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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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언제부터인가 지식인에게 앎과 삶의 불일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낮엔 진보, 밤엔 보수로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가 된 지 오래되었고, 지식인의 정체성은 권력 참여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참고가 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사회 비판적 활동은 이제 특별한 공직이 없을 때 즐기는 사회적 유희처럼 되었다. 지식인의 신념과 철학, 노선은 권력에 참여할 계기가 생기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일회용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왕성한 사회 비판 활동은 아직 공직을 차지하지 못한 자의 여가 혹은 불평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을 맞고 있다. (12면)




2. 이 사회를 변함없이 지배해 온 것은 성장지상주의, 시장주의, 미국이라는 세 키워드였다. (13면)




3. 민주화 20년을 마감하고, 신보수주의 시대가 꽃을 피는 이 시점에 저항과 부정만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대안 체제의 구축이다. 공허한 담론은 지배 질서를 흔들지 못하지만, 현실 가능하고 선택 가능한 대안은 매우 위협적이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대항 헤게모니를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14면)




4. 이남호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식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엄격한 비판 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에 있을 것이다. 신지식인은 이러한 지식인의 근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다”고 했다. 지식인은 이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되었다. 지식인은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고 있다. (19, 20면)




5.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 메커니즘이 고장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지식인은 막걸리 집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강의실에서의 논쟁을 통해, 감옥의 사색을 통해 등장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23면)




6. 생물학적 인간으로서 농민이 아니라 사회과학 범주의 농민이 해체되는 것이죠. 대의, 표상되지 못하면 존재하고 있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30면)




7. 지식이, 권력이 되고 부가 되는 사회에서는 지식 생산자가 그 자체로 권력이 됩니다. (32면)




8. 지식은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톰 허츠라는 사람이 쓴 미국의 계층 이동성에 관한 논문을 보면, 미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주요 채널이 인종이 아니고 교육이라고 나왔어요. (32, 33면)




9.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33면)




10.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릅니다. ‘세계를 개선시키려는 그대의 눈빛이 날 근심케 한다.’ (36면)




11. 김동춘 교수도 사회가 기업화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첨병이 대학입니다. (39면)




12. 총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탈근대주의가 가르친 진실이다. (52, 53면)




13. 2007년 현재까지 3, 316명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신지식인은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일반적 목표에 국민을 동원하려는 상징 조작이었다. (53면)




14.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은 혼돈의 와중에 있다. 그의 자산인 ‘지식’은 인터넷이 대신하며, 그의 도구인 ‘글쓰기’는 댓글보다 읽히지 않는다. 그의 언어인 보편성은 의심의 대상이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신뢰성을 잃었다. (54면)




15. 그간 일어난 지식인상의 변화 중 ‘독립적 지식인’의 확산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강준만, 박노자, 고미숙, 이정우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탈근대적 사유에 기반을 두면서 탈권위주의, 다원화 그리고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지향한다. 여러 방면에서 과거 지식인의 존재 방식과 다른 차원을 선보이는 이들의 활동은 향후 지식인상의 갱신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55면)




16. 최근에 ‘대중지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도 지식인의 몰락과 대중의 등장이라는 현상과 연관이 깊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자율주의에 기반한 다중네트워크센터가 주도적으로 제창하고 있는 이 개념은 지식인의 위계적, 엘리트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근원에 두는 새로운 지식 창출, 향유 방식을 겨냥한다. (56면)




17. 지식인이란 본래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56면)




18.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년)는 이 책 제목이 하나의 관용어로 정착되는 계기가 된다. (61, 62면)




19. 그(최장집)는 “지식인의 몰락은 민주화 이후 ‘군부 독재 반대’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쟁’의 의미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는 대안적 비전을 갖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말했다. (71면)




20. 조국 교수도 “민간, 민선 정부의 출범 이후 비판적 지식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범위와 수가 늘면서 권력과 지식인 간에 존재해야 할 긴장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교수는 “위기의 주원인은 진보 정권 출범 이후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정권에 투항해 어용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2면)




21. 신광영 교수는 지식인의 위기를 ‘민주화의 역설’로 설명했다. 그는 “지식인의 위기는 민주화 운동의 성공에 따른 사회 다원화의 산물”이라며 “다원화되면서 각 영역에서 독자적인 지식과 활동 논리가 등장했고, 과거와 같은 포괄적 이론이나 지식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식인에 대한 요구와 기대도 ‘지사적 지식인’에서 ‘전문적 지식인’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72, 73면)




22. 어느 대학의 한 교수는 ...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지식정보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지식 성격의 변화에 있다”고 말했다. 실용적 가치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통적 지식인의 입지가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73면)




23.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서구의 경험을 어설프게 원용하는 깊이 없고 비현실적인 지식사회의 풍토가 문제”라며 “지식 상품 시장이 정치권력 시장보다 더 천박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76면)




24.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 김수영과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 대부분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기는커녕 세계를 잘 모르는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다.” (77면)




25. 지배자들이 선진화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선진화되는 게 아니라 후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진화는 가난뱅이도 지식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데, 한국은 여태까지 있었던 가능성마저 봉쇄되어 가고 있습니다. (82면)




26.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벌은 국가 밑에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 위에 재벌이 있는 것이니까 확 바뀐 거죠. 기업에 예속되어 있고 노예화되어 있는 사회로 접어든 것입니다. 1970, 80년대에 등단해 여태까지 문단을 주도해 오신 분들은 이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85면)




27. 민주화라는 기만적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된 적이 없잖아요. (86면)




28. 이와는 달리 김상조 교수는 “지식인의 현실참여가 곧 제도 정치권의 접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교수도 “운동정치 참여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08면)




29. 전 지구화와 아울러 사회는 더욱 복잡하게 변화하고, 지식 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지식의 존재 조건도 그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는 더욱 파편화되고 ‘의미공동체’의 분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종말을 고할 것인가. 오히려 지식인은 전문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그 전문성을 통해 파편화된 의미공동체 사이를 매개하는 해석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식인은 이제 무책임한 입법자로서의 행세를 그만두고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113면)




30. 한국 사회의 이 일그러진 모습은 과잉규제(비합리적 규제의 존재) 탓인가 아니면 과소 규제(합리적 규제의 부재) 탓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거의 정경유착은 과잉 규제의 산물이지만, 오늘날의 재벌공화국은 과소 규제의 산물이다. 건전한 경제사회질서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적 규제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142면)




