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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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소설 ‘고향’에서 (4면)




2. “우리가 이 길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줘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 나라로 돌아가서 당신의 까미노(길)를 만들어라. 나는 나의 까미노를 만들 테니.” (6면)




3.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길을 만들어라.”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영국 여자 헤니가 던진 한마디가 이후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그녀의 말은 내게 이미 화두로 자리잡았다. (21면)




4. ‘떠날까 말까 고민되면 일단 떠나라. 살까 말까 고민되면 절대 사지 마라.’ (한비야) (35면)




5. 내가 구상하는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명 가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39면)




6. 도보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차량으로 휙휙 이동하면 눈만 즐겁지만, 같은 장소라도 걸어서 가면 오감이 충족된다. (71면)




7. 한비야는 제주를 두고 ‘만만한 아름다움’이라고 규정했다.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어서 위압감이나 두려움 대신 평화와 위안을 준다고. (120면)




8. 산등성이 어디에나 서 있는 늘푸른 나무들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주었다. 말없는 나무가 주는 위로가 수백 수천 마디 사람의 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들꽃은 거대담론에 매몰된 내게 작고 낮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일깨워주었다. 참 묘한 일이었다. 걷다 보면 그 모든 증오, 미움, 한탄, 연민이 다 부절없이 느껴졌다.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던 가난한 마음밭이 어느덧 넉넉해지는 듯했다. 흙탕물로 뿌옇던 마음의 호수는 앙금이 가라앉아 어느새 말갛게 되었다. (142, 143면)




9.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걸어서 다녀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음을. 두 발로 발도장을 찍은 곳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는 것을. (146면)




10. 걷기에 깊이 빠져들수록 평화롭게 느릿느릿,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면서 걷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오래오래, 길에 머물고 싶었다. (148면)




11.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법이니까. (153면)




12. 걷기는 백수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더니, 직장인에게는 최고의 조언자 노릇을 했다. 걷기의 힘은 무궁무진하고, 그 변주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길 위에 길을 묻는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158면)




13. 산책을 유난히도 즐기고 찬미했던 니체는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흐를 때에는 언제나 나의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루이-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고 갈파했다. 두 사람 모두 사유가 걸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체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158면)




14. 천재가 아닌 나는 그들처럼 창조적 아이디어나 예술적 영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의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는 분별력과 균형감각을 산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158면)




15. 일러두고 싶은 것은 필수 생존장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하라는 것. (168면)




16. 일정대로만 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그건 해치워야 하는 숙제일 뿐. (194면)




17. 국적도, 성도, 세대도, 직업도 달랐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긴 인생길에서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중이라는 것. ... 인생 전반전을 일중독자로 죽을 둥 살 둥 달리다가 기진맥진한 나는 후반전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답을 구하는 중이고,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순례자들이었다. (207면)




18. 분노는 옅어지고 그리움만 짙어진다. 미움은 사라지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218면)




19. 독일 언론인 출신 알렉산터 폰 쇤부르크는 저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에서 가난해지는 그 순간 맘만 먹으면 우아하게 사는 길이 열리지만, 부자들은 부의 천박한 속성 때문에라도 우아해지기 힘들다고 역설했다. (223면)




20.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수 없잔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길을 길이라고 생각하던 나. 우리나라엔 왜 아름다운 걷는 길이 없나. 불평만 일삼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찾아왔다. (236면)




21.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른다. (238면)




22.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허벅지의 통증도, 쓰라린 물집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피로도 씻은 듯 사라졌다. 완벽한 자유와 충만감이 온몸에 흘러넘쳤다. 오랫동안 소망해온 대로 걸어서 산티아고에 온 지금, 생애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240면)




23. 정말 이곳에 왔구나! 스스로 대견해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떠나는 자만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242면)




24. 고향 제주의 재발견. 산티아고 순례가 내게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246면)




25. 느리게 걷지 않고는 풍경에 집중할 수도, 생각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순례자는 ‘빠름’보다 ‘느림’을 추구한다. 얼마나 빨리 여정을 끝내는가보다는 이 길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존경이 바쳐진다. (252면)




26.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시계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다.” (페터 보르샤이트) (254면)




27. 단 몇 시간 걷기만으로 어떻게 그런 엄청난 변화가 가능하냐고 묻지 말라. 그게 가능한 것이 걷기의 힘이다. ‘두 발은 인간의 철학적 스승’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다. 걷다 보면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된다. 왼발과 오른발을 옮겨놓는 그 단순한 동작 사이에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를 푸른 실마리가 있다. 걷기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286, 287면)




28. 남자들은 걷기보다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평화보다는 전쟁, 공존보다는 경쟁에 익숙하도록 긴긴 세월 교육받고 길들여져왔다. ... 반면 여자들은 달리기보다는 걷기를 더 좋아한다. 업적지향이기보다는 관계지향인 여성의 속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된다. 길을 걸으면서 들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비에게도 말을 건넬 줄 안다. 파도와도 몸을 섞을 줄 알고 바람과도 희롱할 줄 안다. (298면)




29. 환경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오한숙희)는 강력히 권고한다. 하지못해 뒷산에라도 오르면서 말문을 트라고. (318면)




30. 열린 공간 올레에서는, 닫힌 마음이 열린다. 구겨진 마음은 반듯하게 다려진다. 자잘한 걱정거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려간다. 부부끼리, 연인끼리 대화하기엔 최적의 공간이요 최고의 세트다. (323면)




31. “서귀포는 극락이죠. 파라다이스 말예요! 육지에서 누렸던 소소한 기득권이나 자질구레한 인연을 접을 수 있다면요.” 소소한 기득권, 이런저런 모임! 인생에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산티아고에서 뻐저리게 느낀 터였다. (342, 343면)




