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의 바다에 떠있는 부표를 보는 건 바다가 인근에 있을 때나 가능한일입니다. 바다가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를 가지 못하면 평생 부표가 떠있는 모습을 볼 일이 없죠. 제목이 부표라고 하여 뭐지 싶었던 이유입니다. 부표라는 말이 주는 의미와 어원은 넓고 넓은 바다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시설인데 오래된 부표를 건져내고 새로운 부표로 바꿔내는 것도 바다에서 하는 일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이대연의 소설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교체에 대한 의미가 더 많을 것 같았지만 소설의 내용은 부표를 교체하는 작업 중에 지나온 일들에 대한 회상의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이대연 작가님의 소설이 마음에 든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편하게 전달해 주는 느낌과 글속에서 느껴지는 아늑함이라고 할까요? 이해도 빨라지고 상상이 가능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좀더 몰입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평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본인이 편할때만 들어왔던 집과 그를 맞이하는 아내 그리고 아이들. 큰 돈을 만들어 오겠다며 떠돌아 다닌 아버지의 뺑소니 사고와 뇌사상태에 빠진 상황에서의 장기기증서의 발견 등 부표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되새김과 상기함은 구토를 유발하기도 하며 가족과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평생을 부재중이었던 사람의 죽음 이 모든 것이 현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일이기에 더욱이 표현의 방식이 전달하려는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알았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두번째 소설 전(傳)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내용입니다. 무명이 들고온 보따리에 들어 있던 자신이 아들이라고 불리던 시방의 목이었습니다. 전난의 시대에 시방을 왕의 곁에 두게 했다는 이유와 졸기를 써 달라는 이유로 배대영을 찾아온 이야기로 전개 됩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했던 사람과의 마주침이 아주 불편하기도 하지만 시방의 졸기를 써 줍니다. 그러다 막상 시방의 졸기를 쓴다기 보다 새로운 글을 쓰기에 몰입합니다. 새벽이 지나기 전에 다 써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며 소설은 마무리가 됩니다. 역사적 고증을 거친 일화의 소개가 아니라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라면서 썼을 것이다라고 문학평론가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한계를 엿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