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내가 우울증인 걸 알고 있다 - 글로벌 리더 기업의 인공지능 성공 스토리 50
버나드 마.매트 워드 지음, 홍지수 옮김 / 봄빛서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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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티 기업들이. 아니 모든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앎이란 것은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지도 혹은 그렇게 날카롭지도 않다. 우리의 앎은 마치 거품처럼 우리가 수많은 것을 아는것처롬 느끼기는 하면서 기본적으로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우리가 모든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홍보는 하지만,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 <페이스북은 내가 우울증인 걸 알고 있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다고 착각하는 혹은 우리가 전체를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 데이터 기술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상품들을 판매하는 수많은 매장들이 있으므로 수 천 개의 매장에 재료들을 구비해놓고 고객들에게 제품을 서비스할 준비를 갖추려면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 조금만 계산을 잘못해도 운송과 보관 같은 물류에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된다. 스타벅스처럼 거대하고 매장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 기업 에게는 아주 사소한 비효율성도 금방 엄청난 비용으로 늘어난다. - 123pp

 

첨단기술은 사람들의 삶르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바깥 세상과 잘 연결되면 사업과 교육의 기회를 확대시키고 전기 수도 및 운송설과 같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다. - 179pp

 

우버는 기다리는 승객에게 운전사를 배정하고, 승객을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으로 데려다줄 경로를 탐색하는 등 핵심적인 업무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인공지능은 우버의 할증 가격 책정모델도 실행하는데, 수요가 높을 때 택시비를 인상해 더 많은 운전다들이 운행에 참여하도록 해서 고객이 기다린느 시간을 줄이는 기능이다. -245pp

 

나이브했다. 나 자신이 인공지능에 이제껏 생각했던 것 말이다. 그동안 이력서에 인공지능을 썼을 때 상당하 나이브하게 썼던 게 아닌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그냥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내가 좋아하는 대고 알고리즘이 짜져서 내가 원하는 광고 혹은 콘텐츠만 보게 만드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미 우리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아주 원초적인 단계에서부터 다들 사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쓰는 노동력을 줄이는 부분 혹은 사람의 계산이 틀릴 수 있는 부분, 인간보다 컴퓨터가 유능하게 할 수 있는 부분 등. 온갖 부분에 인공지능 기능을 넣어서 사람들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최대화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솔직히 이 책을 보는 내내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노동력이 대체된다면 도대체 그냥 교육받지 못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꼭 이와 같은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 나는 어느 쪽의 인생을 살게 될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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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빙이 녹기까지
권미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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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이제는 나를 숨길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을 꺼이꺼이 살아 나가야 한다. 나이를 속이고 지역을 속이고 학교를 속이고 가족관계를 속이고 등등등. 어떻게 하면 있어 보이는 거짓말을 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할까. 언제나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지내는 것 같다.

 

이 책 <유빙이 녹기까지>를 신청하기 전 그런 하나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일 이었다. 죄책감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고 그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에 대한 경계를 잃을 때 쯔음 이 책을 들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속에서 나는 나와 같은 정동을 느끼는 혹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줄을 서는 사람을 통해, 직장 동료와 불륜 관계에 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이름 대신 일란성 쌍둥이였던 동생의 이름을 빌려가는 사람을 통해, 마약에 취해 가짜 세계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이 아닌 타자가 돼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그런 자신을 계속해서 잃어가는 느낌을 받는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그런 주인공들을 바깥에서 바라봐야 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성찰을 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 곳곳에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 그들의 그런 평범하지 못한 떳떳하진 못한 삶 속에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으며 또한 나 또한 나의 흠들을 계속 마주하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서 계속 마주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유빙이 녹기까지>란 이 책의 제목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게 했다. 유빙이 녹는 것은 과연 순간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리고 그 나와 소설속 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가 일상적인 삶을 사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과연 순간일까 아니면 한참 먼 미래일까. 여러 가지 색각이 머릿속을 멤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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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
에라카 체노웨스.마리아 J. 스티븐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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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비폭력 운동을 해야 하나?

 

한 명만 죽어라!” 그 어저씨의 입에서 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많은 시간을 이 한 마디 말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보낸 것 같지만, 이제야 이 책을 읽으며 해당 답에 대한 명확한 나의 대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단은 판단이 선다.

