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감
엘리자베스 A. 시걸 지음, 안종희 옮김 / 생각이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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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장사나 하는 녀석들!”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한참이 지났다고 하지만 자유한국당 당우너 혹은 의원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감이 없다는 것을 넘어서 저질 스러웠다. 하지만 저들의 입에서 나온 저질스러운 발언들이 나온 근본적인 원인에는 저들이 사회적 사건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공감. 솔직히 나 또한 해당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감정적이고, 공감만 있으면 우리가 겪고있는 어려 정치적인 문제들이 모두 풀릴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들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공감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난 감각이었다.

하지만 후순위는 절대로 그것인 잊거나 혹은 배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하면 곤란한 것 같다. 앞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공감하는 마음을 잃었을 때, 우리 사회 시민들과 멀어지고, 우리 사회가 가려는 방향과 멀어지며, 끝내 괴물이 정치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 <사회적 공감>을 펼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이 책 <사회적 공감>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세월호와 관련된 사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흔히들 촌철산인이라고 이야기 하는 상대편을 깔보고 무시하며 우리 편에게는 막대한 카타르시스 느끼게 하는 발언들이 언젠가부터 불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또한 해당 발화를 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가 지지하는 쪽에서 발화되는 것들에는 그들에 대한 공감은 물론 존중 또한 전혀 들어있지 않으며, 사람들을 악마화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공감하는 능력 혹은 공감하려는 시도가 38선을 넘어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어떠한 것이 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됐고, 그 이유가 아마 내가 이 책 <사회적 공감>을 신청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혹은 막연이 상상해 왔던 공감이란 것을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차원에서 잘 분석하며 그것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낱낱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어쩌면 내가 그냥 훑고 넘어갔을 내용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고 있을 공감에 대한 것들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체계적으로 시스테미컬 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저자의 이야기 대로 책을 읽는 내내 사회적 공감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공감은 타인의 입장에 서야한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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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마케팅 강의 - 세상이 변해도 늘 통하는 마케팅은 없을까?
하버드 공개 강의 연구회 지음, 송은진 옮김 / 북아지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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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란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때론 치명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에 있어서 망각이란 더욱 그렇다. 우리 인류는 실수를 언제든 반복한다. 사람들은 책을 써놓고 혹은 다른 형태로 과거의 실수들을 후세에 남겨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물론 똑같은 상황은 아니다. 과거에는 원시인들이 메머드를 사냥하는 도중에 실수를 하고 이에 대한 기록들을 후세에 남겼다면, 오늘날에는 메머드가 아닌 사람들이 어머어마한 도전을 하면서 과거 사람들이 메머드에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했던 실수들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계속하게 되는 우리의 실수, 혹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실패의 뫼비우스 띠 안에서 열심히 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망각. 그것은 우리의 실패에 한정되어서만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정치의 측면에서는 이와 같은 비극적인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사람들의 망각이 정말 고맙지 않을까? 사람들은 계속해서 잊고 또 잊는다. 100년전 통했던 사업 기법이 100년 후에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니.

이 책 <하버드 마케팅 강의>는 이와 같은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 <하버드 마케팅 강의>의 부제는 세상이 끊임없이 변해도 19가지 마케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19가지 규칙들은 어쩌면 너무나도 진부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규칙들은 어떻게 보면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 주변 환경이 변화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좋은 마케팅 방법을 생각하지 못할 때 혹은 찾지 못할 때, 이 책의 내용들은 마케팅이 잘 되기 위한 본질들을 마치 새벽에 울리는 타종처럼 우리이게 알려주는 듯 하다. 역시 왜 하버드 강의인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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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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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나 어두운 이름인가. 음습하고. 솔직히 옛날에는 나 또한 생리에 대해서 이와 같이 생각했다. 솔직히 그것은 상당히 이상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한것일지도 모르겠다. 생리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생리현상과 같이 자연스러운 어떠한 현상에서 그냥 떨어져 나온 이름 같기도 하고, 영어로도 period라는 그 이름은 왠지 모르게 어색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이름이 있건 아니면 없건, 현재의 상태로도 사람들에게는 쉽게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까내면 마치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샆다.

