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 루소
J.루소 지음 / 집문당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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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이야말로 내 소원의 모든 것,

자그마한 땅, 집 앞엔 화원과 맑은 샘물,

그리고 또 하나 작은 숲

여기에 나는,

"신들은 내 소원을 잘도 이루셨도다."

라고 덧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좋다. 나에게는 이 이상은 필요 없다. 그리고 내 소유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것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173면)

2. 나는 이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을 때, 비로소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일단 포기하였던 일에 대하여 새로운 가치를 인정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고귀한 정신문제에 기울이게 되었다. 평소에 소홀하게 여겼던 종교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176, 177면)

3. 사실은 저자 자신들도 대체로 자기 저서에 나오는 모든 지식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181면)

4. 사실 나는 이 때 이미 학문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182면)

5. 왜냐하면 참다운 행복이란 많은 사실을 모으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되는 일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182면)

6. 나는 분명히 연구에 대한 능력은 타고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웬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방법의 덕분이었다. 그것은 즉, 한 저자의 책을 읽을 때는 전적으로 그의 사상을 지지하여, 여기에 나 또는 다른 저자의 사상을 섞거나, 또는 논쟁을 벌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법칙이었다. ... 나는 오로지 다른 사람의 사상을 연구하였을 뿐 아니라 나의 고찰이나 추론을 달지 않고 2년간을 끌고 갔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도 나 스스로가 고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되었다. (184면)

7. 이 때는 대개 역사나 지리 책을 선택하였다. 이 두 학과는 그다지 정신적인 긴장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186면)

8. 그 돈을 엄마 손에 넘겨주는 순간의 기쁨 그것은, 내가 그 돈을 받을때의 기쁨보다도 천 갑절이나 더하였다. (189면)

9. 의사나 철학자들은 신학자와는 정반대로 그들이 설명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진리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판단을 가능의 척도로 삼고 있다. (202면)

10. 나는 쾌락보다는 의무를 존중할 줄 안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마음에 만족을 느꼈다. 이것이 내가 연구에서 터득한 최초의 참다운 선물이었다. 내게 반성과 비교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204면)

11. 정든 서재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 나는 문단에 진출하여 이름을 날리고 또다시 행복을 이룩할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내게는 이만한 교양과 소질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 그렇다고 음악 자체를 아주 단념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음악의 이론을 깊이 연구하여 음악에 대한 전문학자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218면)

12. 이리하여 1742년 8월 22일, 나는 미리 작성해 두었던 논문을 아카데미에서 낭독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 내 논문이 그들의 갈채를 받고 모두들 찬사를 보내 주는 바람에, 나는 한편 기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으면서도, 너무 뜻밖이라 정신이 얼떨떨하였다. ... 이분들과 토론하는 동안에, 내가 의외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학자들이란 다른 사람보다 편견이 적기도 하지만, 한편 그들은 자기의 편을 몹시 고집한다는 점이었다. (227면)

13. 몽테규 씨는 베니스 공화국의 환심을 사려는 듯, 내가 항의하는데도 굳이 모든 공문서에 하나하나 베니스 공화국은 중립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나에게 하도록 했다. 이 가련한 인간이 그것을 원했으므로 나는 할 수 없이 그의 대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34면)

14. 이듬해 1750년, 현상 논문 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디종에서 당선되었음을 알았다. 이 통지는 나에게 이 논문의 모든 사상을 재인식하게 하고, 그 사상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국과 플루탁이 나의 유년 시대에 품게 한 용기와 도의의 싹을 나의 마음 속에 싹트게 하였다. (258면)

15. 나는 내 손으로 어린아이들을 양육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고아원에 위탁하여, 부랑배나 사기꾼으로 만들기보다는 노동자나 농민이 되도록 하는 편이 공민으로서의 또는 어버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그리하여 세째 번 아이도 그러한 이유로 해서 두 아이와 마찬가지로 고아원으로 보냈다. 그 뒤에 생긴 두 아이도 역시 그렇게 했다. 이리하여 나는 전부 다섯 아이를 가졌던 것이다. (259면)

