에 관해서 더 큰 명료성을 획득했을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빛 속에서 드러날 수 있다. (81면)

 

17. 나는 한 낱말의 적용이 언제 어디서나 규칙들에 의해서 경계지어져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82면)

 

18. 규칙은 이정표처럼 있다. (83면)

 

19.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연구로써 어떠한 새로운 것도 배우려고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연구에 본질적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눈앞에 명백히 놓여 있는 어떤 것을 이해하고자 원한다. (87면)

 

20. 아우구스티누스(고백, XI/14): "그러므로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그 물음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한다." (88면)

 

21. 우리는 우리의 표현을 더 정확히 만듦으로써 오해들을 제거한다. (89면)

 

22. 우리는 우리의 탐구의 특색, 깊이, 본질은 그것이 언어의 비할 바 없는 본질을, 즉 명제, 낱말, 추론, 진리, 경험 등의 개념들 사이에 있는 질서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데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러한 질서는 -말하자면- 초-개념들 사이의 초-질서이다. 하지만 '언어', '경험', '세계'라는 낱말들이 어떤 사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책상', '램프', '문'이란 낱말들처럼 낮은 사용을 가져야 한다. (91면)

 

23. 우리는 이제, 이상이 실재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관념 속에서 산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직 그것이 거기서 어떻게 발견되는지는 알지 못하며, 또 이 "되어야 한다"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한다. (93면)

 

24. 그 관념은 말하자면 우리의 코에 걸쳐 있는 안경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그것을 통해서 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벗어버리려는 생각에는 전혀 이르지 못한다. (93면)

 

25.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경험의 제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나란히 놓음에 의해서 풀린다. 철학은 우리의 언어 수단에 의해 우리의 오성에 걸린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다. (96면)

 

26. 우리는 그림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 속에 놓여 있었고, 우리의 언어는 그것을 우리에게 그저 무자비하게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97면)

 

27. 우리가 하는 일은 낱말들을 그것들의 형이상학적 사용으로부터 그것들의 일상적인 사용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다. (98면)

 

28. 우리의 몰이해의 한 가지 주요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사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이해를 성사시키며, 이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연관들을 본다'는 데에 있다. 그런 까닭에 중간 고리들의 발견과 발명이 중요한 것이다. (100면)

 

29. 철학적 문제는 "나는 (길을) 훤히 알지 못한다"란 형식을 가진다. (100면)

 

30. 하나의 철학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방법들은 존재한다; 흡사 다양한 치료법들처럼. (103면)

 

31. 그러나 우리가 한 낱말을 듣거나 발화할 때, 우리는 그 낱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우리는 그것을 일거에 파악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파악하는 것은 시간 속에 뻗쳐 있는 '사용'과는 아무튼 다른 어떤 것이다! (107면)

 

32. "알다'란 낱말의 문법은 "할 수 있다"란 낱말의 문법과 명백히 밀접한 근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해한다"란 낱말의 문법과도 역시 밀접한 근친관계에 있다. (하나의 기술을 '숙달하다') (116면)

 

33. 그것은 우리가, 미래의 전개는 그 어떤 방식으로 이미 파악 작용 속에 현재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로 이끌리게 될 때 이상해진다. (149면)

 

34. 즉, 모든 해석은 해석되는 것과 함께 공중에 떠 있다; 그것은 해석되는 것에 대해 발판으로서 쓰일 수 없다. 단지 해석들만으로는 의미를 확정하지 못한다. (149면)

 

35. 언어는 하나의 미로다. 당신이 어떤 한 측면으로부터 오면, 당신은 길을 훤히 안다; 당신이 다른 한 측면으로부터 그 동일한 자리에 오면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152면)

 

36. '일치'라는 낱말과 '규칙'이라는 낱말은 서로 근친적이다. ... '규칙'이란 낱말의 사용은 '같은'이란 낱말의 사용과 밀착되어 있다. (159면)

 

37. 철학자는 문제를 마치 질병처럼 다룬다. (168면)

 

38. "언젠가 당신이 그 낱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면, 당신은 이 낱말을 이해한다. 이 낱말의 전작용을 안다." (171면)

 

39. "사적 언어"란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해 못하지만 나는 '이해하는 듯 보이는' 소리들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173면)

 

40. 한 낱말을 정당화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 그 낱말을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81면)

 

41.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을 본보기로 해서 상상해야 한다면,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느끼는 고통에 따라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상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85면)

 

42. "나는 다른 사람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단지 믿을 수 있을 뿐이지만, 내가 고통스러울 경우에는 나는 그것을 안다." (185면)

 

43.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198면)

 

44. 우리는 현상(예컨대 생각)이 아니라 개념(예컨대 생각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며, 따라서 낱말의 적용을 분석한다. (212, 213면)

 

45. 기대와 충족은 언어 속에서 맞닿는다. (234면)

 

46.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무의미로부터 명백히 드러난 무의미로 넘어가는 것이다. (240면)

 

47. "낱말의 의미는 의미의 설명이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의미'란 낱말의 사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의미의 설명'이라고 일컬어지는가를 살펴보라. (267면)

 

48. 개념들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들은 우리의 관심의 표현이며, 우리의 관심을 조종한다. (270면)

 

49. "희망하다"란 낱말은 인간의 삶이라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273면)

 

50. 철학적 질병들의 한 가지 주요 원인은 편식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사유를 오직 한 종류의 예들로 먹인다. (277면)

 

51. 철학에서는 결론들이 내려지지 않는다. "사정은 실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철학의 명제가 아니다. 철학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279면)

 

52. 우리의 잘못은, 우리가 사실들을 '원현상들'로 보아야 할 곳에서 어떤 설명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언어놀이가 행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곳에서. (296면)

 

53. 오직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희망할 수 있는가? 오직 언어의 사용을 숙달한 자만이 희망할 수 있다. (309면)

 

54.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을 의미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로써 어떤 시점과 낱말 사용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311면)

 

55.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다른 맥락 속에서, 즉 그것이 등장하는 특별한 상황들의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 (323면)

 

56.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감각들을 불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믿음을 불신할 수는 없다. (337면)

 

57. 소심한 주장을 소심함의 주장으로 간주하지 말라. (341면)

 

58.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도해를 한 번은 한 사물로, 한 번은 다른 사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것을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는 것처럼, 그것을 본다. (343면)

 

59. 사용이 그 의미를 당신에게 가르치게 하라. (376, 389면)

 

60. 본다는 것에서 어떤 것이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본다는 것 전체가 충분히 수수께끼 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77면)

 

61. 여기서 우리들은 한 낱말의 '일차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의미로 낱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만이 후자의 의미로 낱말을 사용한다. (3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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