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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10대 후반에 나는 두 해에 걸쳐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돈벌이를 했다. ... 그 곳에서 나는 가난한 백인들도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차별을 당하면서 착취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게 했다. (20면)
2. 흑백분리 관행이 남아있는 대기실과 식당,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흑백분리는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21면)
3.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에세이 ‘시민불복종’을 읽었다. 뉴잉글랜드 출신의 소로는 세금납부를 거부한 대담한 사람이었다. 그는 멕시코 내의 노예지구 확장을 위한 전쟁에 자금을 보태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쪽을 택하겠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비폭력저항주의를 처음으로 접했다. 나는 사악한 제도에는 협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상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24, 25면)
4. 나는 선에 협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도 도덕적 의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25면)
5. 1948년, 나는 펜실베니아 주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악을 일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홉스, 벤담, 밀, 로크에 이르기까지 대사상가들의 사회학 이론과 윤리학 이론을 진지하게 공부했다. 사상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론 속에서 의문점을 찾아가면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30면)
6. 라우션부시의 저서를 읽은 후, 나는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빈민가와 인간의 영혼을 억압하는 경제적인 조건,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사회적인 조건”에는 무관심한 채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종교는 사멸하게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에만 국한된 종교는 사멸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31, 32면)
7. 나는 설교하는 성직자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실업문제와 빈민가와 경제적 불안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사회적인 복음운동을 충심으로 주창하는 바이다. (32면)
8. ‘자본론’과 ‘공산당선언’부터 시작해써,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도 읽었다. 그때 공산주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도 확신으로 남아 있다. 첫째로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석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세적이고 유물론적인 공산주의에는 신이란 개념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우주에는 만유의 근거이자 본질인 창조적인 인격의 힘이 존재하며, 그 힘은 유물론적인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다. 궁극적으로 볼 때 역사를 이끄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다. 둘째로 공산주의의 윤리적 상대주의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공산주의에는 신성정부도 절대적인 도덕질서도 있을 수 없으며, 고정불변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상천국’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햐여 무력과 폭력, 살인, 거짓말 등의 거의 모든 수단들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대주으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느낀다. 목적이 건설적인 것이라고 해서 파괴적인 수단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목적은 언제나 수단 속에 선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산주의가 가진 정치적인 전제주의에 거부감을 느꼈다. 공산주의에서는 개인은 국가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 (33면)
9. 세계는 몇몇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이론과 달리 실제로는 새로운 계급과 여러 불평등을 만들어낸 것을 목격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없애기 위한 항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34면)
10.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 공적은 인정되어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빈부격차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으면서 빈부격차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 (35면)
11.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을 인류에 대한 봉사와 인간 관계의 질에 두지 않고 수입의 규모나 자동차의 크기에 두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가 전파하는 이런 실용적인 유물론은 공산주의가 제시한 유물론만큼이나 유해하다. (35면)
12. 간디의 사상은 너무나 심오하고 충격적인 것이어서 나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간디의 일생가 업적에 관한 책을 대여섯 권을 샀다. ... 나는 비폭력저항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에 깊이 매료되었다. 특히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그의 ‘바다로 향하는 소금행진 운동’과 여러 차례의 단식, ‘사티아크라하(satyagraha)'라는 개념이었다. 사티아는 사랑이자 진리이며, 아그라하는 힘을 뜻한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는 진리의 힘 또는 사랑의 힘을 의미한다. 간디의 사상을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힘에 대한 회의는 차츰 엶어지고 사회개혁의 분야에서 사랑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간디에 관한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예수의 가르침이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즉 “오른빰을 때리면 왼빰을 내밀어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사상은 개인간의 갈등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인종간 갈등이나 국가간 갈등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간디의 사상을 읽고 나서 이제까지의 생각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37, 38면)
