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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러나 경제 규모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원조액은 아직 높은 수준이 못 된다. 7억 9천 7백만 달러란 한국의 국민총소득의 0.09퍼센트에 해당되며, 달리 표현하면 1백 달러를 벌 때마다 9센트씩 기부했다는 뜻이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인 조건호씨가 2006년에 지적한 대로다. “지금 한국의 대외 원조는 세계 열두 번째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초라하다. 대외 원조를 크게 늘리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9, 10면)
2. 지금까지 몇 년동안, 유엔이 권장하는 대외원조액(국민총소득의 0.7퍼센트)보다 많이 원조한 나라는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뿐이다. 미국과 일본은 경제 규모에 비례한 원조 규모에서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 1백 달러를 벌 때마다 겨우 18센트를 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내는 액수와 비교하면 두 배나 된다. (10면)
3. 우리는 말 그대로 유례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초적인 물질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사는 인구의 비율은 최근 어느 때보다, 아니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한편으로 경기 변동 주기를 넘어서 길게 보면, 필요한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인구의 비율도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수치다. 무엇보다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3면)
4.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1960년에는 2천만 명의 유아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빈곤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UNICEF의 통계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사망자 숫자가 1천만 명 이하로 줄었다. (14면)
5. 첫 번째는, 절대 빈곤의 덫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 이 책의 두 번째 목표는, 우리 모두가 더 많은 소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16면)
6. 나는 여러분이 소득의 5퍼센트 이상을 베풀어야 한다고 여기며, 결국 그럴 것이라고 희망한다. 그러나 쉽게 할 수 없는 제안이고, 실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그러므로 나는 이 정도만으로도 적당하다 싶은 기준을 제시하는 데 만족할 것이다. (17면)
7. 그러나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다. 힘의 결핍, 힘없는 자의 설움이 종종 동반된다. (25면)
8. 세계은행은 적당한 음식, 물, 주거, 의복, 위생 시설, 의료 서비스,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욕구 충족이 어려운 상태를 절대 빈곤이라고 정의한다. 10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1달러 이하로 연명하고 있다는 통계치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2008년까지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이었다. 전 세계의 상품 가치를 좀더 세밀하게 비교할 수 있게 된 뒤로는, 기초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는 사람의 수를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은 매일 1.25달러이다. 그 이하의 수입밖에 없는 사람의 수는 10억이 아니라 14억 명이다.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나쁜 소식이지만, 최악은 아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1981년에는 19억 명이 절대 빈곤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25면)
9.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14억 명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27면)
10. 이런 식의 가난은 사람을 죽이는 가난이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평균 78세다. ‘최저 개발국’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는 최빈국의 경우, 50세를 못 넘는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아동의 수가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최빈국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27면)
11. 절대 빈곤에 빠진 14억 명의 사람들과 얼추 비슷한 숫자인 10억 명의 인구가 오늘날 일찍이 없었던, 있었더라도 왕이나 귀족들 정도나 누렸을 법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나 누렸을 법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유럽에서 처음 보는 화려한 궁전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름에 궁전을 시원하게 만들 방법은 없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산업사회의 중산층에게 냉방은 대수롭지 않다. 또 루이 14세의 정원사는 아무리 애를 쓴대도 오늘날 우리처럼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들여와 왕에게 맛보일 수 없었다. 왕이 치통을 앓거나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치과 의사나 주치의가 내린 최선의 처방이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기겁을 할 성격의 것이었다. (28면)
12. 황금률은 타인의 욕망을 우리 자신의 욕망처럼 대접할 것을 요구한다. (37면)
13. 이제 스스로 생각해보면, 기초적 논증, 즉 “그것에 상당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경우가 아닌 한, 고통과 죽음을 막기 위해 구호단체에 기부를 해야 한다”는 논증에는 이견이 없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38면)
14. 기독교적 전통에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구원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40면)
15.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남는 것을 모자란 자에게 주라고 제안했다.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41면)
16. “의무” “소유” 등의 표현에 주목하자. 이들 기독교인들에게, 잉여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은 자선의 차원이 아니라 가진 자의 의무 차원, 못 가진 자의 권리 차원이었다. 아퀴나스는 이런 말까지 했다. “엄격히 말하면, 극한 상황에서 남의 것을 몰래 가져다 쓰는 일은 도둑질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갖는 물건은 필요에 의한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 가톨릭의 견해만이 아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였던 존 로크는 이렇게 썼다. “달리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의 사람에게, 박애는 풍요로운 타인의 도움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한다.” (42면)
17. 기독교 잡지 ‘소저너스(sojourners)’의 창립자이자 편집자인 짐 윌리스는 ‘성서’에 가난을 줄이라는 말이 3천 번 이상이나 언급된다는 사실을 즐겨 든다. 그의 생각에, 이는 구빈을 기독교의 핵심 도덕률로 삼기에 충분한 이유다. (42면)
18. 히브리어로 ‘자선’에 해당하는 체다카(tzedakah)는 단순하게는 ‘정의’를 뜻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삶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시사한다. (43면)
19. 이슬람교 역시 신도들에게 불우한 사람들을 도울 것을 요구한다. 최소한도 이상의 재산을 가진 무슬림은 매년 그 재산에 비례하여(소득이 아니다) 자카트(zakat)를 내도록 되어 있다. 금과 은의 경우에는(오늘날에는 현금과 기타 동산을 포함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매년 그 2.5퍼센트를 내야 한다. 여기에다 사다카(sadaka)도 납부해야 하는데, 이것은 돈뿐 아니라 노동력도 포함할 수 있다. 가령 여행자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을 판다거나, 모스크를 짓는데 힘을 보탠다든가 하는 식이다. 자카트와는 달리 사다카는 자발적인 기부다. (43면)
