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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평점 :
1.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은 일정한 예술형식, 특히 영화를 사회적 발전과정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변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하였다. (13면)
2. 마치 병상에서 시간이 멀리서 한 발자국씩 점차 다가오듯이, 나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 멀리서부터 나에게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였다. 예를 들면 여행을 할 때에도 역에서 오랫동안 기차를 기다린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 없으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선물하는 것이 나에게 하나의 정열이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 연유하는데, 왜냐하면 남을 깜짝 놀라게 할 선물을 하는 데에도 나는 선물을 줄 사람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23면)
3. "...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식료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 (25면)
4.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 그(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26면)
5. 수집가의 망므을 사로잡는 가장 큰 매력은 하나하나의 사물들을 어떤 마력적 범주에 가두어 두는 일이다. (31면)
6. '모든 책은 제각기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Habenta sua fata libelli' ... 책 한권이 갖는 가장 중요한 운명은, 그 책이 수집가와 마주친다는 점이다. (32면)
7. 해묵은 세계를 새롭게 하는 일, 바로 이것이 수집가의 소망 속에 깃들어 있는 가장 깊은 충동이다. 고서적을 모으는 수집가가 화려한 장정의 신간서적을 사모으는 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보다 수집의 원천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32면)
8. 그가 골수 수집가가 되는 것은 이보다는 오히려 그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 "아닙니다.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합니까?" (33면)
9. 수년동안 - 적어도 내 서재가 생기고 난 후 10여년 동안 - 나의 서재는 다만 두세 개의 선반으로만 되어 있었는데, 이 선반은 매년 몇 센티미터씩만 커졌다. 이 시기는 내 서재의 전투적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한번이라도 읽지 않은 책 말고는 어떤 책도 이 선반에 꽃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3면)
10. 진정한 의미의 서재에는 언제나 무언가 투시할 수 없고 그 동시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다. (35면)
11. 저녁에 브레히트는 내가 정원에서 '자본론'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이제 와서야 마르크스를 읽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이 점점 더 그를 거론하지 않는 이 마당에서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 나는, "많이 거론된 책은 그것이 일단 유행이 지나간 후에 읽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49면)
12.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 (브레히트의 좌우명) (50면)
13. '소파에 누워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라고 전 세기의 어떤 작가는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한 독자가 어떤 이야기책을 읽고 얼마나 많이 긴장을 풀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편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을 두고 볼 때는 사정은 이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신경을 곧두세우고 긴장해서 연극의 진행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사극이라는 개념은(이론가로서의 브레히트는 자신의 실제적인 창작활동으로부터 이 개념을 만들어냈다)이 우선 암시해 주는 것은 서사극은 긴장을 풀어서 이완된 상태에서 사건의 진행과정을 쫓아가는 관객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53면)
14. 서사극에서는 비극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진행된다. 긴장을 야기시키는 것이 결말이 아니고 세부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에, 서사극은 얼마든지 긴 시간 속에서 펼쳐질 수가 있는 것이다. (55면)
15. 서사극의 연출이 의도하는 관중의 이완된 관심이 지니는 특이한 점은 바로 관객의 감정이입 능력에 호소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사극의 기법은 감정이입 대신에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공식화해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주인공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대신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보는 대신), 오히려 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놀라움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56면)
16. '죄가 없는데도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도 이러한 재판제도의 특징이다'라고 K는 추측한다. (66면)
17. 오히려 카프카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전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숨겨진 곳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67면)
18. 즉 카프카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판 오딧세이로서의 카프카는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 의해 사이렌들의 유혹을 뿌리쳤던 것이다. '사이렌들은 이를테면 그의 결심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그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69면)
19. 책을 구입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 책을 쓰는 일이다. (32면)
20. '카프카에 있어서는 모든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에게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마을의 공기가 감돌고 있다.' (Soma Morgenstern) (79면)
21. 카프카의 작품은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촛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 그 초점들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전통에 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적인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의 대도시인의 경험이다. 현대의 대도시인의 경험에 관한 한 나는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하고 있다. (97면)
22. 로마인들에게 텍스트Textum라는 단어를 직무러럼 짜여진 어떤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두고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텍스트만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촘촘히 짜여진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어떠한 것도 그의 성에 찰 만큼 촘촘하고 지속적으로 짜여져 있지 않았다. (103면)
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하나의 전 생애를 최대의 집중력을 가지고 현재 속에서 포착하려고 한 부단한 시도이다. 프루스트의 방법은 성찰Reflexion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을 현재 속에 생생히 떠올리는 방식Vergegenwaertigung이다. 프루스트의 전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진정한 드라마를 실제로 체험해 볼 시간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를 늙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이지, 결코 그 밖의 사실이 아닌 것이다. (114면)
24. 경험은 기억Erinnerung 속에서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aechtnis의 산물이다. (121면)
25. 프루스트에 따르면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한 어떤 상을 획득하는지의 여부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우연에 달려 있다고 한다. (122, 123면)
26. '악의 꽃'은 유럽 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미쳤던 최후의 서정시이다. 그 후에 나온 서정시는 모두 다소 제한된 언어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한다면 보들레르는 그의 창작력을 거의 전적으로 이 한 권의 책에 쏟아 넣었다는 점이다. (162면)