16. 돈을 벌려고 드는 붓끝테서는 힘차고 위대한 작품이 나올 리가 없다. 필요와 욕망은 훌륭하기보다 빨리 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은 나로 하여금 음모에는 빠지지 않더라도 대중에게 영합하는 저속한 작품을 쓰게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 하면, 탁월한 작가가 될 수 있는 나는 끼껏해야 3류 작가밖에 안 됐을 것이니, 이것은 안 될 말이다. 살기 위해 고상한 사색을 한다 함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위대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려면 먼저 성공을 도외시하여야 한다. 나는 오로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말했다는 확신 만을 가지고 저술에 임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나의 저서가 호평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저서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손실일 뿐이다. (272면)

17. 나는 모든 것이 근본에 있어서는 모두 정치와 관련성이 있는 것임을 간파하였다. 그리고 국민은 그 국가의 정체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최선의 정체는 어떤 것이냐? 이 문제를 요약하면 "가장 도덕적이고, 경험이 많고 총명한 국민, 즉 최선의 국민을 양성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정체는 어떤 것이냐?"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시 말하면 결국 "어떤 정부가 법률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지속할 것이냐?"하는 문제와 비슷한 것이다. 이 저술을 시작한 것은 5, 6년 전부터였지만 아직도 별 진전이 없었다. 이런 성질의 저술에는 명상과 한가한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했다. (273, 274면)

18. 이런 모든 계획은 산책할 때에 좋은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산책할 때만 사색할 수 있으므로 걸음을 멈추면 사색의 두뇌작용도 정지한다. 두뇌는 발과 더불어서만 작용하는 것이다. (275면)

19. 참회록은 일종의 자서전으로 제1부와 제2부로 나뉘어 있으며, 제1부는 분망한 청춘의 방랑생활을 그려 나갔고, 제2부는 박해와 추방의 수난사를 침통하게 묘사하고 있다.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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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 세계의 석학들, 위대한 자유주의자 이사야 벌린을 말하다
마크 릴라 외 엮음 / 동아시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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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사야 벌린은 다원주의의 인정과 관용을 자유주의의 주된 가치들로 간주했으며, 다원주의 분석을 자신의 도덕 사상과 정치 사상에 남긴 주요 업적이라고 믿었다. 다원주의 분석은 이사야 벌린의 엄밀한 철학적 작업을 그와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사상사 및 현실 정치에 대한 탐구와 연결해 주는 끈이기도 했다. 이사야 벌린은 사상가들을 인간 행위 및 역사적 경험 그리고 정치적 가치들을 전부 포괄하는 통합 이론을 발전시키는 ‘고슴도치들’과, 언제 어디서든 다중성(multiplicity)을 발견하며 특정한 사상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꺼이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열광자들을 겁내는 ‘여우들’로 나눈다. (9면)

2. ‘고슴도치’로 지칭되는 사유의 흐름은 프랑스와 독일의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성장한 것이고, ‘여우’로 지칭되는 사유의 흐름은 고슴도치보다 약간 덜 알려진 사유의 원천에서 자라 나온 것으로 이사야 벌린이 ‘반계몽’이라고 부르면서부터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9면)

3. 이사야 벌린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따라서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인간적 가치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가치에 대한 만족은 필연적으로 다른 가치의 희생, 즉 어떻게 해서도 되찾을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9, 10면)

4. 예컨대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이라는 이상이 각기 서로에 대한 희생을 전제로 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은 이 개념들에 본래부터 내재된 속성인가? 아니면 이 두 가지 이상 사이에서 이사야 벌린이 발견한 명백한 상충성은 단지 자유와 평등을 규명하고 실행하는 방법에 대한 오해나 불확실성에서 비롯한 것인가? (10면)

5. 에이브러햄 링컨은 “우리는 모두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릴지라도 그것이 모두에게 같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벌린이 몰두했던 필생의 작업은 자유 개념이 지닌 여러 가지 의미들을 끌어내고 해부하는 일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종종 정립되지 않은 관점들로부터 정립된 신념들로 접근해 가는 방법을 쓰곤 했습니다. (아일런 켈리, 15, 16면)