20. 그(맹자)의 가르침을 적은 책에는 그가 양혜왕에게 한 말이 나온다. 그는 왕 앞에 나서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르시며,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을 놓고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내 탓이 아니라 무기 탓이다“라고 하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44면)
21. 가난한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부유한 나라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어 할 노동 조건까지 감수하며 일한다. ... (50면)
22. 자유지상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무직자나 병자, 장애자를 위한 모든 국가 복지 서비스를 폐지해야 하며, 보험료를 낼 여유가 없는 노인과 빈민에게 국가가 보조하는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일 역시 반대해야 한다. (52면)
23. 전체 인구의 2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85퍼센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전체 부의 겨우 1퍼센트를 나눠 갖고 있다. (53면)
24.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끔, 또는 스스로 일해서 스스로 먹을 식량과 구를 충족할 물자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벌어들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들에게 돈과 식량을 퍼주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원조를 하는 게 중요하며,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62면)
25. ... 안락한 삶을 누리고, 가끔 외식을 하며, 생수를 사서 마시는 모든 사람이 아주 적은 액수만 기부한다 해도 세계의 절대 빈곤자들을 매일 1.25달러라는 빈곤선 이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65면)
26. 내 눈에 보여야 불우한 사람이다. (73면)
27. 로키아의 정보를 들은 집단은 단지 일반 정보를 들은 집단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기부했다. 그리고 제3의 집단에는 일반 정보와 로키아의 사진, 그녀에 대한 정보가 모두 주어졌다. 그 집단은 일반 정보만 얻은 집단보다는 많이 기부했는데, 로키아의 정보만 들은 집단보다는 적게 기부했다. (73면)
28. 우리 마음은 추상적인 정보만 접할 때보다 어떤 사람이 구체적으로 인식될 때 더 크게 움직인다. (75면)
29. 마더 테레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런 작동을 엿볼 수 있다. “다수를 볼 때면 움직이지 않아요. 한 사람을 보면 움직입니다.” (76면)
30. 250년 전,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런 상상을 권하며 멀리 떨어진 곳의 이방인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돌이켜보게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거대한 중국 제국이 갑자기 대지진으로 멸망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유럽인들은”, 즉 중국과 별로 통하는 게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스미스는 이렇게 자답했다. “각자의 일과 여흥을 여전히 좇을 것이다. 휴식과 오락을 느긋하게 즐길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77면)
31. 우리의 지성, 숙고 체계는 재난의 소식을 제대로 접수했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먼 곳에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비극에 그다지 동하지 않았다. 그런 끔찍한 소식을 듣고 구호기금에 기부를 한다 해도, 생활방식을 크게 바꾸는 일은 없다. (78면)
32. “이런 식으로 돈은 개인주의를 북돋우는 한편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도록 만들었으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의 결론이다. (87면)
33. ...빌 게이츠는 그 질문을 이렇게 뒤집었다. “저는 상대적인 관점보다는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향상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요. ‘제2차 세계대전은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그것이 끝났을 때 미국이 상대적으로 가장 우세한 입장이었으니까.” (90면)
34.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준거 집단’, 즉 나 자신이 속해 있다고 인식하는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보면 누군가의 성금 액수는 다른 사람들이 내고 있다고 믿는 액수에 연관되어 있다. (95면)
35. “저는 따분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기 쉬웠어요. 이제 저는 돕는 삶이자 의미 있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98면)
36. “사실, 이게 내가 삶의 활력소를 얻는 방법이라오.” (99면)
37. ... 당시 이 회사의 회장이었던 제임스 케인은 그 규칙이 기업 문화의 일부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자선 활동이 “놀랄 만큼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104면)
38. 1퍼센트라는 점에 거부감을 갖는 종업원이 많다면, 더 낮은 수준으로 설정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고액 연봉자에게는 보다 높은 수치를 매겨야 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를 선택할 만한 선 아래로 디폴트를 설정해서, 거의 모두가 디폴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106면)
39. 모든 인간 행동은 자기 이익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유명한 17세기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어느 날 런던 거리를 걷다가 거지에게 동전을 한 닢 주었다. 이 위인의 본성을 알고 싶어 열심이던 동행자는 홉스에게 그가 방금 스스로의 이론을 깨트린 게 아니냐고 물었다. 홉스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가난한 사람이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스스로를 흡족하게 하므로 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홉스는 자기 이익의 범위를 넓혀 대부분의 관용과 동정까지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이론에 대한 반박을 막았다. (113면)
40. ... 그들의 기부는 이기적일까? 그렇다면, 그처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이 필요하다. (114면)
41. 더욱 중요한 점은 유누스가 소액 신용(microcredit) 모델을 창출했으며, 그것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세계 각지의 수천 곳의 금융기관에서 이를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129면)
42. “옛날 법은 여성의 빈곤을 가중시켰습니다. 여성은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고, 스스로는 어떤 형태의 재산도 모을 수가 없었지요.” 모잠비크 여성변호사협회의 마리아 올란다는 말한다. (136면)
43. 그러자 게이츠는 짤막하게 답변했다. “저는 가령 한 아이가 살아났다고 할 때 그것이 GNP 증가를 뜻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은 생명 자체로 값지지요.” 게이츠가 옳다. 우리의 초점은 경제 성장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성장을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는 것들에, 즉 생명 구하기, 고통 줄이기, 사람들의 기초적 욕구 충족시키기 등에 주어져야 한다. (159면)
44. 삭스의 말처럼, “단기적인 지원은 농민들이 장기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막연한 예측이 아니다. 아시아의 녹색혁명이 바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163면)
45.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빈곤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의 기부액을 따져보라면, 우리는 적어도 2015년까지는 ‘새 천년 개발 목표(Millennim Development Goals; MDG)’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다.
