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영화
휘트니 크로더스 딜리 지음, 최지원 옮김 / 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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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없다>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영화 유튜버는 우리나라 영화들을 한마디로 까는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가령 김제규 감독이 운영하고 있는 JK필름의 흥행 공식에 대해서 까거나, 그의 영화가 얼마나 어색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는 것들을 찾아내서 깐다고나 할까. 나는 일주일에 한번 올라오는 <거의 없다>의 콘텐츠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그간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영화를 분석해주면서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고나 할까. 상식적이지 않다. 고민하지 않았다. 또 따라했다. 벳겨썼다 등등. 그가 유튜브 영상을 만들면서 하는 말들 또한 하나같이 나에게 있어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거의 없다>라는 유튜버를 만난 뒤로 우리나라 영화를 보지 않는다. 아니다 어쩌면 그 전부터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거 이모랑 함께 <7번가의 기적>을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신파의 느낌이 너무 났다. 솔직히 그런 우리나라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인지 진절머리가 났다. 설날 추석 때에나 돈을 벌려고 배우들을 써서 만드는 영상 콘텐츠 이상의 느낌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이제 웃 긴걸로 치면 유튜버들이 더 웃길 수도 있고, 유명한 사람들도 유튜버 들이다. 굳이 유희를 즐기기 위해 억지로 영화관에가서 억지로 못 만들어진 혹은 자기네들 나름의 흥행공식으로 짜여진 영화들을 볼 필요가 없게 돼서 너무 기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영화관에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단 <거의 없다>와 같은 유튜버를 통해 걸러낼 영화들 못 만든 영화들-은 다 걸러낸 다음에, 좋아 보이는 영화들을 찾아서 간다. 그리고 대개 그런 영화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잘 마들어진 well-made영화 이거나, 아니면 실험적인 영화들이다. 내가 최근에 본 한국의 실험적인 영화는 <옥자> 정도라고나 할까. 나머지 한국에 있는 감독들이 실험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네이버에 웨더 엔더슨이라는 5글자를 친다. 웨더 엔더슨의 영화에 대해서 이전까지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뭔가 독특했다. 그리고 그 안에 뭔가 감독이 숨긴 것을 캐는 재미가 있었다. 관객인 내가 그동안 재미를 먹어라며 억지로 나의 입을 벌려서 호스를 통해 강제로 먹이는 듯한 뉘앙스의 한국 영화만 봤다면, 웨더 엔더슨의 영화는 주제 자체도 특이하고 그것을 서사를 풀어가는 고정 그리고 그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어색하지만 신기한 듯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웨더 엔더슨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웨더 엔더슨의 영화>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작품 세계와 영화 속에서 남겼던 메시지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웨더 엔더슨이 만든 영화 하나하나르 다운 받으며 책에서 익힌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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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고쳐서 산다 - 후회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강지훈 외 지음 / 헤이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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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꼰대라고나 할까?

 

노트를 열어봐요!” 중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의 수업은 언제나 이 말과 함께 시작했다. 이후 그는 어떠한 말도 없이 자신이 정리해놓은 과학 노트에 있는 내용을 칠판에 적은 뒤, 나와 친구들에게 적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다시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을 하나하나씩 읽어 나갔다. 나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이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그렇게 교과서의 내용을 간추린 필기의 내용이 전부였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길로 학생들을 이끌고, 그 호기심을 과학선생이라는 자는 계속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그의 수업에서는 이런 중요한 것들을 빠져 있었다.

그래도 과학 선생이 수업 시간에 입을 아이에 다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ROTC라는 제도를 통해 군대에 갔다는 것, 자신의 눈 한쪽이 어쩌다가 삐꾸가 됐는지 등. 수업시간의 반은 그가 칠판에 필기를 하고, 학생들이 따라 적고, 그가 필기한 것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으로 보냈다면, 나머지 반은 그의 인생과 관련된 신변잡기의 내용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중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ROTC가 무엇인지, 탱자 나무가 무엇인지, 대학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과학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마치 인생의 공부처럼 와 닿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과학 선생은 꼰대였다. 그것도 아주 한심한 꼰대였던 것 같다. 그는 실력도 형편없었고, 그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수업과 관련된 사무를 부분적으로 처리하는 것만으로 공무원 월급을 받고 연금을 받아 먹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선생이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ROTC였을 때, 배운 것들을 가르쳐 준다면서 좌향 좌, 우향 우를 가르쳐 주는 등.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의 끝판왕을 보여 주었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그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난 것 같지는 않다. 모두 자기가 잠깐 동안 쌓아왔던 실력으로 평생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 투성이라고 생각할까.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던 허경영이 했던 말은 정말 틀리지 않은 것 이었다(물론, 그 또한 하는 짓 보면 그 많은 도둑놈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나 또한 one of them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이와 같은 꼰대들 외에는 그렇게 내놓으라고 할 만한 멘토가 없다.

