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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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 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12면)




2. 하지만 잘 사는 서구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장면은 별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인들의 참상은 우리에게 그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어. (27면)




3. 유엔식량농업기구(FAO)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은 1999년 한 해 동안 3,000만 명 이상이 ‘심각한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 여기에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기아 인구는 8억 2,800만 명 정도가 된다는 얘기야. (31면)




4.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명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37면)




5. 물론이지. 식량이 제대로 분배된다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게 될거야.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38면)




6. 18세기 말 영국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었어. 맬서스는 1798년 인구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어.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장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41, 42면)




7. 그래, FAO는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고 있어. 대략 설명하자면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말한단다. ... 그리고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하지. 그 나라의 경제발전이 더딘 데 따른 생산력 저조, 급수설비나 도로 같은 인프라의 미정비, 혹은 주민 다수의 극도의 빈곤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단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비타민 결핍이나 단백질 부족에 따른 소아 영양실조 등의 다양한 질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게 되지. (48, 49면)




8.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의 빈민들이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고 있지. 이런 상황을 알려주는 책들도 많이 나와 있어. (62면)




9.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대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65면)




10. “이유는 간단해요. 여기보다는 소말리아나 수단 남부의 상태가 더 열악하거든요. 세계식량계획은 자금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로마의 지도부는 두 나라를 돕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런 조치는 카프카스 남부의 난민시설과 실향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지. (70면)




11.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있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에서는 몇몇 금융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실 거래는 몇 안 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앙드레 S.A (스위스), 컨티넨텔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 등이야. 그들의 상업함대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고 있단다. 토마스 상카라는 그들 곡물 메이저를 ‘화이트칼라 강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 (74면)




12. 그(조슈에 데 카스트로)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야. (82면)




13. 결국 유엔의 이런 식량지원이 대량학살(제노사이드)를 주도한 후투족 체제파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셈이 되었던 거야. 그 결과 구호품도 이들이 관리했으므로 이들은 피난민들을 수하에 둘 수 있었어. (91면)




14. 1995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에서는 2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어. 대부분이 아이들이었고, 그 외에도 수백만 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지. (92면)




15. 더 심한 경우도 있단다. 바로 굶주림을 국가 테러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지. 북한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구나. (103면)




16. 그들을 도울 능력이 없음을 절감한 유엔은 그들을 ‘환경난민’이라고 부르게 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정치난민과 달라서, 그들은 국제사회가 정한 ‘난민조약’(1951년)에 규정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117면)




17. 당시 부르키나파소에는 공무원 수가 3만 8,000명에 달했어. 턱없이 많은 인원이었지. 더구나 대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어. 그들은 종래의 지연, 혈연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지. (144면)




18.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3면)




19. 1996년 1월 당시 독일 연방은행 총재 한스 티트마이어는 비판적인 어조로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그들이 얼마나 금융시장의 통제를 받고 있고, 또 얼마나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는지를 여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위관리들을 꾸짖었다. (158면)




20. 다국적성과 독점성에 대한 충동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 충동은 양극구도(냉전체제)가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내재하는 논리에 따라 자본은 단기간에 지구를 정복했다. (159면)




21.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160면)




22.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161면)




23. 오늘날 개인들은 국가보다 더 부유하다. 세계 15대 부호들의 총자산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다. (162면)




24.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 (163면)




25. 이 모든 조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168면)




26. 그러나 인도적인 도움은 절대적인 중립, 보편성, 독립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통받는 인간의 필요를 겨냥한 것이어야지, 결코 한 국가의 필요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180면)




27.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일찍이 “선거용지가 고픈 배를 불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식량권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인권으로서, (망명자의 피보호권처럼) 새로운 국제 법규로서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18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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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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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들이 진보한다는 것의 잣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풍요에 뭔가를 더 주는데 있지 않다. 그것은 아주 적게 가지거나 거의 못 가진 사람들에게 견딜 만큼 마련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남재희, 9면)




2. 좀 더 어려운 한문의 사자 성어에 학철부어라는 게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 물이 말라가서 죽게 되었다고 구명을 요청하니 “기다려라. 개울에서 수로를 내어 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했단다. 당장이 매우 급한데 말이다. 절박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남재희, 10면)