32. ‘정치하는 사람이나 큰 부자는 안 나오고 예술가들만 나올 것’이라는 넋할망의 예언을 입증하듯, 서귀포에는 예술가들이 많다. ... 그 중에서도 변시지 화백은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올레 2코스 종점인 외돌개 가는 길 남성리 입구에 있는 ‘기당미술관’이 그가 세운 미술관이다. (369면)




33. 변시지의 그림에는 그가 평생 사랑해온 제주의 바람과 바다와 말, 돌담, 초가, 까마귀가 늘 등장한다. 또 하나, 대부분의 그림에는 반드시 손톱만한 크기의 인물이 등장한다. (372면)




34. 말은 인간의 감정에 앞서 그 지역의 땅, 하늘, 구름, 바다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제주어는 압축적이다. 마치 음악 같다. ‘겅, 정’은 표준어로 ‘그래서, 저래서’다. 여섯 글자가 두 글자로 확 줄어든다. ... 그런 제주어에 반한 위대한 학자가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이었다. (378면)




35. 그런 바람을 수굿하게 받아들이고, 바람이야말로 제주를 제주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사진작가 김영갑 덕분이었다. ... 그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보이는 풍경보다 더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말하지 않는 바람이 전하는 말은 두터운 책보다도 더 많은 사유를 담고 있었다. ... 두모악 갤러리(김영갑이 운영했던 사진전시관) ... (405면)




36. 제주에서 그의 심미안을 만족시킨 드문 존재가 제주수선화였다. 날씬한 녹색 줄기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한 하얀 꽃잎. 자태도 어여쁘지만 추사를 진정 기쁘게 한 건 품격있는 향이었다. (415면)




37. 제주를 제주인보다 더 사랑했던 육지사람, 제주의 바람을 사진에 가두어놓았던 사진잡가 김영갑은 마라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는 말했다. 그 섬에 가면 영혼이 씻기는 것 같다고. (4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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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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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였다. 나는 그 곡의 시작 테마를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그 때 들린 그 음악은, 성당의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마치 음악 자체가 살아 있는 듯 나의 내부로 들어와 자아를 완전히 사로잡는 것 같았다. (13면)




2. 그래도 돌이켜보면,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절망가 기쁨 속에서도 어떤 커다란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는 믿음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로 길을 잃었던 적은 결코 없다. (21면)




3. ... 처음부터 우리는 용기, 정직, 연민, 인내와 같은 인간적 가치의 중요성을 배웠다. (22면)




4. 어머니는 자연과 동물에 대한 나의 열정을 너그럽게 봐주시고 격려까지 해주셨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쳐주셨다. (23면)




5. 나에게 생명에 대한 애정과 지식에 대한 열정을 길러주고 격려해준 현명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행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 당신의 자녀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26면)




6. 외할머니는 “그대의 분노 위에 태양이 지게 하지 말라”고 인용하곤 했다. (30면)




7. 처음으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믿어온 대로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시다면 왜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당하고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37면)




8. 인생이란 모호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홀로코스트는 나를 깊이 동요시켰다. 일생 동안 나치와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책을 구입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람이 그런 고문을 견디고 살아날 수 있었을까? 나는 전생애를 통해 이 질문을 던져온 것 같다. (37면)




9. ... 그 중 하나는 감각론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 바깥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지도 않는다고 이 책에서 배웠다. ... (46면)




10. “만약 뭔가를 하려면 최선을 다해라.” 누가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어구는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 (53면)




11. 나는 작은 놀라움들을 사랑한다. (54면)




12. 내가 성서를 즐겨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시적 아름다움 때문인 것 같다. 그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이 현대판에서는 없어져버렸다. (55면)




13. 나는 아프리카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다. (63면)




14. 희망봉을 둘러 케이프 타운으로 입항하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그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바로 인종차별 정책에 처음 맞닥뜨렸던 충격이다. 내가 가본 어느 곳에서나,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계획적으로 모멸감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슬렉스 블랑스 ‘백인전용’ ... (70면)




15. 나는 오늘날까지도 기린이 놀랍다. 처음 본 그 날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롭고 흥분되고 아름다웠다. (72면)




16. 아마도 그(루이스 리키)는 아무 학위도 없는 내가 어류학ichthylogy과 파충류학herpetology 같은 단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74면)




17. ... 그런데 갑자기 아침에 깨었을 때 내가 나의 꿈 속에서 실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77면)




18. 루이스는 편협한 신앙이야말로 최고의 악이라고 믿었다. (82면)




19. 루이스는 자신이 선택한 연구원들은 과학이론으로 편향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현지로 나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왔던 사람은 개방된 마음, 지식에 대한 열정, 동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지극히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근면하고, 긴 시간을 문명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 연구가 여러 해 걸릴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이와 같이 정리를 하자, 나는 물론 내가 그 일에 가장 적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86면)




20. 그러나 정말로 의미있고 대단히 흥분되는 관찰은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98면)




21. 루이스 리키에게 이 소식을 전보쳤을 때, 그는 지금은 유명해진 말로 답장했다. “오! 우리는 이제 인간을 재정의하든지 도구를 재정의하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가 그것이었다. (100면)




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베에서의 그 몇 달은 오늘날의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매료와 경이가 내 사고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정말로 둔감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107면)




23. 내가 저지른 더 큰 ‘잘못’은 침팬지에게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최소한 많은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은) 인간만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만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운좋게도 나는 대학에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 생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해버렸다. 나는 평생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러스티와 일련의 고양이들, 기니 피그와 금빛 햄스터들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은 동물도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으며, 마음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109면)




24. ‘여기는 내가 속한 곳이다. 이 일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자주 들었다. (118면)




25. 사실 변한 것은 나였다. ... 자연은 거의 언제나 아름답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지만, 사람이 만든 세계는 끔찍하게 추악하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기 쉬운 것처럼 보였다. 곰베에서 영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두 세계 사이의 이러한 대조는 선명히 떠올라 나를 정말 슬프게 했다. (124면)




