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클리어 - 불안을 실천으로 이끄는 기후 정의 행동 아르테 S 4
강양구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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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에 의한 비용과 부작위에 의한 비용. 지금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세먼지로 인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동안 자연을 그만큼 소모하면서 만들어진 청구서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환경에 대한 소모 혹은 낭비를 위는 그동안 비용으로 돌아올지 몰랐다. 그것은 부작위에 의한 비용. 즉,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나오고 있는 비용을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는 지불했고, 현재 가장 가시화 돼 돌아온 것이 미세먼지다. 아마 비슷하게는 미세플라스틱에 의해 오염된 바다 또한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 <미세먼지 클리어>는 그동안 미세먼지라는 존재를 뉴스를 통해서 짤막하게 들어왔던 우리에게, 미세먼지의 원인과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 묻는다. 단순히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석탄화력 발전 자제나 차량 이부제가 아닌, 보다 자연과 우리 사회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현재는 어떤 근본적인 문제를 저지르고 있는지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미세먼지‘만’ 문제인가?


 이 책의 좋은 점은 미세먼지 하나로만 책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현재 우리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들은 상당히 협소하다. 즉, 미세먼지와 관련해서 내놓는 대책들이지 무너진 자연을 복원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집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문제다. 어디 미세먼지가 오늘날에 갑자기 나타난 테러리스트와 같은 존재일까? 아니다. 이 책에서도 단순히 미세먼지 = 해로운 것이 아닌 이를 사회적인 맥락과 엮어서 잘 설명해준다. 즉, 현재 미세먼지가 왜 문제가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미세먼지가 얼마나 해악성 있는 물질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와 같은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있어 어떻게 현재 자본주의 사회가 체계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이를 유도했으며 얼마나 지속가가능한 발전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야이기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대안은 단순하지 않다. 책의 저자들 또한 ‘대전환’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현대 사회에서 전반적인 환경오염 문제를 줄이기 위한 대안에 대해 논의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장 큰 환경오염의 산물로 미세먼지가 있지만, 이는 현재의 단계까지 오는데 있어서 수많은 오염들의 결과물중 하나며 어쩌면 더 큰 오염이 될 수 있는 과정의 하나로서 저자들은 바라보고 있다. 비록 <미세먼지 클리어>라는 책의 제목은 다소 미세먼지 하나의 문제만 담고 있는 것 같아 지엽적이게 보이지만, 미세먼지를 중심으로 저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상당히 넓어서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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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김소연 지음 / 효형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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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학의 존재를 나에게 처음 알려준 것은 교수님이었다. 처음 여성학에 대한 존재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생물학의 종류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한 숨을 쉴지 모르겠다. 나는 왜 사회학 안에 여성학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오로지 과거 여성과 남성에 관한 것 또한 생물시간에밖에 배운적이 없기에, 생물학의 부분 아닐까 했다.

 그 교수님은 이대 출신이었다. 지금은 젠더 연구소 소장으로 계신다. 이 책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는 나에게 여성학의 존재를 가르쳐준 교수님처럼, 우리나라에서 여성학이 번성하기까지 어떤 공간이 그런 여성학의 발전에 토대가 됐는지에 관한 간단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의 간판은 이화여자 대학교다. 일제 강점기 신여성담론이 있었을 적. 흔히 이야기하는 신여성이 존재하고 태동했던 곳을 시작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기관 그리고 공간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관한 책이다.