3. ... 이 땅에 살아가는 20대의 ‘생각 없음’을 질타해온 나에게 세대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홍세화, 12면)




4.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없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도 없다는 점이다. 법적 기준과 같은 알바의 시간당 인건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알바 시장의 현실은 최저임금 기준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다양한 편법들이 난무하는 무정부주의 상태에 가깝다. (60면)




5. 표준적인 생태경제학에서는 이를 “앞 세대가 뒷 세대의 자산을 지나치게 사용했다”고 표현한다. (63면)




6. 연공서열제의 가장 큰 단점은 민주주의 혹은 내부 부패를 막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그 스스로 부패하고, 의사결정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는 것이다. (105면)




7. 연공서열제가 작동하는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세대가 지나치게 오래 정체됨으로써 뒤의 세대에게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106면)




8. 지금 50대들은 20대 시절에 벌써 조직 안에서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실무자로서 한국경제의 미래 모습을 디자인하며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들어간 20대는 그 비중도 작거니와 말단 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삼각형 조직구조의 막내인 20대는 이런 민간 협회에서도 책임있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118면)




9.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 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 그나마도 세전 금액이다. (143면)




10. 이 상황에서 별도의 그룹을 만들지 않을 확률이 높은 20대의 아주 일부가 윗세대에게 ‘포섭’되어 대다수의 20대를 소외시키는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연공서열제가 사라진 상태에서 발생할 첫 번째 일이 바로 이것인데, ... 이걸 밖에서 보면 ‘20대가 20대의 적’이라는 상황으로 해석될 것이다. (192면)




11.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많은 연구자들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라 부르는 흐름 때문이다. 전체 비정규직 중 여성이 70%라는 사실은 성별에 따라 왜 그렇게 급여의 격차가 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197면)




12. 또 다른 방식으로는 스웨덴의 볼보사에서 먼저 시행해서 소위 ‘볼보주의’ 방식이라고 불렸던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 방식인데, 원리는 노동자들의 전체 임금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노동자의 고용을 늘려 총고용을 높이는 방식이다. 지금의 20대에게 적용한다면 임금을 낮추고 그 대신 정규직 고용자를 늘리는 형태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235면)




13. 현재의 20대가 맞게 된 사회적 고통들의 원인은 20대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는 경제 구조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요인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결국은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 동안 화려하게 활동했던 중소기업이 지난 5년 동안 붕괴하게 된 것과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 경제의 독과점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생산자본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통자본에서 발생한 일이다. (241면)




14. 다안성(diversiability), 다양성(diversity)과 안정성(stability)의 합성어. 어떤 계(system)가 다양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균형적 상태 또는 그러한 경향성. (254면)




15. 현재 상태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사회문화적 장치들을 놓고 전망해 보면 지금의 세대 착취는 완화되지 않고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특별히 별로 바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이나 주택 가격과 같은 문제들은 물론이고, 고용 구조와 조직 내에서의 세대별 배려 같은 장치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한느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274면)




16.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20대를 위해서 시급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성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뿐더러 10대를 위해서도 그렇다. 경제학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학문들과 상당히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277면)




17. 지금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 점수는 결코 아니다. (28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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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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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동양 학생들과 동양계 미국 학생들)은 미국에서 살면서 늘 유럽계 미국인들과 자신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절감하게 되었고 자신의 사고 방식이 더 열등하다는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문)




2. 심리학자인 나에게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들은 그 시사하는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17면)




3. 즉,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 어떤 사건이든지 수없이 많은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같은 논리로, 서양 사회의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은 개별 사물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분석하는 그들의 접근, 사물들을 다스리는 공통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과 통한다. (17, 18면)




4.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 문화만이 그러한 관찰을 통하여 어떤 ‘원리(principle)’를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스인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영어의 ‘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chole’가 ‘여가(leisure)’를 의미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여가란 다름 아닌 지식을 추구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30면)




5. 그리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30면)




6. 즈먼트는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평했다: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당연히 바뀐다. 즉, 완전히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31면)




7. 유교적 사고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즉 실용적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앎’이라는 것은 없었다. (로널드 먼로) (34면)




8. 그리스인들은 늘 세상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34면)