31. 얼마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성향의 경제학회인 한국사회경제학회의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40대 중반인 필자(김상조)가 거의 막내급에 속하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진보 경제학자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145면)




32. 권력은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힘에서 나오며, 상징적 힘이 가장 강력하게 행사되는 지점이 바로 문화권력이다. (154면)




33. 문화경력은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를 부르디외의 언급대로 ‘전복’과 ‘배제’의 규칙이 작용하는 장의 논리를 갖는다. 문화권력의 장은 서로 같은 입장을 가진 자들이 만든 구조적 공간으로서 장을 유지하기 위한 배제의 논리와 그것을 깨기 위한 전복의 논리가 치열하게 경합을 벌일 뿐, 애초부터 정치적, 윤리적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념적으로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자신들이 장을 지키려는 문화권력의 속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54면)




34. 1980년대만 해도 문단 혹은 문학권력은 순수 대 참여, 진보 대 보수라는 간단한 대립 구도하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문학의 권력은 학벌, 담론, 장르, 저널리즘의 분파들 속에서 복잡하게 분화된다. 가령 ‘창비’와 ‘문지’라는 전통적인 문단권력은 ‘문학동네’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주류, 비주류로 구분하는 상업적 경계로 분할되고, 문학 시장의 주도권을 누구 잡는가에 집중한다. (156면)




35. 신율 교수는 “시민운동은 권력을 감시해야지 스스로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162면)




36. 게다가 미국 유학파가 주도하는 한국 사회과학계는 진보적 지식인을 내돌리고 있다. 교수 충원 과정을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기존 교수들이 좌지우지해서다. 그들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다. (184면)




37. 신광영 교수는 “우리는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외국 대학에 위탁하고 있다”며 “학문 주권의 상실”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그 부작용으로 미국적 가치관을 가진 지식인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192면)




38. “연구 이외에 다른 데에 시간 많이 쓰는 교수들이 너무 많다. 기업체 대상 강연에 교수들이 왜 가나, 골프는 또 왜 치나. 그러니 교수들의 연구력이 떨어지고, 학생들을 엉터리로 가르친다. 그래서 국내 학위자들을 교수로 안 뽑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193면)




39. 예전보다 논문 수는 늘었지만 도발적인 문제제기나 참신한 생각이 담긴 논문을 찾아보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201면)




40. 가령 마이클 하트나 안토니오 네글리는 열대지방 흰개미의 놀라운 건축술을 지적하며 ‘무리 지성’ (swam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별 흰개미의 지능은 미비하지만 이들이 이룬 무리의 기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221면)




41. 지금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시스템 속에서 기계들과 사람들과 자원들이 서로 연결되는 생산 시스템이 점차 지배적인 것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지식, 정보, 소통, 그리고 정서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집니다. 네그리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면서 대안적으로 제시한 개념이 ‘대중지성’(mass intellect)입니다. (226면)




42. 대중지성이 사람들의 집단화된 몸, 덩어리진 몸을 염두에 뒀다면, 다중지성이라고 했을 때는 복수성 속에서의 공통성, 이산 속에서의 연결, 이른바 네트워킹된 지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2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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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위한 투쟁 범우문고 178
루돌프 V.예링 지음, 심윤종 옮김 / 범우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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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두 가지만은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첫째는 내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모든 종류의 분쟁에 있어서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인격의 경시를 포함하는 때에 한해서만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견해를 곡해함으로써 마치 하찮은 말싸움이나 분쟁, 소송이나 투쟁욕을 변호하는 사람처럼 나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양보와 화해, 관대와 인간애, 권리행사의 조정과 포기 등도 내 이론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내 이론이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은 다만 비겁과 태만에서 오는 불법에 대한 가치없는 인종에 있다. (18면)




2. 내가 하고 싶은 두 번째 부탁은 나의 이론에 대해 진심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 이론이 전개하고 있는 실천적 태도의 적극적인 방식에 대해 자기 쪽에서도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적극적인 방식을 대치시키는 시도를 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곧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게 될지를 알게 될 것이다. (18면)




3. 법의 목적은 평화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그런데 법이 불법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 한 이와 같은 현상은 세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되겠지만 법은 투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법의 생명이 바로 투쟁, 즉 민족과 국가권력, 계급과 개인의 투쟁에 있기 때문이다. (21면)




4. 법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판과 다른 손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검을 쥐고 있는 것이다. 절제를 모르는 검은 하나의 폭력이며 반대로 검을 갖지 못한 절제는 법의 무력을 뜻한다. 즉 이 두 가지는 한 쌍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법의 실현이란 검을 찬 정의의 여신이 검을 사용하는 힘의 저울판을 잘 조정하는 숙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21, 22면)




5. 법은 자기의 존재를 투쟁과정 속에서 획득하거나 주장해야 한다. (25면)




6. 나는 로마법적 학풍의 이론을 주동적인 그 이론의 두 대표자의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법의 설립에 관한 사비니와 푸흐타 이론’이라 표시하고자 한다. 이들 두 대표자의 이론에 의하면 법의 형성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무런 고통도 없이 마치 언어의 형성에서와 같이 소리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그것은 아무런 노력도 아무런 투쟁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탐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리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해지는 스스로의 진리의 힘이며, 인간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계발되어 행위로써 표현되는 확신의 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새로운 법규도 언어의 규칙처럼 손쉽게 생겨난다. ... 이것이 내가 그 당시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수년 동안 계속해서 영향받았던 법의 성립에 관한 내 생각이었다. (26, 27면)




7. 즉 법규나 제도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는 것은 이러한 이해관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며 수천 개의 발로 밀착되어 있는 해파리를 떼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모든 시도는 자기보존을 위한 자연적인 충동으로써 이익을 침해당하는 자들의 강한 반항을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투쟁을 야기시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종류의 싸움이 그런 것처럼 투쟁의 원인보다는 상호대립하는 여러 힘의 세력관계가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29면)




8. 법의 역사가 보여 주는 모든 위대한 업적, 즉 노예와 농노제도의 폐지, 토지소유권과 상업 및 신앙의 자유 등은 격렬한, 때로는 수세기 동안 계속된 투쟁을 통해서만 비로소 획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혈의 참사가, 또한 도처에서 유린된 권리가 법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왜냐하면 “법은 자기 자식을 잡어먹는 사탄이기 때문이다. 즉 법은 스스로의 과거를 청산함으로써만 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 31면)




9. 형성된 모든 것은 그것이 파괴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31면)