 여성 그리고 공간


 공간은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한다. 어떤 한 공간에서 여성들이 장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면, 그 공간에서는 잠정적으로 여성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여러 담론들을 만들어 낸다. 농경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권리가 보장되지 못했다. 뿐만인가.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우월하지 못하다는 인식체계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것이 확장되고,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을 차별하는 기제들이 형성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어쩌면 이미 보편적인 여성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학이 발전하는데 어떠한 공간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과거 마르크스가 도서관에서 <자본론 1권>을 썼고, 마르크스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공산주의가 왜 필요한지, 현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듯이, 이 책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를 읽어보면, 왜 해당 공간에서밖에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지, 왜 다른 곳에서는 여성들이 차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비록 여성과 공간에 관한 텍스트이지만,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그리고 사회 맥락적으로 이 텍스트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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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헌법 -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박주민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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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을 다룬 책들은 많다. 거의 법률가들 외에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쓰여진 책도 있고 반면이 이 책 <주민의 헌법>처럼 문해력이 다소 약한 일반 시민들을 위해 쓰여진 책 또한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와 같은 책을 층위가 얕거나 지식이 얄팍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3년전 박근혜 탄핵 심판이 있었을 때, 헌법 재판소 소장이 읽었던 판결문이 생각난다. 평소 판결문과는 전혀 달랐다. 방송을 통해 판사의 판결은 바로 TV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졌다. 그리고 그 판결문의 내용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도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어려운 법률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떠한 차원에서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는지에 내용은 판결문 강독이 끝나자 모든 시민들이 환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해당 순간은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한 판사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평소에 자신들이 아는 자기들 따래는 쉬운 개념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민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썼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해당 문제에 주목을 하고, 시민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나는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주민의 헌법>고 같은 책은 시민들에게 하나의 권력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시민들에게 있어 자신들을 지켜주기도 하고 제재하기도 하는 법률의 상위법에 대한 지식을 전함으로서, 우리 시민들이 사회 질서 형성에 어떠한 부분에 합의를했고 어떠한 부분에 합의를 하지 않았는지 알려 준다. 단순히 헌법을 구구절절하게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조항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저자 박주민 의원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질서에 어떠한 맥락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주민의 헌법


