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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ㅣ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1. 분석의 힘은 커졌는지 모르지만 통찰의 힘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분석과잉, 통찰결핍'인 셈이다. ... 그런데 그 통찰의 힘을
기르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 즉 '후마니타스(humanitas)'이다. (7면)
2. 혹자는 그것을 인문학의 위기 그 자체이기보다는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 혹은 '대학 인문학의 위기'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대학과 교수사회가 통찰의 힘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진정한 통찰의 힘은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의 대학과 교수사회는 지난 7, 80년대보다는 현격하게 통찰의 힘을 읽은 까닭에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으로부터 유리된 채 늘어져 있기 때문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9면)
3.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다소 판에 박힌 질문에 20대 초반의 여죄수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각과 정신의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일지 모르지만 정말 긴요한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11, 12면)
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전에 없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얼 쇼리스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의 목표는 단 하나, '삶에 대해 성찰하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12면)
5. 문, 사, 철은 세간에서 흔히 오해하듯이 결코 박제화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의
운동이다. (14면)
6.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 ... 사실 강건성세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3대 133년간의
세를 칭하는 말이다. (21, 22면)
7. 아울러 아버지 순치제는 만주어 밖에 몰랐던 반면, 강희제는 스스로 한어, 즉 중국어를 배움으로써 한족을 감싸안기 위해 노력했다.
(22면)
8. 강희제의 믿기지 않는 리더십의 원천에는 무엇보다 인재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천리마는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었지만 천리마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백락은 언제나 드물다"는 말이 있다. ... 설사 인재를 알아본다 해도 그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면 먼저 그
마음을 얻어야 한다. (23면)
9. 하지만 강희제는 청 왕조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한족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을 씻고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24면)
10. "수천 냥짜리 모피 외투가 갖고 싶다고 조르지 말라. 그런 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유행은 변한다." (강희제)
(31면)
11. "짐의 생일에 그대들이 이런 선물을 올리면 지방관리들도 따라서 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받을 수 없다." (강희제)
(33면)
12. 모름지기 제왕은 과단성을 가지되 신중해야 한다. ...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은 한결같이 '홀로 있을 때조차 신중하라'는 신독을
강조했다. (35, 36면)
13. 덕승재 (36면)
14. 편안할 때 위기에 대비하고, 준비한 후에 결단은 과감하게 한다. 또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고, 덕과 재능을
함께 고려하여 인재를 발굴해내되 발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써야 하며, 믿었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목표와 수단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며, 무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은 나라를 흥성케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38면)
15. 그런데 이처럼 특별한 중국의 황제였던 강희제의 좌우명은 '국궁진력'이었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힌다는 뜻이다.
(39면)
16.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게 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만대에 우환을 남기게 된다."
(40면)
17. 강희제는 어느덧 자신의 라이벌이 되어버린 황태자를 2번이나 폐위했다가 다시 세우는 와중에서 아들도, 신하도 잃었다. ... 옹정제는
... 태자밀건법을 제도화했다. (43면)
18. 그(건륭제)는 10년 동안 361명의 대학자들을 동원해 자그마치 3만 6000여 권의 학술서를 편찬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책들은 전 권을 4질로 만들어 4곳에 보관했다 하여 사고전서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박제가, 홍대용, 박지원 같은 학자들이 이를 접한 덕에 당시의
조선도 실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49면)
19. 특히 "편안할 때 오히려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는 그(건륭제)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새겨놓은 경구가 되었다.
(51면)
20. 이는 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난 색다른 차이가 쉼 없이 지속될 때 나타난다. 즉 창의성이란 끊임없는 차이의 부각과 그 차이의 지속인
셈이다. 창의성의 대명사가 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쇠붙이에 그치지 말고 면도날이 돼라"고 말한 바 있다. (57, 58면)
21. 즉 어제가 다르고, 오늘과 다르고, 내일도 달라져야 한다. 그 끊임없는 차이의 지속이 결국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만들고, 종국에는
전혀 새로운 질과 차원을 향한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 (58면)
22. 또한,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낯설게 해야 한다. 익숙한 것일수록 안티-크리에티브(anti-creative)한 것이다.
즉 밥을 먹을 때도 그 나물에 그 반찬을 피해 가고, 매일 보는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낯설게 하고 곤혹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낯섦과 곤혹스러움이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고, 다시 그 속에서 솔루션을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솔루션이 창의성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남을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65억 인구 중에서 나와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듯 자기만의 독특한 '온리 원(only one)'을 추구해야 창의성도 키울 수 있다. (58면)
23. 즉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 즉 최고 수준의 리그에 투입되지 못하면 그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기 힘들다. ... 즉,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발휘할 '영역'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 B급 리그에서는 B급 수준의 탁월성밖에 발휘할 수 없다. (60면)
24. 경쟁이 창의를 낳는다. (61면)
25. 궁즉통이라는 말처럼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다보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최대의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은 절벽에 섰을
때 구현되는 것이다. (62면)
26.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의 중심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곳, 여러 가지 생활방식과 지식이 융합하는 곳,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를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곳이다." 그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15세기의 플로렌스, 19세기의 파리가
창의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삶의 여유'를 들었다. (63, 64면)
27. 빌 게이츠는 이 일주일을 가리켜 '생각주간(Think Week)'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이 기간을 통해 시장의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을 새로 얻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 주간이 지나면 항상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새롭게 시장을 점령하는 이변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규격을 제시해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68면)
28. 문화는 품사로 보면 명사지만, 내용으로 보면 동사이다. (69면)
29. 뭔가에 미치는 날이 있어야 한다. 열정을 분출하며 무엇엔가 몰입하라는 뜻이다. (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