10. 이와 같이 법은 법의 역사적 항쟁 속에서 탐구와 투쟁의 모습을, 간단히 말해서 고된 노력의 모습을 우리들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31면)




11. ... 자신의 과거를, 즉 지배의 속성을 극복한다는 것은 최대의 적을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개념으로서의 법은 인간의 여러 목적과 노력, 관심의 혼란한 상황에 휩쓸릴지라도 정당한 길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탐구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옳은 길을 찾았을 때에는 자기의 길을 스스로 막는 적대감을 버릴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32면)




12.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법의 발전과정을 언어나 예술의 발전과정과 유사한 차원에서 설명하는 사비니의 주장이 순식간에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것을 강력히 배격해야 한다. ... 여기에 사비니의 모든 제자들이 입법에 대한 간섭을 혐오하는 이유가 있고, 또한 푸흐타의 관습법 이론에서 관습의 참된 의의가 오해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관습은 푸흐타에 의하면 법적 신념의 단순한 인식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 이것으로써 그는 다만 그 시대 유행의 조류에 보조를 맞추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32, 33면)




13.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건했다고 생각되는 이 시대가 정반대로 조잡, 잔인, 냉혹, 교활이라는 특징으로 지배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가 그 후 어느 시대보다는 손쉽게 법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실로 믿기 어렵다. (34, 35면)




14. 신은 그가 사랑하는 민족에게 그 민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려주지도 않고 그 민족이 목적을 위해 바치는 노력을 감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은 이것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주저치 않았다. 즉 탄생을 위해 법이 요구하는 투쟁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라고 말이다. (36면)




15. 나는 지금부터 주관적인 또는 구체적인 법을 위한 투쟁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투쟁은 주관적인 법이나 구체적인 법이 침해당하거나 유보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 이 투쟁은 아래로는 사법이라는 낮은 차원에서부터 위로는 국법이나 국제법이라는 고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되풀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37면)




16. 내면의 소리는 그에게 속삭인다. “너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없는 투쟁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명예, 법감정이며 자기존중이기 때문이다”고. 요약하면 그 소송은 그에게는 단순한 이해의 문제로부터 인격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인격의 주장이냐 포기냐가 문제시된다. (44, 45면)




17. 그와 같은 저항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그 저항은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명령이며 사회에 대한 의무다. 왜냐하면 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6면)




18. 자기존재의 주장은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의 최고법칙이다. 모든 생물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 생존인 것이며, 정신적인 생존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권리의 주장이다. 권리 속에서 인간은 그의 정신적인 생존조건을 보유하고 방어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권리가 없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47면)




19. 왜냐하면 이 문제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고 상처받은 법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계에서 당사자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사자가 믿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악의의 추측이다. 만약 이 추측을 배제시킬 수 있다면 당사자는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이해의 관점에서 사건을 관찰하게 되어 화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당사자가 선입견 때문에 이러한 모든 화해 시도에 대해 매우 완강히 저항한다는 것은 실제문제에 관여하는 법률가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51면)




20. 요약하면 국가나 개인으로부터 발생하는 법감정의 반응은 그들의 특수한 생존조건이 직접 위협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곳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63면)




21. 이 이상주의는 법감정의 건전성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을 오로지 이기주의와 이해타산의 낮은 영역으로 인도하는 권리는 다시 이상의 높은 영역으로 승화된다. (73면)




22. 권리란 인격의 정신적 존재조건이며, 권리주장이란 인격 자체의 정신적인 자기보존이다. 법감정이 자기에게 가해진 침해에 대해 반응하는 격렬성이나 지속성은 그 법감정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시금석이다. (75면)




23. 법감정의 병리학 ... (76면)




24. 지금까지의 내 논술을 나는 다음과 같은 동일한 원칙으로 끝내고자 한다. 즉 침해받은 권리에 대한 주장은 인격의 자기보존을 위한 행위이며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80면)




25. 나는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원칙 중 첫째 원칙, 즉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라는 것을 논술했다. 다음에는 두 번째 원칙, 즉 권리 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라는 원칙을 논술해 보고자 한다. (81면)




26. 구체적 권리는 법으로부터 생명과 힘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추상적 법률에게 동일한 것을 되돌려 준다. (82면)




27. 독일어가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소위 사법살인(Justiz Mord)은 법이 받아야 할 최대의 죄악이다. 법규 수호자와 파수꾼이 그 법규 살인자로 변하는 것이다. (102면)




28. 법감정은 국가를 하나의 나무라 가정할 때 나무 전체를 받드는 뿌리다. (112면)




29. 그러나 전제정치는 나무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즉 우선 잎사귀에는 손을 대지 않고 먼저 뿌리를 파괴시킨다. (113면)




30. 아무리 건전한 법감정이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동안 악법을 이겨 낼 수는 없어서, 그것은 둔감해지고 위축된다. 왜냐하면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언급한 바와 같이 법의 본질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공기와 불꽃과의 관계는 행위의 자유와 법감정과의 관계와 같다. 즉 법감정에 대해 행위의 자유를 금한다든지 또는 방해한다는 것은 그것의 목을 조른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116, 1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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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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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것이 근대화와 서구 문화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습니다. (16면)




2.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From Substance-centered Paradigm to Relation-centered One) (23면)




3.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23면)




4. 차이에 주목하는 것을 부분을 확대하는 것 (27면)




5. ... 동양 사상을 특수한 것, 전근대적인 것, 그리고 때로는 저급한 것으로 규정하는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에 갇히게 되는 것이지요. (28면)




6. 엄격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28면)




7.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29면)




8. 오늘날은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과학에 대한 억압이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면)




9.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한마디로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하여 자본 축적을 이루어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최선의 사회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는 논리입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금욕주의가 바로 신의 소명이라는 논리입니다. ... 베버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윤리를 개진한 것이기보다는 자본 논리를 합리화하는 맥락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동양 사상에 대해 저급한 이해의 층위를 드러냈을 뿐이지요. 다만 그처럼 예찬한 자본 축적 과정이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과연 어떠한 비극으로 점철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베버는 최소한의 전망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양 사상이 비종교적이며 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은 베버가 옳게 지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주의를 현세적 향락과 체면의 문화로 규정하고 있는 논리적 무리인 것이죠. (35면)




10.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37면)




11. 논어에 ‘덕불고 필유린’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41면)




12.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41면)