6. “자연은 꽃 일반이나 과일 일반, 즉 식물 일반이나 동물 일반을 만들어내지 않듯, 역사적 창조력 역시 민족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다양한 민족들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 문장은 메스트르나 헤르더가 쓴 것이 아닙니다. 모지스 헤스의 ‘로마와 예루살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마크 릴라, 62면)

7. 그때 받았던 느낌에 기대어 이사야 벌린이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로부터 차용한 유명한 고슴도치와 여우의 구분에 대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아르킬로코스(BC 680~BC645): 그리스의 시인이자 용병. “여우는 많은 계략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오직 좋은 것 한 가지만 안다.”는 말을 남겼다. (스티븐 루크스, 67면)

8. 이사야 벌린의 표현을 빌리면 고슴도치란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중심비전에 연결하는 사람들“입니다. ... 고슴도치에는 최소한 네 가지의 이종, 즉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실증주의자(positivist)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유형입니다. ... 둘째, 보편주의자(universalist) 고슴도치 또는 조금 나은 vygusd으로 (러브조이Lovejoy의 용어를 써) 균일론자(uniformitarian)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유형입니다. ... 셋째, 합리주의자(rationalist) 고슴도치로 지칭하고 싶은 유형이 있습니다. ... 넷째, 일원주의자 고슴도치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 벌린이 갖고 있는 선입견의 핵심에 도달합니다. (스티븐 루크스, 68-76면)

9. 이사야 벌린은 다른 철학자들 역시 자유, 평등, 정의를 비슷하게 생각했다고 귀띔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암묵적으로 내포된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원칙상 가치들 모두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조화 양식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독특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전이 성립하도록 만들어 주는 어떤 핵심 원칙을 밝혀낼 수 있다. 이 원칙이 발견되면 그것이 우리 삶을 다스릴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바로 이 생각이 자유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다른 가치들보다 “위대한 역사적 이상의 제단에서 개인을 희생시킨 일”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스티븐 루크스, 77면)

10. 이사야 벌린은 인간은 본성상 자신이 추구하는 명료한 목표들에 한계를 설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대담하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와 수는 무한하지 않다. ... 만약 실제로 목표들의 수가 무한하다면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고 단언했던 것입니다. (스티븐 루크스, 81면)

11. 이사야 벌린은 계몽의 합리주의(자신이 파악한 개념대로)에 대한 비판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근래의 몇몇 자유주의 사상가들, 특히 존 롤스의 사상을 과도한 이성주의라고 보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리학과 가치의 객관성 속에 이성의 자리가 있음을 확고히 믿었고, 윤리학에서 주관주의와 감동주의(emovivism), 또는 나중에 나온 실존주의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비공약성(incommensurability)을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밀어불인 현대의 후기 니체주의적, 탈근대적 여우들에게 아무런 공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이사야 벌린은 일종의 가치 다원주의자였지만, 자신의 견해를 상대주의와 구별하는 일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습니다. (스티븐 루크스, 81, 82, 83면)

12.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벌린이 극단적 다원주의와 마찬가지로 극단적 특수주의 역시 나쁜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합니다. 이사야 벌린은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는 데 매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아일린 켈리, 89면)

13. 그런데 계몽이 제시하는 이러한 비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균열은 합리주의적 이해의 진보가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계몽의 과도한 낙관적 확신에서 생겨났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이러한 합리주의적 보편주의가 우리의 도덕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덕분에 그는 몇몇 궁극적 가치들 사이에는 비공약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계몽의 주류와 결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윤리적 상대주의라고 불리어 온 이사야 벌린의 사상, 곧 도덕적 판단은 보편적 교훈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의 특수성에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계몽의 주류 사상은 결코 조화될 수 없었습니다. (아일린 켈리, 89면)

14. 그럼에도 저는 지금 이사야 벌린이 엄중하게 비판했던 전체론적 이상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01면)