26.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뭇잎, 살랑이는 물결, 새들과 귀뚜라미의 노래 대신에 자동차들, 지나치게 큰 록음악, 귀에 거슬리는 그리고 침묵하지 않는 목소리들로 괴롭힘을 당했다. (124면)




27. 우리는 품성, 합리적 힘, 이타주의, 즐거움과 슬픔 같은 감정을 가진 유일한 존재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도 아니다. (133, 134면)




28. ... 아마도 그 사고로 현세의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돼서, 우리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139면)




29. 내가 진정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어려운 때에는 믿지 못할 친구들이었다. 나는 진짜 친구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147면)




30. 그리고 나는 우리의 모든 뛰어난 지성과 고귀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격성이 침팬지의 그것과 단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욱 악질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생각하였다. ... 물론 곰베에서의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침팬지 본성의 어두운 측면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이를 통해, 왜, 어떻게 인간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51면)




31. ... 그러다가 갑자기 침팬지가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본성에 어두운 측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160면)




32. ... 거기에서 대단히 존경했던 과학자들이 모든 공격성은 학습되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선언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62면)




33. 그들은 집단 정체성에 대한 강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집단에 ‘속한’ 개체들과 그렇지 않은 개체들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집단에 속하지 않은 암컷들의 새끼를 살해하는 반면, 자기 집단 암컷의 새계들은 보호해 준다. (172면)




34.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인간의 공격적 행위는 실로 독특하다. 침팬지들도 희생자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인간적인 의미의 잔인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오직 인간들만이 자기가 보이는 고통을 알면서도 혹은 심지어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에게 의도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 따라서 나는 오직 우리 인간만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 그 악마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게 믿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던 다양한 고문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사악함이 침팬지들의 최악의 공격성보다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더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77면)




35. 돌보고 돕고 안심시키는 패턴들은 모자 관계와 가족 관계의 맥락 속에서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그것들은 진화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들의 복지에도 확실히 유용하다. 이런 행위들은 침팬지들의 유전자 자질에도 확고히 새겨져왔다. (184면)




36.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가장 진정하고 존엄한 가치들은 깎아내리는 이러한 환원론적인 논의에 수긍하는 것이 잘못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확신한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용기와 자기 희생에 관한 매우 감명 깊은 이야기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185면)




37. 우리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을 통해서도 서로를 고문하고 싸우고 죽인다. 하지만 또한 가장 고결하고 관대하며 영웅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191면)




38. 그 무엇을 사랑하건, 그 사랑의 깊이가 -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을 잃었을 때의 슬픔의 깊이를 결정한다. (194면)




39.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든든한 성과도 같았다. (201면)




40. ‘그래, 의미를 찾는 인간이 우리 주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은 여러 가지가 있는거야.’ (224면)




41. 분명히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이자 사색가인 아인슈타인은,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가득히 느끼는 놀라움과 겸허함에 대해 항상 새로워진다는, 삶에 대한 신비론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227면)




42. 복지국가는 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인 염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243면)




43.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점차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전세계에서 동물 권리 운동이 인정받고 있고 지지를 얻고 있다. (243면)




44. 인간은 점차로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뻗어나가고 서로 도울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우리는 서서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43면)




45. 그들이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빌려야 하는 돈의 총합은 27달러도 안 됐다. 27달러를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 돈을 빌려 주었다. ... 1983년에 공식적으로 창립된 그라민 은행은 이후 15년 동안 다른 나라까지 확장해서 모두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소액으로 대출해 주었다. ... 정말 그는 우리들 중의 천재였고 나에게는 성인이었다. (244, 245면)




46. 나는 사랑받는 것들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51면)




47. 인간성에 봉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살아가는 삶 - 이것들이야말로 성자와 같은 행동의 정수인 것이다. (254면)




48. 25년 동안 나는 꿈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나는 숲의 한적함과 고독을 사랑하였고, 우리 시대의 가장 매력적인 피조물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나의 일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고, 곤경에 처한 침팬지들을 위해 내가 얻은 지식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260면)




49. 과학의 이름으로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것들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부분이 고문과 학대일 뿐이다. (273면)




50. 앞으로 중요한 과제 중 특히 의학과 수의학도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하는 실험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동물 실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275면)




51. 고기 먹는 것에 대한 나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완전히 바뀌었다. ... (277면)




52.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그러기를 기대한다). (278면)




53. 아인슈타인은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과 아름다운 자연 전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동정심의 범위를 넓힐 것”을 당부하였다. 슈바이쳐는 “우리는 동물까지도 포함하는 경계 없는 윤리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하트마 간디는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279면)




54. 젊은이들이 변화를 일으키려고 결단하면 강력한 힘이 발생한다. (284면)




55. 내가 희망을 가지는 이유는 네 가지이다. 인간의 두뇌, 자연의 회복력, 전세계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굴의 인간 정신이 그것이다. (289면)




56. 많은 히브리어 학자들이 ‘지배 dominion'라는 말이 히브리 원전의 ’v yirdu'라는 말을 불완전하게 옮긴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원래의 뜻은 ‘다스리다’에 가까워서, 지혜로운 왕이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존중하여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에는 책임감과 게몽된 관리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336면)




57. 내가 어렸을 때 중요하다고 강조되던 근본적인 가치들, 즉 정직함, 자기 통제, 생명 존중, 공손함, 연민, 관용과 같은 것들을 오늘날 많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3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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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풍경 - 조효제 교수의 우리 시대 인권 강의
조효제 지음 / 교양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1. “모든 글은 시사적인 글이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아득한 과거지사를 다루는 역사도 역사가가 현재 품고 있는 생각의 가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11면)




2. 나는 인권을 ‘사회적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억압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움직임’이라고 이해한다. (13면)




