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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8월
평점 :
기흉 수술 할 때의 일이다. 아침 일찍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의사들이 아침 일찍 수술 시간을 잡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가는길. 몸은 편히 누워 있었지만, 생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 몸을 경직시켰다. “누군가가 매스로 나의 살을 가르고, 손으로 휘저으며, 내 몸을 고친다”는 생각을 수술실로 가는 침대에서 내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와 헤어지고 의사가 나를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인 수술의 시작이요,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구 순간 간호사인지 혹은 의사인지 모를 사람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호흡기 같은 것으로 내 코와 입을 쌓았다.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진정시키기 위한 산소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있는 힘껏 그곳에 있는 어떤 공기를 흡입했다. “흐흡~~.” 순간 정신은 몽롱해졌고, 나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상당한 고통과 함께 내 옆구리에는 호스가 하나 달려 있었다. 이게 내 수술에 대한 기억 전부다.
병원 그리고 의사.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사라는 사람은 두려움과 신뢰가 공존하는 곳이다. 하지만 병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와 만나 진찰을 받을 때 아주 짧은 순간의 두려움과 신뢰만을 느낄 뿐, 그것이 절정에 오르는 순간은 나처럼 잊어버린다(참고로 나는 산소인줄 알고 마취 가스를 들이마신 것 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르는 순간인데 우리는 그 순간을 가뿐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과연 그 중요한 순간을 정말 생생히 기억하는게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Yes라도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리턴’이라는 의학계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의사가 환자를 수술 할 동안 환자의 의식이 깨어있는 것이다. 상상을 해봐라. 이사가 나의 배를 휘젓고, 칼로 나의 몸을 난도질 하는데 그것을 생생히 느낀다는 것 말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않고 ‘망각’하는 게 어느 정도 축복이라면, (옛날에는)수술을 하다가 기절하는 것 혹은 빅토리아 여왕 이후 확대된 마취로 인해 의식을 잃는 것은 축복을 넘어 선 어떤 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 끊기는 부분 때문인지, 의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미스테리에 쌓이기 일수다. <낭만닥터 감사부>, <라이프>, <하얀거탑>, <굿 닥터>, <뉴하트> 등등의 의학 드라마들이 작가라는 사람을 통해 계속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에 가리고, 마취에 가려서 우리는 의료계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의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의료 사고에 대한 막연한 불신만 있을 뿐. 정작 그 극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화된 일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메스를 잡다>는 우리의 의식이 미치지 못하고, 우리가 함부로 갈 수도 없는 의료계 현장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드라마틱하게 그리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알량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장난을 치는 집단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이 책을 누군가는 ‘문화사’라고 불렀는데, 물론 의학과 관련된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고민사’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사람을 고치기 위해, 사람을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사람을 갖고 연구를 하고 그런 연구를 통해 치료했던 일들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병으로 전멸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고민을 했던 사람들과 그들과 싸웠던 병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이제까지 읽었던 의학 관련 책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의료계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선명히 다루고 있으며, 의학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다소 부담스러운 책. 하지만 재미있다
“게다가 부러진 뼈를 바로잡는 일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럴 만한 배짱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건은 환자가 그렇게 해 달라고 기꺼이 맡기는 것이다. 용기와 권위, 경험을 충분히 갖추고 공감 능력도 웬만큼 갖추어야 환자로부터 그와 같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치료 신력도 뛰어나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손으로 직접 낫게 해 주는 사람들, 최초의 외과 의사들이 등장했다.”
“영어에서는 ‘낫다’라는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표현한다. 수술과 상처, 멍, 골절에는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을 뜻하는 ‘he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지병에는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뜻하는 ‘cure’를 사용한다. 대략적으로 분리하자면 외과 의사가 하는 일은 heal, 일반의사가 하는 일은 cure에 해당된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수술, 그 매혹의 역사”다. 일단 ‘쉼표’를 기준으로 앞에있는 “세상을 바꾼 수술”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매혹의 역사”에는 조금 동의하기 어렵다. 나쁜 뜻이 있어서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책의 저자인 아르놀트 판 더 라르가 수술을 할 동안 어떤 일이 있는지, 의사들이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 그려내는 게 참으로 디테일하기 때문이다. 소설도 아니면서 저자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을 의사가 어떻게 가르고·자르고·파고들어서 수술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말 “말하기 거시기 하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1장을 읽을 때부터 “이 책들 다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석 제거를 하던 초기에 항문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그곳에서 방광의 어떤 걸리는 부분을 찾아 휘졌는다고 이야기 한 부분은 정말, 책을 읽다가 이렇게 당혹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책의 저자는 수술 혹은 우리 몸과 관련하여 어려운 용어들을 책의 맨 뒷장에 정리해 두었다고 이야기 했지만, 난 절대 그 페이지를 읽고 싶지 않았다. 무지를 통해서 내 상상력이 확장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정말 “책을 읽다가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어쩌면 책의 묘사로 인해 고통 받던 나에게 유일한 완화제가 있었다면 ‘10장: 마취’였다. 이 책은 시산순서대로 수술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쓰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매 장을 거듭할수록 의사들이 수술대위에서 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란 직업. 정말 맨탈이 강해야 하는구나. 혹은 빨리 지금 하는 짓에 대한 gross한 느낌에 적응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마취 부분에서 이런 장면들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의사에게 이러한 수술을 받는데 정말 마취란 것이 없다면, 상당히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연이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재미있었다. 하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이 어떻게 행해지는지를 계속 보며, 이전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장면들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었다. 비록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도 상상해보지도 혹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