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헌법 -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박주민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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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을 다룬 책들은 많다. 거의 법률가들 외에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쓰여진 책도 있고 반면이 이 책 <주민의 헌법>처럼 문해력이 다소 약한 일반 시민들을 위해 쓰여진 책 또한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와 같은 책을 층위가 얕거나 지식이 얄팍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3년전 박근혜 탄핵 심판이 있었을 때, 헌법 재판소 소장이 읽었던 판결문이 생각난다. 평소 판결문과는 전혀 달랐다. 방송을 통해 판사의 판결은 바로 TV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졌다. 그리고 그 판결문의 내용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도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어려운 법률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떠한 차원에서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는지에 내용은 판결문 강독이 끝나자 모든 시민들이 환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해당 순간은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한 판사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평소에 자신들이 아는 자기들 따래는 쉬운 개념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민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썼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해당 문제에 주목을 하고, 시민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나는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주민의 헌법>고 같은 책은 시민들에게 하나의 권력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시민들에게 있어 자신들을 지켜주기도 하고 제재하기도 하는 법률의 상위법에 대한 지식을 전함으로서, 우리 시민들이 사회 질서 형성에 어떠한 부분에 합의를했고 어떠한 부분에 합의를 하지 않았는지 알려 준다. 단순히 헌법을 구구절절하게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조항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저자 박주민 의원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질서에 어떠한 맥락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주민의 헌법