3. ... 단지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절망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악조건일수록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희망의 불씨가 출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14, 15면)




4. 보수주의자들은 인권을 마치 진보파들의 정치 공세인 양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인권을 정치 공세로 치부한다는 말은 인권을 철저히 당파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진보파가 보수파를 비판하기 위해 ‘인권’을 하나의 구실로 이용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인권은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인권이다. (17면)




5. 우리 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현대 사회는 어차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존을 모색하는 ‘다원적 사회’일 수 밖에 없다. 종교나 사상이 다르다고 화형에 처할 수 없는 시대이고 사회다. 이런 다원적 사회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들이 전개되는 과정을 동심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동심원 중 제일 안쪽의 동그라미가 바로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이다. 그 바깥 동그라미는 통상적인 다원적 사회의 원칙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의 영역이고, 그 다음 동그라미는 다원적 사회의 원칙 자체를 바꾸려는 ‘급진적’ 영역이지만 크게 보아 그 원칙으로 수렴될 수 있는 문제 영역이다. 하지만 그 바깥의 영역은 일종의 ‘외계’다. 다원적 사회의 원칙으로 감당하기 힘든 극단적 갈등의 영역인 것이다(Paul Schumaker, 2008 참조). (18, 19면)




6. 인권을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은 좌-우를 떠나 우리 사회의 선진적인 토대를 닦는 문제다. ... (19면)




7. 권리의식은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고 그 욕구는 다시 인권의 새로운 목록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인권 운동이 인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한 ‘정태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권리의식이 새로운 인권 목록의 확장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동태적’ 모델에 의존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있다. (25면)




8. ‘재귀적(reflexive)'이라는 말은 어떤 주체의 행위 결과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 새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성찰적‘이라고 옮기지만 썩 좋은 번역이 아니다. (25면)




9. ... 문제를 해결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이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 셈이다. (26면)




10. 이와 마찬가지로 인권법이 제대로 집행되기만 한다면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도 이제 의문시되고 있다. 인권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이슈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생겨나고 인권의 이름으로 해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6면)




11. 재귀적 근대화를 맞아 ‘정치의 재발명’이 요구되듯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특징인 권리 의식의 재귀적 증폭 현상 앞에서 우리가 인권 운동의 목표 자체를 재형상화하고 재설정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올리히 벡은 재귀적 근대화가 진행되면 전통적 지배 규칙의 외곽에서 전문가 시스템과 상관없는 새로운 형태의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28면)




12. ‘세계정부 없는 보편인권’이라는 말은 ‘솥 없는 밥’과 비슷한 모순어이다. 한나 아렌트가 국가 간에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한 보편 인권은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 가서 “피난처를 구할 권리” 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도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Arendt, 1951). 하지만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보편을 지향하는 인권의 요구가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라는 사실, 다른 하나는 좋든 싫든 국가 체제는 적어도 당분간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29면)




13. ... 국제 인권법은 국가만을 중시하고 비국가 행위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국제 인권법은 비국가 행위자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McCorquodale, 2002) (30면)




14. ... 그런데 오늘날 국가 외의 비국가 행위자들이 점점 더 국제법상 의무의 주체로 등장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국제 인권법에서 비국가 행위자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31면)




15. 개인 정체성과 집단 귀속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 (96면)




16. 권력은 영향력과 책임과 그 자체의 문제점을 동시에 내포한다. (97면)




17. “법을 전공한 사람들은 자기 직업으로부터 독특한 특징을 습득하곤 한다. 즉, 질서를 경애하는 습관, 형식성 선호, 규칙적인 사고 방식에 대한 본능적인 존중 등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법률가들은 혁명의 정신과 민중의 사려 깊지 못한 정열에 대한 적대적이 된다.” 이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1권 15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이러한 경향은 귀족의 그것과 많이 닮았고, 그 때문에 법률가는 ‘인민에 의한 정부를 은근히 경멸’하기 쉽다는 것이다. (102면)




18. 그(존 스튜어트 밀)는 인간이 실수할 수 있는 자유를 옹호했다. 설령 인간이 실수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러한 실수를 원천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보다는, 실수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래야 인간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2면)




19. “우리 집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두개는 우정을 위해, 세 개는 사교를 위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 (152면)




20. 문학은 문학 그 자체의 참다운 아름다움으로 접근해야 하며, 문학은 이해력보다 깊은 공감의 정신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것을 읽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167면)




21.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언어를 요구한다. (191면)




22. 냉철한 상황 인식에 기반한 행동만이 궁극적으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199면)




23. C. 라이트 밀즈가 무섭게 꿰뚫어 보았듯이 “권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핵심 제도들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35면)




24. 일흔이 다 된 노인(피터 베넨슨)이 냉전 이후의 인권 상황을 예견하면서 운동의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다. 그때 인권 운동이 단순히 외부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앞날을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것임을 배웠다. (262면)




25. 나는 이미 다원화되어 통일된 거대 담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시민사회에 인권이 어떤 ‘공통된 합의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본다. (263면)




26. 그런데 시대에 따라 그러한 열정을 대변하는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불의에 억눌린 이들은 자신의 절망과 분노를 조리있게 표현해 주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며, 자신에게 희망을 열어준다고 느끼는 언어로 말하고 꿈꾼다. (264면)




27. 호피족의 춤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비를 바라는 기능, 즉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이다. 그러나 호피족의 춤에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누구나 어렵다. 고통이 늘면 갈등도 많아진다. 이럴 때 호피족은 집단 춤을 통해 부족의 단합과 집단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반드시 인식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중요한 기능읻. 이것을 머튼은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이라고 불렀다. (296, 297면)




28. ... 특히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엔지오들이 회의를 주도하면서 언어 문제를 이유로 비영어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도 역력합니다. (309면)




29. 주로 아시아권에서 유입되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운동은 한국 시민 사회 운동에서 하나의 확고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318면)




