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취향 -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책 읽기
고나희 지음 / 더블: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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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싫어했다. 어렸을 적 나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했다. 간혹 책을 읽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멋있는 첫하는 녀석으로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첫은 진솔해도 너무 진솔했다. 해리포터를 읽는 녀석은 1권을 다 읽으면 2권을 찾기 위해 도시로 까지 가서 사오려 했고, 그 친구가 산 해리포터를 다른 친구들은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순서가 돌아오면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졌다. 나 또한 그들의 부류에 들어가 보기로 생각한 것이다. 첫 번째로 든 책은 나 또한 해리포터였다.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 뿐인가. 내용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장을 읽고 그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그 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글은 뭔지, 왜 갑자기 니콜라스 플라멜이라는 사람은 등장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수수께끼만 늘어가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머릿속에 한 가득 짐만 실은 느낌이었다. 그저 느낀점으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했을 뿐, 머릿속에서는 책의 스토리가 하나도 정리돼 잇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책을 다시 끊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언어와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다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였다. 물론 문학은 아니었다. 이공계열의 책만 수두룩하게 봤다. 물론, 그리고 다시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유식해질 수 있고, 만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구나. 나는 당시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대학때가 돼서야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책은 저자와의 대화라고. 하지만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책들은 대개 그런 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강의에 불과했다. 차근차근 내가 생각할 시간을 주는 강의 그 이상이 아니었다.

책과의 대화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도 종종 읽는 책들은 대개 사회과학과 관련된 지식 서적들이다. 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 책이 나에게 도착했다. <독서의 취향> 솔직히 나는 이 책을 표지가 이뻐서 선택했다. 글쓴이의 프로필을 보니 제법 글을 써본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첫 장을 펼쳤다. 저자가 <장미의 이름으로>를 읽고, 책 속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저자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하는 부분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책을 읽었어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저자와의 대화 혹은 주인공과의 대화임에 틀림없었다. 첫 장을 읽은 뒤에야 나는 속전속결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등 책에 나오는 저자와 책 속 주인공들의 대화가 궁금했다. 이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유도한 공적인 관음증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나는 그토록 문학을 딱딱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봐왔는지, 지난 과거들을 돌아봤다.

<독서의 취행>. 만약 당신이 나처럼 딱딱한 책들에 중독돼 있거나, 아직 소설의 맛을 보지 못한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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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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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활동하던 시절한 친구가 자기계발서를 쉽게 쓰는 방법이라는 기사를 써서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그가 쓴 기사는 비록 제목은 자기계발서를 쓰는 방법이었지만실제로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자기 계발서들이 얼마나 쉽게 쓰여지는지를 비판하는 논지의 기사였다물론그 글의 주제는 그 친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논문을 보고 그 내용을 간추리고 자신의 생각을 얹어서 썼다고 하는데어쨌든 내가 있던 신문사가 개국하고 그 친구가 쓴 글만큼 히트한 글이 없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질문 하나만 하자그런데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과연 오늘날만의 트렌드 일까자기계발서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다하나는 다독여 주는 것다른 하나는 채찍질 해주는 것이다오늘날에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다라서 다양한 자기 계발서들을 내놓는다하지만 채찍과 다독임이라는 이 이분법에서 탈출 속도를 만들지 못하고 번번이 두 지점 안으로 떨어진다그렇게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들은 혹은 미래에 나올 자기계발서들 또한 이 범주에서 탈출하지 못한채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시대 때는 어땠을까그리고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는 어땠을까혹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중 우리에게도 친근한 다산 또한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필요했을까라는 진물을 해보면 당신은 <다산의 마지막 공부>라는 책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이 책은 이야기 그대로 다산이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읽었던 책들에는 무엇이 있고그 다산이 읽은 콘텐츠들을 우리에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한자라 포함되어 있다는 것셀럽이라고 할 수 있는 다산이 읽었다는 것 외에는 우리 사회에서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학용이라는 실학자 또한 현세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완전한 탈출 속도를 만들지 못한채삶에서의 고민과 이를 어루만져줄 혹은 자신을 다그쳐줄 무언가가 필요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어쩌면 이 책의 내용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사람에게는 지금 당신아 하고 있는 일이 의미있다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 혹은 당신을 더 강하게 몰아부쳐 줄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그런 조언이 필요하고약간 색다른 조언을 받고 싶다면 과거 정약용이 읽었던 자기계발서를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이 책으 그 책이니 말이다.


