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 세계의 석학들, 위대한 자유주의자 이사야 벌린을 말하다
마크 릴라 외 엮음 / 동아시아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 이사야 벌린은
다원주의의 인정과 관용을 자유주의의 주된 가치들로 간주했으며, 다원주의 분석을 자신의 도덕 사상과 정치 사상에 남긴 주요 업적이라고 믿었다.
다원주의 분석은 이사야 벌린의 엄밀한 철학적 작업을 그와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사상사 및 현실 정치에 대한 탐구와 연결해 주는 끈이기도 했다.
이사야 벌린은 사상가들을 인간 행위 및 역사적 경험 그리고 정치적 가치들을 전부 포괄하는 통합 이론을 발전시키는 ‘고슴도치들’과, 언제 어디서든
다중성(multiplicity)을 발견하며 특정한 사상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꺼이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열광자들을 겁내는
‘여우들’로 나눈다. (9면)
2. ‘고슴도치’로
지칭되는 사유의 흐름은 프랑스와 독일의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성장한 것이고, ‘여우’로 지칭되는 사유의 흐름은 고슴도치보다 약간 덜 알려진
사유의 원천에서 자라 나온 것으로 이사야 벌린이 ‘반계몽’이라고 부르면서부터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9면)
3. 이사야 벌린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따라서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인간적 가치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가치에 대한 만족은 필연적으로
다른 가치의 희생, 즉 어떻게 해서도 되찾을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9, 10면)
4. 예컨대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이라는 이상이 각기 서로에 대한 희생을 전제로 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은 이 개념들에 본래부터
내재된 속성인가? 아니면 이 두 가지 이상 사이에서 이사야 벌린이 발견한 명백한 상충성은 단지 자유와 평등을 규명하고 실행하는 방법에 대한
오해나 불확실성에서 비롯한 것인가? (10면)
5. 에이브러햄 링컨은
“우리는 모두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릴지라도 그것이 모두에게 같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벌린이 몰두했던 필생의 작업은 자유 개념이 지닌 여러 가지 의미들을 끌어내고 해부하는 일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종종 정립되지 않은
관점들로부터 정립된 신념들로 접근해 가는 방법을 쓰곤 했습니다. (아일런 켈리, 15, 16면)
6. “자연은 꽃 일반이나
과일 일반, 즉 식물 일반이나 동물 일반을 만들어내지 않듯, 역사적 창조력 역시 민족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다양한 민족들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 문장은 메스트르나 헤르더가 쓴 것이 아닙니다. 모지스 헤스의 ‘로마와 예루살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마크 릴라,
62면)
7. 그때 받았던 느낌에
기대어 이사야 벌린이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로부터 차용한 유명한 고슴도치와 여우의 구분에 대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아르킬로코스(BC 680~BC645): 그리스의 시인이자 용병. “여우는 많은 계략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오직 좋은 것 한 가지만 안다.”는
말을 남겼다. (스티븐 루크스, 67면)
8. 이사야 벌린의 표현을
빌리면 고슴도치란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중심비전에 연결하는 사람들“입니다. ... 고슴도치에는 최소한 네 가지의 이종, 즉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실증주의자(positivist)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유형입니다. ... 둘째, 보편주의자(universalist) 고슴도치
또는 조금 나은 vygusd으로 (러브조이Lovejoy의 용어를 써) 균일론자(uniformitarian)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유형입니다.
... 셋째, 합리주의자(rationalist) 고슴도치로 지칭하고 싶은 유형이 있습니다. ... 넷째, 일원주의자 고슴도치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 벌린이 갖고 있는 선입견의 핵심에 도달합니다. (스티븐 루크스, 68-76면)
9. 이사야 벌린은 다른
철학자들 역시 자유, 평등, 정의를 비슷하게 생각했다고 귀띔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암묵적으로 내포된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원칙상
가치들 모두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조화 양식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독특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전이 성립하도록 만들어 주는 어떤 핵심 원칙을 밝혀낼 수 있다. 이 원칙이 발견되면 그것이 우리 삶을 다스릴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바로 이
생각이 자유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다른 가치들보다 “위대한 역사적 이상의 제단에서 개인을 희생시킨 일”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스티븐 루크스, 77면)
10. 이사야 벌린은
인간은 본성상 자신이 추구하는 명료한 목표들에 한계를 설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대담하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와 수는 무한하지
않다. ... 만약 실제로 목표들의 수가 무한하다면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고 단언했던 것입니다. (스티븐 루크스, 81면)
11. 이사야 벌린은
계몽의 합리주의(자신이 파악한 개념대로)에 대한 비판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근래의 몇몇 자유주의 사상가들, 특히 존 롤스의 사상을 과도한
이성주의라고 보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리학과 가치의 객관성 속에 이성의 자리가 있음을 확고히 믿었고, 윤리학에서 주관주의와
감동주의(emovivism), 또는 나중에 나온 실존주의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비공약성(incommensurability)을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밀어불인 현대의 후기 니체주의적, 탈근대적 여우들에게 아무런 공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이사야 벌린은 일종의 가치 다원주의자였지만, 자신의 견해를 상대주의와 구별하는 일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습니다.
