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 가짜 보수 - 정치 혐오 시대,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
송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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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책을 받아도 약간 찝찝했다.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수’라곤 하는데, 과연 조선일보 전 주필을 ‘보수’라고 할 수 있나? 그들은 수구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 참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던 조선일보 기자가 혹은 보수에 이런 스펙트럼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송희영 주필이다. 아!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막말 잘하는 김진태 의원이 무슨 요트 사진 하나 들고 조선일보를 공격한 일 있지 않은가. 그때 친박인 김진태 의원과 청와대가 공격한 사람이 이 송희영 주필이다. 솔직히 나는 조선일보 구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송 주필의 이름을 처음 들었었다. 그냥 “수구와 수구끼리 싸우는 구나!” “권력 다툼 정말 더럽게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착각이었고, 조선일보가 완전히 수구 권력과 물아일체가 된 존재가 아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렇지만 참 재미있다. 수구의 스펙트럼. 보수의 스펙트럼이란 말 말이다. 얼마전 읽었던 강원택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는 현재 민주당을 보수계열로 봤다(물론 명시적으로 보수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보면 보수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물론 현재 자신들이 ‘보수’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의 뿌리는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수구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이 책의 저자 송 씨는 어쨌든 현재 내가 알기로 수구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어쨌든 보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보수에는 더러운 과거가 있음을 직시한다. 뿐만인가.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보수의 더러움 행적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던 보수의 더러운 행적들을 낱낱이 송 주필은 깐다. (혹시, 이 저자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 화룡점정은 저자가 통진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때 잠깐 조선일보를 읽은 뒤 한 번도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지만, 통진당을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정치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이 글을 조선일보 기자가 쓴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통진당이 존재하던 시절 “조선일보가 통진당을 현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했나?”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가끔가다 보수 논객이 통진당의 혜산은 심한 처사였다고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조선일보 주필씩이나 한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모습은 정말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2개의 화룡점정이 있겠느냐만은 나에겐 두 번째 화룡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일보라는 존재의 발견이다. 솔직히 일찍부터 조선일보가 바보는 아닐 생각은 했다. 그 좋은 서울대 애들 모인 곳이 조선일보 아닌가. 그리고 그곳의 정점에 송 주필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가. 단순히 인력풀에 있어서 거의 서울대 순혈주의 측면만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일보와 그 계열사들이 공익에 기여한 바 또한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과거 이진동 기자가 쓴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쓸 당시 국정농단 사건의 첫 포화를 쏘아올린 언론사는 바로 TV조선이었다. 조선일보가 이를 빨리 팔로업해서 따라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해당 책을 읽으면서 보수 언론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보 보호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진동 기자는 본디 조선일보 출신이 아니라 한국일보 출신 아니던가! 그래서 조선일보로 들어간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몰라도 조선일보는 권력과 한 몸이 된 집단이 맞다라는 생각을 나는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본 조선일보는 많이 달랐다. 조선일보 또한 나름 정권에 대한 고민 공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존재였다. 특히 송 주필이 친박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리고 박근혜 정권 당시 조선일보가 어떻게 권력을 견제했는지 이야기를 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뭐랄까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성향에 대해서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일보가 친박과 그 비호 세력으로부터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는제, 박근혜 정부가 계속해서 극우화 돼 가고 권력기관을 사유화 하는 모습을 내내 어떻게 보아왔는지 등. 기존에 조선일보의 새로운 권력 창출과 같은 음모론과 실제 조선일보의 내로남불식 기사로 인해서 조선일보란 존재를 편향되게만 봤는데, 송희영 주필이란 조선일보의 과거 얼굴이란 사람을 통해 조선일보가 극우쪽에서 어느 지점에 대충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조선일보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솔직히 타임라인에 조선일보 기사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어쩌면 나 또한 필터버블의 영향에 의해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된 가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가다 조선일보에 대해서 듣게 되는 스토리는 “조선일보가 또 허위 기사를 썼다.” “또 날조했다.” “또 사기쳤다.”와 같은 비판성이 강한 2차 콘텐츠 물들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에게 조선일보는 새끼 기자들은 윗 기자들이 원하는대로 써먹는 친구들이고, 그 위가 그리는 세상이 명확해 보였다. 물론, 그들이 그리는 세상이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가끔가다 읽게 되는 조선일보 사설이나 조선일보 칼럼들을 읽을 때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정말. 이유는 간단. 신문이란 공간에 의해 제한되지 않은 조선일보 기자의 순수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신문이 공간적 제약 때문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급진적인 전략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책은 다르지 않은가. 자칭 보수주의자인 조선일보 전 주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장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조선일보가 강하게 주장했던 양극화 해결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었다. 그동안 밀도있고 확장된 맥락 없는 조선일보의 기사만 읽다가, 왜 저자가 양극화 해결 방은으로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와 같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축으시키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결과는 같더라도 조선일보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코웃음을 치는 부분 또한 있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된 책의 내용이 나왔을 때였다. ㅎㅎ. 저자는 해당 문제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최근에 20대 남자 지지율이 떨어져서 걱정인 민주당의 상태를 잘 모르나 보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해당 이슈에 대해서 민주당과 진보가 얼마나 잘 대처했고 보수가 얼마나 “아몰랑~”식으로 대처했는지를 이야기 하는데, 내 생각은 딱히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저자가 이야기하는 ‘진보’의 요소롤 민주당으로 상정하고 있으면 더더욱 말이다.


포스트 강효상?


 글쎄. 왜 이런 책을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 공천 받으려고 하나? 자한당은 거의 망해가고 있고,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보수의 미래는 현재 출범한 새로운 보수당 의원들의 색깔과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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