30. 필자는 법학자는 아니지만 우리 헌법이 인권 문제에서 중요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322면)




31. 이젠 국가가 자국 국민(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때가 되었다. 국가는 최소한 우리 영토 내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323면)




32.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을 탐독하면서도 업무에서는 형용사를 빼고 팩트만을 강조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이종욱)는 명령이 아니라 솔선수범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334면)




33. ... 효율성의 문제도 자주 지적된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 시스템은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도록 보장해준다. (346면)




34. 인권을 논할 때 사회 맥락으로부터 인권 문제 만을 따로 떼어내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인간을 억압하는 여러 다양한 형태의 억압 권력에 맞서는 대항 담론이다. 그런데 이런 대항 담론을 치밀하고 전문적인 제도 인권으로 좁게 규정하면 할수록 인권이 자리잡고 있는 전체 사회구조를 망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나는 인권을 전문적이고 법적이고 기술적으로만 다룰 때 이런 위험이 늘어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349면)




35. 인권 연구는 참된 의미로 ‘학제간’ 연구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354면)




36. 인권을 공부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국제인권법을 통해 인권의 전 세계적 기준을 익힐 수 있다(정인섭, 2000). 둘째, 인권의 이론을 다룬 책을 통해 인권의 토대와 철학적 기반, 논리 구조를 배울 수 있다(바삭, 1986; 조효제, 2007; 프리먼, 2005). 셋째, 인권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인권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진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야스오, 1995; 이샤이, 2005; 차병직, 2003). 넷째, 인권을 책으로만 배우기는 어렵지만 인권 책을 통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인권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가 있다. (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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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소책자)
마빈 토케이어 지음, 주덕명 옮김 / 함께(바소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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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디시어로 학자라는 말은 헤브라이어의 ‘람단’에서 유래하고 있다. ‘람단’이라는 말은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보다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더 존귀하다는 말이다. (12면)




2. ‘여행을 하는 중에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한 좋은 책을 보게 되면, 반드시 그 책을 사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라.’ (14면)




3. ‘만일, 가난한 나머지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우선 금, 보석, 집, 땅을 팔아라. 마지막까지라도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 책이다.’ (14면)




4. 자기 스스로 유식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할지는 모르나, 자기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그것은 지혜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16면)




5. ‘훌륭한 물음은 훌륭한 답을 끌어낸다.’ (탈무드) (18면)




6. 탈무드에는 ‘학식이나 자신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값비싼 시계와 비슷하다.’고 적혀 있다. 요컨대 남에게 보이며 자랑하려고 몸에 품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시간을 물을 때에 비로소 시계를 꺼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목이 타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어도 바닥이 나지 않는 샘처럼 학식이 넘쳐나는 법이다. (21면)




7.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생겨난다. 당신은 세상이 짊어지고 있는 곤란한 문제를 크게 만들 수도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이 되어 줄 수도 있다. 당신은 전혀 무력하지 않다.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자기 주변의 세계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당신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24면)




8. 자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로 도덕적인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는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생각을 지녀야 한다. (28면)




9. ‘다른 사람보다도 훌륭한 사람은 정말로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전의 자기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탈무드) (34, 35면)




10. ‘배우기를 마다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42면)




11. 인간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48면)




12. 유대인들은 무지개가 희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폭풍우 뒤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무지개가 하늘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66면)




13.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가 적혀 있다. ‘사람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어째서 하느님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도록 만들었을까?’ 그 답은 이렇게 적혀 있다.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서 밝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67면)




14. 신념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비록 목숨과 바꾼다 할지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71면)




15. ‘인간은 가능한 한 안락함을 구하고, 가능한 한 노력을 안 들이려는 동물이다.’ (대영 백과사전) (75면)




16. 바르고 진실된 말만이 상대방 마음을 움직인다. (79면)




17. “지혜는 겸허함을 낳는다.” (아브라함 벤 에즈라) (81면)




18.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말라. 그들의 셔츠 속에는 영민한 지혜의 진주가 감추어져 있다.’ (85면)




19. 돈이나 섹스는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낫다. (89면)




20. ‘아침 술은 돌, 낮술은 구리, 밤의 술은 은, 사흘에 한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 (탈무드) (93면)




21. ‘탈무드’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네 가지 척도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돈, 술, 여자, 시간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 이것들은 모두 매력적이기는 하나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돈, 술, 여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97, 98면)




22. 유대인의 전통에서는 정열을 불태우고 몸을 망치는 일에 대해 엄하게 타이르고 있다. 그러한 정열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100면)




23. 아무리 잡초라고 할지라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109면)




24. ‘탈무드’에 의하면 세 가지 일은 남에게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람은 세 가지 일은 감출 수가 없다. 기침, 가난,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열 때문에 결혼을 하더라도, 정열은 결혼만큼 오래 가지 못한다’고 경계하고 있으며, ‘사랑은 열렬할수록 그 사랑의 생명은 짧다. 흥분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는 법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121면)




25.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겸허한 마음에서 우러난다. 그리고 겸허해지면 자기 스스로 보는 시야가 크게 넓어진다. 그리하여 농부에게 말을 걸었던 잡초처럼 저 쪽에서 당신에게 접근해 올 것이다. 우리들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인이나 다름이 없다. 허리를 굽히는 상인은 거만하고 잘난 척하는 상인보다도 고객이 많은 법이다. (131면)




26. 웃음을 소중히 하고 적절히 구사한다면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135면)




27. 유머가 왜 웃음을 주는가? 규격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규격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여유가 있음으로 해서 유머라는 유희가 가능하다. (135면)




28. 고도의 유머는 지성에서 우러나온다. 정말로 세련된 유머, 적절한 순간과 적절한 상황에 걸맞는 유머는 지적으로 훈련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법이다. (136면)