13. 나는 니버의 평화주의 비판을 처음 접하면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저서(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계속 읽으면서 여러 가지 결점이 눈에 띄었다. 그는 대체로 평화주의를 ‘천진난만하게 사랑의 힘을 신뢰하고 악에 대해 수동적인 무저항주의로 임하는 태도’로 해석했다. 간디를 연구하면서 나는 진정한 평화주의란 악에 대한 무저항이 아니라 악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41, 42면)
14. 진정한 평화주의란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의 힘에 의거하여 악에 용감하게 맞서는 태도를 의미한다. 폭력의 가해자는 우주 속에 폭력과 고통을 증식시키지만 폭력의 피해자는 상대편에 수치심을 불러일으켜 심정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42면)
15. 변증법적 과정에 대한 헤겔의 분석은 여러 결함이 있었지만 투쟁을 통해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제공했다. (47면)
16. 인생은 거대한 삼각형입니다. 한쪽 각에는 개인 자신이 서 있고 다른 한쪽 각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으며 맨 위쪽에 위치한 각에는 신이 서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연결되고 조화되지 못한 인생은 불완전한 인생입니다. (61면)
17. ... 흑백차별정책 때문에 우리는 이제까지 즐겨오던 문화생활의 상당 부분을 희생하고 항상 피부색을 의식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부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했고 직접 그것을 목격하고 싶었다. (63면)
18. 1955년 12월 1일의 일이었다. 로사 파크스 부인이 버스에 타자 백인전용좌석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백인남성이 차에 오르자 버스운전사가 부인에게 일어나서 뒤로 가라고 말했다. 빈 좌석이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버스운전사의 명령을 따른다면 파크스 부인은 방금 버스에 탄 백인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야 할 형편이었다. 조용하고 침착하고 위엄있는 태도와 상냥한 성격을 가진 파크스 부인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한 자각과 자존심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다. (70면)
19.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72면)
20. 생각이 깊어지면서, 나는 우리가 계획한 일이 단순히 버스회사에 경제적 타격을 주는 행동이 아니라 사악한 제도에 협력을 거부하는 행동임을 깨닫게 되었다. 보이콧은 물론 버스회사에 충격을 주겠지만, 그 본질적인 목적은 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소로의 ‘시민 불복종론’이 생각났다. (74면)
21. 우리는 흑인승객의 60퍼센트만 협력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거의 100퍼센트가 협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잠자는 듯 침묵하던 흑인사회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75면)
22. 그들은 자신들이 걸어가는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유와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 고통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개인들의 결연한 용기는 너무나 당당해보였다. (76면)
23. “사람들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불러일으킬 정도로 투쟁적이되, 기독교 정신을 벗어나지 않게끔 사람들의 열정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온건한 내용의 연설을 할 수 있을까?” 가혹한 고통을 겪는 흑인들 중에는 쉽게 피의 보복에 나설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적극적인 행동을 할 준비를 시키되 증오와 원한을 품지 않게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과연 투쟁적이고도 온건한 연설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 임무를 결합시키는 어려운 과제에 정면으로 부딪혀보기로 결심했다. “우리들의 자존심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점과 만일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이런 불평등을 용인한다면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자존심과 주님의 영원한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반면, 기독교적인 사랑의 교의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균형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80면)
24. 대중집회에 모인 수천 명의 흑인들이 인간적 존엄성과 새로운 사명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진정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84면)
25. “지금 나 자신을 위해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서 걸어가고 있는 거라오.” 말을 마친 할머니는 집을 향해서 계속 걸어갔다. (88면)
26. 흑인들에게 사랑을 무기로 삼은 저항정신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디 사상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나는 벌써부터 간디의 비폭력주의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교의야말로 자유쟁취투쟁에 나선 흑인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우리 운동에 혼과 동기를 불어넣은 것은 예수였고, 방법을 알려준 것은 간디였다. (90면)
27. 강력한 저항이 없는 한 누구도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흑백분리제도의 숨겨진 목적은 단순히 흑인과 백인의 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흑인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흑백분리제도 내에서 용인될 수 없는 평등조치를 요구했는데도 ‘기득권자’들은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흑백분리제도의 근본목적은 차별과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것이므로 흑백분리가 존속되는 한 정의와 평등의 쟁취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93면)
28.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틴 루터, 정의를 위해 일어서라. 평등을 위해 일어서라. 진리를 위해 일어서라. 보라,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주님이 내 곁에 임하신 것을 경험했다. (103면)