13. 인은 기본적으로 인+인 즉 이인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 즉 인과 인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혹시 여러분 중에 ‘간’에다 초점을 두는 ‘사이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중심을 두는 개념입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사이존재’와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41면)




14. 인본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그것의 독선과 허구성을 지적하는 반체제 이데올로기가 바로 도가입니다. 유가와 도가는 이로써 서로 견제하고, 이로써 중용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요. ... 사상이란 다른 사상과의 모순 관계에 있을 때 비로소 사상으로서의 체계가 완성된다는 원칙론의 확인이기도 합니다. (44면)




15. 광고카피는 허구입니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버 세계 역시 허상입니다. 가상공간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53면)




16. 상품미학, 가상 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64면)




17.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65면)




18.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82면)




19.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9면)




20. 여담이었습니다만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디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 사상입니다. 이렇나 사상이 득위와 실위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102면)




21. 주역에서는 이 ‘가운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일 위에 있거나 제일 앞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쟁 사회의 원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102면)




22. 개별적 존재의 의미는 오히려 부차적일 정도로 매우 왜소합니다. 개별적 존재의 의미와 역할은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고 사후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06면)




23. 사상이란 어느 천재의 창작인 경우는 없습니다. 어느 천재 사상가가 집대성하는 이유는있을지 모르지만 사상이란 장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7면)




24.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0면)




25. 논의가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 이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면)




26. ‘주역’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란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132면)




27. 어쨌든 ‘학이시습지’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의 의미도 ‘때때로’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시기’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often이 아니라 timely의 의미입니다. (144, 145면)




28. 君子不器 ... 이 구절은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를 논하면서 바로 이 ‘논어’ 구를 부정적으로 읽음으로써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베버의 경우 기器는 한마디로 전문성입니다.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윤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거부가 동양 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입니다. (150, 151면)




29.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입니다. 정체성 역시 결과적으로는 타자와의 차이를 부각함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161면)




30. 따라서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인을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163면)




31.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同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64면)




32.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168면)




33.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175면)




34.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학교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는 교수가 현실에 어두운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자기 경험을 유일한 잣대로 삼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일을 처리하면 위험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현장 활동가들은 대단히 완고합니다. 자기 경험만을 고집합니다. (181면)




35.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지, 호, 낙의 차이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언급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99, 200면)




36. 여민락은 백생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맹자의 민본사상이 표명되어 있는 장입니다. (216면)




37.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의 싹이요, 부끄러워 하는 마음은 의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싹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음은 마치 사람에게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225면)




38. 맹자가 공자의 인을 사회화했다 ... (229면)




39.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며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42면)




40. 중국 사상은 지배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담론인 노장 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進의 사상입니다. ...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2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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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윌 듀란트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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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고 형이상학의 신기루에는 매력이 있다. (서론, 11면)




2. 우리는 브라우닝처럼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이며 이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의 양식이고 음료수’라고 느낀다. (서론, 11면)




3. 도로우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교묘한 사상을 갖거나 학파를 창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아량과 신뢰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서론, 12면)




4. 베이컨은 ‘우선 마음의 양식을 추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얻게 되거나 그 상실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학문의 진보)라고 우리들에게 권고한다. 진리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자유인으로 만든다. (서론, 12면)




5. 세분해서 말하면 철학에는, 다섯 가지 탐구 분야, 곧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철학, 형이상학이 있다. (서론, 13면)




6. 에머슨은 ‘당신은 진정한 학자의 비밀을 아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만한 점이 있는 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의 학생이다’라고 말한다. (서론, 14면)




7. 천재는 피타고라스가 철학을 최고의 음악이라고 말한 의미를 알고 있다. (서론, 15면)




8. 그러나 가장 좋아한 것은 그(소크라데스)의 겸손한 지혜였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으며, 오직 지혜를 애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21면)




9. 철학은 회의를 배울 때 - 특히 자신의 소중한 신념, 자신의 독단, 자신의 공리를 의심할 줄 알 때 - 시작된다. (21면)




10. 확실히 나는 소크라데스를 생각하고 운 것이 아니라 이러한 벗을 잃게 된 나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고 울었다. (26면)




11.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잊지 않고 이 빚을 갚아주겠나?” (27면)




12. 스승이 죽었을 때 그는 28세였다. 스승의 조용한 생애의 비극적 종말은 제자의 사상의 모든 차원에서 자취를 남겼다. 그의 귀족적 혈통이나 교육으로 보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소와 대중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결과로 그는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인물에 의한 통치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카토 같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27, 28면)




13. ‘대화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공화국’은 그 자체가 완전무결한 논문이며 플라톤의 사상 전체를 한 권에 집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형이상학, 신학, 윤리학, 심리학, 교육학, 정치학, 예술론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근대와 현대의 취향에 맞는 문제들, 곧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여성해방론과 산아제한과 우생학, 도덕과 귀족정치에 대한 니체의 문제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자유주의적 교육을 말하는 루소의 문제들, 베르그송의 생의 약진,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문제가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색하지 않은 주인이 베푼 엘리트를 위한 향연이다. 에머슨은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은 플라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서관을 태워 버려라. 이 책 안에는 도서과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라는 오머의 코란에 대한 찬사는 바로 ‘공화국’에도 해당되는 찬사이기도 하다. (30면)




14. ‘자기가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착하다고 생각하는 약자를 나는 정녕 여러 번 비웃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방에 가득 찬 정의보다는 한 줌의 권력이 낫다’고 말했을 때 쉬티르너도 똑같은 사상을 간결히 표현하고 있다. (32면)




15. 왜 이 유토피아가 지도 위에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간다. 그는 탐욕과 사치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단순한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욕심과 야망, 경쟁심과 질투심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갖고 있는 것에는 곧 싫증을 내고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인간은 남이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 따라서 집단간의 영토 침입, 토지 자원의 쟁탈전, 마침내는 전쟁이 일어난다. (32면)




16. ‘사람에 따라 국가도 다르다’ (공화국). ‘인간의 성격이 다르듯이 .. 국가도 다르다. ... 국가는 그 안에 사는 인간성으로 구성된다’ (공화국) 국가의 현상은 시민의 현상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더 훌륭해지지 않는 한, 더 좋은 국가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더 훌륭해지기까지 어떠한 변화에 의해서도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6면)




