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공무원 검사
검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딱히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경찰보다도 좋은 이미지를 검사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검찰은 국회의원급으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검찰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주변에서 딱히 검사를 만날 일이 없고, 검사가 진짜 공익에 기여하고 있는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검사는 주로 언론의 프레임을 통과해 충분히 대상화 된 존재로 변한 뒤에야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언론이 검찰을 어떻게 그려내는지에 따라 우리는 검찰을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 언론은 검찰을 딱히 좋게 묘사하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여기에도 불편한 당연함이 있다. 언론은 정말 중요한 뉴스들만 한정되어 내보낸다. 검사가 유명 정치인을 구속하는 것이나 검사와 스폰서와의 관계와 같은 것들이 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어떻게 보면 언론들은 정치 검찰만 주로 보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99%의 일반 검사들이 다루어지는 게 아니라 1%의 정치 검사가 99%의 언론에서 주로 다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아! 그렇다고 검찰 전체가 뭐 깨끗한 집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서지현 검사 사건을 통해 검사조직 내에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게 드러났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99%의 일반 검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업무를 하느냐다. 솔직히 우리는 1%의 정치검사가 99%처럼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도대체 대부분의 검사들이 어떤 공익적인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정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검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인에 대한 수사·기소를 미래의 공천권과 엿 바꿔 먹듯이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검사 모습은 아닐 텐데 말이다. 우리의 검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검사내전>을 통해 중년의 법무부 공무원인 한 검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검사내전>이라는 이야기는 검찰청이 근처에 위치한 허름한 돼지고기 집에서 중년의 성길한 공무원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듣는 이야기처럼 재미있다.
김웅 검사는...
검사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검사가 만나는 사람들은 개인간의 혹은 국가가 규정한 법의 울타리를 넘은 악질적인 사람과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 속에 한 명의 악질적인 인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귀찮고 피곤한데, 검사가 만나고 조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니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하드코어한지 잘 알 수 있다.
책의 저자 김웅 검사는 이런 악질적인 사람을 만나 이들에 대한 사건을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열심히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검사로서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같다. 약간 더 나이브하게 이야기 하면 우리의 성실한 공무원이라고 해야 할까.
공무원 사회에도 실적이라는 것이 있다. 공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경제적인 합리성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공공성은 조직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경제성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업무를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가 공무원 본인의 실적과 연결되어 있으면 말이다. 물론, 조직과 경제성이 그렇다고 서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점에서 봐도 개인과 조직은 얼마나 공공성을 살린다고 해도 딱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과가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김웅 검사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검사였다. 단순히 그가 초임검사 때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 늦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 김웅 검사가 책에서 이야기한 ‘고소자 보호’에 관한 논쟁에서 그가 한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검사의 실적이 올라간다는 것, 검사가 쉽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게 되면 시민들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김 검사는 알고 있었다. 조직 내에서 또라이라고 하면 또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또라이들의 상징인 무덤덤함과 용기가 있었다.
김 검사는 공공성과 자신의 성과라는 간극에서 줄타기를 굉장히 잘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검사로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힘을 적당히 절제해야 하는지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김웅 검사가 마치 검사계의 잔다르크와 같은 것은 아니다. 혁신적으로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며 일어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파워를 정확히 알고 이를 실천하는 검사계의 소시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직의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 이었다. 권력의지가 있고 검찰이 더욱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김웅 검사는 지면으로 자신의 작은 돌부리를 거대한 바위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상당히 내공이 깊은 사람이다.
형사부 검사가 들려준 이야기
형사부 검사가 마주하는 사건들은 대게 장삼이사들의 사소한 사건들인 것 같다. 개인간의 갈등이 한계치에 달해 검사를 만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게 그런 사건들 중에는 사기사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책에서 김 검사가 이야기 해주는 사건들은 우리가 TV에서 검사가 나오는 사건과는 다른 대부분 장삼이사들끼리의 사사로운 사기 사건이었다.
김 검사가 이야기해주는 사건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반듯하고 직선적인 서사가 있는 사건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사건은 대게 여러 명의 인간이 각자 만들어온 삐뚤빼뚤한 궤적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진 것 이었다. 물론 한 명의 사기꾼이 명확한 악의를 갖고 일으킨 사건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김 검사가 이야기 해준 사건은 영화나 재현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인 반전 대신에 현실의 늪에 빠져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 혹은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에 의해 아주 입체적으로 갉기 가기 찢어진 순간들을 갖게 됐다. 수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 사체를 쓰고 몸까지 파는 일을 겪었고, 영민씨라는 사람도 사기꾼에게 속아 집을 잃을 뻔 하기에 이른다. 뿐 만인가.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살인자로 몰아 부친 사건도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박 여사의 이야기도 있었다. 단순하게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짧은 말과 우리의 머릿속을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피해자들에 대한 간단하고 명쾌한 ‘우리의 결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들이 그들의 삶에는 들어 있었다.
김 검사가 해준 이야기들은 그동안 내가 명쾌하게만 생각했던 현실이 실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이러한 현실을 매번 목격하고 깊이 들어가는 검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최고의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혹은 검찰이라는 태두리가 없어도 절대 굶어죽지 않을 법조인으로서 사건들에 대한 인상비평이나 다분히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기 성찰적이고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진실한 법관의 모습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말 법은 강력한 도구일 뿐이지, 우리의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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