29. 조크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의외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규격에 박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외성이 있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들으면 웃음을 터뜨린다. (138, 139면)




30. 유대인들은 흔히 ‘조크나 수수께끼는 머리를 날카롭게 가는 숫돌이다.’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의외성이 있는 까닭이다. (146면)




31. ‘세 사람 이상 알고 있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150면)




32. 먼 곳의 보물보다 가까운 보물을 지켜라. (151면)




33.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사람은 겸손함을 잃어버려 자기 자신을 고치려는 생각은 사라지고, 또한 자신이 모든 중심에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져 들어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155면)




34. ‘현인이라 하더라도 지식을 함부로 떠벌이는 자는 무지를 부끄러워하는 어리석은 자보다도 못하다.’ (탈무드) (157면)




35. ‘어리석은 자라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성인처럼 보인다.’ (160면)




36. 말이 많으면 쓸 만한 말이 적은 법이다. (164면)




37. 기도는 자신을 저울에 달아보는 일이다. (168면)




38. 자신의 공로를 스스로 내보이지 말아라. (191면)




39. 지성이라는 산꼭대기에는 겸허함이라는 아름다운 눈으로 덮여 있다. (192면)




40. 갈대는 유연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좋은 여생을 약속받았으며, 삼목은 경직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196면)




41. 사람에게 일은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일에 혹사당하면 인간다움을 잃어 버리게 된다. (202면)




42. ‘쉬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탈무드) (204면)




43. 본보기를 보이는 것은 가장 좋은 교육이다. ... 항상 자기가 처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1이란 가장 명예로운 숫자이다. (213면)




44, 스스로 우러난 근면은 자기의 발전과 꿈을 이룬다. (219면)




45.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라. (225면)




46. 틀렸을 때에는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하라. (234면)




47. ‘이렇게 작은 부품 하나라도 시계를 멈춰 서게 할 수 있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비틀려져 있으면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인생에서의 작은 사건 하나가 소중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2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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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재판과 사회정의 5.18연구소 학술총서 6
한인섭 지음 / 경인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1. 실정법적 결정이 사회정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상황에서도 법학은 이를 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는데 그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그 미래는 어떤 미래인가. 소장 법률가들은 그 선배세대들이 정치권력과 통치권에 무기력하게 굴종한 데 대해 개탄해왔다. 이제 우리가 다음 세대로부터 “당신들은 그 때 뭣했는가”는 비난을 받을 상황이 도래한 셈이다. ... 다행히, 어쩜 기적같이, 혹은 “섭리의 힘”처럼, 5․18은 과거사 속으로 묻혀버리지 않았다. ‘역사의 법정’이 아니라 ‘현실의 법정’이 정면으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적어도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실정법(법률 및 판결)은 정의의 내용을 담지 못했다. (서문, 4면)




2. 1995년 검찰의 결정, 즉 유죄이지만 불기소한다는 결정이야말로 당시까지의 법률기관이 당면했던 곤혹스러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행기에 있던 한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서문, 4, 5면)




3. 5․18재판은 권위주의적 군사체제 하에서 내려진 일련의 사법적 결정을 뒤집는 출발점이었다. 과거 독재정권에 부역한 검찰과 법원은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것들과 법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판결을 산출했다. 이 재판은 법원과 검찰이 과거에 대해 지고 있던 부담을 벗겨내고, 정상적인 민주법치주의로 진전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악법도 법”이라는 기계적 법적용의 시대로부터 “악법은 악”으로 재구성하는 단계로 나아간 셈이다. 소위 “성공한 구데타”는 이 판결을 통해 “실패한 구데타”로 귀결되었다. (서문, 5면)




4. 여러 근본개념들도 함께 검토되어야 했다. 혁명과 구데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법과 정의는 우리의 실정법적 해석 속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는가, 헌정질서의 수호에 시민은 어떻게 나설 수 있는가, 공소시효는 절대 구속력이 있는 규정인가 아니면 어떤 사유로 예외를 설정할 수 있는가 하는 쟁점이 떠올랐다. ... 특별재심을 통해 한 때는 범죄자들이 정당행위 또는 정당방위를 한 자로 재규정될 때, 그 정당행위는 기존 실정법의 해석에 새로운 도전거리를 제공한다. 이렇게 5․18재판은 새로운 학문적 분석을 기다리고 있는 풍요한 광맥이기도 하다. (서문, 5면)




5. “어두운 죽음의 시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아가야 했던 그 세대는 “5․18세대”라고 불리워야 마땅하다. 386이란 정체불명의 이름은 그 세대로부터 역사성과 운동성을 거세해버린다. (서문, 7면)




6. 군사정권이 자행한 지역차별의 정치책략의 정점에 5․18의 비극이 있다. (서문, 7면)




7.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만 인종차별정책의 유산인 가공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만델라) (4면)




8. 내란이 성공하였다고 내란죄가 없어지려면 형법상 내란죄의 기수조항을 제거해버려야 한다. (13면)




9. 더구나 중요한 문제는 헌법개정을 위한 정지작업에서 살상과 고문, 인권유린과 같은 ‘정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정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유린이 있는 경우에 정당화되는 것은 실정법질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임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분명히 밝히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18면)




10. ‘악법도 법이다’는 언급은 그 악법의 피해자인 소크라테스와 같은 입장에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악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자들의 주장논거로 쓰여질 수는 없다. (20면)




11. 기소편의주의는 자의적인 검찰권운용을 가능케 하는 무소불능의 재량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검사가 기소유예할 수 있는 사안은 법관의 선고유예를 받을 만하거나 그보다 경미한 사건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한다. ... 기소유예처분은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할 때 그 정상을 참작하여 검사가 하는 것이다. (23, 24면)




12. 통치행위론은 군주의 행위에 대해 어떤 사법적 판단도 사전에 배제한다는 군주주권시대의 낡은 이론적 유물이다. (25면)




