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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마음을 돌렸다 - 하수는 설득하고 고수는 협상한다
정성희 지음 / 학지사 / 2018년 1월
평점 :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은 어떠한 존재로 보느냐를 나타내는 관점은 상당히 나이브해 보인다. 선천적으로 착하다, 선천적으로 악하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할 수도 없거니와,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두가 착한 사람으로 혹은 악한 단일한 성정을 타고 났다고 한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두가 악한 가운데서도 선한 일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 사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한 사람의 탄생을 선한 존재의 탄생으로 볼 것인지, 악한 존재의 탄생인지는 그 아이를 낳은 부모와는 전혀 성관 없는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아이의 탄생은 전체 아이의 탄생과 연결지게 되고, 이것이 모든 인간 전체로 일반화로 될 경우 성선설 혹은 성악설은 “인간은 어떠한 존재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에 가장 예민한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인간사회에서 전략을 짜 내려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일 것이다. 이들은 인간에 대한 결론이 어떻든 상관없이, 그저 인간에 대한 확정적인 정의가 필요할 뿐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정의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사회 기득권으로서의 위치를 강화할 뿐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앞에서 말한 이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설득할 것인지 혹은 협상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협상이 더 낫다고 한다. 설득과 협상을 성선설과 성악설로 획일적으로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아이를 설득하는 것은 성선설의 입장으로, 아이와 협상을 하는 것은 성악설이 바탕이 된 이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두 구분이 딱히 좋지 않은 것은, 그 아이가 미래에 어떤 분야로 진출하느냐에 따라 엄마의 전략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협상이 필요한 분야로 진출하려면 아이와 협상을 하는 게 좋을 것이고, 아이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분야로 진출한다면 아이를 설득하는 어머니의 자세와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이는 결과론 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의 태도를 바꾸고, 아이의 미래 일에 대해서 논의할 때, 솔직히 나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논쟁이 중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협상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끊임없는 협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아이와 현대 사회를 생각할 때, 전략적인 면에서는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즉 아이와 협상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끄는 협상이 아이를 악한 존재로 생각하고, 이에 대한 deal을 한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매우 나이브할 수 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합리성을 채득하는 일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 합리성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가치와 상당히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말이 한편으로 슬프다.
설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협상을 하는 사람의 마음과 같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만큼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