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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ㅣ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평점 :
“내가 밤낮으로 빌고 원하는 것은 오직 문장(둘째아들 학유의 아명)이 열심히 독서하는 일뿐이다. 문장이 능히 선비 기상을 갖게 된다면야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329면)
“역사에 관한 글을 몇 편이나 작성해놓았느냐. 학문의 뿌리와 기틀을 두텁게 북돋워서 얄팍한 지식을 나부랑거리지 말고 마음 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330면)
몹시 비좁은 토담집에서 보낸 4년, 그래도 다산은 불편을 잊으며 “이제야 내가 겨를을 얻었다(자찬묘지명)면서 본격적인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374면)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 초서(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고라 뽑는 일)나 저서하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말도록 해라.” (383면)
“나는 소싯적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1년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때로는 몇 개월 못 가서 사고가 발생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395면)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96면)
“그대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마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원이 3대를 계속해오지 않았다면 그 의원 집 약을 먹지 않듯이 문장도 그렇다. 몇 대를 내려오는 집안의 문장이라야 글다운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400면)
다산은 뒷날 6경 4서의 경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으로 동양 중세의 관념론적인 성리철학의 세계관과 인성론에서 탈피해 효제를 근본으로 하는 경험론적 실학사상을 정립한다. 그러한 논리로 행사를 앞세운 실천철학을 수립하는데, 이 편지의 내용은 바로 다산의 학문 전체를 꿰뚫는 근간이요 핵심사항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인 효제만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닦이면 나머지는 순서도 단계도 필요없다는 주장이 바로 다산 철학의 중심이다. (402면)
공자의 중심사상인 ‘인’이 바로 효제라고 과감하게 주장했던 다산, 실천을 앞세우는 의미심장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402면)
책을 읽어도 세상을 구하는 책을 읽으라는 충고를 다산은 빼놓지 않았다. (404면)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만들어질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405면)
“세상의 옷이나 음식, 재물 등은 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자손에게 전해준다 해도 끝내 탕진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483면)
다산이 연구한 학문의 목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조선이라는 오래된 나라를 통째로 바꾸어버리자”는 목표로 ‘경세유표’를 저작했고, “현재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도 우리 백성들을 살려내보자”는 계획을 세워놓고 ‘목민심서’를 저작했노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495면)
성품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주자학에서는 “성품만 제대로 기르고 마음만 확고하게 지니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다산은 명확히 파악했다. 시대의 변화에도 차이가 있듯이, 다산이 살던 세상은 이미 썩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름답고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맑아지거나 깨끗해질 수가 없었다. 착한 성품을 행위와 실천을 통해 현실화해야만 변화가 가능하지, 성품만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여겼다. (503면)
아무리 훌륭한 성품이나 덕성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으며 선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될 수 있다는 ‘성+행=덕’이라는 새로운 사유체계가 다산을 통해 실학사상의 본질로 자리잡아갔다. 다산초당에서 연구한 다산의 경학관계 저서 232권을 관통하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503면)
다산초당에서 명확하게 세운 이론의 다른 하나는 썩은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법과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504면)
“내 집 문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는 것은 이미 준례가 되었으니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에서 겪는 괴로움 중에 남은 기뻐하는데 나만 슬퍼하는 것보다 심한 것은 없고, 세상에서 겪는 한스러움 가운데 나는 그를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없습니다.” (5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