13. 내란죄를 범한 대통령은 재직 중에도 형사소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입법취지이지만, 그 형사소추가 문자그대로 불가능한 철권적 지배상황이었다면, 그 기간만큼은 공소시효 진행을 위한 기초로서의 검찰권 행사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9면)




14. 이번 판결(제1심 판결)의 가장 큰 의의는 12․12와 5 ․17, 5․18을 군사반란과 내란, 내란목적살인으로 법적 성격을 규정지은 데 있다. (42면)




15. 변호인단에 따르면 내란죄는 폭동행위와 함께 즉시 기수에 이르러 종료하는 즉시범이고, 이후의 계엄상태의 유지는 범죄의 결과가 현존하고 있는 상태범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개개의 폭동행위는 기수에 이름과 동시에 종료된 것이어서 이미 공소시효(범죄가 종료된 지 15년)를 넘겼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 측은 비상계엄의 선포와 유지행위를 모두 내란죄로 보고, 그러한 상황에서 개개의 폭동행위를 포괄적으로 묶어 하나의 내란죄로 기소하였다. 재판부는 검찰의 법리를 채택하면서, 개개의 폭동행위 간의 관계를 접속범으로 이론화하였다. 그 근거로는 개개의 행위가 국가존립의 기초 자체 또는 국헌적 법질서를 해치는 점에서 단일하고, 국헌문란의 목적과 폭동이라는 범의의 계속성이 있으므로, 소위 접속범으로서 모든 행위가 포괄하여 내란죄라는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며, 폭동행위가 최후로 종료하였다고 보여지는 비상계엄 해제일(1981.1.24)을 내란의 종료시점으로 잡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내란의 기수와 종료시기를 구분하고, 종료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본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44, 45면)




16. 80년 내란행위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때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때로는 불법한 절차를 통해 내란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다. 이 점은 군대와 국가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된 군내 소장층에 의해 주도된 5․16과 대비된다. 5․16 쿠데타의 경우 그 내란성과 범죄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데 비해, 5․17 세력은 자신들의 행위를 국가활동의 일환으로 은폐시킬 수 있었다. (45면)




17. 본 판결(제1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그러한 적법성의 가면 뒤에 있는 불법의 본질을 명확히 인정한 점이다. 예컨대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재가하는 형식을 밝은 것은 “외관상으로는 당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대통령의 적법한 권리행사를 바라는 건의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피고인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적법한 외관 뒤에 가려져 있는 불법한 본질을 명쾌하고 선언하였다. (46면)




18. 합법적 절차와 불법적 절차는 형식적으로 달리 평가될 수 있을지라도, 내란이라는 전반적 범죄계획 속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때 총괄적으로 범죄행위로 평가되어진다는 해석은 이 판결(제1심)의 백미라 할 것이다. (46면)




19. 시민들에 대한 살상에 대한 책임소재와 책임범위를 정확히 가려내는 데 이 판결(제1심)은 근본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47면)




20. 1심재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5․18 피해자들의 증언을 제대로 청취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61면)




21. 제1심(서울지법 1996.8.26, 95고합1280 등)의 기여는 사실관계의 정리와 법리의 뼈대를 만들어 세운 데 있다. 하지만 진실규명, 그 중에서도 5․18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의 책임범위에 대해서는 너무나 미흡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12․12와 5․17이 훨씬 부가된 반면, 5․18 살상행위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으며, 1980년의 후속적인 권력정지작업들에 대해서는 사건명 이상의 접근이 없었다는 것이다. “12․12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므로 12․12 가담자에 대해서는 5․18 가담자보다 무겁게 다루었다”고 김영일 재판장은 말했다. (91면)




22. 제1심의 성과 위에 항소심(서울고법 1996.12.16, 96노1892, 권성, 김재복, 이충상)은 5․18에 논의를 집중한다. 항소심의 논리는 시종일관 명쾌하고, 자연법적 법률관을 정면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92면)




23. 항소심의 논리적 출발점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의 법리를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92면)




24. 검찰의 고민은 내란범들을 처벌할 경우 초래될 헌정과 법률의 단절에 대한 우려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 즉 80년의 쿠데타를 내란죄로 단죄하게 되면, 그 후 그들이 행한 일련의 법적․행정적 조치, 심지어 공무원의 임용행위, 각종의 인허가 처분 등 모든 행위가 불법화된다는 것이다. (93면)




25. 실제로 그 같은 우려를 기존의 법해석론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으며, 따라서 법이론을 넘어선 법철학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는데, 검찰의 발표 이전에 이 점에 관하여 한국법철학의 성과에 기댈만한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법철학자들의 대응논리는 검찰의 발표에 자극받아 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93면)




26. 그 한 예는 혁명과 쿠데타, 반란을 법철학적으로 준별하고자 하는 심헌섭의 시도이다. 심헌섭은 법효력의 요소와 관련하여 이들에 공통되는 것은 실효성의 존재와 합법성의 결여에 있는 것 같다고 본다. 이들간에 결정적인 차이는 정당성의 측면이다. 혁명은 ‘밑으로부터’의 다중의 저항과 이데올로기의 변혁이 그 핵심요소로서 그야말로 그 ‘성공’은 일반승인설과 법이념설의 견지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쿠데타나 반란은 그렇지 못하다. 다만 쿠데타는 그것이 저항권에 호소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예컨대 나치 하에서의 1944.7.14의 쿠데타) 그 성공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5․16은 쿠데타임에 틀림없으나 저항권에 호소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 결론적으로 말해서 혁명, 쿠데타, 나아가 반란을 구별하지 않고 그 성공 여부만을 가려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좋은 혁명’과 ‘나쁜 혁명’을 분간 않는, 실로 우려해야 할 가치맹목적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93, 94면)




