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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평점 :
1. 그들(동양 학생들과 동양계 미국 학생들)은 미국에서 살면서 늘 유럽계 미국인들과 자신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절감하게 되었고 자신의 사고 방식이 더 열등하다는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문)
2. 심리학자인 나에게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들은 그 시사하는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17면)
3. 즉,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 어떤 사건이든지 수없이 많은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같은 논리로, 서양 사회의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은 개별 사물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분석하는 그들의 접근, 사물들을 다스리는 공통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과 통한다. (17, 18면)
4.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 문화만이 그러한 관찰을 통하여 어떤 ‘원리(principle)’를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스인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영어의 ‘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chole’가 ‘여가(leisure)’를 의미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여가란 다름 아닌 지식을 추구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30면)
5. 그리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30면)
6. 즈먼트는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평했다: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당연히 바뀐다. 즉, 완전히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31면)
7. 유교적 사고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즉 실용적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앎’이라는 것은 없었다. (로널드 먼로) (34면)
8. 그리스인들은 늘 세상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34면)
9.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을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 그리스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ar)' 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집착했다. (36, 37면)
10. 중국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도교, 유교, 그리고 훨씬 후대의 불교 철학의 융합으로 형성되었다. 세 가지 철학 모두 조화(화목)를 중시하고, 추상적인 사유는 대체로 신뢰하지 않았다. (38면)
11. 듣는 사람의 인내심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이 이야기(새옹지마)는 동양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세상은 늘 변하며 모순으로 가득찬 곳이다. 따라서 어떤 일의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주은래)는 ‘프랑스혁명이 바람직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지금 얘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It's too early to tell)"라고 대답했다. 동양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답이다. (39면)
12. 음양의 원리는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 (40면)
13. ‘역경’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행복은 불행 때문에 가능하고, 불행은 행복 속에 숨어 있다. 무엇이 불행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확실한 것은 없다. 의로운 것이 갑자기 사악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갑자기 악한 것이 된다.” ((40면)
14. ‘도덕경’은 또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무언인가 구부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펼쳐야 하고, 무언인가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강화시켜야 하며, 무언인가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풍성하게 하여야 하고, 무언인가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주어야 한다. (40, 41면)
15. 유교에서는 중용의 도가 가장 중요한 행위 규범이다. 중용의 도는 절대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 것이며, 서로 대립되는 의견이나 사람들에게도 제각각 일리가 있다고 믿으라는 가르침이다. (41면)
16. 유교와 도교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도교에 핵심적인 ‘모순의 수용’과 ‘사물의 부분보다는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은 유교 철학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42면)
17.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인 ‘추상화(abstraction)에 대한 관심’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43면)
18. 실제로 객관성은 주관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세상은 그러한 각각의 인식들과는 무관한 객관적인 실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46면)
19.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중국인은 어떤 사물이든지 주변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따라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범주화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단순한 범주와 규칙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이해하고 통제하기에는 우주는 너무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곳이었다. 중국인들이 일찍이 우주의 복합성을 이해하여, 사물을 파악할 때 부분보다는 전체 맥락을 중시한 점은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주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떤 범주에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그 범주에 속하는 개체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어떤 사물의 추상적인 속성에 의거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는 과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여러 개체들을 범주화하여 공통의 규칙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추상성에 대한 추구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고 과정에 있어 대체로 유용한 습관이다. 그리스인의 범주에 대한 판단은 과학의 발전과 이후의 지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따. (48, 49면)
20. 그리스인들은 ‘모순’이라는 개념에 강박적이라 할 만큼 집착했다.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비모순의 원리(principle of noncontradiction)는 형식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다. 왜 유독 그리스인들만이 논리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리스가 논쟁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쟁을 하다 보면, 어떤 주장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금세 설득력없는 주장으로 심판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당과 광장에서 수없이 듣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에 염증을 느끼고 어떤 주장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를 판결해주는 기준으로 논리학을 개발했다고 한다. (50면)
21. 중국에서도 기원전 5세기에 철학자 묵자에 의해 논리학이 발전했지만, 묵자는 자신의 논리학을 체계화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에서는 논리학이 일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논리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모순의 원리’ 또한 중시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연산이나 대수학에서는 뛰어나면서도, 기하학에서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기하학이 ‘모순법’을 통한 추상적인 증명을 중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50면)
22.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동양의 격언은, 동양 문화에서 개인의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기보다는 억압되어왔음을 보여준다. (53면)
23. 동양적 사고에서 바라본 개인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맥락 속에 있는 존재이다. (54면)
24. 미국 아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나타냈고,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낮은 동기를 보였다. 아마도 엄마가 선택하여준 경우 자신의 선택권을 침해당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동양 아이들은 어머니가 선택해준 조건에서 가장 강한 학습 동기를 보였다! (63면)
25. 미국인들은 숫자를 숫자 글대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인들은 숫자의 이면에 있는 경영자의 감정을 읽었던 것이다. (64면)
26.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관심도 달라진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의사소통을 가르칠 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화에 임해야 하며,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것을 강조한다. (64면)
27. 논쟁하는 서양, 타협하는 동양 ... (76면)