(스티븐 루크스, 81, 82, 83면)
12.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벌린이 극단적 다원주의와 마찬가지로 극단적 특수주의 역시 나쁜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합니다. 이사야 벌린은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는 데 매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아일린 켈리, 89면)
13. 그런데 계몽이
제시하는 이러한 비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균열은 합리주의적 이해의 진보가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계몽의 과도한 낙관적
확신에서 생겨났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이러한 합리주의적 보편주의가 우리의 도덕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덕분에 그는 몇몇
궁극적 가치들 사이에는 비공약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계몽의 주류와 결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윤리적 상대주의라고
불리어 온 이사야 벌린의 사상, 곧 도덕적 판단은 보편적 교훈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의 특수성에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계몽의 주류 사상은
결코 조화될 수 없었습니다. (아일린 켈리, 89면)
14. 그럼에도 저는 지금
이사야 벌린이 엄중하게 비판했던 전체론적 이상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01면)
15. 고슴도치들이 반드시
전체주의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토머스 네이글이 지적했듯이, 가치 일원주의가 전제주의의 깃발로 복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반대로 가치다원주의가 이기주의나 무관심 어느 하나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양쪽
모두 위험합니다. 그러나 고슴도치 쪽이 여우 쪽보다 더 위험한지 아닌지는 시대와 장소에 달라 달라집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이사야 벌린이 그
유명한 강의 노트(자유의 두 가지 개념)를 작성했을 때는 스탈린주의가 날뛰었고, 파시즘의 송장에서는 여전히 고약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문명사회가 고습도치에게 더 크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역시 그럴까요? 답은 그리 단순치 않아 보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여우가 더 위협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두 가지 위험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로널드 드워킨, 102-103면)
16. 그처럼 중요한
가치들간의 갈등이 실제로도 중요한 상실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이사야 벌린의 핵심 사상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06면)
17.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사야 벌린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충돌을 가치 충돌의 한 가지 패러다임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앞에서 암시했다시피,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 가장
고민스럽고 위험하게 생각되면서 가장 잘 알려진 가치 충돌의 사례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1면)
18. 우리는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타인들의 도덕적 권리들을 존중하는 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합니다. ... 하지만 그렇게 이해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거나 아무 권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자유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로널드 드워킨,
112면)
19. 여러분은 제가
자유를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이사야 벌린의 생각과 배치되는 질문을 끌어들였으며, 그 결과 가치의 충돌을 출발점부터 아예 제외해 버렸다는 이유로 제
생각에 반대할지도 모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2면)
20. 우리는 부유층에게
세금을 매겨 빈곤층을 돕는 것이 잘못인지 알기 위해 저는 자유라는 가치(우리가 스스로 헌신할 수 있는 가치)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을 규명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그것을 역사적 문제보다는, 적어도 주된 골자에서, 도덕적 문제로 다루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14면)
21. 가치의 개념들을 좀
더 명확히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추상적 형태로 규명했던 가치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더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15면)
22. 자유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 왜 나쁜지를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해석 이론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7면)
23. 니체는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아무런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두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들에는 매우 의미 있는 역사가 있으며, 그 역사로 인해 그들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 그는 역사를
무시했던 철학 형식에서 역사를 무시하지 않는 철학 형식으로 전환했습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1-122면)
24. 이런 사회에서
잠재적 갈등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주어진 가치의 지형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5면)
25. 하지만 저(버나드
윌리암스)는 그(로널드 드워킨)의 논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요컨대 자유와 정의가 함께 연루된 경우에 분명히 갈등과 유감의 여지가 나타나는
한편, 자유와 정의는 올바르게 정의된다면 실제로 충돌할 수 없다는 것, 명백한 갈등이라도 올바르게 해소된다면 아무도 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7면)
26. 로널드 드워킨의
주장은 가치 다원주의에 대한 아주 예리하고 정교한 비판을 대표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저는 그가 이 비판을 인정할 것으로 봅니다) 그
비판의 근거는 로널드 드워킨 자신이 헌법의 결정 양식에 따라 이익만이 아니라 원칙이 관여하는 정치 결정의 양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8면)
27. 로널드 드워킨이
말한 대로, 이사야 벌린의 다원주의가 특별하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상대주의적 다원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적 다원주의였기 때문입니다.
(135면)
28. 이사야 벌린의 가장
널리 알려진 철학적 논고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의 구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가치(goods)의 다원성에 관심을 쏠려 있다는 것입니다.
(찰스 테일러, 143면)
29. 가치다원주의는
오히려 미덕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즉 다른 것을 위해 특정한 것을 포기하거나 둘 모두를 어느
정도 보류하는 어려운 선택을 내리도록 요구하는 비양립성이 빈번히, 어쩌면 항상 존재한다는 견해입니다. (찰스 테일러,
144면)
30.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도덕 이론들은, 예컨대 적어도 영미권에서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는 이렇게 도덕 영역을 사전에 수축시키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모든 의무 행위가 (비록 본질적으로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단 하나의 원칙에서 파생될 수 있는 어떤 체계입니다. 이 이론의 매력은
부분적으로 합리주의에 있습니다. 도덕성을 명백하고 모호하지 않은 추론 위에 정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가치의 충돌을 피하는
우연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관해 우리는 오직 한가지 의무만을 지는데, 그것은 계산이나 추론이 규명하는 의무이며, 이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딜레마들은 발붙일 수 없게 됩니다. (찰스 테일러, 147면)
31. 제가 보기에 가치
다원주의는 오늘날 일어나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을 회피하는 구실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널드 드워킨,
155면)
32. 가치들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