세계의 절대 빈곤 인구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
세계의 기아 인구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
모든 어린이들이 초등 교육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보장한다.
교육의 성 불평등을 철폐한다.
5세 이하 아동의 사망률을 3분의 2까지 줄인다.
산모 사망률을 4분의 3까지 줄인다.
HIV/에이즈의 확산세를 멈추게 하고, 감소세로 반전시킨다. 그리고 말라라아와 다른 질병 역시 확산세가 멈추고 감소세로 돌아서도록 한다.
안전한 음용수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 (192, 193면)
46. 많은 사람들이 맵시 나는 옷을 입고, 훌륭한 음식을 먹고, 고급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그 기쁨에 반대하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 살라. ...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데도 그런 ‘가치 있는 것들’에 돈을 쓰는 일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2만 7천명의 어린이들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막는 긴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201면)
47. 이 장에서, 나는 더 쉬운 목표를 제시하려 한다. 경제적으로 웬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연소득의 약 5퍼센트를 기부한다. 그리고 더 부유한 사람들은 더 많이 낸다. 나는 사람들이 그 정도는 낼 수 있고, 내야 한다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것은 잘사는 삶이란 반드시 기부가 필요하다는 윤리 회복의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기준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우리는 절대 빈곤을 끝장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기부금을 갖추게 된다. (205면)
48. 게이츠는 궁극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점은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웹사이트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모든 생명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든,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게이츠는 매년 50만 명의 어린이가 로타바이러스로 죽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자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해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것은 아동의 심한 설사병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다). 그는 이렇게 자문했다. “매년 50만 명의 어린이를 죽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거지?” 그리고 그는 그와 관련된 자료를 더읽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미국에서는 이미 사라졌거나 거의 사라진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이나 치료법이 있기만 하다면, 정부가 그 보급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츠의 말에 따르면, 그와 그의 아내 멜린다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어떤 생명은 구할 가치가 있고 어떤 생명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고 있다는 잔인한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들은 말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게이츠 부부는 재단을 세웠으며, 첫 출연금으로 288억 달러를 내놓았다. 그리고 2008년 이후에는 그 사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돌아가게끔 그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208, 209면)
49. 말라위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며, 유아사망률이 1천명 중 94명꼴이다. 평균 기대 수명은 41세에 불과하다. 그 성인 인구 중에 1내지 7퍼센트가 에이즈에 걸려 있다. (210면)
50.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들레이드에 있는 ‘국제공정분배’(Fair Share International)라는 단체는 “5.10.5.10”이라는 공식을 따르는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그것은 이런 뜻이다.
장애인들을 위해 연 총소득의 5퍼센트를 기부한다.
환경적으로 유해한 소비를 매년 10퍼센트씩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때까지 한다.
소속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시간의 5퍼센트를 쓴다.
매년 최소한 10차례씩 민주주의적 정치 활동을 한다. 가령 자신의 지역구 의원과 접촉하는 일 등. (216, 217면)
51. 수천 년 동안, 현명한 사람들은 선을 행하면 만족을 얻는다고 말해왔다. 석가모니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선한 일에 마음을 정하거라. 그 일을 하고 또 하거라. 그러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 ... (229면)
52. 고대의 지혜는 지금도 의미가 있다. 3만 미국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자선 단체에 기부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기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 비율이 43퍼센트 더 많았고, 이 수치는 자진해서 봉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와 엇비슷하다. 이와는 다른 연구에 따르면 기부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절망감’을 느낄 가능성이 68퍼센트 낮고, ‘너무나 슬퍼서 어떤 것으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상황의 경우는 34퍼센트 낮았다. (229, 230면)
53.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 (232면)
54. 2007년, 줄리안 세벨레스쿠 교수로부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우에히로 기념 실천윤리학 강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었다. (2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