28. 일본인 친구가 말하기를, 일본에는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논쟁이 집단의 화목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76면)
29. 그러나 일본인의 스타일 아와세는 협상에 있어 관계를 중시한다. 일본인들은 첫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미국인들보다 양보를 많이 한다. 왜냐하면, 처음 얻어낸 합의가 장기적인 상호 신뢰와 협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해 보이는 행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는다. 일본인들은 협상에 임할 때 쟁점이 매우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쟁점이 분명하고 단순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79면)
30. 동양의 종합과 서양의 분석 ... (83면)
31. 이마이와 겐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과 동양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은 개별적 ‘사물’을 보고 있고 동양인은 연속적인 ‘물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84면)
32. ‘큰 그림을 보라’라는 가르침은 앵글로색슨 문화보다 대륙 문화에서 더 자주 쓰이며, 앵글로색슨계의 철학자들이 언어를 미시적으로 분석한 반면 대륙의 철학자들은 현상학, 실존철학,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탈근대주의와 같은 문제들에 몰두했다. 정치, 경제, 사회 사상에 대한 거시적인 이론 체계들 역시 주로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86, 87면)
33. 앵글로 아메리칸 학자들은 좀처럼 거대 이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론에 대해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미국적 심리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B.F. 스키너(Skinner)는 이론이란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든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당시의 사회학 교수는 그 유명한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었는데, 그도 거대한 이론보다는 ‘중간 수준의 이론(theories of the middle range)'을 옹호했다. (87, 88면)
34. 세상을 통제하려는 서양과 세상에 적응하려는 동양 ... (97면)
35. 동양의 순환론과 서양의 직선론 ... (100면)
36. ‘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르 예측하지 않게 된다. ...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은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 (100, 101면)
37.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의 동양인들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매우 가변적인 곳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과 조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의 서양인들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을 보다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물을 주변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개인이 그러한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105, 106면)
38.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 (107면)
39. ... 그 결과, 미국 대학생들은 살인자의 개인적 속성에 중요성을 더 많이 부여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상황적 변수를 더 중요시했다. (111면)
40. 서양인의 ‘단순성 추구 경향’과 동양인의 ‘복잡성 추구 경향’은 인과 관계에 대한 접근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조직하는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31면)
41.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 (133면)
42. 장자는 “범주화는 지식을 제한하고 더 큰 지식을 분열시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도덕경’은 범주화에 의존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135면)
43. 범주를 중시하는 서양과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 (136면)
44. ... 미국의 어린이들은 같은 분류 체계에 속하는 소와 닭을 하나로 묶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어린이들은 ‘관계’에 근거한 방식을 선호했다. 즉, 소와 풀을 하나로 묶었는데 그 이유는 ‘소가 풀을 먹기 때문이다’라는 관계적 이유 때문이었다. (137면)
45. 사물을 먼저 배우는 서양 아이들과 관계를 먼저 배우는 동양 아이들 ... (144면)
46. 동양의 언어는 ‘맥락’에 주로 의존한다. 동양어의 언어는 대개 다중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150면)
47.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 (158면)
48. 논리적 일관성을 무기로 논쟁하는 것은 불쾌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미숙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류학자 노부히로 나가시마) (159면)
49.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경험 ... (160면)
50. 동양에서 논리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주된 이유는 어떤 논리적 주장의 ‘내용’은 무시하고 ‘형식’만 고려하는 탈맥락주의를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160면)
51. 서양의 Either/Or 지향과 동양의 Both/And 지향 ... (164면)
52. 미국 학생들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속담들을 더 선호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속담들을 선호했다. (164면)
53.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 뿌리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 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 2) 모순의 원리,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 (165, 166면)
54. “사람들이 미를 미로서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추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을 선으로서 인정해야 마침내 사악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존재와 부재는 상생하는 것이다.” (노자) (166면)
55. “대립은 서로 맞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연결, 상호 침투, 상호 관통, 상호 의존을 뜻한다.” (마오쩌둥) (166면)
56. 변화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모순은 다시 변화를 야기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을 논하면서 다른 부분들의 관계나 그것의 이전 상태를 고러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167면)
57. 그러나 헤겔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모순을 수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모순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변증법적 사고보다 더 공격적이다. (167면)
58. 서양 사고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즉, A는 맥락에 관계 없이 A인 것이다. 또한 비모순율은 한 명제와 그 명제의 모순이 동시에 참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즉,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종합론 원리’는 맥락이 달라지면 어떤 사물이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변화의 원리’는 삶이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변화과정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167, 168면)
59. 중국의 판사는 법을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따로 따로 적용되어야 하는 융통성있는 것으로 본다. 각 개인의 상황에 맞게 적용될 수 없는 법은 인간적이지 못하며 결코 법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법이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205면)
60.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아주 유명한 두 명의 과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서로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심지어 저널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207면)
61. 서양인들은 한번 이루어진 협상은 중간에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계약은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인들은 계약이란 미래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고 믿는다. (208, 209면)
62. 미국에 유학 온 동양 학생들은 영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미국의 미디어에서 폭력, 섹스,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곤 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양인들은 권리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211면)
63. 철학자인 류슈엔은 “중국인들은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면서 서양 사상을 꼬집은 바 있다. (213면)
64. 한국의 심리학자 최인철은 모순에 대하여 덜 민감한 사고 방식은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217면)
65. 동양의 학교교육에서도 논리적 분석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등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서구화되어가고 있다. (224면)
66. 동양이 서구화될 것이다? 차이는 계속될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다? (224, 225, 227면)
67.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2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