9.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을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 그리스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ar)' 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집착했다. (36, 37면)




10. 중국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도교, 유교, 그리고 훨씬 후대의 불교 철학의 융합으로 형성되었다. 세 가지 철학 모두 조화(화목)를 중시하고, 추상적인 사유는 대체로 신뢰하지 않았다. (38면)




11. 듣는 사람의 인내심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이 이야기(새옹지마)는 동양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세상은 늘 변하며 모순으로 가득찬 곳이다. 따라서 어떤 일의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주은래)는 ‘프랑스혁명이 바람직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지금 얘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It's too early to tell)"라고 대답했다. 동양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답이다. (39면)




12. 음양의 원리는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 (40면)




13. ‘역경’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행복은 불행 때문에 가능하고, 불행은 행복 속에 숨어 있다. 무엇이 불행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확실한 것은 없다. 의로운 것이 갑자기 사악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갑자기 악한 것이 된다.” ((40면)




14. ‘도덕경’은 또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무언인가 구부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펼쳐야 하고, 무언인가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강화시켜야 하며, 무언인가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풍성하게 하여야 하고, 무언인가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주어야 한다. (40, 41면)




15. 유교에서는 중용의 도가 가장 중요한 행위 규범이다. 중용의 도는 절대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 것이며, 서로 대립되는 의견이나 사람들에게도 제각각 일리가 있다고 믿으라는 가르침이다. (41면)




16. 유교와 도교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도교에 핵심적인 ‘모순의 수용’과 ‘사물의 부분보다는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은 유교 철학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42면)




17.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인 ‘추상화(abstraction)에 대한 관심’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43면)




18. 실제로 객관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세상은 그러한 각각의 인식들과는 무관한 객관적인 실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46면)




19.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중국인은 어떤 사물이든지 주변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따라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범주화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단순한 범주와 규칙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이해하고 통제하기에는 우주는 너무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곳이었다. 중국인들이 일찍이 우주의 복합성을 이해하여, 사물을 파악할 때 부분보다는 전체 맥락을 중시한 점은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주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떤 범주에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그 범주에 속하는 개체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어떤 사물의 추상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는 과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여러 개체들을 범주화하여 공통의 규칙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추상성에 대한 추구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고 과정에 있어 대체로 유용한 습관이다. 그리스인의 범주에 대한 판단은 과학의 발전과 이후의 지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따. (48, 49면)




20. 그리스인들은 ‘모순’이라는 개념에 강박적이라 할 만큼 집착했다.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비모순의 원리(principle of noncontradiction)는 형식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다. 왜 유독 그리스인들만이 논리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리스가 논쟁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쟁을 하다 보면, 어떤 주장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금세 설득력없는 주장으로 심판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당과 광장에서 수없이 듣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에 염증을 느끼고 어떤 주장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를 판결해주는 기준으로 논리학을 개발했다고 한다. (50면)




21. 중국에서도 기원전 5세기에 철학자 묵자에 의해 논리학이 발전했지만, 묵자는 자신의 논리학을 체계화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에서는 논리학이 일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논리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모순의 원리’ 또한 중시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연산이나 대수학에서는 뛰어나면서도, 기하학에서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기하학이 ‘모순법’을 통한 추상적인 증명을 중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50면)




22.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동양의 격언은, 동양 문화에서 개인의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기보다는 억압되어왔음을 보여준다. (53면)




23. 동양적 사고에서 바라본 개인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맥락 속에 있는 존재이다. (54면)




24. 미국 아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나타냈고,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낮은 동기를 보였다. 아마도 엄마가 선택하여준 경우 자신의 선택권을 침해당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동양 아이들은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보였다! (63면)




25. 미국인들은 숫자를 숫자 글대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인들은 숫자의 이면에 있는 경영자의 감정을 읽었던 것이다. (64면)




26.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관심도 달라진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의사소통을 가르칠 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화에 임해야 하며,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것을 강조한다. (64면)




27. 논쟁하는 서양, 타협하는 동양 ... (76면)




28. 일본인 친구가 말하기를, 일본에는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논쟁이 집단의 화목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76면)