29. 나의 죄는 사람들을 불의에 항거하는 비폭력적인 운동에 참여시킨 죄이며, 사람들에게 자기 존중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주입시킨 죄이며,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빼앗길 수 없는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누리게 되길 갈망한 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죄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에 협력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이듯이 악에 협력하지 않는 것도 도덕적 의무라는 확신을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115면)
30.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원칙 때문에 우리는 착취의 늪에 빠진 채 가혹하고 끈질긴 불평등을 경험해왔습니다. (118면)
31. “새벽이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 (121면)
32. 우리는 백인성직자연합을 통해서 ‘호의적인 태도와 기독교적인 형제애에 입각해서 행동하자’는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그런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백인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보고 우리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4면)
33. 우리는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의 자세를 기반으로 해서 흑인들과 백인들을 단합시키기 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호존중에 입각한 흑백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125면)
34.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몽고메리가 전 세계 앞에 제시한 새로운 흑인상은 무력감과 수동성, 그리고 고루한 자기 만족을 벗어던지고 인간적인 존엄과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춘 인간상, 그리고 자신도 훌륭한 인간이라는 새로운 자존의식으로 무장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와 인간적 존엄을 쟁취하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내린 인간상이었다. (129면)
35. 이런 역사적 과정을 절정으로 이끈 것은 공립학교에서의 흑백분리를 금지한 1954년 5월 17일 최고법원의 결정이었다. ... 법원은 ‘분리하지만 평등한’ 시설이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이며 인종에 따라서 어린이를 분리하는 것은 그 어린이에게 평등한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결정은 이제까지는 꿈속에서만 자유를 그리던 수백만의 흑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으며 흑인의 자존의식을 향상시키고 정의를 달성하려는 보다 원대한 결단을 품게 하였다. (138면)
36. 남부 전역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획득하게 되면 직면한 대다수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며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투표권을 얻고 공직에 적절한 사람을 세우기 전까지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흑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발걸음은 투표함으로 이어지는 짧은 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141, 142면)
37. 나는 은크루마의 발언을 자주 생각했다. “편안한 예속보다는 위험한 자치를 원합니다.” (149면)
38. 뉴욕에서 당한 사고 덕분에 나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운동이 고수하는 비폭력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자극을 주어 피억압 민중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 운동이 영혼을 구속해온 공포의 쇠사슬과 절망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동트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불확실하지만 밝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게 되길 간절히 염원했다. (154, 155면)
39. 비폭력운동 덕분에 인도에는 사랑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으며 투쟁이 끝나자 피억압자와 억압자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163면)
40. 진정한 비폭력저항은 악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악에 용감하게 맞서는 태도를 의미한다. 폭력의 가해자는 우주에 폭력과 원한을 증식시킬 뿐이지만, 폭력의 피해자는 적대세력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어서 그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168, 169면)
41. 흑인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처지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부 아메리카의 학생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179면)
42. 나는 학생들에게 당당한 자세로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학생들은 비폭력투쟁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인을 이기거나 그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백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 (180면)
43. 1960년 남부 전역으로 확산된 학생운동이야말로 시민권 쟁취투쟁의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960년의 학생운동은 많은 학생들이 인간적 존엄과 자유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을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89, 181면)
44. ... 이 일로 나는 완고하고 편파적인 배심원단을 정의의 편으로 끌어오려면 능숙한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82면)
45. 사회운동은 여러 약점과 장점을 지닌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들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우며, 더 많은 실수를 하고, 다시 그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 인간들은 성공 뿐만 아니라 패배를 경험해야 하며, 성공을 하고 패배를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올버니를 떠났던 것이 후회스럽다. 나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때 주도권을 잃고 다시 만회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당시 경제권력구조가 아니라 정치권력구조를 공격했는데, 투표권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력구조에 대항해서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215, 216면)
