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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소설 ‘고향’에서 (4면)
2. “우리가 이 길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줘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 나라로 돌아가서 당신의 까미노(길)를 만들어라. 나는 나의 까미노를 만들 테니.” (6면)
3.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길을 만들어라.”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영국 여자 헤니가 던진 한마디가 이후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그녀의 말은 내게 이미 화두로 자리잡았다. (21면)
4. ‘떠날까 말까 고민되면 일단 떠나라. 살까 말까 고민되면 절대 사지 마라.’ (한비야) (35면)
5. 내가 구상하는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명 가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39면)
6. 도보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차량으로 휙휙 이동하면 눈만 즐겁지만, 같은 장소라도 걸어서 가면 오감이 충족된다. (71면)
7. 한비야는 제주를 두고 ‘만만한 아름다움’이라고 규정했다.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어서 위압감이나 두려움 대신 평화와 위안을 준다고. (120면)
8. 산등성이 어디에나 서 있는 늘푸른 나무들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주었다. 말없는 나무가 주는 위로가 수백 수천 마디 사람의 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들꽃은 거대담론에 매몰된 내게 작고 낮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일깨워주었다. 참 묘한 일이었다. 걷다 보면 그 모든 증오, 미움, 한탄, 연민이 다 부절없이 느껴졌다.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던 가난한 마음밭이 어느덧 넉넉해지는 듯했다. 흙탕물로 뿌옇던 마음의 호수는 앙금이 가라앉아 어느새 말갛게 되었다. (142, 143면)
9.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걸어서 다녀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음을. 두 발로 발도장을 찍은 곳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는 것을. (146면)
10. 걷기에 깊이 빠져들수록 평화롭게 느릿느릿,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면서 걷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오래오래, 길에 머물고 싶었다. (148면)
11.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법이니까. (153면)
12. 걷기는 백수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더니, 직장인에게는 최고의 조언자 노릇을 했다. 걷기의 힘은 무궁무진하고, 그 변주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길 위에 길을 묻는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158면)
13. 산책을 유난히도 즐기고 찬미했던 니체는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흐를 때에는 언제나 나의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루이-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고 갈파했다. 두 사람 모두 사유가 걸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체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158면)
14. 천재가 아닌 나는 그들처럼 창조적 아이디어나 예술적 영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의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는 분별력과 균형감각을 산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158면)
15. 일러두고 싶은 것은 필수 생존장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하라는 것. (168면)
16. 일정대로만 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그건 해치워야 하는 숙제일 뿐. (194면)
17. 국적도, 성도, 세대도, 직업도 달랐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긴 인생길에서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중이라는 것. ... 인생 전반전을 일중독자로 죽을 둥 살 둥 달리다가 기진맥진한 나는 후반전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답을 구하는 중이고,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순례자들이었다. (207면)
18. 분노는 옅어지고 그리움만 짙어진다. 미움은 사라지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218면)
19. 독일 언론인 출신 알렉산터 폰 쇤부르크는 저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에서 가난해지는 그 순간 맘만 먹으면 우아하게 사는 길이 열리지만, 부자들은 부의 천박한 속성 때문에라도 우아해지기 힘들다고 역설했다. (223면)
20.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수 없잔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길을 길이라고 생각하던 나. 우리나라엔 왜 아름다운 걷는 길이 없나. 불평만 일삼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찾아왔다. (236면)
21.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른다. (238면)
22.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허벅지의 통증도, 쓰라린 물집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피로도 씻은 듯 사라졌다. 완벽한 자유와 충만감이 온몸에 흘러넘쳤다. 오랫동안 소망해온 대로 걸어서 산티아고에 온 지금, 생애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240면)
23. 정말 이곳에 왔구나! 스스로 대견해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떠나는 자만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242면)
24. 고향 제주의 재발견. 산티아고 순례가 내게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246면)
25. 느리게 걷지 않고는 풍경에 집중할 수도, 생각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순례자는 ‘빠름’보다 ‘느림’을 추구한다. 얼마나 빨리 여정을 끝내는가보다는 이 길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존경이 바쳐진다. (252면)
26.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시계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다.” (페터 보르샤이트) (254면)
27. 단 몇 시간 걷기만으로 어떻게 그런 엄청난 변화가 가능하냐고 묻지 말라. 그게 가능한 것이 걷기의 힘이다. ‘두 발은 인간의 철학적 스승’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다. 걷다 보면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된다. 왼발과 오른발을 옮겨놓는 그 단순한 동작 사이에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를 푸른 실마리가 있다. 걷기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286, 287면)
28. 남자들은 걷기보다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평화보다는 전쟁, 공존보다는 경쟁에 익숙하도록 긴긴 세월 교육받고 길들여져왔다. ... 반면 여자들은 달리기보다는 걷기를 더 좋아한다. 업적지향이기보다는 관계지향인 여성의 속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된다. 길을 걸으면서 들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비에게도 말을 건넬 줄 안다. 파도와도 몸을 섞을 줄 알고 바람과도 희롱할 줄 안다. (298면)
29. 환경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오한숙희)는 강력히 권고한다. 하지못해 뒷산에라도 오르면서 말문을 트라고. (318면)
30. 열린 공간 올레에서는, 닫힌 마음이 열린다. 구겨진 마음은 반듯하게 다려진다. 자잘한 걱정거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려간다. 부부끼리, 연인끼리 대화하기엔 최적의 공간이요 최고의 세트다. (323면)
31. “서귀포는 극락이죠. 파라다이스 말예요! 육지에서 누렸던 소소한 기득권이나 자질구레한 인연을 접을 수 있다면요.” 소소한 기득권, 이런저런 모임! 인생에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산티아고에서 뻐저리게 느낀 터였다. (342, 343면)
32. ‘정치하는 사람이나 큰 부자는 안 나오고 예술가들만 나올 것’이라는 넋할망의 예언을 입증하듯, 서귀포에는 예술가들이 많다. ... 그 중에서도 변시지 화백은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올레 2코스 종점인 외돌개 가는 길 남성리 입구에 있는 ‘기당미술관’이 그가 세운 미술관이다. (369면)
33. 변시지의 그림에는 그가 평생 사랑해온 제주의 바람과 바다와 말, 돌담, 초가, 까마귀가 늘 등장한다. 또 하나, 대부분의 그림에는 반드시 손톱만한 크기의 인물이 등장한다. (372면)
34. 말은 인간의 감정에 앞서 그 지역의 땅, 하늘, 구름, 바다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제주어는 압축적이다. 마치 음악 같다. ‘겅, 정’은 표준어로 ‘그래서, 저래서’다. 여섯 글자가 두 글자로 확 줄어든다. ... 그런 제주어에 반한 위대한 학자가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이었다. (378면)
35. 그런 바람을 수굿하게 받아들이고, 바람이야말로 제주를 제주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사진작가 김영갑 덕분이었다. ... 그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보이는 풍경보다 더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말하지 않는 바람이 전하는 말은 두터운 책보다도 더 많은 사유를 담고 있었다. ... 두모악 갤러리(김영갑이 운영했던 사진전시관) ... (405면)
36. 제주에서 그의 심미안을 만족시킨 드문 존재가 제주수선화였다. 날씬한 녹색 줄기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한 하얀 꽃잎. 자태도 어여쁘지만 추사를 진정 기쁘게 한 건 품격있는 향이었다. (415면)
37. 제주를 제주인보다 더 사랑했던 육지사람, 제주의 바람을 사진에 가두어놓았던 사진잡가 김영갑은 마라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는 말했다. 그 섬에 가면 영혼이 씻기는 것 같다고. (4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