17. 인간의 행동은 세 근원, 곧 욕망, 감정, 지식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욕망, 기호, 충동, 본능 이것이 하나이고, 감정, 활기, 야망, 용기 이것이 하나이고, 지식, 사상, 지성, 이성 이것이 하나이다. 욕망은 허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정력 - 근본적으로는 성적인 -의 넘쳐흐르는 공급원이다. 감정은 심장, 곧 피의 흐름과 힘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경험과 욕망의 유기적 공명이다. 지식은 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욕망의 눈이며 영혼의 조종사가 될 수 있다. (37면)




18. 그들은 철학을 배운다. 그들은 이제 30세가 된 것이다. 그들이 ‘너무 일찍 고귀한 기쁨을 맛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청년들은 처음으로 철학의 맛을 알게 되면 ... 가까이 오는 사람들은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 하룻강아지처럼 ... 장난삼아 논쟁을 하고 항상 반박하거나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공화국) (43면)




19. 플루타크는 플라톤에 의하면 ‘신은 항상 기하학적으로 처리한다’고 말한 바 있다. ...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의 문에 단테를 상기시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게시해 놓았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45면)




20. 일반화와 추상은 구체적인 세계에서 시험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46면)




21. ‘청년 시절에 교양을 목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른이 된 다음에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철학의 심취자들 - 이들은 극악한 악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매우 이상한 괴물이 된다. 그 결과로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될 만한 자도 결국 당신이 찬양하는 학문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공화국) 이 말은 안경을 쓴 일부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충분히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자들에게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생활경험도 시킴으로써 이 곤란한 사태를 피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그들은 사색하는 자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자 - 오랜 경험과 시련을 통해 고상한 목적과 고귀한 기질을 체득한 자 -가 된다고 대답한다. (48면)




22. 35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과세로 결혼을 강요한다. (법률) (50면)




23. 그러므로 우리의 이상국가는 아무리 발달한 외국 무역도 침입할 수 없는 깊숙한 내륙에 자리잡는 것이 좋으리라. ‘바다가 있으면 그 나라는 상품과 돈벌이와 흥정의 도가니가 된다. 바다 때문에 인간의 마음 속에는 국내 관계에 있어서나 대외 관계에 있어서나 경제적 탐욕과 불신의 습관이 생긴다.’ (법률) (51면)




24. 도덕은 약자에게 친절한 것이라고 예수는 말하고, 도덕은 강자의 늠름함이라고 니체는 말하지만, 플라톤은 전체의 효과적인 조화라고 말한다. (54면)




25. 그(플라톤)은 다른 소심한 철학자들처럼 오직 질서만을 사랑했고, 아테네 민주정치의 소란에 놀라서 개이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시했다. (59면)




26. 라 로슈푸코는 ‘늙을 줄 아는 사람은 적다’고 말했다. 플라톤은 늙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솔론처럼 공부하고, 소크라데스처럼 가르치고, 열성적인 청년들을 지도하고, 지적인 동지애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사랑하듯이, 제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제자들의 철학자요, 지도자인 동시에 벗이었다. (61면)




27. 아카데메이아는 수학과 사변철학 및 정치철학에 특히 중점을 두었으나, 류케이움은 오히려 생물학과 자연과학에 특히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66면)




28. 아리스토텔레스의 으뜸가는 위대한 업적은 선구자도 없이 거의 스스로의 각고의 사색에 의해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설한 것이다. (68, 69면)




29. 볼테르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용어를 정의하라’고 말한 바 있다. 논쟁자들이 그들의 용어를 정의한다면 얼마나 많은 논쟁이 한 마디로 압축될 것인가! 중요한 논의에서의 모든 중요한 용어는 가장 엄격하게 음미하고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 논리학의 알파이고 오메가이며, 논리학의 심장이고 영혼이다. (70면)




30. 적대적인 비판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체처럼) 플라톤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은 플라톤으로부터 많은 것을 빌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채권자 앞에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71면)




31. 마침내 플라톤은 일반성에 몰두하여 일반성에 의해 특수성을 결정하고, 이데아에 열중한 끝에 이데아에 의해 사실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로 돌아가라, 곧 ‘자연의 왜곡되지 않은 얼굴’을 보라고 설교한다. 그는 구체적인 특수, 피와 살이 있는 개체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공화국’에서 완전한 국가의 건설을 위해 개인을 파괴해 버렸다. (71면)




32.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도 상당히 갖고 있는 면을 공격하기 마련이다. 비슷한 것들만을 유익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며 가장 잔혹한 전쟁도 목적이나 신념의 보잘것없는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십자군의 기사들은 살라딘을 신사로 생각하고 유쾌한 논쟁을 벌였으나 유럽의 기독교 교도들이 적대 진영으로 갈라졌을 때 아량의 여지는 없었다. (71, 72면)




33. 그러나 우리가 논리학을 이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논리학이 우리를 고상하게 만들지는 못하는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용감한 철학자라도 나무 밑에서 논리학 책을 위해 찬가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73면)




34.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남겨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에게 과학을 남겨 주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이 잇었고 아라스토텔레스 이전에도 과학은 있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철학과 과학은 엄청난 진보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들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예수의 생애)고 르낭은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과학은 태아였고 그와 함께 과학은 탄생했다. (73면)




35. entelecheia는 스스로의 목적(telos)을 내면에(entos) 갖고 있다(echo)는 것. 철학 저네를 내포하고 있는 아르스토텔레스의 장엄한 용어의 하나이다. (81면)




36. 아리스토텔레스의 출발점은 인생의 목적은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의 그 자체를 원하며 그밖의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명예, 쾌락, 지성을 원하는 것은 ... 이러한 것들에 의해 우리들이 행복해질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윤리학) (85면)




37. 그러나 중용은 수학의 중수처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두외항의 정확한 평균이 아니다. 중요은 그때 그때의 상황의 부수적인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오직 원숙하고 유연한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된다. (86, 87면)




38. 탁월성은 훈련과 습관화에 의해 획득되는 기술이다. (87면)




39. ‘이러한 덕은 행위함으로써 인간에게 형성된다.’ (윤리학) (87면)




40. 청년 시대는 극단에 치우치기 쉬운 시대이다. ‘청년이 과오를 범한다면 언제나 과도와 과장 때문이다.’ (윤리학) (87면)