한 명만 죽어라!”라는 입장은 과거 내가 촛불집회 때 들었던 것 이었다. 당시 경찰들의 진압을 보며, 그 아저씨는 한 명만 죽어라라고 이야기 햇었다. 강행 진압.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 누구 한 명만 죽으면 이제는 정말 혁명이 일언라 것이고, 그 때는 국민으로서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 박근혜라는 거악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말 같았다. 하지만 나 또한 아저씨의 말에 동조했다. 물론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때로 되돌아가도 아저씨 말에 동조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를 신청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폭력 시민운동

 

왜 시민운동은 비폭력이어야 할까. 촛불 집회 때 생각은 약간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폭력적이면 저 얇아 보이는 버스를 너머 청와대 앞까지 진출해 박근혜를 더욱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 시민들은 최고의 판단을 했다. 이상적이다고 싶을 정도르 꾸준히 광장에 모여서 박근혜와 정치권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상적이다라는 것은 수많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한 순간 보였다가 흩어졌다면 박근혜 탄핵이 있었을까? 싶다. 시민들의 분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순간에 보여주지 않으면, 과연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3.5%의 법칙이란 게 있다. 물론 이 법칙은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가 만든 법칙이기도 하다. 당시 촛불항쟁 당시 이 3.5%의 법칙이 성립했다며 수많은 언론들이 받아 적은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왜 3.5%인지, 3.5%가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 신문을 통해 나온 짧은 맥락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게 내가 이 책을 신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세계에서 벌어진 다양한 시민들의 저항을 다루었다. 비교를 위해 단순히 비폭력 집회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집회 또한 저자는 다루었다. 그리고 폭력과 비폭력으로 나뉜 집회에 대한 수치적 그리고 맥락적 분석을 통해서 만들어 진 게 이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란 책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폭력적이지 않다는 게,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논리란 것은 어떻게든 갖다 붙일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 광장에서의 집회는 마치 축제 같았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곳곳에서는 음악이 연주 됐으며, 멀리서 대학생들도 찾아와서 작은 세미나를 열거나 춤을 추며 저항을 했다. 마치 비폭력 저항의 끝판왕 같은 일이 우리 나라 중심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면서 뛰어 노는게 박근혜 탄핵이라는 정치적으로 가장 큰 결정이며 위험한 선택을 하는 중간에 있었다.

어쩌면 폭력적이어야 저항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매우 나이브한 생각, 혹은 원시적인 생각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잘 전달하는 방법. 우리의 분노를 전달하는 방법을 무조건 화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수 많은 사람이 웃으며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듯이, 비폭력이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스테리오 타입이고,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의 스테리오 타입들을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다양한 종류의 시민 저항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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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권성우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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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는 다는 것은 누군가의 관점을 나의 관점과 비교하면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관점을 만드는데 있어 다른 서적 혹은 출판물이나 영상물들이 있다면 누군가들의 관점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관점을 나의 관점과 비교하며 읽는 것이 될 터이다. 뿐만인가. 말장난 같긴 하겠지만, 누군가가 1차로 제작했던 출판문이나 영상물들 또한 그것을 구현하는데 있어 다른 것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현재 내가 읽은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은 무한대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lim에서 n을 무한대로 보냈을 때, n개의 관점’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관점들은 무시되고 혹은 잊혀지는 방식으로, 내 앞에있는 하나의 관점만 보이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세상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필요할 때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신문에는 수많은 에세이들이 실리지만, 신문사가 그 에세이스트들에게 주는 글자로 인해 생긴 한계는, 그들의 생각 또한 스스로 제단하게 만들고, 그로인해 이를 읽는 나 또한 제한된 생각밖에 못 읽게 한다. 그래서 신문에서 멋진 글, 내 뇌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글들을 볼 때면 나는 서둘라 알라딘이나 예스24로 향해서 그들이 쓴 책을 읽는다. 이 책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또한 그런 책 중에 하나다.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푸르스름한 글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동진 평론가가 이야기 했던 “면징하게 직조”란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멤돌았다. 그것은 아마 저자가 “푸르스름한 저녁”이란 말으 좋아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어’와 ‘아’가 다른것만이 아니라, 해당 문화가 갖고 있는 섬세한 감성들을 담아내는 도구다. 어와 아의 차이를 이야기 할 때 보통은 해당 문장이 가지고 있는 맥락이 뒤바낀 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한다면, 명징하게와 푸르스름한과 같은 언어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깊은 감성을 적절하게 담아내는 말들이다. 그리고 나는 몰랐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발췌한 말들 그리고, 쓰고자 한 언어들을 사용하면, 나 또한 과거에 무시하고 두려워 했던 국어의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화산도> 유적지를 둘러보고 난 후, 20일과 21일 사이에 이중심 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재독화가 저영창 전시회를 돌아보았다. 작은 미수관, 아담한 사진 갤러리, 병원을 개조한 전시장이지만, 어떤 세련되고, 거대한 미술관보다 삶과 인생, 죽음, 예술, 열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78pp


 뿐만인가. 이 책에선 내가 알지 못핬거나, 알면서도 쓰는 법을 몰랐던 언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나의 미적 아름다움을 잊고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나온다. 저자가 거리를 해매며 혹은 의도를 갖고 들어간 미술관에서 일기 형식으로 적어 놓은 글들을 과거에 매말라 있었던 그리고 잊고 있었던 우리 주면의 아름다움으 누구에 의해 창조 됐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계가가 됐던 것 같다.  