사람들에게 있어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혹은 위험한 것은 사람들이 모를 때 극대화 되고 선정적이게 된다. 생리 또한 이와 같은 축에 서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는 솔직히 생리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본적이 없다. 여친도 없고, 주변에서 생리를 하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특별하게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 또한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더욱 모르고, 그래서 미스테리하며, 해당 문제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해당 문제를 더욱더 왜곡해서 볼 확률이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생리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솔직하게 이 책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 솔직히 <피의 연대기>와 같은 영화들은 생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마치 뭔가 성스러운 혹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투여서 딱히 공감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미부여를 강요받고 자신들의 문제 의식에 대해서 따라서 생각하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그냥 대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한다는 느낌. 그리고 그 진솔함을 통해서 우리 인구의 반이 겪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서 나 또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점 정도.

재미있는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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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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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터지고 있는 동안 이 책을 읽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늘 차임 이라영 씨가 한겨레에 쓴 <불법없는 불평등>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나는 솔직히 저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삐둘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자자가 이야기 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솔직히 적지 않은 자기계발서에서 관측되는 메시지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최유리 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차별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 차별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삶을 살아도 결국에 중요한 것은 00이다와 같은 저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솔직히 자기개발서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박탈감을 느꼈다. 솔직히. 어쩌면 이 교과서적인 결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과정이란 것은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삶을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솔직히 저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떠한 가정 환경에서 공부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모습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삶일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서울대 학생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 뿐만인가. 우리 사회의 80%의 사람들은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어떻게 해야 서울대에 갈 수 있는지 그 경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물론 어디 서울대 뿐이랴. 굳이 서울대가 아니더라도 연세대든 고려대든. 저자가 서울대 학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서울대 학생으로서의 삶 이후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삶을 누리고 살았다. 그리고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화려하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교훈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을 솔직히 지금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평등한 사회 안에서 읽었으면 모르겠다.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저자와 같은 꿈을 갖고, 저자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 저자의 삶이 하나의 모험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런 사회였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에서 자자의 메시지는 마치 자신의 자랑과 그에 MB가 그렇게 이야기 했던 내가 이렇게 살아 봤는데와 같은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은 과연 나 뿐일까. 책의 표지가 아름다운만큼 내 마음 또한 찢어질 듯 아프다. 과연 저자와 똑같은 삶의 통찰을 겪었던 사람 중 우리 사회 80%에 위치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책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인 흐름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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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환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커먼즈와 생태법
프리초프 카프라.우고 마테이 지음, 박태현.김영준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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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를 공부할 때 직면하는 한 가지 문제점은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한 강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국가이긴 하나, 만약 MCU의 와칸다와 같은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다면 물론 와칸다는 첨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경제 생테계, 즉 미국에 종속되지 않는 경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해당 국가를 무릅 꿇리기 어렵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도 미국의 강제력,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과거 미국이 일본에게 했던 압력이 중국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무역과 환율을 통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을 통한 전쟁은 경제의 고리로 하고 있지만,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혹은 미국이 공작을 했던 여러 국가들과의 관계를 보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미국의 힘이 그렇게 다른 나라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힘의 논리는 단순히 미국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지키려고 할 때에도 똑같이 작동된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과 현재의 무역 전쟁을 미국이 감행했다면, 미국은 지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그간 온갖 종류의 기후 변화 협약에 가입했고 또한 다른 나라들에게 이에 대한 연대를 촉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본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똑같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의 압력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어쨌든 한 국가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해당 국가에 속해있는 기득권 그리고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시민들의 의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최후의 전환> 서평단에 신청을 했을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국가가 만국가에 대한 투쟁을 하는 시대에 기후변화 협약 혹은 정말 우리 인류가 공동체를 위한 프로세스에 합의할 수 있을까. 강제력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UN이나 EU와 같은 거대한 기구를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 <최후의 전환>의 메시지는 다소 다르다. 이 책은 법과 과학의 차원에서 기후변화의 문제를 다루었다. 어떻게 보면 법이라는 정치의 영역에서 보면 각 나라에 대한 강제력은 행사될 수 있고, 실현되기도 어렵다. 물론 과학의 차원에서는 아무리 많아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기후변화 등과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나왔는데도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를 뿐, 과학이 예측해주는 미래의 위험은 들은채만채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두 분야. 즉 법과 과학이 하이브리되어 우리에게 주는 통찰은 분명히 있다. 과학적 측면에서 입증된 위험을 어떻게 우리 인류에게 강제할 수 있을까에 대한 통찰은 상당히 들을만한 이야기고 나 또한 설득당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비록, 솔직히 저자들이 마지막에 내놓은 결론의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과연 가능할까와 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래도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 저자들이 했던 통찰은 이전까지 들어보지 hat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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