41. 우리가 어떤 극단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구부러진 목재를 바로잡을 때처럼 ... 정반대의 극단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렇게 하면 중간 위치에 도달할 수 있기’ (윤리학) 때문이다. 그러나 분별없는 극단주의자들은 중용을 최대의 악덕으로 보고 ‘각기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반대쪽 극단으로 쫓아 버린다. 용감한 사람은 비겁한 자로부터는 경거망동하다는 말을 듣고, 경거망동하는 자로부터는 비겁하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윤리학). 그러므로 현대 정치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자’는 급진주의자로부터는 ‘보수주의자’, 보수주의자로부터는 ‘급진주의자’라고 불린다. (87면)




42. 그러나 우리의 실제적인 철학자는 중용이 행복의 비결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당한 세속적 재산도 갖고 있어야 한다. 가난은 인색과 탐욕의 근원이지만 재산은 귀족적 침착성과 매력의 근원인, 근심과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능케 한다. 행복에 대한 외부적 보조 중에서 가장 고상한 것은 우정이다. 사실상 우정은 불행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행복은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증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88면)




43. 아름다운 우정은 발작적인 강도보다는 오히려 지속을 요구하고, 여기에는 성격의 안정이 전제된다. (88면)




44. ‘최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할 뿐, 거의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정치학) (91면)




45. 그러나 민주정치는 일반적으로 귀족정치보다 열등하다. (정치학) 민주정치는 평등이라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한 가지 면에서 (예컨대 법이라는 면에서) 평등한 자는 만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관념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은 평등한 자유를 갖고 있으므로 완전한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결과, 능력은 수의 희생물이 되고 수는 책략에 의해 조종된다. 민중은 쉽게 오도되고, 그들의 견해는 변하기 쉬우므로 투표권은 지식계급에 한정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귀족정치와 민주정치의 결합이다. (98면)




46. 나를 울리고 싶으면 먼저 울어라. (99면)




47. 그는 삼단논법을 인간의 추리 과정의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추리를 장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사고는 전제로부터 시작되고, 이 전제에서 결론을 구한다고 그는 생각하지만 시실은 사고는 가설적 결론으로부터 시작되고 이 결론을 정당화하는 전제를 구하며, 이 전제는 실험이라는 통제되고 고립된 조건 밑에서 특수한 사건을 관찰할 때 가장 잘 발견된다. (100면)




48. ‘은둔생활은 최상의 생활’이라는 것이 그(프란시스 베이컨)의 모토였다. 그는 관조적 생활과 활동적 생활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세네카처럼 철학자인 동시에 정치가가 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다. (114면)




49. ‘학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학문을 지나치게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식이다. 학문의 규칙에 얽매여 판단하는 것은 학자의 익살이다. ... 교활한 자는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자는 학문을 찬양하고, 현명한 자는 학문을 이용한다. 학문은 학문의 용도를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의 용도를 가르쳐 주는 것은 학문 이외의 지혜, 관찰에 의해 획득한 학문 이상의 지혜이다.’ (학문에 대하여) (114, 115면)




50. ‘맛만 볼 책이 있고 삼겨야 할 책도 있으나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할 책은 적다.’ (진리에 대하여) (116면)




51. 사람은 늙으면 청년기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 (117면)




52. 그는 단순한 관조적 생활을 찬양하지 않으며 괴테처럼 행동화하지 못하는 지식을 경멸한다. ‘우리는 인생의 극장에서는 신들과 천사들만이 관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문의 진보) (118면)




53. ‘청년과 노년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한 권의 책을 한 구절로 집약했다. ‘청년은 판단보다는 발명에 적합하고, 상담보다는 실행에 어울리고 안정된 일보다는 새로운 계획에 알맞다. 나이 든 사람의 경험은 그 연령의 범위 내에서는 노인들을 인도하지만 새로운 일에 있어서는 그들을 배반하기 때문이다. ... 청년들은 평소의 행동이나 일의 처리과정을 보면 간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내고, 진정시킬 수 없을 정도의 소동을 일으키고, 수단이나 정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목적을 향해 뛰어가고, 불합리하게도 우연히 마주친 소수의 원칙을 추구하고, 혁신의 방법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뜻밖의 불편을 겪는다. ... 노인은 지나치게 반대하고, 너무 오래 상담하고, 모험이 너무 적고, 너무 일찍 후회하고, 어떤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만족한다. 분명히 어떻게 하든 양쪽의 장점을 채택하는 것이 좋다. ... 양쪽의 장점이 서로의 약점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120면)




54. ‘최선을 선택하라. 습관은 이것을 즐겁고 안락한 것으로 만들리라고 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르침은 옳다.’ (어버이와 자녀에 대하여) (120면)




55. 철학을 풍요하게 하는 새로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철학은 불모지였다고 베이컨은 말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최대의 잘못은 이론에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관찰을 소홀히 한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관찰의 보조여야 하고 대용품이어서는 안된다. (131면)




56. 결국 우리의 고난의 원인은 독단과 연역법에 있다. 존경할 만하지만 의심스러운 명제를 의심의 여지없는 출발점으로 삼고 이러한 전제 자체를 관찰 내지 실험에 의해 검토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진리를 찾아 내지 못한다. (134면)




57. 사고는 욕망의 열을 잃어서는 안되고 욕망은 사고의 빛을 잃어서는 안된다. (175면)




58. 볼테르는 대답했다. ‘물론이지, 어떤 예술에서든 성공하려면 마음속에 악마가 있어야 해.’ (190면)




59. 일반 민중의 대변자 룻소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계급적 차별에 민감해서 평등을 요구했다. 혁명이 마라, 로베스피에르 등 룻소 추종자들의 손에 들어오자 평등은 득세하고 자유는 단두대에 올랐다. (226면)




60. 룻소가 문명, 문학, 학문에 반대하고 미개인이나 동물에서 볼 수 있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고 논한 ‘불평등 기원론’을 볼테르에게 보냈을 때, 볼테르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인류의 발전에 반대하는 귀하의 새 저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기 위해 귀하처럼 재치있는 노력을 한 분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귀하의 책을 읽노라면 네 발로 기어다니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60년 전에 이미 이러한 습관을 버렸으므로 불행하게도 이 습관이 회복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1755년 8월 30일자 편지). 룻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계속 미개 상태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그는 유감으로 생각했다. (227, 228면)




61. 그리고 그는 가난과 무명을 무릅쓰고 거의 15년 동안 ‘걸작’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퇴고하는 데 몰두했다. 1781년, 간신히 이 책(순수이성비판)을 끝냈을 때, 그는 57세였다. 일찍이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도 없었고, 또 이렇게 철학계를 경악시키고 전복한 책도 없었다. (240면)