15. 고슴도치들이 반드시 전체주의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토머스 네이글이 지적했듯이, 가치 일원주의가 전제주의의 깃발로 복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반대로 가치다원주의가 이기주의나 무관심 어느 하나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양쪽 모두 위험합니다. 그러나 고슴도치 쪽이 여우 쪽보다 더 위험한지 아닌지는 시대와 장소에 달라 달라집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이사야 벌린이 그 유명한 강의 노트(자유의 두 가지 개념)를 작성했을 때는 스탈린주의가 날뛰었고, 파시즘의 송장에서는 여전히 고약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문명사회가 고습도치에게 더 크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역시 그럴까요? 답은 그리 단순치 않아 보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여우가 더 위협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두 가지 위험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로널드 드워킨, 102-103면)

16. 그처럼 중요한 가치들간의 갈등이 실제로도 중요한 상실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이사야 벌린의 핵심 사상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06면)

17.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사야 벌린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충돌을 가치 충돌의 한 가지 패러다임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앞에서 암시했다시피,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 가장 고민스럽고 위험하게 생각되면서 가장 잘 알려진 가치 충돌의 사례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1면)

18. 우리는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타인들의 도덕적 권리들을 존중하는 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합니다. ... 하지만 그렇게 이해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거나 아무 권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자유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로널드 드워킨, 112면)

19. 여러분은 제가 자유를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이사야 벌린의 생각과 배치되는 질문을 끌어들였으며, 그 결과 가치의 충돌을 출발점부터 아예 제외해 버렸다는 이유로 제 생각에 반대할지도 모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2면)

20. 우리는 부유층에게 세금을 매겨 빈곤층을 돕는 것이 잘못인지 알기 위해 저는 자유라는 가치(우리가 스스로 헌신할 수 있는 가치)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을 규명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그것을 역사적 문제보다는, 적어도 주된 골자에서, 도덕적 문제로 다루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14면)

21. 가치의 개념들을 좀 더 명확히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추상적 형태로 규명했던 가치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더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115면)

22. 자유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 왜 나쁜지를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해석 이론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17면)

23. 니체는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아무런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두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들에는 매우 의미 있는 역사가 있으며, 그 역사로 인해 그들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 그는 역사를 무시했던 철학 형식에서 역사를 무시하지 않는 철학 형식으로 전환했습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1-122면)

24. 이런 사회에서 잠재적 갈등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주어진 가치의 지형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5면)

25. 하지만 저(버나드 윌리암스)는 그(로널드 드워킨)의 논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요컨대 자유와 정의가 함께 연루된 경우에 분명히 갈등과 유감의 여지가 나타나는 한편, 자유와 정의는 올바르게 정의된다면 실제로 충돌할 수 없다는 것, 명백한 갈등이라도 올바르게 해소된다면 아무도 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7면)

26. 로널드 드워킨의 주장은 가치 다원주의에 대한 아주 예리하고 정교한 비판을 대표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저는 그가 이 비판을 인정할 것으로 봅니다) 그 비판의 근거는 로널드 드워킨 자신이 헌법의 결정 양식에 따라 이익만이 아니라 원칙이 관여하는 정치 결정의 양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버나드 윌리암스, 128면)

27. 로널드 드워킨이 말한 대로, 이사야 벌린의 다원주의가 특별하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상대주의적 다원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적 다원주의였기 때문입니다. (135면)

28. 이사야 벌린의 가장 널리 알려진 철학적 논고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의 구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가치(goods)의 다원성에 관심을 쏠려 있다는 것입니다. (찰스 테일러, 143면)

29. 가치다원주의는 오히려 미덕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즉 다른 것을 위해 특정한 것을 포기하거나 둘 모두를 어느 정도 보류하는 어려운 선택을 내리도록 요구하는 비양립성이 빈번히, 어쩌면 항상 존재한다는 견해입니다. (찰스 테일러, 144면)

