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사람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열등의식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 (57면)




2. 열여설 살 나이에 이미 전태일은 서울이라는 ‘부유한 환경’이 그와 그의 여동생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했다. 냉혹한 현실은 남매간의 정도 갈라놓았다. 그는 어린 동생을 버렸다. 버리면서 “피를 말리는 듯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떨었다. 그러나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76면)




3.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믿겠습니까? 벌레보다 못한 인생이요, 주인 있는 개보다도 천한 인간입니다. (79면)




4.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인 것이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 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81면)




5. 우는 그 순간은 아버지의 학대와 주위의 환경이 주는 모든 슬픈 여건 때문에 설움에 설움을 더해갔다. (82, 83면)




6.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 전태일의 1970년초 작품 초고에서 (92면)




7.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면)




8.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되는 일당 50원, 기막힌 저임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100면)




9. “... 평화시장의 여공생활 8년 만에 남는 것은 병과 노처녀 신세뿐이더라. 너만한 나이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일찌감치 평화시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야.” (106면)




10.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극히 불량한 직업환경이었다. (111면)




11. 나쁜 작업환경 속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락방이란 것이었다. ...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멀쩡한 육신을 제대로 바로 펴지 못하고 비좁은 작업장 사이를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다니는 노동자들을 상상해보라. (112면)




12. 한 가지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작업이 힘들게 작업시간이 길고 힘에 겨운 야간작업을 시키는 것이다. 공장 안에서는 절대적인 책임자인 재단사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 하기 싫은 야간작업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평일보다 작업량이 형편없이 떨어지지만, 공장 주인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 직공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 (116면)




13. 이 시기에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이때 처음으로 그 억울함을 없애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데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전태일이 그의 목숨을 걸게 되었던 고난에 찬 노동운동을 향한 첫걸음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18면)




14. 그는 가족들에게 돈 몇 푼을 다달이 더 보태려고 고분고분 죽어지내는 것보다 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여 무언가 싸움에 나서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121면)




15.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고통받는 사람들은 항상 고통만 받고 있는가? (136면)




16.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137면)




17. 만약 그들이 이 노예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137, 138면)




18. ...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138면)




19.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144면)




20. 이제 태일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그전에는 드물었던 아버지와의 대화가 잦아진 것이다. 밤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을 생각도 않고 아버지가 알고 있는 노동운동에 관한 모든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렇게 하여서 된 것이었다. 그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며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또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아버지의 체험담을 통해서였다. (145면)




21. 중요한 것은 이 바닥에서는 최소한의 인정을 베푸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47면)




22.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다른 직장으로 옮겨 여전히 재단사로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전태일은 이미 어제까지의 전태일이 아니었다. 그는 낮이면 직장에서 재단사 친구들을 틈틈이 찾아다니며 ‘바보회’를 조직하는 노동자였고, 밤이면 그의 판잣집에서 ‘근로기준법’ 조문을 뒤지며 밤이 새는 줄을 모르고 내일의 밝은 노동조건을 꿈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147면)




23. 노동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자신과 그 가족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상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보장 방법으로써 보충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여기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의 3, 4항) (150면)




24.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도 및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는 휴식과 여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 (150면)




25. “노동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하였을 때는 무척 실의에 잠기기도 하였다. (153면)




26. 이제껏 ‘모든 환경으로부터 거부’당하며 살아온 전태일에게는, “근로자의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하여 법률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암흑의 동굴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발견한 듯한 놀라운 환희였다. (153면)




27. 유해위험작업에 관한 규정(43조), 여공에대한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59조), 18세 미만의 어린 근로자들에 대한 교육시설 규정(63조), 건강진단(71조), 재해보상(제8장), 여자와 18세 미만 근로자에 관한 야간작업 금지규정(56조) 등등의 꿈같은 신천지가 눈앞에 열릴 때, 전태일은 그 모든 규정들과는 너무나도 어긋나게 벌어지고 있는 평화시장의 비인간적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가 새삼스럽게 끊어올랐다. (154면)




28. 전태일은 이제 그때까지의 자신이 ‘바보’였다는 것을 통절히 깨달았다. 또 나라의 법으로까지 보장되어 있는 보다 나은 근로조건을 쟁취하지 못하고 죽은 듯이 혹사당하고만 있는 평화시장 일대의 모든 노동자들이 다 ‘바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바보’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만든다. (155면)




