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1. 언제부터인가 지식인에게 앎과 삶의 불일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낮엔 진보, 밤엔 보수로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가 된 지 오래되었고, 지식인의 정체성은 권력 참여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참고가 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사회 비판적 활동은 이제 특별한 공직이 없을 때 즐기는 사회적 유희처럼 되었다. 지식인의 신념과 철학, 노선은 권력에 참여할 계기가 생기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일회용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왕성한 사회 비판 활동은 아직 공직을 차지하지 못한 자의 여가 혹은 불평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을 맞고 있다. (12면)
2. 이 사회를 변함없이 지배해 온 것은 성장지상주의, 시장주의, 미국이라는 세 키워드였다. (13면)
3. 민주화 20년을 마감하고, 신보수주의 시대가 꽃을 피는 이 시점에 저항과 부정만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대안 체제의 구축이다. 공허한 담론은 지배 질서를 흔들지 못하지만, 현실 가능하고 선택 가능한 대안은 매우 위협적이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대항 헤게모니를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14면)
4. 이남호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식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엄격한 비판 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에 있을 것이다. 신지식인은 이러한 지식인의 근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다”고 했다. 지식인은 이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되었다. 지식인은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고 있다. (19, 20면)
5.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 메커니즘이 고장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지식인은 막걸리 집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강의실에서의 논쟁을 통해, 감옥의 사색을 통해 등장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23면)
6. 생물학적 인간으로서 농민이 아니라 사회과학 범주의 농민이 해체되는 것이죠. 대의, 표상되지 못하면 존재하고 있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30면)
7. 지식이, 권력이 되고 부가 되는 사회에서는 지식 생산자가 그 자체로 권력이 됩니다. (32면)
8. 지식은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톰 허츠라는 사람이 쓴 미국의 계층 이동성에 관한 논문을 보면, 미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주요 채널이 인종이 아니고 교육이라고 나왔어요. (32, 33면)
9.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33면)
10.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릅니다. ‘세계를 개선시키려는 그대의 눈빛이 날 근심케 한다.’ (36면)
11. 김동춘 교수도 사회가 기업화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첨병이 대학입니다. (39면)
12. 총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탈근대주의가 가르친 진실이다. (52, 53면)
13. 2007년 현재까지 3, 316명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신지식인은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일반적 목표에 국민을 동원하려는 상징 조작이었다. (53면)
14.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은 혼돈의 와중에 있다. 그의 자산인 ‘지식’은 인터넷이 대신하며, 그의 도구인 ‘글쓰기’는 댓글보다 읽히지 않는다. 그의 언어인 보편성은 의심의 대상이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신뢰성을 잃었다. (54면)
15. 그간 일어난 지식인상의 변화 중 ‘독립적 지식인’의 확산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강준만, 박노자, 고미숙, 이정우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탈근대적 사유에 기반을 두면서 탈권위주의, 다원화 그리고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지향한다. 여러 방면에서 과거 지식인의 존재 방식과 다른 차원을 선보이는 이들의 활동은 향후 지식인상의 갱신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55면)
16. 최근에 ‘대중지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도 지식인의 몰락과 대중의 등장이라는 현상과 연관이 깊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자율주의에 기반한 다중네트워크센터가 주도적으로 제창하고 있는 이 개념은 지식인의 위계적, 엘리트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근원에 두는 새로운 지식 창출, 향유 방식을 겨냥한다. (56면)
17. 지식인이란 본래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56면)
18.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년)는 이 책 제목이 하나의 관용어로 정착되는 계기가 된다. (61, 62면)
19. 그(최장집)는 “지식인의 몰락은 민주화 이후 ‘군부 독재 반대’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쟁’의 의미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는 대안적 비전을 갖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말했다. (71면)
20. 조국 교수도 “민간, 민선 정부의 출범 이후 비판적 지식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범위와 수가 늘면서 권력과 지식인 간에 존재해야 할 긴장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교수는 “위기의 주원인은 진보 정권 출범 이후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정권에 투항해 어용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2면)
21. 신광영 교수는 지식인의 위기를 ‘민주화의 역설’로 설명했다. 그는 “지식인의 위기는 민주화 운동의 성공에 따른 사회 다원화의 산물”이라며 “다원화되면서 각 영역에서 독자적인 지식과 활동 논리가 등장했고, 과거와 같은 포괄적 이론이나 지식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식인에 대한 요구와 기대도 ‘지사적 지식인’에서 ‘전문적 지식인’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72, 73면)
22. 어느 대학의 한 교수는 ...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지식정보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지식 성격의 변화에 있다”고 말했다. 실용적 가치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통적 지식인의 입지가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73면)