30.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도덕 이론들은, 예컨대 적어도 영미권에서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는 이렇게 도덕 영역을 사전에 수축시키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모든 의무 행위가 (비록 본질적으로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단 하나의 원칙에서 파생될 수 있는 어떤 체계입니다. 이 이론의 매력은 부분적으로 합리주의에 있습니다. 도덕성을 명백하고 모호하지 않은 추론 위에 정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가치의 충돌을 피하는 우연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관해 우리는 오직 한가지 의무만을 지는데, 그것은 계산이나 추론이 규명하는 의무이며, 이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딜레마들은 발붙일 수 없게 됩니다. (찰스 테일러, 147면)

31. 제가 보기에 가치 다원주의는 오늘날 일어나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을 회피하는 구실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널드 드워킨, 155면)

32. 가치들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로널드 드워킨, 1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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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법 이론
다나카 시게아키 지음, 박병식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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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보다도 우선 법 기능의 확대 및 다양화가 새로운 법이론적 과제를 잇따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마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4면)

2. 법학을 배우는 경우에 중요한 것은 단지 법률조문, 학설, 판례 등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논리를 세워서 생각하는 힘, 즉 legal mind 혹은 법적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33면)

3. 뿐만 아니라, 법학을 전공한 사람은 자짓 기존의 법칙과 선례에 집착하여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 쉬우며 융통성이 없고 임기웅변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거나, 무슨 일이든 곧 권리의무나 책임의 유무라는 형태로 논의하고 처리하려 하여 오히려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34면)

4. 또한 예전부터 법학과 법적 사고의 교의학적 성격에 대한 비난과 경멸도 뿌리깊게 존재해 왔으며, 최근에는 과학적 사고방식과 연구 성과를 도입하여 법학을 과학화시키지 않으면 현대사회의 다양한 법적 요청에 부응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법적 사고는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이용되고 있는 다양한 조직관리 및 문제해결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 고유영역까지도 새롭게 음미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34면)

5. 첫째로, 법적 사고는 개개의 구체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복잡한 사실관계를 분석하여 법적 해결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법적 사고의 출발점이자 적용의 전제조건이다. (35면)

6. ... 법적 관점에서 추상화와 단순화가 행해진다. 이처럼 일정한 사실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도덕적, 사회경제적 요인 등을 법적 사고의 시야 밖으로 축출시키고 법적 세계의 자립성을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법적 사고를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법적 사고의 일면성, 부분성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35면)

7. 규범과 사실이 교차하는 지평에서 대전제와 소전제가 상호작용적, 선택적으로 확정되어 가는 복잡한 종합판단을 전체적으로 일종의 포섭판단으로 파악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36면)

8. ... 관리형 법에 대항하여 자치형 법의 지배영역을 확대하고자 .... (39면)

9. 법학 및 법적 사고의 핵심은 juris prudentia(법의 현려: 법률학을 의미하는 라틴어)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바와 같이 법에 관한 단순한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정의실현을 위한 지혜(wisdom)에 있다. (45, 4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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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마틴 골딩 지음, 장영민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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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철학은 두 종류의 문제를 다룬다. 규범적(혹은 정당화적 justificatory)인 문제와 분석적(혹은 개념적 conceptual)인 문제가 그것이다. (14면)

2. 법철학 문제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문제는 아마도 법개념의 분석이라는 문제일 것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한 사회에 법체계(legal system)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5면)

3. 법철학이라는 것이 법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그리고 물론 법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도) 관심을 갖는다면, 법철학은 법의 허용가능한 범위, 즉 법의 한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의 소관사항이 아닌' 영역이 존재하는가? (17면)

4. 소위 심신의 개념은 민/형사상의 책임의 존재와 그 정도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행위라든가 부작위, 동기, 고의 등의 개념 분석은 근년에 와서 새로이 엄밀하게 추구되고 있다. (19면)

5.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제이며 이에 대하여 많은 대답들이 주어져 왔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동일한 물음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이 아니라, 법의 본질에 관한 상이한 물음에 대한 대답들이다. (21면)

6. 본질주의적 접근방법과 약정주의적 접근방법 사이의 불일치 ... (25면)