27. 루카치에 의하면 소설은, 시가늘 소설의 구성적 원칙으로 삼는 유일한 형식이다. '소설의 이론'에서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험적 고향과의 관계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시간은 구성적이 될 수가 있다. 오로지 소설에서만 의미와 삶, 또 이를 통해 본질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이 분리된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적 활동은 시간의 힘에 대항하는 투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서사시적 시간 경험, 즉 희망과 기억은 바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 ... 단지 소설에서만 대상을 꿰뚫고 그 변화시키는 창조적 기억이 나타난다. .. 내면성과 외부세계라는 이원성이 주관에서 지양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주관이 자기자신의 삶의 통일성을, 기억 속에서 응축되고 있는 지나간 삶의 흐름 속에서 인식하게 될 때뿐이다. ... 이러한 통일성을 파악하는 통찰만이, 도달할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예시적,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183면)
28. '광상곡에 붙여'라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나는 나의 생각이 추상적인 철학이나 높은 도덕보다는 오히려 실제적인 인생관에 바탕하고 있음을 잘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내가 행동하는 방식대로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191면)
1. 마르크스의 결론은, 자본주의하에서는 앞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착취가 점점 더 날카롭게 심화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를 가능하게 할 저조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198면)
2. 이에 비해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가면서 관철되었다. (199면)
3. 지금까지 손이 담당해 왔던 예술적 의무를 이제는 렌즈를 투시하는 눈이 혼자 담당하게 된 것이다. (200면)
4.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쑬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200면)
5. 원작 Original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룬다. (201면)
6. ...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술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에 의해서는 포착될 수 없는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가 있다. 기술적 복제가 독자성을 지니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1면)
7.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Aura이다. (202면)
8. 1927년 아벨 강스 Abel Gance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세익스피어, 렘브란트, 베에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 물론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 광범위한 전통의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203면)
9. 우리는 자연적 대상의 분위기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라고 정의내릴 수가 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분위기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 (204면)
10. 현대의 대중은 복제를 통하여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4면)
11. 예술작품의 유일무이성은 그것이 전통의 상관관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5면)
12.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 이미지의 주요 특징이다. (205면)
13. 즉 최초로 혁명적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복제수단인 사진술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리고 동시에 사회주의가 대두하면서부터) 예술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 위기는 그 후 100여년 동안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진행하다가 금세기에 와서는 마침내 예술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지상주의의 이론으로서 이 위기에 대처하였다. 이 이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순수'예술의 이념이라는 형태를 띤 일종의 부정적 신학이다. 이 부정적 신학은 예술에 있어서의 일체의 사회적인 기능, 그리고 대상과 소재에 의한 일체의 제약을 거부한다. (206면)
14. 그런데 예술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종교의식적인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던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자리에 또 하나의 다른 사회적 실천, 즉 정치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예술의 다른 사회적 기능이 대신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207면)
15. 예술작품의 수용은 역점을 달리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두가지의 대립되는 역점이 두드러지는데, 그 첫번째 역점은 예술작품의 의식가치Kultwert이고, 두번째 역점은 예술작품의 전시가치Ausstellungswert이다. (207면)
16. 마치 원시시대에서는 절대적 역점이 의식적 가치에 주어짐으로써 예술작품이 마법의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이러한 마법의 도구를 어느 정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오늘날에는 절대적 역점이 그 전시가치에 주어짐으로써 예술작품은 전혀 새로운 기능을 가진 변형체가 되었다. ... 어쨌든 확실한 것은 오늘날에 있어 이러한 새로운 기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진과 영화라는 점이다. (209면)
17. 사진에서는 전시적 가치가 의식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적 가치가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는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그 초창기에 초상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이미지의 의식적 가치는 멀리 있거나 이미 죽고 없는 사랑하고 사람을 기억하는 거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마지막 도피처를 찾았다. ... 그러나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자 비로서 전시적 가치는 처음으로 의식적 가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209면)
18.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충동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처럼 우리는 카메라를 통하여 비로소 시각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224면)
19. 그런데 벤야민은 루카치와는 달리 헤겔적 생각이나 개념을 빌지 않고 현대예술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현대예술의 특징을 '분위기의 상실'에 있다고 보고 있다. (반성완, 378면)
20. 희랍어로 본래 '숨결의 분위기 Hauch-Kreis'의 의미를 갖는 '분위기'란 그러니까 먼 곳에 있는 대상이 그 대상을 보는 사람에게 와닿는 숨결과 같은 교묘한 분위기를 뜻한다. (반성완, 378면)
21.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벤야민이 말하는 Aura 개념이 결코 공간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은 공간적 만남이자 또한 역사적 만남이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이 서로 엵혀 짜여지는 교묘한 거미줄'과 같은 것이다. (반성완, 379면)
22. 예술은 본래 예술작품이라는 대상에의 침잠을 통하여 어떤 신비적 체험이나 신과의 일체감을 맛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요컨대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주술적, 신비적 성격(분위기)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작품이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예술작품'이라는 오리지날이 갖는 시간적, 공간적 현재성과 일회성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Aura적 분위기를 발산하고 또 수용하는 사람이 그 속에서 아우라적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바로 오리지날의 이러한 현재성과 일회성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는 이러한 현재성과 일회성은 복제기술의 발달 이후 예술작품 '오리지날'이 언제 어디서고 복제가능하면서부터 위축되고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반성완, 379면)
23. 벤야민은 위에서 말한 예술작품의 기본적 성격의 붕괴와 상실 및 이에 따른 수용태도의 변화를 출발점으로 하여 기술시대의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이론화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선 유물론적 예술이론이 흔히 시도하는 것처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상관관계,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라는 상부구조가 넓은 의미의 생산관계라는 하부구조에 대해 갖는 복잡한 관계양상이라는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예술작품과 작가가 오늘날의 생산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생산력 및 기술수준 속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보다 구체적인 문제를 추적하고 있다. (반성완, 3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