 이 책 이전에 나는 <지금 다시 헌법>이란 책을 사 놓은 사태였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나는 주민의 헌법을 읽는 내내 <지금 다시 헌법>은 어떤 책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민의 헌법은 보다 일상적인 언어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또한 <주민의 헌법>은 <지금 다시 헌법>과는 달리 시민의 일상 혹은 저자인 박주민 의원이 몸담고 있는 국회와 밀접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어쩌면 시민의 일상과 멀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내용이 자세하진 못하다. 반면, <지금 다시 헌법>의 경우 전반적으로 자세해서, 약간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 고리타분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주민의 헌법의 경우 박주민 의원이 이전까지 했던 의정활동과 우리 사회를 뒤 흔들었던 커다란 이슈를 중심으로 헌법에 다가간다. 이 책의 강점은 일상과의 밀접 그리고 이슈와의 밀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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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수 가짜 보수 - 정치 혐오 시대,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
송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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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책을 받아도 약간 찝찝했다.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수’라곤 하는데, 과연 조선일보 전 주필을 ‘보수’라고 할 수 있나? 그들은 수구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 참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던 조선일보 기자가 혹은 보수에 이런 스펙트럼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송희영 주필이다. 아!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막말 잘하는 김진태 의원이 무슨 요트 사진 하나 들고 조선일보를 공격한 일 있지 않은가. 그때 친박인 김진태 의원과 청와대가 공격한 사람이 이 송희영 주필이다. 솔직히 나는 조선일보 구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송 주필의 이름을 처음 들었었다. 그냥 “수구와 수구끼리 싸우는 구나!” “권력 다툼 정말 더럽게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착각이었고, 조선일보가 완전히 수구 권력과 물아일체가 된 존재가 아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렇지만 참 재미있다. 수구의 스펙트럼. 보수의 스펙트럼이란 말 말이다. 얼마전 읽었던 강원택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는 현재 민주당을 보수계열로 봤다(물론 명시적으로 보수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보면 보수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물론 현재 자신들이 ‘보수’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의 뿌리는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수구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이 책의 저자 송 씨는 어쨌든 현재 내가 알기로 수구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어쨌든 보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보수에는 더러운 과거가 있음을 직시한다. 뿐만인가.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보수의 더러움 행적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던 보수의 더러운 행적들을 낱낱이 송 주필은 깐다. (혹시, 이 저자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 화룡점정은 저자가 통진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때 잠깐 조선일보를 읽은 뒤 한 번도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지만, 통진당을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정치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이 글을 조선일보 기자가 쓴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통진당이 존재하던 시절 “조선일보가 통진당을 현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했나?”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가끔가다 보수 논객이 통진당의 혜산은 심한 처사였다고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조선일보 주필씩이나 한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모습은 정말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2개의 화룡점정이 있겠느냐만은 나에겐 두 번째 화룡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일보라는 존재의 발견이다. 솔직히 일찍부터 조선일보가 바보는 아닐 생각은 했다. 그 좋은 서울대 애들 모인 곳이 조선일보 아닌가. 그리고 그곳의 정점에 송 주필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가. 단순히 인력풀에 있어서 거의 서울대 순혈주의 측면만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일보와 그 계열사들이 공익에 기여한 바 또한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과거 이진동 기자가 쓴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쓸 당시 국정농단 사건의 첫 포화를 쏘아올린 언론사는 바로 TV조선이었다. 조선일보가 이를 빨리 팔로업해서 따라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해당 책을 읽으면서 보수 언론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보 보호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진동 기자는 본디 조선일보 출신이 아니라 한국일보 출신 아니던가! 그래서 조선일보로 들어간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몰라도 조선일보는 권력과 한 몸이 된 집단이 맞다라는 생각을 나는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본 조선일보는 많이 달랐다. 조선일보 또한 나름 정권에 대한 고민 공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존재였다. 특히 송 주필이 친박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리고 박근혜 정권 당시 조선일보가 어떻게 권력을 견제했는지 이야기를 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뭐랄까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성향에 대해서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일보가 친박과 그 비호 세력으로부터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는제, 박근혜 정부가 계속해서 극우화 돼 가고 권력기관을 사유화 하는 모습을 내내 어떻게 보아왔는지 등. 기존에 조선일보의 새로운 권력 창출과 같은 음모론과 실제 조선일보의 내로남불식 기사로 인해서 조선일보란 존재를 편향되게만 봤는데, 송희영 주필이란 조선일보의 과거 얼굴이란 사람을 통해 조선일보가 극우쪽에서 어느 지점에 대충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조선일보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솔직히 타임라인에 조선일보 기사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어쩌면 나 또한 필터버블의 영향에 의해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된 가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가다 조선일보에 대해서 듣게 되는 스토리는 “조선일보가 또 허위 기사를 썼다.” “또 날조했다.” “또 사기쳤다.”와 같은 비판성이 강한 2차 콘텐츠 물들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에게 조선일보는 새끼 기자들은 윗 기자들이 원하는대로 써먹는 친구들이고, 그 위가 그리는 세상이 명확해 보였다. 물론, 그들이 그리는 세상이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가끔가다 읽게 되는 조선일보 사설이나 조선일보 칼럼들을 읽을 때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정말. 이유는 간단. 신문이란 공간에 의해 제한되지 않은 조선일보 기자의 순수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신문이 공간적 제약 때문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급진적인 전략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책은 다르지 않은가. 자칭 보수주의자인 조선일보 전 주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장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조선일보가 강하게 주장했던 양극화 해결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었다. 그동안 밀도있고 확장된 맥락 없는 조선일보의 기사만 읽다가, 왜 저자가 양극화 해결 방은으로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와 같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축으시키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결과는 같더라도 조선일보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코웃음을 치는 부분 또한 있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된 책의 내용이 나왔을 때였다. ㅎㅎ. 저자는 해당 문제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최근에 20대 남자 지지율이 떨어져서 걱정인 민주당의 상태를 잘 모르나 보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해당 이슈에 대해서 민주당과 진보가 얼마나 잘 대처했고 보수가 얼마나 “아몰랑~”식으로 대처했는지를 이야기 하는데, 내 생각은 딱히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저자가 이야기하는 ‘진보’의 요소롤 민주당으로 상정하고 있으면 더더욱 말이다.


포스트 강효상?


 글쎄. 왜 이런 책을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 공천 받으려고 하나? 자한당은 거의 망해가고 있고,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보수의 미래는 현재 출범한 새로운 보수당 의원들의 색깔과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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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포르노 -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동기
매튜 홀.제프 헌 지음, 조은경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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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절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인터넷에 업로드된 디지털 기록은 영구적이다. 그 기록은 추억의 순간을 상기하고 싶을 때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불러낼 수 있는 축복이 되는가 하면, 우리가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어떤 사악한 주체에 의해 소환될 때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바보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에서부터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행위를 담은 사진까지 되돌리고 싶은 행동이 담긴 자료의 유포를 통제하는 일이 디지털 시대에는 흔한 일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리벤지 포르노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인줄 알았다. 어쩌면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 자체가 영어이건만 왜나는 이와 같은 일을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적 한계는 내가 어쩌면 이 책을 받고 읽기 전까지 있었던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질문. 그동안 우리나라에 리벤지 포르노의 존재를 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 차원으로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리벤치 포르노에 대한 나의 인식적 정의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남녀간 성대립이 바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나의 이와 같은 전재는 무장해제됐다. 왜? 그건 이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리벤지 포르노>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단순한 폭력을 초월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나, 그 기록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의 비극적 차원만이 아니라, 글로벌 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해당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포르노를 통해 형성된 권력관계


