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왜 비겁했을까?
이벤 아케를리 지음, 손화수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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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것을 소외시키기는 너무 쉽다. 소외된 것에 가까이 있다가는 나 또한 소외되기 쉽다는 불안감을 모두가 갖고 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고 싶지 않다는 충동. 이러한 마음을 모두가 갖고 있다.

<나는 그때 왜 비겁했을까?>의 소재는 소외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아만다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된 친구 라스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아만다는 곧 불안을 느낀다. 소외된 친구와 함께 지내다가는 자신 또한 소외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외시키려는 자들 한 편에 아만다는 자기 자신을 끼워 넣는다. 물론, 마지막에 아만다는 소외된 친구를 소외시키려 했던 지난 날 자신을 되돌아본다. 소외되는게 무서워 자신이 했던 비겁한 행동을 반성하고, 친구 라스에게도 미안하다며 사과를 구한다.

현실에 나같으면 어땠을까. 나는 언제나 비겁하게 살아온 것 같다. 시간은 약이라고 해야 할까 독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떤 비겁한 짓을 했더라도 시간은 이를 잊게 만들었다. 잘못을 반복하게 혹은 잘못을 잊게끔 만들었다. 비럽합은 반복됐고, 나의 떳떳함은 무너져갔다. 그렇게 이날을 살아왔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나는 비겁함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했던 가장 가까운 시일에 반성을하고 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면 남은 인생을 비겁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비록 이 책은 성장 소설이긴 하지만, 이것이 주는 교훈이 어린이들에게만 통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몸만 커버린 수많은 2030대 어린이들에게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가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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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물리 이야기 잠 못 드는 시리즈
션 코널리 지음, 하연희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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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칠판 사이로 희색 분필이 마구 날아들었다. 노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는 수업에서 물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한 온 몸으로 땀을 뿜으며 있는 힘껏 물리 이론들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노 선생의 노트를 열어봐요!”라는 말에 맞춰 선생이 칠판에 그린 그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노트에 적었다. 팔은 아프도록 움직이는데 머리에는 어떤 찌릿한 자극도 주지 못하는 수업이었다. 노 학자가 숨막힐정도로 칠판에 적은 수많은 공식들을 학생들의 숨막히게 하고 마비시키는 시각적 효과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질량이 속도라는 것과 곱해지는지, 왜 그 결과가 운동량이라 불려지는지 등등등. 한 여름 칠판에 수식을 적는 교수는 숨이 찼고, 이를 이해 못하는 학생들의 뇌 또한 숨이 찼을 것이다.

이것은 물리를 접했던 첫 번째 기억이다. 무언가 선생이 신묘하고 대단한 것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들지만, 나는 전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내가 궁극적으로 저것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입체적인 수업이랍시고, 가끔가다 진자라는 것을 들고와 학생들에게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듯 설명을 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도, 물리라는 이름만 붙여지면 어렵고 복잡한 것이 됐다. 어쨌든 물리는 일상에 있는 것이면서도,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상한 언어였다.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물리 야이기>라는 책을 보며 과거 생각이 났다. 자신이 ROTC였다는 것과 대학생 때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려다 탱자나무에 눈을 찔려 한쪽눈이 잘 안보인다는 노 과학 선생이 생각났다. 유연하게 권위적인 인간. 재미없는 수업. 이 두가지 키워드 말고는 그의 수업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물리를 이해하고 싶은 학생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자식이 갖고 있는 지식을 그저 나르기만 하듯, 학생들에게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나르는 것을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다듬어서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과학 선생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이 과연 이 책에 나온 내용처럼 물리를 설명했더라면 내가 과거에 물리와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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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냥이가 들어왔어요 서울대학교동물병원 Health+ 시리즈 3
신남식.신윤주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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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그런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집에 있을 때는 얼마나 말도 잘듣고 귀염성도 많은걸요. 우리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실수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느 날 집 근처를 지나다가 본 광경이다.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었던 여성은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아이를 아꼈다. ! 참고로 이 사람이 안고 있는 아이는 사람이 아이만한 치와와였다. 그 사람의 치와와가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짖고 청바지를 물어뜯으려 했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것은 그 우리가 사람이건 동물이건 똑같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잘못됐을 리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도니 버릇을 고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잣못을 더 추진할 수 있고 종래에는 자신이 잘못하더라도 책임을 질 사람을 따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라는 말은 그 아이에 대한 애정은 충만한데, 그 아이에 대한 지식이 결여돼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사회성이라곤 생각지도 모하고 자기 자신과 그 아이만의 매우 근시적인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사회성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낼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그 아이의 부모 탓이 상당한 것이다.