62.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칸트의 최대의 업적은 현상과 물 자체의 구별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48면)




63. ‘도덕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에 알맞은 자가 될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 (실천이성비판) (251면)




64. 종교에 대한 논문은 69세의 노인으로서는 놀라운 글이다. 이 논문은 칸트의 모든 저서 중 가장 대담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는 이론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도덕의식이라는 실천이성에 기초를 두어야 하므로 성서나 계시도 당연히 도덕적 가치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도덕법칙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교회와 교리는 오직 인류의 도덕적 발달에 도움이 될 때에만 가치있다. 단순한 신조나 의식이 종교의 시금석으로서 도덕적 탁월성에 대해 우위를 강탈하면 종교는 사라진다. (254면)




65. ‘그리스도는 신의 나라를 지상에 접근시켰으나 인간은 오해하고 우리들 사이에 신의 나라가 아니라 성직자의 나라를 건설했다.’ (쳄버레인, ‘임마누엘 칸트’) (254, 255면)




66. ‘비사교성이라는 성질이 없으면 ... 인간은 아르카미아의 목동과 같은 생활을 보내며 완전히 화합하고 만족하고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인간의 모든 재능은 영원히 싹으로 숨겨질 것이다.’ ... ‘따라서 이 비사교성, 이 지지 않으려고 하는 질투심과 허영심, 이 소유와 권력에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자연에 감사하라. ...’ (세계 시민적 목표에 있어서의 보편사의 이념) (256, 257면)




67.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이라고 자칭한 칸트 철학은 악의를 갖고 전통적 사변방식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고, 그 의도와는 어긋나게 모든 형이상학에 타격을 주었다. 형이상학은 사상사를 통해서 실재의 궁극적 본성을 찾아 내려는 시도였으나 이제 사람들은 가장 존경할 만한 권위에 입각해서 실재는 결코 경험할 수 없다는 것, 실재는 생각할 수는 있으나 인식할 수 없는 본체라는 것, 아무리 정밀한 인간의 지성이라도 결코 현상을 넘어서지 못하며, 마야의 베일을 찢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316면)




68. 1858년, 그는 지금까지 쓴 논문을 모아 출판하려고 다시 읽다가, 여기에서 통일성있는 일관된 사상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고, 단지 생물의 종이나 유만이 아니라 유성과 지층, 사회사와 정치사, 윤리적, 미학적 개념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을 열면 햇빛이 갑자기 몰려들 듯이 떠올랐다. (322면)




69. 과학자는 누구보다도 명백하게 궁극적인 본성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있다. (제1원리) 헉슬리의 말을 빌면 유일의 정직한 철학은 불가지론이다. (325면)




70. 지성은 단지 현상에 의해 그리고 현상과 대화하기 위해 형성되었으므로 지성은 현상을 초월한 것에 사용하려고 할 때 쓸모없게 된다. (제1원리) (325면)




72. 이 무렵, 곧 1865년에 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했고 이 책을 ‘세계, 인생, 자기의 마음을 무서울 만큼 분명하게 비춰 주는 거울’(비극의 탄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숙에서 이 책을 한 마디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 “마치 쇼펜하우어가 나에게 친히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신념을 느꼈고 그가 바로 내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각 행마다 포기와 부정과 체념의 절규가 있었다.” (푀르스터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의 생애’). 쇼팬하우어 철학의 어두운 색깔은 니체의 사상에 끈질긴 영향을 남겼다. (356면)




73. 그는 앉아서 일하는 비영웅적 직업을 택하면서 묘한 후회감을 느꼈다. 한편 의사와 같은 활동적인 직업을 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음악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어 몇 곡의 소나타를 작곡했다. 그는 ‘음악이 없으면 나에게 생활은 오류일 것’이라고 말했다. (356면)




74. 내 앞에는 50년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나는 시간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레비, 프리트리히 니체의 생애) (358면)




75. 이 오페라(파르지팔)은 기독교 정신과 동정과 비육체적 사랑을 찬양하고 ‘순결한 바보’, 곧 그리스도에 있어서의 바보에 의해 구제된 세계를 그릴 예정이었다. 니체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돌아섰고, 그후 바그너와는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과 결부되지 않은 위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을 발견하면 나에게는 인간의 성공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서한집) 그는 성자 파르지팔보다는 반항아 지그프리트를 좋아했고, 기독교에서 그 신학적 결함을 무시하고 도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게 된 바그너를 용서할 수 없었다. (360면)




76. 세상과 육신은 악과 동의의가 되었으며, 가난은 덕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러한 평가는 예수에 의해 절정에 이르렀다. 예수에 의해 모든 인간은 동일한 가치,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민주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가 생겼다. 진보는 이제 평민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면 촉진되는 평등화와 세속화의 관점, 퇴폐와 타락한 생활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되었다. 이러한 타락의 마지막 단계는 연민과 자기 희생의 과장, 범죄자에 대한 감상적 위로, 사회적 배설의 불능이다. 동정은 능동적이면 정당하지만, 연민은 상대방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정신적 사치이며, 불치의 종기 같은 인간, 무능력자, 불구자, 악한, 부끄러운 병을 앓는 자, 구제할 길 없는 범죄자를 위한 감정의 낭비이다. 연민에는 야비함과 심술이 있고 ‘문명은 이웃 사람의 무력함을 보고 느끼는 우월감을 즐기는 것이다.’ (아침 놀) 이러한 ‘도덕’의 배후에는 권력에의 은밀한 의지가 있다. (369면)




77. ‘모든 철학자들은 마치 그들의 진정한 의견이 냉철하고 순수하고 신과는 관계없는 변증법의 자기 전개를 통해 발견된 듯한 태도를 취한다. ... 한편 사실은 일반적을 그들의 가슴속의 욕망을 추상화하고 세련시킨 선입견, 기상 또는 영감을 그들은 사후에 찾아 낸 근거에 의해 변호한다.’ (선악의 피안) (370면)




78. 자연은 평등을 싫어하고 개체와 계급과정의 분화를 좋아한다. 사회주의는 반생물학적이다. 진화론의 과정에는 우월한 자에 의한 열등한 종, 인종, 계급, 개체의 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82면)




79. 듀란트는 이 책을 위해 11년간 준비했고 집필 기간도 3년이 넘었다. (옮긴이의 말, 46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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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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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관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31면)