29. 그러나 일본인의 스타일 아와세는 협상에 있어 관계를 중시한다. 일본인들은 첫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미국인들보다 양보를 많이 한다. 왜냐하면, 처음 얻어낸 합의가 장기적인 상호 신뢰와 협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해 보이는 행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본인들은 협상에 임할 때 쟁점이 매우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쟁점이 분명하고 단순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79면)




30. 동양의 종합과 서양의 분석 ... (83면)




31. 이마이와 겐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과 동양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은 개별적 ‘사물’을 보고 있고 동양인은 연속적인 ‘물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84면)




32. ‘큰 그림을 보라’라는 가르침은 앵글로색슨 문화보다 대륙 문화에서 더 자주 쓰이며, 앵글로색슨계의 철학자들이 언어를 미시적으로 분석한 반면 대륙의 철학자들은 현상학, 실존철학,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탈근대주의와 같은 문제들에 몰두했다. 정치, 경제, 사회 사상에 대한 거시적인 이론 체계들 역시 주로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86, 87면)




33. 앵글로 아메리칸 학자들은 좀처럼 거대 이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론에 대해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미국적 심리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B.F. 스키너(Skinner)는 이론이란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든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당시의 사회학 교수는 그 유명한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었는데, 그도 거대한 이론보다는 ‘중간 수준의 이론(theories of the middle range)'을 옹호했다. (87, 88면)




34. 세상을 통제하려는 서양과 세상에 적응하려는 동양 ... (97면)




35. 동양의 순환론과 서양의 직선론 ... (100면)




36. ‘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르 예측하지 않게 된다. ...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은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 (100, 101면)




37.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의 동양인들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매우 가변적인 곳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과 조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의 서양인들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을 보다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물을 주변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개인이 그러한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105, 106면)




38.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 (107면)




39. ... 그 결과, 미국 대학생들은 살인자의 개인적 속성에 중요성을 더 많이 부여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상황적 변수를 더 중요시했다. (111면)




40. 서양인의 ‘단순성 추구 경향’과 동양인의 ‘복잡성 추구 경향’은 인과 관계에 대한 접근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조직하는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31면)




41.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 (133면)




42. 장자는 “범주화는 지식을 제한하고 더 큰 지식을 분열시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도덕경’은 범주화에 의존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135면)




43. 범주를 중시하는 서양과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 (136면)




44. ... 미국의 어린이들은 같은 분류 체계에 속하는 소와 닭을 하나로 묶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어린이들은 ‘관계’에 근거한 방식을 선호했다. 즉, 소와 풀을 하나로 묶었는데 그 이유는 ‘소가 풀을 먹기 때문이다’라는 관계적 이유 때문이었다. (137면)




45. 사물을 먼저 배우는 서양 아이들과 관계를 먼저 배우는 동양 아이들 ... (144면)




46. 동양의 언어는 ‘맥락’에 주로 의존한다. 동양어의 언어는 대개 다중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150면)




47.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 (158면)




48. 논리적 일관성을 무기로 논쟁하는 것은 불쾌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미숙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류학자 노부히로 나가시마) (159면)




49.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경험 ... (160면)




50. 동양에서 논리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주된 이유는 어떤 논리적 주장의 ‘내용’은 무시하고 ‘형식’만 고려하는 탈맥락주의를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160면)




51. 서양의 Either/Or 지향과 동양의 Both/And 지향 ... (164면)




52. 미국 학생들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속담들을 더 선호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속담들을 선호했다. (164면)




53.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 뿌리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 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 2) 모순의 원리,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 (165, 166면)




54. “사람들이 미를 미로서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추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을 선으로서 인정해야 마침내 사악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존재와 부재는 상생하는 것이다.” (노자) (166면)




55. “대립은 서로 맞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연결, 상호 침투, 상호 관통, 상호 의존을 뜻한다.” (마오쩌둥) (166면)




56. 변화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모순은 다시 변화를 야기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을 논하면서 다른 부분들의 관계나 그것의 이전 상태를 고러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167면)




57. 그러나 헤겔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모순을 수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모순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변증법적 사고보다 더 공격적이다. (167면)