무식하면 단순하다. 한 객체를 키워나가는데 있어 이러한 무식은 암과도 같다. “아 귀엽다를 생각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산 뒤, 그것을 버린다. 개가 들개가 되는 것은 요즘 뉴스에 잘 나오고 있다. 고양이는 원래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쳐도 말이다. 딱히 자신의 우리와 무 계획성 때문에 그렇게 버려진 동물들이 상당히 많다. 생명체는 물건이 아니다. 물건도 그 작동방법을 알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는 사는데, 우리에게 더 영향을 많미 미치는 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그냥 키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번쯤 고양이에나 개에 대해서 그냥 귀여워서 밥매기며 키우기보다 이런 책을 통해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며 배우는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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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양심 - 일본 헌병 쓰치야 요시오(土屋芳雄)의 참회록
하나이카 야스시게 지음, 강천신 옮김 / 지문당(JIMOONDANG)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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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해 이 책은 한 무기력한 사람의 회고록이다. 한 명의 인간은 국가란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에 무력하다. 하지만 국가와 같은 엄청난 존재가 굳이 강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을 중심으로한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으면 이내 저항하기보다 타협하고 적응한다. 인간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에서 정서적으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충동 혹은 본능은 국가라는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없더라도 사람의 생각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유도할 수 있다. <인간의 양심>의 저자 하나이카 야스시게 또한 그런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순박한 청년이었으나 일본 헌병에 입대하여 자신의 말마따라 살인기계가 됐다. 숨쉬 듯 자연스럽게 사람을 죽였고, 발에 걸리는 돌맹이를 가볍게 차듯 사람을 죽였다. 거칠게 울부 짓는 사람의 목구멍에 차가운 금속 쇠를 꽂았으며, 동물을 사냥하듯 웃으며 사람들을 사냥했다. 사람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살해하는 광경은 미쳤다라는 단순함으로 표기하기에는 너무나 어폐가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사람들이 광기가 차고 넘치는 공간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화와 자유가 보장하는 환경에서는 생각조차 못하는 광기의 공간에만 있는 유희를 알게 된 것이고, 그 안에서의 합리성에 입각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광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은 그 광기에 몸을 싣는 방법밖에 없다. 만약 야스시세가 광기에 몸을 싣지 않았다면 그는 밖으로는 적군, 안으로는 아군의 따돌림이라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또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야스시게는 산 적이 없다. 일본은 근대화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겼다. 가장 위인 군부에서부터 광기에 휩싸였는데, 그 아래에 있는 소시민인 사람이 인간의 존엄이 지키기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게다가 야스시게가 살았던 세월은 광기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인류 최악의 시기 중 하나였다.

그래도 야스시게는 광기의 늪에서 빠져나와 정상 사회로 돌아왔다. 야스시게의 이런 행동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거나 잘못을 부정하는 겁쟁이들과 완전히 대비되는 태도이며 행동이다. 야스시게는 전쟁의 광기를 경험한 수많은 겁쟁이들이 취했던 후자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류사에서 자발적으로 어떻게 용기를 내서 반성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한 인격체가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시피 야스시게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안된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도 예사항 수 없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용기를 구해야하는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용서를 해주는 사람이 하는 앙갚음을 넘어, 자신의 미래가 과거에 의해 짓밟히는 것이다. 잘못을 저질러 미래에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입지가 작아지는 것.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현재 미투 운동을 불러일으킨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한 것, 위안부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군인들 등. 작은 잘못이건, 큰 잘못이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신을 비판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그 시대가 언제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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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 만에 아는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즈니스 연구회 지음, 이해란 옮김, 주식회사 블록체인 허브 감수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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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z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문제가 발생된 근본 모순을 찾아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소련의 한 과학자가 특허 20여 만건을 분석해 얻은 결과라고 하니 나름 신뢰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트리즈 이론을 만든 것은 과학 혹은 공학계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이론의 적용 되어야 하는 범위는 과학계만은 아닌 것 같다. 모순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연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치 체제라고 하는 민주주의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지 말자는 대서 탄생한 것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지 말자는 것 이었으나, 근대를 거쳐 현대에서는 한 정부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지 말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고대나 근대 왕이 갖고 있는 힘을 필터링해 갖고 있는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삼권분립이라는 사상이 등장했고, 이원집정부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무엇이 됐건 중심은 필요하되 중심이 수 많은 사람들을 통제할만한 힘을 빼앗자는 것이다.

자 여기에서 사회판 모순이 발생한다. 중심은 필요한데, 중심에 적당한 힘도 주어야 하는데, 그 정담함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중심이 없으면 한 나라로서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되어 버리고, 중심이 너무 강하면 강력한 권한에 의해 모두의 자유가 침해 당한다. 오늘날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하더라도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중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어쩌면 인류가 정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 맥락과 닿아있다.

인류가 명망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순은 어떤 사람의 장난질과 함께 슬슬 풀리는 분위기다. 바로 블록체인 덕분이다. “비트코인이라는 화폐를 가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특정 알고리즘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날 행정부의 강력한 권한은 행정부가 갖고있는 엄청난 정보에 달려있다. 행정부에 속해있는 수 많은 관할 부서들은 수많은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를 볼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행정부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역할도 강해진다. 정보가 점점 중앙집권화 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행정부가 하고있는 정보의 독점을 완전히 파쇄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블록으로 쪼개고 체인으로 엮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결시켜 놓는다. 이 상황만 봐도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 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60분만에 아닌 블록체인>을 읽으며, 블록체인을 통해 정부가 갖고 있는 강력한 권한이 사람들에게 분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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