46. 올버니 운동은 장기적이고 힘든 싸움이긴 했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공세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유를 위한 싸움에 나설 수 있는 정신력을 제공했다. 올버니 시민들은 허리를 펴고 살게 된 것이다. 간디가 말했듯이 허리를 굽히지 않는 사람의 등을 타고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217면)
47.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우리는 정당하다는 확신, 신체의 보호보다 정당한 목적의 실현이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라고 강조했다. (229면)
48. 우리는 천부적인 권리가 성문화되기까지 34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 인종차별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기다려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245면)
49. 정당한 법을 준수하는 것은 법적 의무일 뿐 아니라 도덕적 의무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도 역시 도덕적 의무입니다. 저는 “부당한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투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247면)
50. 유태교 철학자인 마틴 부버의 말을 빌자면 흑인차별 법령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인간 대 사물’의 관계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인간을 사물의 지위로 격하시키게 됩니다. (247면)
51. 우리는 옳은 일은 하는 데는 적절한 시기가 따로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간을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정책을 인종불평등의 모래밭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단단한 바위 위로 끌어올려야 할 때입니다. (252면)
52. 그러다가 저는 제 자신이 흑인사회에 존재하는 두 반대 세력 사이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기만족 세력인데, 이 세력은 오랜 세월 동안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존심과 ‘인간적 존엄’ 의식을 상실한 채로 흑백차별제도에 순응하는 흑인들과, 흑인차별제도 덕분에 어느 정도 학문적,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흑인대중의 문제에 무감각해진 중산층 흑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증오와 원한을 품고서 위태롭게도 폭력 옹호로 기울어지는 세력입니다. 이 세력은 다양한 국가 독립주의 그룹의 형태로 전국에 확산되어 있습니다. ... 저는 자기 만족에 빠진 사람들의 ‘무관심’을 흉내내어서는 안 되며 골수 고립주의자들의 증오와 절망을 모방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해왔습니다. 사랑과 비폭력항의운동이라는 훨씬 훌륭한 길이 있습니다. (252면)
53. 미국 흑인들 속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미국 흑인들은 자신들에게는 자유를 누릴 천부적인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쟁취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53면)
54. ... 지금의 사정은 당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현대교회의 목소리는 나약하고 무력하며 불분명합니다. 현대교회는 기존 질서의 주요한 방어세력으로 역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다수 지역사회의 권력층은 교회의 존재에 불안을 느끼기는커녕 교회의 묵인이나 노골적인 인정에서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258면)
55. “발은 아프지만, 내 영혼은 편안하다오.” (260면)
56.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지와, 증오 대신 사랑을, 두려움 대신 확신을 가지고 함께 전진하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바이러스처럼 펴져나가 버밍햄 흑인들의 의식을 변화시켰으며 전국 각지로 펴져나갔다. (280면)
57.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287면)
58.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289면)
59. 1963년과 1964년 두 해는 시민권운동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306면)
60. 나는 존슨 대통령의 시민권 법령 조인식에 참여했다. 존슨 대통령은 나에게 법령서명에 사용했던 펜을 선물했는데, 나는 이 펜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311면)
61. 이렇게 해서 나는 노벨평화상을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 운동의 지속을 위해서 묵묵히 투쟁해온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327면)
62. 노벨평화상 수상은 시민권 투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 여론이 우리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329면)
63.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우리에겐 초행길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우리는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적 전통과 보다 부강한 나라들도 극복하지 못한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들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경제는 부의 규모와 기술 수준의 면에서는 미국 경제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실업이나 빈민문제는 없었다. 모든 국민이 무상의료와 질높은 교육이라는 혜택을 받고 있었다. 미국과 같은 부강한 나라들의 불완전한 의료 및 교육현실과 이 국가들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나는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331면)
64.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는 가족들과 나와 함께 투쟁해온 모든 사람들의 희생이 컸다. 내가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었다. (332면)
65. 나는 인류가 직명한 3대 문제, 즉 인종차별과 빈곤, 그리고 전쟁 문제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문제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세 문제는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인간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334면)