58. 서양 사고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즉, A는 맥락에 관계 없이 A인 것이다. 또한 비모순율은 한 명제와 그 명제의 모순이 동시에 참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즉,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종합론 원리’는 맥락이 달라지면 어떤 사물이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변화의 원리’는 삶이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변화과정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167, 168면)




59. 중국의 판사는 법을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따로 따로 적용되어야 하는 융통성있는 것으로 본다. 각 개인의 상황에 맞게 적용될 수 없는 법은 인간적이지 못하며 결코 법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법이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205면)




60.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아주 유명한 두 명의 과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서로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심지어 저널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207면)




61. 서양인들은 한번 이루어진 협상은 중간에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계약은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인들은 계약이란 미래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고 믿는다. (208, 209면)




62. 미국에 유학 온 동양 학생들은 영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미국의 미디어에서 폭력, 섹스,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곤 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양인들은 권리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211면)




63. 철학자인 류슈엔은 “중국인들은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면서 서양 사상을 꼬집은 바 있다. (213면)




64. 한국의 심리학자 최인철은 모순에 대하여 덜 민감한 사고 방식은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217면)




65. 동양의 학교교육에서도 논리적 분석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등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서구화되어가고 있다. (224면)




66. 동양이 서구화될 것이다? 차이는 계속될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다? (224, 225, 227면)




67.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2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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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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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은 일정한 예술형식, 특히 영화를 사회적 발전과정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변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하였다. (13면)

 

2. 마치 병상에서 시간이 멀리서 한 발자국씩 점차 다가오듯이, 나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 멀리서부터 나에게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였다. 예를 들면 여행을 할 때에도 역에서 오랫동안 기차를 기다린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 없으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선물하는 것이 나에게 하나의 정열이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 연유하는데, 왜냐하면 남을 깜짝 놀라게 할 선물을 하는 데에도 나는 선물을 줄 사람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23면)

 

3. "...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식료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 (25면)

 

4.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 그(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26면)

 

5. 수집가의 망므을 사로잡는 가장 큰 매력은 하나하나의 사물들을 어떤 마력적 범주에 가두어 두는 일이다. (31면)

 

6. '모든 책은 제각기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Habenta sua fata libelli' ... 책 한권이 갖는 가장 중요한 운명은, 그 책이 수집가와 마주친다는 점이다. (32면)

 

7. 해묵은 세계를 새롭게 하는 일, 바로 이것이 수집가의 소망 속에 깃들어 있는 가장 깊은 충동이다. 고서적을 모으는 수집가가 화려한 장정의 신간서적을 사모으는 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보다 수집의 원천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32면)

 

8. 그가 골수 수집가가 되는 것은 이보다는 오히려 그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 "아닙니다.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합니까?" (33면)

 

9. 수년동안 - 적어도 내 서재가 생기고 난 후 10여년 동안 - 나의 서재는 다만 두세 개의 선반으로만 되어 있었는데, 이 선반은 매년 몇 센티미터씩만 커졌다. 이 시기는 내 서재의 전투적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한번이라도 읽지 않은 책 말고는 어떤 책도 이 선반에 꽃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3면)

 

10. 진정한 의미의 서재에는 언제나 무언가 투시할 수 없고 그 동시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다. (35면)

 

11. 저녁에 브레히트는 내가 정원에서 '자본론'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이제 와서야 마르크스를 읽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이 점점 더 그를 거론하지 않는 이 마당에서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 나는, "많이 거론된 책은 그것이 일단 유행이 지나간 후에 읽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49면)

 

12.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 (브레히트의 좌우명) (50면)

 

13. '소파에 누워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라고 전 세기의 어떤 작가는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한 독자가 어떤 이야기책을 읽고 얼마나 많이 긴장을 풀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편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을 두고 볼 때는 사정은 이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신경을 곧두세우고 긴장해서 연극의 진행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사극이라는 개념은(이론가로서의 브레히트는 자신의 실제적인 창작활동으로부터 이 개념을 만들어냈다)이 우선 암시해 주는 것은 서사극은 긴장을 풀어서 이완된 상태에서 사건의 진행과정을 쫓아가는 관객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53면)

 

14. 서사극에서는 비극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진행된다. 긴장을 야기시키는 것이 결말이 아니고 세부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에, 서사극은 얼마든지 긴 시간 속에서 펼쳐질 수가 있는 것이다. (55면)