2. 처음에는 사색가인 나르치스가 너무 힘들어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정신의 문제였으며, 심지어 사랑조차도 그러했다. 그는 정신적 사고를 거치지 않은 채 어떤 매력에 빠져든다는 것에 도무지 익숙치 않았다. 둘 사이의 우정에서 그는 주도적인 지성의 역할을 맡았으며, 오래도록 그런 상태로 고립되어 있었다. ... 그 반면 골드문트는 마치 놀이에 빠져들 듯이 이 새로운 생활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것을 잘 아는 나르치스는 책임감을 느끼며 이 숭고한 운명을 받아들였다. (47, 48면)




3. 모름지기 우리의 우정에는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인가를 너한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목표도 의미가 없어. (57면)




4. 그가 마음 속 깊이 좋아한 것은 학문이나 어학이나 논리가 아니었다. 그것들도 나름의 매력은 있었지만 그가 정작 좋아한 것은 미사 의식 때에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형상과 소리의 세계였다. (64면)




5. 바로 그거야. 핵심을 찌르는 말이야. 사실 너한테는 차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오직 차이만이 중요한 것 같아. 나는 본성상 학자이고 내 소명은 학문이야. 그런데 학문이라는 것은 네 말을 빌리자면 ‘차이를 찾아내겠다는 집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지. 학문의 본질을 이보다 더 훌륭하게 정의하기도 힘들거야. 나처럼 학문을 하는 사람한테는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어. 학문이란 분류술이라고도 할 수 있지.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여타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면 곧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거든. (68면)




6. 요컨대 너 같은 학자들은 오만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늘 우매하다고 여기거든. 온갖 학문을 끌어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현명할 수 있는데도 말이야. (69면)




7.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70면)




8. 말했다시피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너보다 더 강해. 그런 면에서는 너보다 우월하고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하지만 다른 모든 면에서는 네가 나보다 더 우월해. 아니, 스스로 네 자신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나보다 우월해질 거야. (73면)




9. 너 같은 기질의 사람들, 그러니까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성을 지녀서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몽상가나 시인들,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보다는 거의 예외없이 더 우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모성의 풍요로움을 타고난 존재들이야. 그들의 삶은 충만해 있고, 사랑의 힘과 체험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지. 그 반면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들은 너 같은 사람들을 곧잘 이끌어가고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충만된 삶을 전혀 모르고 메마른 삶을 살게 마련이야. 과일의 단물처럼 넘쳐흐르는 삶의 풍요로움, 사랑의 정원과 예술의 땅은 너희들의 것이지. 너희들의 고향이 대지라면 우리네의 고향은 이념이야. 너희들이 감각의 세계에 익사할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진공 상태의 대기에서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지.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는 셈이지. 나에겐 태양이 비치지만 너에겐 달과 별이 비치고,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74면)




10. 내 생각에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나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도서관을 가득 채운 모든 책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하고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101면)




11. 골드문트의 마음속에서는 그 무엇도 삶 자체만큼 생생한 현실성을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심장의 불안한 고동, 가슴아픈 그리움, 꿈속의 기쁨과 불안들이 곧 삶이었다. (114면)




12. 자연을 아는 것도 학문의 일부이니까. 고지식하게 문법만 따진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116면)




13. 신음하고 있는 여인의 찡그린 얼굴에 나타난 여러 갈래의 표정은 그가 사랑의 절정에 도달한 순간에 다른 여자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것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 고통과 쾌락이 마치 자매지간처럼 서로 비슷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놀라왔던 것이다. (205면)




14. 그런데 우리가 예술가로서 어떤 형상을 창조하거나 사상가로서 어떤 법칙을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할 때면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거대한 죽음의 무도로부터 구해 내려고 애쓴다. 우리 자신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무엇인가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245면)




15. 그런데 골드문트가 학자로서는 자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의 마음속에 잃어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되살려낸 사람은 학자인 나르치스 바로 그였다. 그리하여 공부와 수도승 생활과 덕성을 쌓는 대신에 그의 본성에서 솟구치는 막강한 원초적 본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성적 욕망과 여성에 대한 사랑, 독립심, 방랑벽이 그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골드문트는 명인이 만든 마리아 상을 보면서 자기 속에 숨어 있던 예술가 기질을 발견하였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어 다시 한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252면)




16. 예술은 결코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단히 많은 대가를 요구했고, 희생을 요구했다. 삼 년이 넘도로 골드문트는 사랑의 쾌락 말고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 없어선 안 될 것을 예술에 바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였다. (266면)




17. 어쩌면 평생을 예술에 바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 아름다움은 체험과 직관을 거쳐 사랑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확고한 장인적 정신으로 밀고 갈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를 포기하고, 위대한 체험들을 단념하고, 오직 단 한 번 그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274면)




18.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골드문트는 인생의 의미가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인생을 저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나온 인생이 커다란 세 단계로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르치스에 의존하고 또 그에게서 벗어났던 시절, 자유를 누리고 방황하던 시절, 그리고 다신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성숙과 수확이 시작되는 시절. (416면)




19. 사고는 형상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정의를 통해 이뤄지지. 형상이 작용하지 않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철학이 시작하지. (426면)




20.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자네는 예술가가 되어 형상의 세계를 터득한 것이지. 사상가가 되었다면 불완전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형상의 세계에서는 자네가 창조자요 주인이 될 수 있네. (426, 427면)




21. 골드문트, 내가 갑자기 예술에 정통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예술에 정통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자네일세. 나는 자네의 예술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자네한테는 우스꽝스러울 거야.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 보겠네. 첫눈에 이 복음의 사도가 다니엘 신부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리고 단지 그 분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분이 생전에 우리한테 보여주셨던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 기품과 자비와 소박함,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네. (441, 442면)




22. ... 나는 그저 의례적으로 예술을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실은 교만하게도 예술을 얕잡아보았었네. 그런데 인식에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다양한지 이제야 알 것 같네. 또 정신의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면 어쩌면 최상의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물론 내가 가야 할 길은 정신의 길이지. 나는 이 길을 계속 고수할 생각이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네는 나와는 상반되는 길을 통해, 그러니까 감각의 길을 통해 웬만한 사상가 못지않게 존재의 비밀을 깊이 파악하고 있네. 아니, 오히려 더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445면)




23. 나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어. 골드문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아. 물론 평화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그런데 자네는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공부할 때 싸우는 모습도, 기도실에서 싸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 자네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은 좋아.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자네의 경우도 그래. (446면)




24. 자네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한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470면)




25.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47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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