27. 즉 법철학자들은 외형상 불법의 모습을 띠는 집단행위에 대한 적극적 가치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혁명과 쿠데타, 반란은 서로 구별되어야 하며, 저항권의 차원으로 승격될 수 없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 역시 구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94면)




28. 항소심에서는 바로 이러한 적용의 문제에 당면하여,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자연법적 논의를 판결 속에 불러들였다. 항소심 판결은 합법성과 정당성을 일단 구별한다. 모든 법률은 헌법에 부합하면 합법성을 얻지만, 헌법의 위에는 ‘정의와 선, 그리고 평화의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존재하고 이를 자연법으로 부른다면 이러한 자연법에 부합하는 내용의 헌법과 법률만이 정당성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94면)




29. 항소심은 쿠데타의 법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실제로 쿠데타가 가진 세 가지 얼굴, 즉 합법성, 불법성, 그리고 범죄성의 측면에 주목한다. 먼저 쿠데타에 성공한 정부가 행하는 행우 중에서, ‘선량한 정부가 ...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하여 행하였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는 그러한 조치를 쿠데타 정권이 취하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범위 내에서 쿠데타 정권의 조치에 대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선량한 정부 혹은 통상의 정부가 했을 일을 쿠데타 정부가 행한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의 견지에서 수용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쿠데타를 처벌할 경우 헌정질서의 단절과 과거의 법적 행위를 무효화함으로써 초래할 혼란을 우려하여 불기소처분에 머무른 검찰의 견해에 대한 반론의 기준점을 제시한 셈이다. (95면)




30. 하지만 쿠데타 정권의 합법성과 쿠데타 자체의 범죄성의 측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쿠데타 정권에 대한 합법성의 부여 여부는 쿠데타 이후의 장래에 대하여 행하여지는 것 뿐이지 이 이전으로 소급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국민의 권리행사를 억압하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행하는 것 역시 불법한 것이며, 그 범위 내에서는 정권 자체의 불법성을 면할 수 없게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쿠데타 자체의 범죄성, 쿠데타 정부가 행한 각종의 권력남용의 불법성과 범죄성은 소위 쿠데타의 성공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95면)




31. 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법집행 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즉 법의 집행은 법집행자의 힘이 집행대상자의 힘을 제압할 정도로 우세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문제는 법의 효력이나 법이론 문제가 아니라 법집행의 문제인 것이고, 즉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입론을 통해 재판부는 성공한 내란의 불처벌이론을 확실하게 반박하고 있다. (95, 96면)




32. 제1심에서는 ... 시민들의 저항이 가진 법적 성격 및 그 시위진압과 국헌문란과의 인과관련서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았다. 그에 대하여 항소심판결은 시위진압 자체를 국헌문란으로 본다. (96면)




33. 광주시민들이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를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에 나선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며, 이는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국민의 헌법수호적 주권행사를 진압한 행위 자체가 내란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광주항쟁은 국민의 헌법수호를 위한 일종의 자연법적 저항권의 행사로 승화시킨 느낌을 받는다. (97면)




34. 그러나 항소심은 광주일원에서 모든 계엄군의 행위가 불법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에 근접하여 계엄군을 공격한 행위는 ‘헌법수호운동의 한계와 방어목적의 한계를 벗어난 불법한 공격’으로 본다. (98면)




35. 항소심의 또 다른 업적은 내란과 내란목적살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명료화하고, 그에 의거하여 제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황영시, 정호용의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99면)




36. 5․18 내란행위의 종료시점은 전체 범죄행위의 성격과 직접 관련됨과 함께, 공소시효의 기산점이 되므로 피고인들의 처벌 여부를 좌우하는 큰 쟁점이었다. 피고인들의 주장은 내란죄는 폭동행위와 함께 즉시 기수에 이르러 종료하는 즉시범이고, 따라서 범죄가 있다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15년)를 넘겼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검찰 측은 비상계엄의 선포와 유지행위를 모두 내란죄로 보고, 그러한 상황에서 개개의 폭동행위를 묶어 포괄적인 내란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검찰의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개개의 폭동행위의 관계를 접속범으로 이론화했다. ... 폭동행위가 최후로 종료하였다고 볼 수 있는 비상계엄 해제일(1981.1.24)을 내란죄의 종료시점으로 잡은 것이다. (99, 100면)




37. 그러나 항소심은 제1심의 논지를 한층 수정, 발전시키고 있는 특색을 보인다. ...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에 이르게 된 때에 국헌문란의 기수가 된다고 하는데 한 지방의 평온이라고 하는 것이 깨질 정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경과가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항소심은 내란죄를 즉시범이 아니라 계속범이라고 본다. (100면)




38. 항소심은 국민주권이 헌법의 기본원칙으로 되어있는 민주국가에서는, 내란집단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계속될 경우에는 결코 내란이 종료되지 않는다고 본다. 여기서 항소심은 최후의 헌법수호자(집단)으로서 국민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 항소심은 5․18을 바로 ‘국민의 저항’에 해당하고, 5공 내내 국민의 저항이 지속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1980.5.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시작된 이 사건의 국헌문란의 폭동은 1987.6.29.의 소위 6․29 선언시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할 것이고 ...”. (101면)




39. 항소심판결에서 헌법의 상위에 있는 자연법의 존재를 정면으로 인정한 점, 혁명과 쿠데타에 대한 구별기준을 제시한 점, 국민을 헌법제정권력자이자 헌법수호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한 점, 내란행위의 적법성을 가르는 기준으로 선량한 정부의 기준을 제시한 점, 내란죄를 계속범으로 파악하여 국민의 저항의 요소를 내란죄의 한 구성요소로 파악한 점 등은 자연법적 논의에 불을 당길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판단에 대한 논의는 한국 법철학의 성과를 일부 반영하면서 앞으로 한국 법철학과 헌법, 형법학의 중요한 쟁점을 제공한 의미도 있다. (101, 1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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