“몇몇 학자들은 복수가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첫째, 복수는 종종 “트라우마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환상”이다. 둘째, 복수는 “상처 입거나 모욕당하는 행위를 동반하는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안전밸브’”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피해를 표면화시켜 상처 입고 손상된 내면의 자존심과 정의가 복구되는 느낌을 받도록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전 파트너의 노골적인 성적 노출 이미지를 공개하는 식의 복수는 순전한 앙심을 품은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리벤지 포르노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해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즉, 리벤지 포르노 게시자들은 피해자가 그런 성적 노출을 한 것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떠난 파트너를 벌주려고 성적인 관습에서의 이중 잣대를 제도화”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을 인터넷의 도입이라고 보지 않는다. 즉, 물론 과거부터 문제가 됐지만, 현재에 들어와 더욱 금심한 문제가 되고 있는 ‘몰카’가 현재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몰카의 등장에 의해 자극을 받은 남성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의 성행위를 찍으며 이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인터넷의 동영상 형태로 유포되면서 만들어진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선 <허슬러>라는 잡지를 통해서 이전에 이미 이와 같은 현상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그 옛날. 물론 동영상이 있었겠지만, 왜 리벤지 포르노의 효시가 될 수 있었던 현상들이 존재한 것일까. 솔직히 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인식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과거부터 존재했던 카마수트라나 한자로도 쓰여진 야설 같은게 일종의 리벤지 포르노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남녀가 상호간에 리벤지 포르노를 만드는 정동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위에서와 같이 2개의 원인을 제공한다. ‘리벤지’라는 것은 단순한 복수의 의미인데, 나는 그동안 그 복수심을 보복의 의미로만 생각했다. 어쩌면 리벤지 포르노 제작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 경험이 없는 나에게 있어 리벤지 포르노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저작물을 생산한다는 것 자체는 내 인식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리벤지 포르노가 형성되는 데 있어 남녀간의 어떤 자극이 원인이 되는지 분석하고 있다.

 솔직히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볼 수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해당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발되면 당빠 처벌로 생각하기 일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근본에는 어떠한 정동이 있는지 분석하면서, 이것이 연쇄적으로 무엇을 작극하는지 또한 이야기 한다. 읽는 내내 정말 흥미롭다.


 디지털 장의사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폭넓은 정치적 활동, 젠더-섹스-페미니스트적 정치 행위와 변화를 지속하는 행동주의가 시급하다. 이는 폭력, 성폭력 그리고 (대부분의 형태의) 포르노그래피를 재생산해내는 젠더-섹스 권력 관계는 물론 인터넷, 사이버 세상의 젠더-섹스 페미니스트의 변화를 의미한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온라인의 (이성애적) 성차별주의 행위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웹은 투쟁의 현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저자가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이와 같은 통찰을 보여 주었는데, 과연 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포르노가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소비한다, 어쩌면 포르노는 고어한 ‘스너프 비디오’에 비하면 그 수위가 한참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와 같은 충격을 즐기기도 한다. 왜일까. 그리고 이와 같은 자극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있을까? 디지털 장의사 같은 것들이 해결책이 될 수있을까? 과연 양진호 같은 사람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디지털 장의사와 같은 단순한 방법은 아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권력적인 차원에서 해당 문제를 조명하고 인식적인 차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라 리벤지 포르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이것이 온라인이란 환경을 통해 리벤지 포르노로 표출됐을 때, 우리가 해당 콘텐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솔직히 약간 대안으로서 뭔가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대안에서는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통찰에 나는 놀랐다. 재미있는 책 이었고,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범죄에 대한 정동과, 그 정동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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