참고로 나는 채찍을 택했다. 나에게 필요한 한 구절을 위와 같인 캡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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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
휘트니 크로더스 딜리 지음, 최지원 옮김 / 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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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없다>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영화 유튜버는 우리나라 영화들을 한마디로 까는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가령 김제규 감독이 운영하고 있는 JK필름의 흥행 공식에 대해서 까거나, 그의 영화가 얼마나 어색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는 것들을 찾아내서 깐다고나 할까. 나는 일주일에 한번 올라오는 <거의 없다>의 콘텐츠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그간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영화를 분석해주면서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고나 할까. 상식적이지 않다. 고민하지 않았다. 또 따라했다. 벳겨썼다 등등. 그가 유튜브 영상을 만들면서 하는 말들 또한 하나같이 나에게 있어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거의 없다>라는 유튜버를 만난 뒤로 우리나라 영화를 보지 않는다. 아니다 어쩌면 그 전부터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거 이모랑 함께 <7번가의 기적>을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신파의 느낌이 너무 났다. 솔직히 그런 우리나라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인지 진절머리가 났다. 설날 추석 때에나 돈을 벌려고 배우들을 써서 만드는 영상 콘텐츠 이상의 느낌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이제 웃 긴걸로 치면 유튜버들이 더 웃길 수도 있고, 유명한 사람들도 유튜버 들이다. 굳이 유희를 즐기기 위해 억지로 영화관에가서 억지로 못 만들어진 혹은 자기네들 나름의 흥행공식으로 짜여진 영화들을 볼 필요가 없게 돼서 너무 기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영화관에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단 <거의 없다>와 같은 유튜버를 통해 걸러낼 영화들 못 만든 영화들-은 다 걸러낸 다음에, 좋아 보이는 영화들을 찾아서 간다. 그리고 대개 그런 영화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잘 마들어진 well-made영화 이거나, 아니면 실험적인 영화들이다. 내가 최근에 본 한국의 실험적인 영화는 <옥자> 정도라고나 할까. 나머지 한국에 있는 감독들이 실험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네이버에 웨더 엔더슨이라는 5글자를 친다. 웨더 엔더슨의 영화에 대해서 이전까지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뭔가 독특했다. 그리고 그 안에 뭔가 감독이 숨긴 것을 캐는 재미가 있었다. 관객인 내가 그동안 재미를 먹어라며 억지로 나의 입을 벌려서 호스를 통해 강제로 먹이는 듯한 뉘앙스의 한국 영화만 봤다면, 웨더 엔더슨의 영화는 주제 자체도 특이하고 그것을 서사를 풀어가는 고정 그리고 그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어색하지만 신기한 듯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웨더 엔더슨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웨더 엔더슨의 영화>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작품 세계와 영화 속에서 남겼던 메시지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웨더 엔더슨이 만든 영화 하나하나르 다운 받으며 책에서 익힌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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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고쳐서 산다 - 후회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강지훈 외 지음 / 헤이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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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꼰대라고나 할까?

 

노트를 열어봐요!” 중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의 수업은 언제나 이 말과 함께 시작했다. 이후 그는 어떠한 말도 없이 자신이 정리해놓은 과학 노트에 있는 내용을 칠판에 적은 뒤, 나와 친구들에게 적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다시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을 하나하나씩 읽어 나갔다. 나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이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그렇게 교과서의 내용을 간추린 필기의 내용이 전부였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길로 학생들을 이끌고, 그 호기심을 과학선생이라는 자는 계속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그의 수업에서는 이런 중요한 것들을 빠져 있었다.