 

15. 서사극의 연출이 의도하는 관중의 이완된 관심이 지니는 특이한 점은 바로 관객의 감정이입 능력에 호소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사극의 기법은 감정이입 대신에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공식화해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주인공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대신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보는 대신), 오히려 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놀라움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56면)

 

16. '죄가 없는데도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도 이러한 재판제도의 특징이다'라고 K는 추측한다. (66면)

 

17. 오히려 카프카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전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숨겨진 곳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67면)

 

18. 즉 카프카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판 오딧세이로서의 카프카는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 의해 사이렌들의 유혹을 뿌리쳤던 것이다. '사이렌들은 이를테면 그의 결심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그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69면)

 

19. 책을 구입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 책을 쓰는 일이다. (32면)

 

20. '카프카에 있어서는 모든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에게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마을의 공기가 감돌고 있다.' (Soma Morgenstern) (79면)

 

21. 카프카의 작품은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촛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 그 초점들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전통에 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적인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의 대도시인의 경험이다. 현대의 대도시인의 경험에 관한 한 나는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하고 있다. (97면)

 

22. 로마인들에게 텍스트Textum라는 단어를 직무러럼 짜여진 어떤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두고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텍스트만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촘촘히 짜여진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어떠한 것도 그의 성에 찰 만큼 촘촘하고 지속적으로 짜여져 있지 않았다. (103면)

 

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하나의 전 생애를 최대의 집중력을 가지고 현재 속에서 포착하려고 한 부단한 시도이다. 프루스트의 방법은 성찰Reflexion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을 현재 속에 생생히 떠올리는 방식Vergegenwaertigung이다. 프루스트의 전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진정한 드라마를 실제로 체험해 볼 시간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를 늙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이지, 결코 그 밖의 사실이 아닌 것이다. (114면)

 

24. 경험은 기억Erinnerung 속에서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aechtnis의 산물이다. (121면)

 

25. 프루스트에 따르면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한 어떤 상을 획득하는지의 여부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우연에 달려 있다고 한다. (122, 123면)

 

26. '악의 꽃'은 유럽 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미쳤던 최후의 서정시이다. 그 후에 나온 서정시는 모두 다소 제한된 언어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한다면 보들레르는 그의 창작력을 거의 전적으로 이 한 권의 책에 쏟아 넣었다는 점이다. (162면)

 

27. 루카치에 의하면 소설은, 시가늘 소설의 구성적 원칙으로 삼는 유일한 형식이다. '소설의 이론'에서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험적 고향과의 관계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시간은 구성적이 될 수가 있다. 오로지 소설에서만 의미와 삶, 또 이를 통해 본질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이 분리된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적 활동은 시간의 힘에 대항하는 투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서사시적 시간 경험, 즉 희망과 기억은 바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 ... 단지 소설에서만 대상을 꿰뚫고 그 변화시키는 창조적 기억이 나타난다. .. 내면성과 외부세계라는 이원성이 주관에서 지양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주관이 자기자신의 삶의 통일성을, 기억 속에서 응축되고 있는 지나간 삶의 흐름 속에서 인식하게 될 때뿐이다. ... 이러한 통일성을 파악하는 통찰만이, 도달할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예시적,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183면)

 

28. '광상곡에 붙여'라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나는 나의 생각이 추상적인 철학이나 높은 도덕보다는 오히려 실제적인 인생관에 바탕하고 있음을 잘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내가 행동하는 방식대로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191면)

1. 마르크스의 결론은, 자본주의하에서는 앞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착취가 점점 더 날카롭게 심화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를 가능하게 할 저조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198면)

 

2. 이에 비해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가면서 관철되었다. (199면)

 

3. 지금까지 손이 담당해 왔던 예술적 의무를 이제는 렌즈를 투시하는 눈이 혼자 담당하게 된 것이다. (200면)

 

4.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쑬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200면)

 

5. 원작 Original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룬다. (201면)

 

6. ...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술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에 의해서는 포착될 수 없는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가 있다. 기술적 복제가 독자성을 지니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1면)

 

7.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Aura이다. (202면)

 