29. 전태일고 그의 친구들이 택한 길은 인간의 길이었다. 그것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스스로의 힘을 확신하는, 진리가 반드시 드러날 것을 의심치 않는 억압과 착취의 저 깊은 고통의 밑바닥에서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솟아오르는 새시대의 목소리였다. (166면)




30. “당신 ... 남편은 잘못 만났지만 아들 하나는 잘 둔 것 같애. 그놈 하는 일 너무 말리지 마오...” (168면)




31. 깊은 체념과 침묵과 굴종의 얼음과도 같은 벽을 뚫고, 이제 착취와 억압과 흡혈의 만리장성인 평화시장 일대에 버려진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타개하려는 젋은 노동자들의 최초의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172면)




32. 조직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이제 전태일은 그 자신의 의지만으로 움직인다기보다 조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욱 집요하고 열렬하게 노동운동에 달라붙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보회가 창립된 지 얼마 후 그는 어머니에게 빚을 내어 책 한 권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느 노동법 학자가 쓴 근로기준법 해설서(심태식 저, 축조 근로기주넙 해설)였다. (173면)




33. 이 근로감독관이란 사람은 평화시장의 실정에 대하여 대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 노동청의 저 무성의한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치 업주들을 싸고도는 듯한 태도는 아닌가? 만약 노동청이 기업주들과 결탁하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태일은 가슴이 가위에 눌린 듯 답답해왔다. 그렇다면 나는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기를 도대체 어떻게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저들 모두를 상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저 (악마와 같은) 현실의 벽은 얼마나 두꺼우며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인가? (182, 183면)




34. 밑바닥 인간인 전태일은 ‘소외’라는 어려운 철학용어를 알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 (200면)




35. 밑바닥의 체험 속에서, 시대의 모순에 못박혀 존재의 극한상황에 선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전체 인간조건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태일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또한 관념과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의 세계였다. (201면)




36. 노예의식의 출발은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스스로 업신여김’, 억압자의 가치관에 대한 무비판적이며 굴욕적인 동조에 있는 것이다. (203면)




37. 기존 현실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비판으로 인하여 전태일 사상은 완전한 거부-완전한 부정의 사상으로 된다. 우리는 그가 현실의 ‘덩어리’ 속에 뭉쳐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데에 주목하여야 한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참된 희망과 관심과 가치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그를 단순히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기 위하여 야합하고 있는 기존 사회의 덩어리, 그것은 완전히 무가치한, 완전히 부정되어야 할, 완전한 추악한 덩어리였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버리는 일뿐이었다. (205면)




38. 교차로에서 저는 언제나 좌회전입니다. 세상에서 우회전의 우선권이 있다는 법칙 속에서, 우회전의 부러운 우선권을 바라보며, 알파와 오메가 (206면)




39. 기업주들의 비위를 폭로하기만 하면 근로감독관이니 노동청이니 혹은 사회의 다른 기구들이나 힘들이 그것을 시정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착각이 그의 지금까지의 투쟁을 좌절시키고 바보회를 해체상태로 몰아넣게 한 근본원인이 아니었을까?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억압하는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힘이 아니었을까? (208면)




40.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한반도는 강대국 냉전의 재물로 떨어진 세계 사상 유례가 드문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이었다. 좌우익이 대립한 동족전쟁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학살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에는 침미파인 우익정부가 자리잡고 좌익세력을 철저하게 말살해버렸다. 이 과정은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좌익 탄압을 핑계삼아 일체의 비판세력 제거, 일체의 대중운동 말살로 연결디었다. 이때부터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침묵이 시작된 것이다. “노동운동이란 곧 좌익운동”이라는 역사적인 낙인이 찍혀졌고, 노동운동이니 노동자니 하는 ‘노’자만 발음해도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없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란 용어가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이승만시대부터 정치권력의 철저한 통제 아래 놓여진 어용단체, 어용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286면)




41. 11월 13일을 며칠 앞두고나서 전태일은 마음이 고요하지를 못했다.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기로 했다... (289면)




42.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 (2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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