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망망대해의 바다에 떠있는 부표를 보는 건 바다가 인근에 있을 때나 가능한일입니다. 바다가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를 가지 못하면 평생 부표가 떠있는 모습을 볼 일이 없죠. 제목이 부표라고 하여 뭐지 싶었던 이유입니다. 부표라는 말이 주는 의미와 어원은 넓고 넓은 바다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시설인데 오래된 부표를 건져내고 새로운 부표로 바꿔내는 것도 바다에서 하는 일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이대연의 소설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교체에 대한 의미가 더 많을 것 같았지만 소설의 내용은 부표를 교체하는 작업 중에 지나온 일들에 대한 회상의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이대연 작가님의 소설이 마음에 든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편하게 전달해 주는 느낌과 글속에서 느껴지는 아늑함이라고 할까요? 이해도 빨라지고 상상이 가능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좀더 몰입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평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본인이 편할때만 들어왔던 집과 그를 맞이하는 아내 그리고 아이들. 큰 돈을 만들어 오겠다며 떠돌아 다닌 아버지의 뺑소니 사고와 뇌사상태에 빠진 상황에서의 장기기증서의 발견 등 부표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되새김과 상기함은 구토를 유발하기도 하며 가족과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평생을 부재중이었던 사람의 죽음 이 모든 것이 현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일이기에 더욱이 표현의 방식이 전달하려는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알았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두번째 소설 전(傳)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내용입니다. 무명이 들고온 보따리에 들어 있던 자신이 아들이라고 불리던 시방의 목이었습니다. 전난의 시대에 시방을 왕의 곁에 두게 했다는 이유와 졸기를 써 달라는 이유로 배대영을 찾아온 이야기로 전개 됩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했던 사람과의 마주침이 아주 불편하기도 하지만 시방의 졸기를 써 줍니다. 그러다 막상 시방의 졸기를 쓴다기 보다 새로운 글을 쓰기에 몰입합니다. 새벽이 지나기 전에 다 써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며 소설은 마무리가 됩니다. 역사적 고증을 거친 일화의 소개가 아니라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라면서 썼을 것이다라고 문학평론가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한계를 엿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배대유는 무명의 머리에 비단 베개를 괴어 주었다.

그가 깨기 전에 다 쓸 수 있을까?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마음이 조급했다.

붓을 잡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노 검객의 코골이 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전(傳)>> P69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는 여성이 직접 아이를 낳는 일이 사라질까요? 여성이 아이를 낳는 과정은 여성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인생 최대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기 앞으로으 미래 사회에서는 건강한 자녀만을 출산 할 수 있도록 하는 로봇이 임신을 대신해 주는데 책 속의 로봇인 힐스는 모성을 깊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힐스가 임신하고 있는 뱃속 아이에게서 장애가 의심이 됩니다. 고물상은 장애를 가진 태아를 낙태하게 하고 유물함을 만들어 놓습니다. 태아를 몸에 품고 있으면서도 온전히 사람과의 정서를 유지하고 관계를 중요시하는 힐스는 행복이라는 태명을 지어주고 사랑으로 키워줍니다.

그러나 SF영화에서는 꼭 빌런이 등장하지요. 온전하게 자리하지 못하게 하는 대상이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기서는 고물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과학자가 빌런이에요. 장애를 가진 태아를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으로 인류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인격을 가진 빌런이지만 그에게도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면을 쓰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에요. 어찌 되었건 문제를 해결하는 쪽은 선한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죠. 로봇들이 모두 한몸이되어 행복이를 고물상에게서 지켜냅니다. 그러나 힐스는 모든 기억이 지워지게 되지만..... 세상에 한명 밖에 없는 행복이가 2주년 생일을 맞이합니다. 행복이에게 들려 주었던 시와 향이 어느결에 전달됩니다. 자신을 키워준 로봇을 알아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존중을 받을 이유가 있는 것이죠. 생명의 중요성과 미래사회의 이미지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다음 편은 좀더 색다르게 다가오는데요. 미래지향적인 소설이 다음에는 어떻게 표현이 될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소년과소년> 잘나가는 집안의 아들이지만 온갖 말성과 짖꿎은 행동을 망설임 없이 합니다. 아빠의 말을 거역하기 일쑤죠. 그러한 소년의 아빠는 소년의 회복을 도와주기 위해 치료를 합니다. 그 치료 방식이 뇌의식을 바꿔놓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사고 후 소년의 이면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려 한참을 괴로워 합니다. 이면의 소리를 없애기 위해 또다시 사고가 난 소년은 깨어났을때 이면의 소리에 밀려 버립니다. 마지막에 상당히 당황스러워웠어요. 아버지의 의도라고 보아야 하는지. 공부 잘하고 말 잘듣고 성실한 소년을 자신의 아들에게 씌워 놓은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미래에는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바꾸어 놓을 뇌과학 발달이 진행이 될까요? 말썽을 부리는 것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단계의 한 부분이과 가정의 화목과 사랑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로봇이 등장하고 스스로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별의 별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진행이 될 것으로 보여 무섭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전한 인간만의 세상은 이어갈 수 없는 것인지. 편리함의 세계가 앞으로 펼쳐진다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분열은 더욱 확실히 보여질 것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우던 반려묘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 병원에 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화려한 장례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장례를 치루기 위해서 반려묘와 함께 지냈던 주변의 지인들에게 연락를 하였는데 사귀던 여자친구들입니다. 고양이 미래와의 함께한 사연이 있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미래의 장례를 치르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미래의 유골을 나누어 가집니다. 26개의 돌로 남겨진 미래의 유골을 보면서 주인공은 미래와 똑같은 유기묘를 입양하기로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반려묘의 등장이기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려견을 키우기 있기 때문에 반려묘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를 보아야 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죽음과 얽힌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는 내용도 아닙니다. 이 글 속에서는 고양이 미래를 통해 만나게 되었던 전 남친과 갑짝스럽게 맞이하게 되었던 파혼에 관한 이야기와 결혼 후 집에서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이의 이야기 입니다.