8. 1927년 아벨 강스 Abel Gance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세익스피어, 렘브란트, 베에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 물론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 광범위한 전통의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203면)

 

9. 우리는 자연적 대상의 분위기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라고 정의내릴 수가 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분위기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 (204면)

 

10. 현대의 대중은 복제를 통하여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4면)

 

11. 예술작품의 유일무이성은 그것이 전통의 상관관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5면)

 

12.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 이미지의 주요 특징이다. (205면)

 

13. 즉 최초로 혁명적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복제수단인 사진술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리고 동시에 사회주의가 대두하면서부터) 예술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 위기는 그 후 100여년 동안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진행하다가 금세기에 와서는 마침내 예술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지상주의의 이론으로서 이 위기에 대처하였다. 이 이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순수'예술의 이념이라는 형태를 띤 일종의 부정적 신학이다. 이 부정적 신학은 예술에 있어서의 일체의 사회적인 기능, 그리고 대상과 소재에 의한 일체의 제약을 거부한다. (206면)

 

14. 그런데 예술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종교의식적인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던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자리에 또 하나의 다른 사회적 실천, 즉 정치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예술의 다른 사회적 기능이 대신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207면)

 

15. 예술작품의 수용은 역점을 달리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두가지의 대립되는 역점이 두드러지는데, 그 첫번째 역점은 예술작품의 의식가치Kultwert이고, 두번째 역점은 예술작품의 전시가치Ausstellungswert이다. (207면)

 

16. 마치 원시시대에서는 절대적 역점이 의식적 가치에 주어짐으로써 예술작품이 마법의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이러한 마법의 도구를 어느 정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오늘날에는 절대적 역점이 그 전시가치에 주어짐으로써 예술작품은 전혀 새로운 기능을 가진 변형체가 되었다. ... 어쨌든 확실한 것은 오늘날에 있어 이러한 새로운 기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진과 영화라는 점이다. (209면)

 

17. 사진에서는 전시적 가치가 의식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적 가치가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는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그 초창기에 초상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이미지의 의식적 가치는 멀리 있거나 이미 죽고 없는 사랑하고 사람을 기억하는 거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마지막 도피처를 찾았다. ... 그러나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자 비로서 전시적 가치는 처음으로 의식적 가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209면)

 

18.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충동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처럼 우리는 카메라를 통하여 비로소 시각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224면)

 

19. 그런데 벤야민은 루카치와는 달리 헤겔적 생각이나 개념을 빌지 않고 현대예술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현대예술의 특징을 '분위기의 상실'에 있다고 보고 있다. (반성완, 378면)

 

20. 희랍어로 본래 '숨결의 분위기 Hauch-Kreis'의 의미를 갖는 '분위기'란 그러니까 먼 곳에 있는 대상이 그 대상을 보는 사람에게 와닿는 숨결과 같은 교묘한 분위기를 뜻한다. (반성완, 378면)

 

21.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벤야민이 말하는 Aura 개념이 결코 공간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은 공간적 만남이자 또한 역사적 만남이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이 서로 엵혀 짜여지는 교묘한 거미줄'과 같은 것이다. (반성완, 379면)

 

22. 예술은 본래 예술작품이라는 대상에의 침잠을 통하여 어떤 신비적 체험이나 신과의 일체감을 맛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요컨대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주술적, 신비적 성격(분위기)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작품이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예술작품'이라는 오리지날이 갖는 시간적, 공간적 현재성과 일회성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Aura적 분위기를 발산하고 또 수용하는 사람이 그 속에서 아우라적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바로 오리지날의 이러한 현재성과 일회성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는 이러한 현재성과 일회성은 복제기술의 발달 이후 예술작품 '오리지날'이 언제 어디서고 복제가능하면서부터 위축되고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반성완, 379면)

 

23. 벤야민은 위에서 말한 예술작품의 기본적 성격의 붕괴와 상실 및 이에 따른 수용태도의 변화를 출발점으로 하여 기술시대의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이론화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선 유물론적 예술이론이 흔히 시도하는 것처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상관관계,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라는 상부구조가 넓은 의미의 생산관계라는 하부구조에 대해 갖는 복잡한 관계양상이라는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예술작품과 작가가 오늘날의 생산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생산력 및 기술수준 속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보다 구체적인 문제를 추적하고 있다. (반성완, 3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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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양심의 자유
이정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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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완전함을 상상하고 나중엔 이 완전함이 실존하는 것으로 믿는다면 오히려 당해 문제를 벗어나게 된다. 차라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곳에서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19면)