그래도 과학 선생이 수업 시간에 입을 아이에 다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ROTC라는 제도를 통해 군대에 갔다는 것, 자신의 눈 한쪽이 어쩌다가 삐꾸가 됐는지 등. 수업시간의 반은 그가 칠판에 필기를 하고, 학생들이 따라 적고, 그가 필기한 것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으로 보냈다면, 나머지 반은 그의 인생과 관련된 신변잡기의 내용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중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ROTC가 무엇인지, 탱자 나무가 무엇인지, 대학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과학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마치 인생의 공부처럼 와 닿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과학 선생은 꼰대였다. 그것도 아주 한심한 꼰대였던 것 같다. 그는 실력도 형편없었고, 그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수업과 관련된 사무를 부분적으로 처리하는 것만으로 공무원 월급을 받고 연금을 받아 먹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선생이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ROTC였을 때, 배운 것들을 가르쳐 준다면서 좌향 좌, 우향 우를 가르쳐 주는 등.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의 끝판왕을 보여 주었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그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난 것 같지는 않다. 모두 자기가 잠깐 동안 쌓아왔던 실력으로 평생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 투성이라고 생각할까.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던 허경영이 했던 말은 정말 틀리지 않은 것 이었다(물론, 그 또한 하는 짓 보면 그 많은 도둑놈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나 또한 one of them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이와 같은 꼰대들 외에는 그렇게 내놓으라고 할 만한 멘토가 없다.

<인생, 고쳐서 산다>를 쓴 작가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흔히 있을지 모를 꼰대들이다. 어쩌면 이들 또한 이들의 직장 안에서는 다들 꼰대라고 생각하며 피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들이 쓴 이전까지의 책을 보니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술적으로 의미가 깊은 것 또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약간의 힐링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나 할까. 주변에서 흔치 않는 계속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으며, 나 또한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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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사회 -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피터 터친 지음, 이경남 옮김, 최정규 감수 / 생각의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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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정치학자들이 본다면 콧방귀를 낄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니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지 않게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책의 저자인 피터 터친 교수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사람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혹은 전쟁을 수행하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인류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것이 여러 국가에 퍼지고 공유되면서 인류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솔직히 틀린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고대나 중세에만 벌어졌던 일도 아니다. 2차 세계 대전을 생각해보자. 하버는 군대에 쓰일 암모니아를 만들다가 질소 파지법을 만들어 비료를 만드는 공정에 이용했고, 핵폭탄 또한 전쟁중에 만들어 졌다. 특히 핵폭탄의 경우에는 당시 최신 기술이 군사 기술로 곧바로 응용된 사례였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미국이 막대한 돈을 들인 작업이기도 했다. 오로지 상대 적국을 이기기 위해 가능한한 많은 자원을 과학기술 발전에 떼려부은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들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하나 스쳐갔던 기록이 하나 있었다. 그것인 이 책의 지은이가 정치학이나 사회과학을 본래 전공했던 사람이 아니라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영화 <미션임파서블4: 고스트프로토콜>에 나오는 미치광이 핵과학자가 떠올랐다. 그 핵과학자는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며, 일나에 핵을 떨어뜨리려 했던 사람이다. 물론 이 책을 쓴 사람이 그러한 방식의 사고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식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를 돌아봤을 때 전쟁이라는 매우 전략적으로 일어났다. 특별히 외부로 적을 돌리거나,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확실할 때 벌였던 것이 전쟁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자신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 갈등을 벌이고 실제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곳이 곳곳에 있다. 오늘날의 전쟁은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전쟁의 가장 낡은 측면. 즉 자신의 패권과 안보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이것이 정말 인류의 발전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질 것이란 생각은 하기 힘들다. 어차피 인류의 발전은 극에 달했다. 거의 발전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과학쪽으로는 말이다. 또한 그런 극에 달한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과학 기술 분야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한다. 현재 인가들이 이루어야 하는 발전이라는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사이좋게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이 좋게 살 수 있는 정치적 해결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과연 전쟁이라는 것이 도움이 될까? 나는 전혀 반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한계 또한 선명하다.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 다는 점. 인류가 외계의 종족과 전쟁을 하는 날이 있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펴 볼 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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