23.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서구의 경험을 어설프게 원용하는 깊이 없고 비현실적인 지식사회의 풍토가 문제”라며 “지식 상품 시장이 정치권력 시장보다 더 천박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76면)
24.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 김수영과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 대부분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기는커녕 세계를 잘 모르는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다.” (77면)
25. 지배자들이 선진화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선진화되는 게 아니라 후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진화는 가난뱅이도 지식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데, 한국은 여태까지 있었던 가능성마저 봉쇄되어 가고 있습니다. (82면)
26.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벌은 국가 밑에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 위에 재벌이 있는 것이니까 확 바뀐 거죠. 기업에 예속되어 있고 노예화되어 있는 사회로 접어든 것입니다. 1970, 80년대에 등단해 여태까지 문단을 주도해 오신 분들은 이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85면)
27. 민주화라는 기만적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된 적이 없잖아요. (86면)
28. 이와는 달리 김상조 교수는 “지식인의 현실참여가 곧 제도 정치권의 접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교수도 “운동정치 참여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08면)
29. 전 지구화와 아울러 사회는 더욱 복잡하게 변화하고, 지식 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지식의 존재 조건도 그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는 더욱 파편화되고 ‘의미공동체’의 분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종말을 고할 것인가. 오히려 지식인은 전문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그 전문성을 통해 파편화된 의미공동체 사이를 매개하는 해석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식인은 이제 무책임한 입법자로서의 행세를 그만두고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113면)
30. 한국 사회의 이 일그러진 모습은 과잉규제(비합리적 규제의 존재) 탓인가 아니면 과소 규제(합리적 규제의 부재) 탓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거의 정경유착은 과잉 규제의 산물이지만, 오늘날의 재벌공화국은 과소 규제의 산물이다. 건전한 경제사회질서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적 규제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142면)
31. 얼마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성향의 경제학회인 한국사회경제학회의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40대 중반인 필자(김상조)가 거의 막내급에 속하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진보 경제학자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145면)
32. 권력은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힘에서 나오며, 상징적 힘이 가장 강력하게 행사되는 지점이 바로 문화권력이다. (154면)
33. 문화경력은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를 부르디외의 언급대로 ‘전복’과 ‘배제’의 규칙이 작용하는 장의 논리를 갖는다. 문화권력의 장은 서로 같은 입장을 가진 자들이 만든 구조적 공간으로서 장을 유지하기 위한 배제의 논리와 그것을 깨기 위한 전복의 논리가 치열하게 경합을 벌일 뿐, 애초부터 정치적, 윤리적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념적으로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자신들이 장을 지키려는 문화권력의 속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54면)
34. 1980년대만 해도 문단 혹은 문학권력은 순수 대 참여, 진보 대 보수라는 간단한 대립 구도하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문학의 권력은 학벌, 담론, 장르, 저널리즘의 분파들 속에서 복잡하게 분화된다. 가령 ‘창비’와 ‘문지’라는 전통적인 문단권력은 ‘문학동네’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주류, 비주류로 구분하는 상업적 경계로 분할되고, 문학 시장의 주도권을 누구 잡는가에 집중한다. (156면)
35. 신율 교수는 “시민운동은 권력을 감시해야지 스스로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162면)
36. 게다가 미국 유학파가 주도하는 한국 사회과학계는 진보적 지식인을 내돌리고 있다. 교수 충원 과정을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기존 교수들이 좌지우지해서다. 그들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다. (184면)
37. 신광영 교수는 “우리는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외국 대학에 위탁하고 있다”며 “학문 주권의 상실”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그 부작용으로 미국적 가치관을 가진 지식인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192면)
38. “연구 이외에 다른 데에 시간 많이 쓰는 교수들이 너무 많다. 기업체 대상 강연에 교수들이 왜 가나, 골프는 또 왜 치나. 그러니 교수들의 연구력이 떨어지고, 학생들을 엉터리로 가르친다. 그래서 국내 학위자들을 교수로 안 뽑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193면)
39. 예전보다 논문 수는 늘었지만 도발적인 문제제기나 참신한 생각이 담긴 논문을 찾아보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201면)
40. 가령 마이클 하트나 안토니오 네글리는 열대지방 흰개미의 놀라운 건축술을 지적하며 ‘무리 지성’ (swam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별 흰개미의 지능은 미비하지만 이들이 이룬 무리의 기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221면)
41. 지금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시스템 속에서 기계들과 사람들과 자원들이 서로 연결되는 생산 시스템이 점차 지배적인 것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지식, 정보, 소통, 그리고 정서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집니다. 네그리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면서 대안적으로 제시한 개념이 ‘대중지성’(mass intellect)입니다. (226면)
42. 대중지성이 사람들의 집단화된 몸, 덩어리진 몸을 염두에 뒀다면, 다중지성이라고 했을 때는 복수성 속에서의 공통성, 이산 속에서의 연결, 이른바 네트워킹된 지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2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