 

2. 넓게 보면 필자의 '상대주의 양심론'은 주관주의 양심론에 포함된다. 그러나 '상대주의 양심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객관주의 양심론을 비판하는 핵심은 양심의 내용을 객관적 도덕기준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즉, 특정 거부행위가 양심적 거부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 양심의 내용이 사회다수의 정의관 내지 도덕관에 부합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의관이나 도덕관을 객관적 기준으로 설정하고 양심의 내용심사를 하고 이를 근거로 '양심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을 비판한다. 둘째는 칸트철학에 근거하여 주관주의 양심론을 취하고 있지만 '보편화가능성'을 통해 양심론을 설명하는 이재승 교수의 입장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자세히 다루었지만 이러한 이재승 교수의 논리구조는 특정 양심의 내용이 '보편화가능한가'를 심사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객관주의 양심론과 내용심사를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없게 된다. 또한 칸트철학을 근거로 양심논의를 하면서 '양심의 착오' 문제를 주장하는 임미원 교수의 입장과도 구별하기 위해 '상대주의 양심론'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양심인가, 아닌가'의 문제에서 내용심사를 배제하고, '양심의 착오' 문제에 반대하는 입장이 상대주의적 양심론이다. (20, 21면)

 

3. 전술한 바와 같이 개념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유기체처럼 관계적으로 존재하며 생, 멸 변화를 갖는다. (36면)

 

4. 법준수의무에 대한 학설에서도 법을 준수할 도덕적 의무를 절대적인 의무로 보는 학설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략 법철학자들은 이 의무는 일응(prima facie)의 의무라고 본다. 일응의 준수의무란 '특단의 사정이 없다면 준수해야 한다' 혹은 '달리 도덕적으로 더 강한 이유가 없다면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7면)

 

5. 가치판단의 영역에서는 켈젠이 주장하듯이, 어떤 가치체계가 우월한가에 대해 판단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즉 도덕체계의 다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궁극적인 도덕이 명확하지 않는 한, 도덕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해 선택하며, 타인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힘으로 말살하려 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논쟁의 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53, 54면)

 

6. 양심의 착오론은 아퀴나스에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양심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첫째의 차원은 synderesis이며 둘째의 차원은 conscientia이다. 전자는 최상의 자연법명제를 인식하는 능력으로 절대적으로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후자는 synderesis가 파악한 것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이는 착오에 빠질 수가 있다고 한다. 즉 syderesis는 예를 들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같은 추상적인 명제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양심의 착오론은 양심의 착오가 발생한 경우 다시 말해 conscientia가 착오를 일으킨 경우 관대하게 처리해야 함을 주장한다. (5면)

 

7. 아퀴나스의 주장과는 반대로, 칸트는 양심의 판단은 착오를 일으킬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 이러한 칸트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존재할 수 있다. 이 비판의 예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을 들어 용납할 수 없는 양심적 판단, 즉 착오에 의한 양심적 판단을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재승 교수는 양심적 판단의 정당화 근거로서 주체의 사적 판단을 넘어서는 보편화가능성을 주장한다. 모든 양심에 따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언가 그 양심의 내용을 평가할 준거가 있어야 하고 이 준거에 부합하는 양심만이 정당화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56면)

 

8. 임미원 교수가 말했듯이 양심적 판단의 여부는 진리와의 부합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성에 의해 결정된다. (61면)

 

9. 그러나 보편화가능성은 너무도 추상적이다. 또한 '보편화가능성은 무엇인가'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므로 보편화가능성 여부의 심사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 (88면)

 

10. 신이 존재하고 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 객관적, 초월적 양심이 존재한다면 필자 역시 너무나 기쁠 것이다. 그러나 이 객관성은 언제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변인이 되었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살육과 불합리와 폭압의 정당화 근거가 되었으며 지금도 이것은 권력의 또 다른 이름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116, 1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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