7. 일찍이 법실증주의가 나타난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학설휘찬에 들어있는 고전적인 명제인 '국왕의 뜻에 따른 것이 법력을 가진다'는 명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을 좀더 현대적인 말로 바꾸어 보면, 입법기관에 의해서 제정된 것은 무엇이든 그 사회 속에서 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명제를 현대 법실증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승인한다. 그리고 이들은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법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라는 19세기 영국의 학자 존 오스틴(John Austin)의 말에도 동의한다. 이에 대해서 자연법론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명제를 모두 거부한다. 이들은, 입법이란 그 활동의 소산으로 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도덕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목적적 활동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이들은 법의 존재 문제는 그 법이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문제, 즉 법의 도덕성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견해를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이 자연법론자들은 도덕적, 규범적 입장을 취하거나 이에 가까운 입장에 선다. (54면)

8. 현대 법철학에 있어서 가장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법의 강제를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에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은 '도덕의 강제'(enforcement of morals) 논쟁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로 유명한 문제이다. 이 논쟁은 영국의 판사인 패트릭 데블린(Patrick Devlin) 경의 동명의 강연에서 발단되었다. (이 강연은 데블린의 저서 The Enforcement of Morals(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5)에 "Morals and the Criminal Law"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앞 장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은 개념의 문제 내지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규범적인 문제이다. (105면)

9. 이것은 권위와 자유라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 이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법의 한계에 대한 고찰에 도달하게 된다. (106면)

10. 1957년에 발표된 윌펜던위원회의 보고서(The Wolfenden Report: Report of the Committee on Homosexual Offenses and Prostitution)가 마땅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데블린 경의 강연은 바로 이 보고서에 대한 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다). 이 위원회는 '동성애죄 및 매춘'에 관한 영국법제를 연구하여 그 개정을 위한 권고안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었다. (109면)

11. "도덕상의 죄의 영역과 법적 의미의 범죄의 영역을 - 법기관의 행동을 통하여 - 같게 하려는 시도가 사회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기도되지 않는 한, 간단히 말해서 법의 소관사항이 아닌 도덕 내지 부도덕의 영역은 남아 있어야 한다. 부도덕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법의 의무가 아니다. ... 법의 의무는 공공질서나 공서양속을 침해하거나 일반 시민을 범죄적인 것 또는 유해한 것에 노출시키는 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109면)

12. 그러나 곧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신이 밀의 '자유론'(On Liberty)에서 피력한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밀에게 있어서는 위에서 말한 구별 중 세 번째 것이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하트가 밀의 '유명한 문장'이라고 칭한 구절에 나타나 있다(이 문장은 하트가 그의 Law, Liberty and Morality, Stand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3, p.4)에 지적하고 있는 문장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그 사용되는 수단이 법적 처벌이라는 형태의 물리적 힘이거나 여론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강제이거나 간에 강제와 통제의 방법으로 사회가 개인을 다스리는 것을 절대적으로 좌우할 하나의 단순한 원리를 주장하려는 데 있다. 그 원리란 인간이 그들 동료 중 어떤 사람의 행동의 자유에 대하여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자기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어느 일원에 대해서이든 그의 의사에 반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해악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뿐인 것이다. 그 사람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정당화의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 사람의 행위 가운데에서 그가 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부분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는 부분뿐이다. 그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의 독립성은 가히 절대적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그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그는 주권자인 것이다." (John Stuart Mill, On Liberty, 초판 1859, p.13).

13. 밀은 '타인에 대한 해악'이라는 원칙에 대한 어떤 예외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즉 어린이, 정신박약자, 지진자가 그 예이다. 여기에서 그는 보호주의(paternalism)를 인정한다. 즉 이들은 타인에 대하여 해악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숙한 성인에 있어서는 그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강제의 충분한 보증이 되지 못한다." 밀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각 개인은 단연코 자신의 이익의 최선의 판단자라는 것이다. (하트와 같은 최근의 논자들은 이 점에서 밀보다는 덜 낙관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보다 높은 정도의 보호주의를 인정하게 된다.) (111, 112면)

