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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ㅣ 범우고전선 17
니체 / 범우사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1. '비극의 탄생'은 니체(1844-1900)의 처녀작으로 바그너에게 헌정한 저서다. (역자서문, 7면)
2. 니체는 이 책 속에서 그리스 비극이 발생하여 멸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쇼펜하우어 철학에 의거하여 해명하면서 종래 아폴로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온 그리스 문화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을 발견해 내고 있다. 그리고 이 디오니소스적인 예술 충동이야말로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독일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바그너를 스승으로 삼고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창하고 있다. (역자서문, 7면)
3. 그리스 비극은 아폴로적 몽환의 이데아계와 디오니소스적 충동계 와의 긴장된 일체관계에 있어서 삶을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서, 지적 합리성에 의거하여 형태를 갖추어 보려고 하는 천박한 인생 파악보다 훨씬 심원한 예지의 결정인 것이다. (역자서문, 8면)
4. 그 과제란, 즉 과학을 예술가의 견지에서 보고, 한편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본다는 과제다. (15면)
5. 기독교야말로 도덕적 주제의 철저한 도식화라는 점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경청한 것 가운데 가장 방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르치고 있는 순전히 미적인 세계 해석과 세계 정당화에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기독교의 교리보다 더 큰 대립은 없다. (20, 21면)
6. "모든 비약적인 것에 마음을 고양시키고 독특한 비약력을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 즉 세계와 인생은 어떠한 참된 만족도 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세계와 인생은 우리들이 집착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극적 정신이 있다. 그러기에 비극적 정신은 체념과도 통한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편, 23면)
7. 나의 젋은 친구들이여! 어디까지나 비관주의자로 머물기를 원한다면 너희들은 웃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26면)
8. '짜라투스트라'라고 불리는 저 디오니소스적인 괴물의 말을 빌어 말하면, ... 너희들 높은 인간들이여! 나에게 배울지어다 - 웃는 것을! (26, 27면)
9. 예술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과제이며 인생 본래의 형이상학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을...(29면)
10. 예술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으로 말미암아 발전하고 있다. (29, 30면)
11. 이 두 가지의 충동은 크게 성격이 다르면서도 서로 평행하고 있고, 대체로 공공연하게 반목하고 상호 자극하여, 항상 새롭고 힘찬 출발을 계속한다. (30면)
12. 꿈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은 완전한 예술가이다. (31면)
13.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작품 제1부에서 "망마하기 그지없고, 산더미같은 파도가 표효하며, 성난 바다 위의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처럼 개개의 인간은 고난의 세계의 한복판에서 개별화의 원리에 의지하고 이를 믿고 앉아 있다"고 했다. (34, 35면)
14. 인간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 즉 인간이 되는 것이다. (36, 37면)
15.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미학의 근본개념. 예술의 본질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에 있다고 하였다. (38면)
16. 근원적 욕구가 보다 더 차원 높은 만족을 얻으려면 그 이상의 가상을 찾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49면)
17. 보라! 아폴로는 디오니소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거인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은 결국 아폴로적인 것과 똑같은 정도로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51면)
18. 서정시인은 어느 시대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항상 '나'를 말하며, 자기의 정열과 욕망의 모든 반음계를 우리들에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55면)
19. 자기 자신이 근원적 고통이며, 고통의 근원적 반향인 것이다. (57면)
20. ... 음악은 그 본질상 의지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음악이 의지라고 한다면, 예술의 영역에서 완전히 추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지는 자체가 비심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은 의지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음악 현상을 형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서정시인은 사랑의 속삭임에서부터 광기의 노여움에 이르기까지 정열의 모든 감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65면)
21.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는 오늘날 자연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존중하는 나머지 현대는 모든 이상주의와 정반대의 극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71면)
22. 인식은 행동을 죽인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환상의 베일에 싸일 필요가 있다. (73면)
23. 왜냐하면 아폴로가 개개의 사물을 안정시키려는 수단은 개체의 경계선을 긋는 것이고, 이 경계선을 가장 신성한 세계 법칙으로서 계속 상기시켜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저 절도를 요구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폴로적 경향 때문에 형식이 굳어져서 차칫하며 이집트적인 딱딱함과 차가움에 빠질 위험이 있다. 즉 호수 위의 개개의 물결에 그 궤도와 영역을 지정하려고 노력하는 나머지 호수 전체의 움직임이 죽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도록 때때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높은 밀물이 일어나, 아폴로적인 '의지'가 그리스 정신을 흐리게 하려고 한 저 조그마한 둥근 둘레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92, 93면)
24. 이렇게 아이스퀼로스의 프로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는 이중의 본질, 디오니소스적인 동시에 아폴로적인 그의 성질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현존하는 것은 정당한 동시에 정당하지 않다. 그리고 양쪽 다 같은 자격을 갖고 있다"고. (92면)