 그러나 참으로 좋은 작품은 대개 불안과 위기, 상처를 통과하며 탄생했다는 사실은 예술과 삶 사이의 통렬한 아이러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어떠한 삶ㅇ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줄말이다. 제주에서 돌아와, 집 서재에 않아 있다. 이제 내 글을 써야 할 시간이다. - 79pp


 글에도 조각이 있다면 이 모양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기 같이 저자가 써내려간 글들이다. 글은 대개 짧고 스펙타클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서 미를 탐닉하는 저자의 모습과 심경을 적은 글들이다. 한편으로 저자의 일상이 얼마나 그림같은지에 대한 모습과, 내 삶에 대한 빈곤함이 겹쳐 보여서 더욱 심정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기자를 준비하지만 아직까지 저자의 글을 따라가려면 먼 게 하나하나의 글들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저자가 쓴 짧은 글들은 마치 하나하나가 깨진 다이아몬드 혹은 크리스탈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면, 내가 쓴 글들은 폐가에 널브러져 있는 유리창 같다고나 할까. 먼지도 많이 묻고 이쁘지도 않은 모양의. 이 책을 그래서 감상만 했다고 치부할 게 아니라, 여러번 곱씹으면서 내 글의 서장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생각할 지점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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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작가님!
이경 지음 / 새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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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의 자유의 측면에서 이 소설 <작가님? 작가님!>을 읽었던 것 같다. 저자의 글도 가벼웠고, 그래서 딱히 큰 고민 없이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자자의 문제 의식은 깊지 않고, 단순히 자신이 차별 혹은 동의 할 수 없었던 사안들에 대한 고민들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개인의 이야기 먼저 하자. 만약 나의 시도가 계속해서 좌절되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좌절의 계기가 되는 요소들이 주위에 있다면? 작가를 꿈꾸던 내 친구 하나는 스스로의 손목을 그었다며, 과거의 상처를 나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바로 나눈 귀싸대기를 한 대 후려 갈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랄까. “그렇게 까지 해야 해?”라는 말을 나는 했고, “힘들고, 괴롭고, 이젠 그런 감정들더 천천히 풍화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 친구의 방에는 뭐랄까. 수 많은 책이 쌓였고, 4GB 분량의 글들이 컴퓨터에는 저장 돼 있었으며, 끼니는 라면 그리고 어두운 반지하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고민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고민. 작가를 만드는 것은 바로 끊임없는 고민. 거의 자아 분열의 직전까지 가는 고민이 작가를 만드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내 친구와 같은 작가 준비생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사람의 비극적인 인생이 그 사람이 글을 잘 쓰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미스 함무라비>가 소설도 그지 같고 드라마도 그지같긴 하더라도, 문유석 판사가 좋은 글쟁이가 아니 듯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란 얼마나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고민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던 것 같다.


 자신의 글이 출판사에서 거절 된다는 것.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닌 수 차례씩이다. 현 시점에서 이야기 하면 책 속의 주인공이 아서 플렉의 조커를 봤다면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커>를 본 우리나라 수험생들은 이야기 하지 않던가. 그까이꺼 그냥 술 한번 먹고 푹 자고 다시 맨정신으로 수험서 다시 한 번 보는거지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전한다. 무언가에 대하여 느끼는 패배감 그리고 열등감 혹은 좌절감에 대하여 감수성이 예민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해당 좌절감을 얼마나 깊이 맛보고, 얼마나 입체적으로 그 좌절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드라마를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설정은 영리했다. 하지만 나는 다소 내용에 있어서 저자의 깊은 고민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인공이 자신의 플랫폼에 글을 쓰고 또 작가가 와서 댓글을 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설정이 좋으면 스토리 또한 그만큼 극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한겨레 기자로부터 수업들 들었는데, 긴장감과 서스펜스는 시간순서대로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왜곡하며, 독자를 착각하게 만들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마치 일기장같기도 한 면이 있어 진솔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편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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