표를 판매하는 업을 가지 주인공은 표를 사가는 사람들의 여행에 동참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며 그 속에서 여행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여행을 가지 못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일방적인 파혼을 당한 주인공의 삶은 참으로 처절해 보였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이면만은 아니지만 아직도 이러한 삶속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두번째 글인 <사소한 사실들>에서는 더욱 가슴 아픔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보증금 천에 월세를 내고 사는 쉐어를 통해 월세를 부담해 살아가는 세여자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으로 삶이 사람을 무력하게 할 수 있음에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결혼을 하고 어떻게 집을 얻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지만 일방적인 삶에 대한 아픔은 모두의 아픔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싶었습니다.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인지. 식당의 창고방에 살면서 밤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생활공간을 허락 받는 것 속옷을 빨아 널으면 꼭 수건으로 가려야 했던 것. 꿈꿈한 냄새와 함께 살아가는 젊음이 옥탑방에서 세명이서 함께 생활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상황이 가난에 대한 얄미움과 아프니깐 청춘이다를 언급하는 것 같아 슬펐습니다.

모두가 자기 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청춘이 너무 아프지 않은 청춘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소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졌습니다. 매번 읽었던 책들이 정보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환타지적 세계에 빠지는 내용이 흥미를 자극하고 재미를 유발합니다. 이번에 선택한 책은 <산책>입니다. 산책이라는 표현은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과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산책이라고 하거나 가까운 곳에 잠시 산보를 나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주인공 윤경과 여경 자매의 현실감있는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지만 소설속 내용은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원하는 내용의 구성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현실감을 적절하게 표현해 놓은 글이라서 살짝 거부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강남의 좁은 아파트에서 남편과 성장하는 아들과 함께 사는 윤경을 보는 여경의 눈은 안타까움이고 변두리에서 집값이 오르지도 않을 곳에서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경을 바라보는 시점이 보여집니다. 어디에 살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면 안 되는 것일까요? 라는 의문감을 살짝 담아 내어 보았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서울의 변두리에 사는 것이 사람의 인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닐텐데 한편으로는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아파트의 소통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소통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불편함도 생깁니다. 이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내려가고 싶었어요. 산책을 편하게 나갈 수 있는 공간에서 산다는 것이 어찌보면 더 부러운 것은 독자인 저의 깊은 마음입니다.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이 상당히 큰 노파의 부탁으로 장애가 있는 손주를 편의점에서 빼내오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현재진행형같은 느낌으로 뭔가 이야기가 더 진행될 것 같은데 끝이 나버렸어요. 속이 답답함이랄까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요?

두번째 소설은 읽는 내내 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가족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큰 주인공에게 다가온 외국인 남자 에릭과의 짧은 동거를 통해 이화의 표현방식이 옳은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상황에 빠지게 되면 사람의 구실을 넘어서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안타까우면서 마지막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힘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들은 반갑지만 일탈을 통해 꼭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으로써 모든것을 감내하는 경험이 꼭 필요한 것일까 합니다. 읽는 내내 이화의 행동에 화가 난 건 에릭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떠나가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은 사라지고 전달되지 못하는 마음을 이메일로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 함으로써 지금의 모습이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 위 도서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솔직하게 쓴 개인의 의견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과 '역'에 관한 두개의 소설을 제공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영'과 '역'이라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상당히 궁금한 마음으로 책의 첫장을 열었습니다. '영'이라 하면 영혼을 의미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첫번째 소설 '영'에서는 한마디로 낚임을 당하는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어떤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 두 눈뜨고 읽어내려가지 못할 정도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고 끔찍한 것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영'에서 순간 순간 나타나는 가슴 쫄깃한 이야기들은 그 다음에 클리셰처럼 이러질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짧은 글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그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휑 도망가 버립니다. 결국 기대한 상상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무섭고 오싹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일까요? 아니면 마지막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자문해 봅니다.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 '영'을 넘어 '역'에서는 좀더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결국은 둘다 죽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서움이 가장 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죽음에 대한 안쓰러움 해결하지 못한 부분 그러면서 남의 일이 큰 이슈화가 될 것 같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콘텐츠 제작자의 만행이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표현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솔직히 제대로 읽혀지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큰 글씨속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읽어야 하는 방식은 오랜만에 만나게 됩니다. 작은 글씨는 다른 이의 글이라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적당한 방식이나 왠지 글의 이전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글씨체 자체도 작아지는 극단적인 현상은 독서의 불편함을 느껴집니다. <크리에이티브 캐슬 : 사라 웬체스터의 성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파헤쳐가는 콘텐츠 개발자를 찾아 보는 이야기 진행 방식도 현실과 혼돈되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결국 어떤 상황에 대한 입조심과 입다뭄으로 인해 결말이 안타까운 것으로 변화게 되어 지속하여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하지만 저의 독력이 아직 부족한 까닭일까요?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짧은 책 속에 들어 있는 글자들의 조합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잠시 생각을 멈추어 봅니다. 죽음과 죽음에 관계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현실에서 가장 좋은 소재인지를 가늠해 봅니다. 중년이 되고 나니 죽음이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과의 차별성은 제목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도메인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영역이 바로 죽음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