25. 결국 우리는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은 서로 얽혀있는 두 개의 예술 충동, 즉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하는 저 이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07면)
26.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의식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그(유리피데스)의 미학의 근본 원칙은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선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원칙과 병행하는 명제이다. (115면)
27. 가장 정직한 이론적 인간이었던 레싱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의 탐구라고 말하였다. (130면)
28. 논증을 철저하게 하고, 참된 인식을 가상과 오류로부터 구별하는 것이 소크라데스적 인간에게는 유일하고 가장 고귀한 사명처럼 생각된다. 따라서 개념, 판단, 추리의 저 매카니즘은 소크라데스 이후, 자연의 최고의 활동이며 가장 감탄할 만한 선물로서 다른 모든 능력 이상으로 평가되었다. (132면)
29. 그러나 강력한 망상의 자극을 받아서 제기하기 어려운 과학의 한계에까지 급히 가면, 거기에서 논리의 본질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의 낙천주의는 제거된다. (133면)
30. 나는 아폴로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 사이의 엄청난 대립을 알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 비극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럼으로써 그리스 정신의 가장 깊은 계시에 접해 보려고 하는 절실한 요구를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비로소 현대의 속류미학의 용어법에서 벗어나 그리스 비극의 근본 문제를 생생하게 나의 마음에 제시할 수 있는 마법을 갖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그리스적인 것을 볼 때에 이상할 정도로 독자적인 눈을 갖게끔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금 뽐내고 있는 현대의 고전 그리스학 같은 것은 대개는 그림자놀이와 외면적인 것에만 즐거워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37면)
31. "나는 너를 원하노라. 너는 인식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50면)
32. 우리는 근대 알렉산드리아 문화와 새로 영접되는 디오니소스적 지혜의 문화라고 하는, 이 두 개의 이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경계선 근처에 서 있다. 시대에서 시대로 옮겨져 가는 과정과 그 사이의 여러가지 알력은 고대 그리스라고 하는 모범 속에 고전적, 교훈적 형식으로 새겨져 있기에 경계선상에 서있는 우리에게 고대 그리스는 모범으로서 한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167면)
33. 나의 벗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생명과 비극의 재생을 믿자.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172면)
34. 아폴로적 착각은 가장 중요한 점에서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 중요한 제한이라는 이것이다. ... 비극이 가져오는 전체적 작용에 있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다시 우위에 이른다. (182면)
35. 주의 깊은 독자는 참된 음악적 비극의 작용을, 자기가 경험한 그대로 순수하게 섞임 없이 눈앞에 떠오르도록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183면)
36. 이 책에서 이때까지 우리들의 미적 인식을 순화하기 위하여 그리스인으로부터 두 가지 신의 모습을 빌어왔다. 이 두 신들은 각각 독립하여 별개의 예술 영역을 지배하고, 서로의 접촉과 고양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빌어 지금까지 대강 그 관념을 얻었다고 본다. 그리스 비극의 몰락은 예술적 근원 충동의 지나친 분리에 의하여 유도되었다고 생각된다. (193면)
37. 타국의 신화를 이식하는 데 오랫동안 계속하여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나무가 이식에 의하여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무가 이 타국의 요소를 무서운 투쟁에 의하여 다시 한 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건장하고 강력한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무는 쇠약하고 위축되며, 병 때문에 무성한 채로 고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적 본질의 순수하고 강력한 핵심을 극히 높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폭력적으로 심어진 타국적 요소를 독일적 본질로부터 일소할 것을 감히 기대하며, 독일 정신이 본래의 자기를 자각하고 이것에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독일 정신은 라틴적인 것의 배제를 갖고 그 투쟁을 개시해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195면)
38.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라는 이 두가지 예술적 충동은 그의 힘을 서로 엄밀하게 조화함으로서 영원한 공정의 법칙에 따라 발휘하게끔 강요되고 있다. (204면)
39.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아폴로적인 것으로만 해석한 빈켈만의 견해가 오래도록 널리 인정받아 왔었다. (해설, 206면)
40. 이처럼 빈켈만과 괴테에 의해 정설로 굳어진 고대 그리스 문화 개념을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존재의 본질 속에서 허무를 보았지만,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비극 예술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해설, 207, 208면)
41. '비극의 탄생' 속에서는 또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로적인 것이 대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니체가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부터 읽기 시작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대비'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동시에 쇼펜하우어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 즉 그리스인들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주장하는 비극적인 예술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따라서 비극의 완성된 형식은 아폴로적인 동시에 디오니소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8면)
42. '비극의 탄생'은 그 당시 니체가 바그너에게 걸고 있었던 가장 절실한 소망, 즉 디오니소스적인 근원적 힘에 의거한 게르만적인 독일문화에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백이었다. ... 그러나 가장 기독교적인 바그너의 '파르치발'이 상연되었을 때 니체는 알았다. 바그너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배반당했음을. 바그너는 '파르치발' 가극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두 사람의 공통 투쟁 목표였던 그리스적이며 비기독교적인 기반 위에 선 게르만 문화의 재생이라는 과업에의 고별을 알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210, 2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