14. 밀은 이 난점을 알고 있으며 그는 결국 이 간단한 원칙을 포기하고 만다. 따라서 그의 논문 제4장에서 밀은 많은 사람들이 이 원칙이 입각하고 있는 구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인정하고 "개인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해악은 동정과 이해 관계 때문에 그 개인과 가까운 관계에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 전체 사회에도 약간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On Liberty, p.118)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은 개인이 '공공에 대하여 지고 있는 특정한 의무'나 '타인에 대하여 갖는 명백한 의무'를 위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와 같은 해악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며, 인간의 자유라는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사회가 부담해야 할 불편(inconvenience)이라고 고집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밀 자신의 원칙을 붕괴시키는 셈이 된다. (115면)

15. 최근의 논자인 허버트 패커(Herbert Packer) 교수는 그의 중요한 책 '형사제재의 한계(The Limits of the Criminal Sanction)'에서 '타인에 대한 해악'이라는 밀의 공식은 해결해 주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의 행위가 범죄로서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순전히 또는 일차적으로 그것이 부도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명백히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일 문제의 행위를 형법이 억제하지 않는다면 어떤 나쁜 결과가 초래될 우려가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117면)

16. 또 헹킨은 나아가 도덕의 입법화는 종교의 유물이며 헌법은 이러한 종교의 창설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18면)

17. 근자의 많은 논자들은 밀을 넘어서서 어떤 경우에는 그 '자신'을 위하여 성인들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트는 이것을 법적 보호주의(legal paternalism)라고 부르면서 이러한 입장을 옹호한다. 그는 법적 도덕주의(legal moralism), 즉 법은 행위가 '그 자체' 부도덕하기 때문에 금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부정한다. 보호주의를 그가 지지하는 근거는 개인이 항상 자신의 이익에 대한 최선의 판단자는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가 마약판매를 제한하는 법을 지지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근거에 입각한 것이지, 마약 사용이 갖는 어떤 부도덕의 혐의에 입각한 것은 아니다. 오토바이 주행자가 헬멧을 써야 한다는 요구도 아마 역시 보호주의적 이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또 하트는 말하기를 "살인이나 폭행의 위법성조각(정당화)사유에서 피해자의 승낙을 배제하는 법은 그 자체 개인을 보호하도록 마련된 보호주의(paternalism)의 한 단편이라고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119, 120면)

18. 하트는 보호주의의 범위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다. (1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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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1. 분석의 힘은 커졌는지 모르지만 통찰의 힘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분석과잉, 통찰결핍'인 셈이다. ... 그런데 그 통찰의 힘을 기르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 즉 '후마니타스(humanitas)'이다. (7면)

2. 혹자는 그것을 인문학의 위기 그 자체이기보다는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 혹은 '대학 인문학의 위기'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대학과 교수사회가 통찰의 힘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진정한 통찰의 힘은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의 대학과 교수사회는 지난 7, 80년대보다는 현격하게 통찰의 힘을 읽은 까닭에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으로부터 유리된 채 늘어져 있기 때문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9면)

3.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다소 판에 박힌 질문에 20대 초반의 여죄수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각과 정신의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일지 모르지만 정말 긴요한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11, 12면)

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전에 없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얼 쇼리스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의 목표는 단 하나, '삶에 대해 성찰하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12면)

5. 문, 사, 철은 세간에서 흔히 오해하듯이 결코 박제화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의 운동이다. (14면)

6.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 ... 사실 강건성세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3대 133년간의 세를 칭하는 말이다. (21, 22면)

7. 아울러 아버지 순치제는 만주어 밖에 몰랐던 반면, 강희제는 스스로 한어, 즉 중국어를 배움으로써 한족을 감싸안기 위해 노력했다. (22면)

8. 강희제의 믿기지 않는 리더십의 원천에는 무엇보다 인재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천리마는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었지만 천리마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백락은 언제나 드물다"는 말이 있다. ... 설사 인재를 알아본다 해도 그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면 먼저 그 마음을 얻어야 한다. (23면)