66. ... 폭력적 행동을 취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열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340면)
67. 오랜 세월 동안 공권력의 협박에 위축되었던 흑인 사회는 유일한 탈출구가 단결된 행동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 사람의 흑인이 저항을 하면 그는 그 지역에서 추방되고 말지만, 수천 명의 흑인들이 단결하여 저항하면 상황은 확실하게 달라졌다. (350면)
68. 1966년 나는 시카고에 머물면서 활동했다. 이제까지 시민권운동은 중산층 중심으로 전개되었을 뿐 서민에게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시민권 운동이 직면한 절박한 사명은 바로 빈민지역에 파고들어 이 지역의 거주자들과 청년들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나는 시카고 빈민지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빈민지역으로 이주하려는 목적은 흑인 형제자매들이 겪고 있는 생활조건을 직접 경험할 뿐 아니라 과연 내게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었다. (386면)
69. 시카고에 존재하는 궁핍과 절망의 문제는 학문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날마다 극악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고발하는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이 도시가 주민들의 영혼에 주입시키는 우울함과 절망감에 대항하기 위해서 날마다 싸워야 했다. 궁핍과 절망의 문제는 생생하게 우리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386면)
70. 론데일 빈민가는 풍요의 바다에 떠 있는 궁핍의 섬이라고 표현할 만했다. 시카고는 세계 최고의 일인당 소득을 자랑하는 도시였지만, 론데일 빈민가에 자리잡은 내 아파트에서 내다본 풍경은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387면)
71. 론데일로 오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집 아이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보였다. 아이들은 짜증을 냈고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여름을 지내면서 나는 닭장같은 아파트가 우리 가족의 정서를 격앙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88, 389면)
72. 흑인들의 반유대감저은 북부 빈민지역에 한정된 현상이다. 남부에는 이런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에 거주하는 흑인들은 유태인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흑인들은 전혀 다른 두 측면에서 유태인들과 접촉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시민권 투쟁에 임해서는 매우 적극적이며 전혀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빈민지역의 집주인이나 상점 주인의 위치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착취자로 행세한다. (398면)
73. 인생도 그렇지만 인종간의 이해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이승에 태어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존재이다. 우리는 이 존재를 원료로 만들어야 했다. 건설적이고 행복한 인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이다. 흑인들과 백인들이 함께 활동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역시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흑인들과 백인들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408면)
74. 역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랑과 힘이라는 두 개념이 상극으로 취급되어 왔다는 점이다. 사랑은 힘을 포기하는 것으로, 그리고 힘은 사랑을 부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힘은 무모하며, 힘이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며 무기력한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힘은 정의실현을 이행한다는 점에서 곧 사랑이며, 정의는 사랑과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곧 사랑이다. (417면)
75. 역사책들도 흑인들이 미국 역사에 미친 공적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은 쓸모 없는 존재라는 흑인들의 인식을 강화하며 백인지배라는 시대착오적인 교의를 확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영국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미국의 독립혁명에서 최초로 피를 흘린 미국인은 크리스퍼스 어턱스라는 흑인선원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국에서 최초로 심장수술에 성공한 의사가 흑인인 다니엘 헤일 윌리엄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또 다른 흑인의사인 찰스 두르는 혈장을 분리해서 대량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인명을 구해냈으며, 전쟁 후에는 많은 중요 의약품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역사책들은 미국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수많은 흑인 과학자와 발명가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419, 420면)
76. 나는 그날 밤 눈물을 흘렸다. 내 아이들을 포함해서 조상들의 문화적 업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자라는 흑인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흑인은 미국 사회와 관계없는 존재라는 내용의 거짓교육을 받고 자라야 하는 백인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미국의 문화적 기술적 진보는 흑인과 백인들의 공동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무시해야만 하는 모든 백인부모들과 교사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420, 421면)
77. 내가 처음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생각을 펼치자, 전국의 거의 모든 신문들이 나를 혹평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 특정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겁한 사람들은 “안전한가?”를 따지고 편의주의자는 “편리한 방법인가?”를 따지며,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호응이 좋을까?”를 따진다. 하지만 양심적인 사람은 “옳은가?”를 따진다. 살다보면 안전하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호응도 좋지 않은 생각을 양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4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