<인생, 고쳐서 산다>를 쓴 작가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흔히 있을지 모를 꼰대들이다. 어쩌면 이들 또한 이들의 직장 안에서는 다들 꼰대라고 생각하며 피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들이 쓴 이전까지의 책을 보니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술적으로 의미가 깊은 것 또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약간의 힐링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나 할까. 주변에서 흔치 않는 계속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으며, 나 또한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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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사회 -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피터 터친 지음, 이경남 옮김, 최정규 감수 / 생각의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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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정치학자들이 본다면 콧방귀를 낄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니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지 않게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책의 저자인 피터 터친 교수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사람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혹은 전쟁을 수행하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인류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것이 여러 국가에 퍼지고 공유되면서 인류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솔직히 틀린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고대나 중세에만 벌어졌던 일도 아니다. 2차 세계 대전을 생각해보자. 하버는 군대에 쓰일 암모니아를 만들다가 질소 파지법을 만들어 비료를 만드는 공정에 이용했고, 핵폭탄 또한 전쟁중에 만들어 졌다. 특히 핵폭탄의 경우에는 당시 최신 기술이 군사 기술로 곧바로 응용된 사례였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미국이 막대한 돈을 들인 작업이기도 했다. 오로지 상대 적국을 이기기 위해 가능한한 많은 자원을 과학기술 발전에 떼려부은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들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하나 스쳐갔던 기록이 하나 있었다. 그것인 이 책의 지은이가 정치학이나 사회과학을 본래 전공했던 사람이 아니라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영화 <미션임파서블4: 고스트프로토콜>에 나오는 미치광이 핵과학자가 떠올랐다. 그 핵과학자는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며, 일나에 핵을 떨어뜨리려 했던 사람이다. 물론 이 책을 쓴 사람이 그러한 방식의 사고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식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를 돌아봤을 때 전쟁이라는 매우 전략적으로 일어났다. 특별히 외부로 적을 돌리거나,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확실할 때 벌였던 것이 전쟁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자신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 갈등을 벌이고 실제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곳이 곳곳에 있다. 오늘날의 전쟁은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전쟁의 가장 낡은 측면. 즉 자신의 패권과 안보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이것이 정말 인류의 발전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질 것이란 생각은 하기 힘들다. 어차피 인류의 발전은 극에 달했다. 거의 발전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과학쪽으로는 말이다. 또한 그런 극에 달한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과학 기술 분야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한다. 현재 인가들이 이루어야 하는 발전이라는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사이좋게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이 좋게 살 수 있는 정치적 해결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과연 전쟁이라는 것이 도움이 될까? 나는 전혀 반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한계 또한 선명하다.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 다는 점. 인류가 외계의 종족과 전쟁을 하는 날이 있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펴 볼 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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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지음, 이억주.박태선 옮김 / 동아엠앤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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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과학을 소생시키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배운 것이. 하지만 그 때는 정확히 내가 배운 것이 양자 역학이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았다. 오비탈 이라는 것 이었는데, 원자 세계로 들어가면 전자의 분포도가 과거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직관대로 행성 모델이 아니라, 행성을 감싸고 있는 짙은 구름과 같은 형때로 삥 둘러서 확률로서 전자가 이동한다는 것 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그리고 이 직관적이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나는 헷갈렸고, 직관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문제들은 그 뒤부터 멀어졌다.

장면 둘. 나는 대학에 가서 다시한번 양자역학에 대해서 배웠다. 약대를 나오고 화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으로부터 일반 화학을 배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 그 사람 또한 똑같은 피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나의 무식 혹은 나의 직관은 양자역학이라는 이상한 영역을 언제나 암기로서 겉돌 뿐, 언제나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나무를 쪼게는 벼락과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언제나 답답했꼬, 언제나 암기로서 그 허기를 체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암기는 다른 텍스트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금세 사라지곤 했다.

왜 이런 어려움을 겪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양자역학이 일어나는 공간은 일종의 직관적인 실험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실험은 우리의 눈을 통해서 관찰된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한 관찰이라는 것은 광자라는 것을 통한 관찰이다. 하지만 그 광자 자체가 영향을 실험에 미친다면 우리는 그 실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무 미시세계이기 때문에 시각적 관찰도 어렵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언제나 중간 과정을 생략한 체 드러나는 결과들로만 관찰하고, 그 통계를 통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과정을 볼 수 없었던 우리는 해석을 통해서 미시세계에 대한 지적 허기를 채우곤 했다. 그리고 부족하긴 하지만 해석을 통한 지적 허기는 종종 채워지곤 했다.

! 지금 그 해석이 달라지려고 한다. 창의력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다시 사용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다른 방향의 시선을 주는 것. 그것이 창의력이다. <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는 우리에게 양자 역학에 대한 본질적인 또 다른 해석의 도구를 통해 양자역학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책을 보더라도 어려운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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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Live & Work 2 : 공감 - 가슴으로 함께 일하는 법 How To Live & Work 2
다니엘 골먼 외 지음, 민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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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감능력이 거의 없다. 그것이 언제나 밥 먹여 준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고, 그것을 해서 나중에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물론 이 책을 하나 봤다고 해서 내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사회라는 틀 속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보편적인 감정(?) 혹은 행동을 파악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공감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일에 공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도 어쩌면 다른 측면에서는 공감의 대상이 된다.

잠깐 우리의 뇌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영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켜 보자. 카테고리는 미국영화, 그리고 그 영화의 카테고리 중에서 액션 혹은 드라마 일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어느 미국 영화에서든 보편적으로 나오는 것 이니까. 내 머릿속에 가장 잘 떠오르는 장면은 액션 혹은 코미디 영화였던 <핸콕>이다. 주인공 핸콕이 좋은일을 너무 나쁜 방식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교도소에 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죄수들과 삥 둘러서 자신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고,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미국 영화에서는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앉아서 칼이 될 수도 있는 말들을 나누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쇠퇴할 때로 쇠퇴된 자신들의 공감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상처를 나누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 또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칼울 주어주고 이것으로 당신은 나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한 상처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까지 들려준다. 이것은 단순화 하면 칼이 될 지도 모르겠으나, 칼 과 함께 그 사람의 상처를 보다듬어줄 수 있는 약도 같이 주는 것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직장에서의 일이지 세상의 온갖 범죄를 저지를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교도소에서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직장이라고 뭐가 그렇게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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