9. 하지만 강희제는 청 왕조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한족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을 씻고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24면)

10. "수천 냥짜리 모피 외투가 갖고 싶다고 조르지 말라. 그런 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유행은 변한다." (강희제) (31면)

11. "짐의 생일에 그대들이 이런 선물을 올리면 지방관리들도 따라서 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받을 수 없다." (강희제) (33면)

12. 모름지기 제왕은 과단성을 가지되 신중해야 한다. ...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은 한결같이 '홀로 있을 때조차 신중하라'는 신독을 강조했다. (35, 36면)

13. 덕승재 (36면)

14. 편안할 때 위기에 대비하고, 준비한 후에 결단은 과감하게 한다. 또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고, 덕과 재능을 함께 고려하여 인재를 발굴해내되 발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써야 하며, 믿었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목표와 수단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며, 무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은 나라를 흥성케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38면)

15. 그런데 이처럼 특별한 중국의 황제였던 강희제의 좌우명은 '국궁진력'이었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힌다는 뜻이다. (39면)

16.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게 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만대에 우환을 남기게 된다." (40면)

17. 강희제는 어느덧 자신의 라이벌이 되어버린 황태자를 2번이나 폐위했다가 다시 세우는 와중에서 아들도, 신하도 잃었다. ... 옹정제는 ... 태자밀건법을 제도화했다. (43면)

18. 그(건륭제)는 10년 동안 361명의 대학자들을 동원해 자그마치 3만 6000여 권의 학술서를 편찬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책들은 전 권을 4질로 만들어 4곳에 보관했다 하여 사고전서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박제가, 홍대용, 박지원 같은 학자들이 이를 접한 덕에 당시의 조선도 실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49면)

19. 특히 "편안할 때 오히려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는 그(건륭제)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새겨놓은 경구가 되었다. (51면)

20. 이는 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난 색다른 차이가 쉼 없이 지속될 때 나타난다. 즉 창의성이란 끊임없는 차이의 부각과 그 차이의 지속인 셈이다. 창의성의 대명사가 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쇠붙이에 그치지 말고 면도날이 돼라"고 말한 바 있다. (57, 58면)

21. 즉 어제가 다르고, 오늘과 다르고, 내일도 달라져야 한다. 그 끊임없는 차이의 지속이 결국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만들고, 종국에는 전혀 새로운 질과 차원을 향한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 (58면)

22. 또한,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낯설게 해야 한다. 익숙한 것일수록 안티-크리에티브(anti-creative)한 것이다. 즉 밥을 먹을 때도 그 나물에 그 반찬을 피해 가고, 매일 보는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낯설게 하고 곤혹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낯섦과 곤혹스러움이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고, 다시 그 속에서 솔루션을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솔루션이 창의성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남을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65억 인구 중에서 나와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듯 자기만의 독특한 '온리 원(only one)'을 추구해야 창의성도 키울 수 있다. (58면)

23. 즉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 즉 최고 수준의 리그에 투입되지 못하면 그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기 힘들다. ... 즉,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발휘할 '영역'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 B급 리그에서는 B급 수준의 탁월성밖에 발휘할 수 없다. (60면)

24. 경쟁이 창의를 낳는다. (61면)

25. 궁즉통이라는 말처럼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다보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최대의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은 절벽에 섰을 때 구현되는 것이다. (62면)

26.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의 중심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곳, 여러 가지 생활방식과 지식이 융합하는 곳,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를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곳이다." 그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15세기의 플로렌스, 19세기의 파리가 창의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삶의 여유'를 들었다. (63, 64면)

27. 빌 게이츠는 이 일주일을 가리켜 '생각주간(Think Week)'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이 기간을 통해 시장의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을 새로 얻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 주간이 지나면 항상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새롭게 시장을 점령하는 이변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규격을 제시해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68면)

28. 문화는 품사로 보면 명사지만, 내용으로 보면 동사이다. (69면)

29. 뭔가에 미치는 날이 있어야 한다. 열정을 분출하며 무엇엔가 몰입하라는 뜻이다. (7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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