 이 책 이전에 나는 <지금 다시 헌법>이란 책을 사 놓은 사태였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나는 주민의 헌법을 읽는 내내 <지금 다시 헌법>은 어떤 책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민의 헌법은 보다 일상적인 언어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또한 <주민의 헌법>은 <지금 다시 헌법>과는 달리 시민의 일상 혹은 저자인 박주민 의원이 몸담고 있는 국회와 밀접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어쩌면 시민의 일상과 멀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내용이 자세하진 못하다. 반면, <지금 다시 헌법>의 경우 전반적으로 자세해서, 약간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 고리타분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주민의 헌법의 경우 박주민 의원이 이전까지 했던 의정활동과 우리 사회를 뒤 흔들었던 커다란 이슈를 중심으로 헌법에 다가간다. 이 책의 강점은 일상과의 밀접 그리고 이슈와의 밀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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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수 가짜 보수 - 정치 혐오 시대,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
송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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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책을 받아도 약간 찝찝했다.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수’라곤 하는데, 과연 조선일보 전 주필을 ‘보수’라고 할 수 있나? 그들은 수구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 참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던 조선일보 기자가 혹은 보수에 이런 스펙트럼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송희영 주필이다. 아!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막말 잘하는 김진태 의원이 무슨 요트 사진 하나 들고 조선일보를 공격한 일 있지 않은가. 그때 친박인 김진태 의원과 청와대가 공격한 사람이 이 송희영 주필이다. 솔직히 나는 조선일보 구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송 주필의 이름을 처음 들었었다. 그냥 “수구와 수구끼리 싸우는 구나!” “권력 다툼 정말 더럽게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착각이었고, 조선일보가 완전히 수구 권력과 물아일체가 된 존재가 아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렇지만 참 재미있다. 수구의 스펙트럼. 보수의 스펙트럼이란 말 말이다. 얼마전 읽었던 강원택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는 현재 민주당을 보수계열로 봤다(물론 명시적으로 보수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보면 보수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물론 현재 자신들이 ‘보수’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의 뿌리는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수구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이 책의 저자 송 씨는 어쨌든 현재 내가 알기로 수구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어쨌든 보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보수에는 더러운 과거가 있음을 직시한다. 뿐만인가.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보수의 더러움 행적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던 보수의 더러운 행적들을 낱낱이 송 주필은 깐다. (혹시, 이 저자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 화룡점정은 저자가 통진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때 잠깐 조선일보를 읽은 뒤 한 번도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지만, 통진당을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정치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이 글을 조선일보 기자가 쓴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통진당이 존재하던 시절 “조선일보가 통진당을 현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했나?”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가끔가다 보수 논객이 통진당의 혜산은 심한 처사였다고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조선일보 주필씩이나 한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모습은 정말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2개의 화룡점정이 있겠느냐만은 나에겐 두 번째 화룡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일보라는 존재의 발견이다. 솔직히 일찍부터 조선일보가 바보는 아닐 생각은 했다. 그 좋은 서울대 애들 모인 곳이 조선일보 아닌가. 그리고 그곳의 정점에 송 주필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가. 단순히 인력풀에 있어서 거의 서울대 순혈주의 측면만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일보와 그 계열사들이 공익에 기여한 바 또한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과거 이진동 기자가 쓴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쓸 당시 국정농단 사건의 첫 포화를 쏘아올린 언론사는 바로 TV조선이었다. 조선일보가 이를 빨리 팔로업해서 따라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해당 책을 읽으면서 보수 언론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보 보호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진동 기자는 본디 조선일보 출신이 아니라 한국일보 출신 아니던가! 그래서 조선일보로 들어간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몰라도 조선일보는 권력과 한 몸이 된 집단이 맞다라는 생각을 나는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본 조선일보는 많이 달랐다. 조선일보 또한 나름 정권에 대한 고민 공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존재였다. 특히 송 주필이 친박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리고 박근혜 정권 당시 조선일보가 어떻게 권력을 견제했는지 이야기를 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뭐랄까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성향에 대해서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일보가 친박과 그 비호 세력으로부터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는제, 박근혜 정부가 계속해서 극우화 돼 가고 권력기관을 사유화 하는 모습을 내내 어떻게 보아왔는지 등. 기존에 조선일보의 새로운 권력 창출과 같은 음모론과 실제 조선일보의 내로남불식 기사로 인해서 조선일보란 존재를 편향되게만 봤는데, 송희영 주필이란 조선일보의 과거 얼굴이란 사람을 통해 조선일보가 극우쪽에서 어느 지점에 대충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조선일보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솔직히 타임라인에 조선일보 기사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어쩌면 나 또한 필터버블의 영향에 의해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된 가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가다 조선일보에 대해서 듣게 되는 스토리는 “조선일보가 또 허위 기사를 썼다.” “또 날조했다.” “또 사기쳤다.”와 같은 비판성이 강한 2차 콘텐츠 물들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에게 조선일보는 새끼 기자들은 윗 기자들이 원하는대로 써먹는 친구들이고, 그 위가 그리는 세상이 명확해 보였다. 물론, 그들이 그리는 세상이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가끔가다 읽게 되는 조선일보 사설이나 조선일보 칼럼들을 읽을 때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정말. 이유는 간단. 신문이란 공간에 의해 제한되지 않은 조선일보 기자의 순수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신문이 공간적 제약 때문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급진적인 전략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책은 다르지 않은가. 자칭 보수주의자인 조선일보 전 주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장 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조선일보가 강하게 주장했던 양극화 해결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었다. 그동안 밀도있고 확장된 맥락 없는 조선일보의 기사만 읽다가, 왜 저자가 양극화 해결 방은으로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와 같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축으시키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결과는 같더라도 조선일보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코웃음을 치는 부분 또한 있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된 책의 내용이 나왔을 때였다. ㅎㅎ. 저자는 해당 문제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최근에 20대 남자 지지율이 떨어져서 걱정인 민주당의 상태를 잘 모르나 보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해당 이슈에 대해서 민주당과 진보가 얼마나 잘 대처했고 보수가 얼마나 “아몰랑~”식으로 대처했는지를 이야기 하는데, 내 생각은 딱히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저자가 이야기하는 ‘진보’의 요소롤 민주당으로 상정하고 있으면 더더욱 말이다.


포스트 강효상?


 글쎄. 왜 이런 책을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 공천 받으려고 하나? 자한당은 거의 망해가고 있고,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보수의 미래는 현재 출범한 새로운 보수당 의원들의 색깔과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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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포르노 -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동기
매튜 홀.제프 헌 지음, 조은경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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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절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인터넷에 업로드된 디지털 기록은 영구적이다. 그 기록은 추억의 순간을 상기하고 싶을 때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불러낼 수 있는 축복이 되는가 하면, 우리가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어떤 사악한 주체에 의해 소환될 때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바보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에서부터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행위를 담은 사진까지 되돌리고 싶은 행동이 담긴 자료의 유포를 통제하는 일이 디지털 시대에는 흔한 일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리벤지 포르노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인줄 알았다. 어쩌면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 자체가 영어이건만 왜나는 이와 같은 일을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적 한계는 내가 어쩌면 이 책을 받고 읽기 전까지 있었던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질문. 그동안 우리나라에 리벤지 포르노의 존재를 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 차원으로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리벤치 포르노에 대한 나의 인식적 정의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남녀간 성대립이 바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나의 이와 같은 전재는 무장해제됐다. 왜? 그건 이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리벤지 포르노>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단순한 폭력을 초월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나, 그 기록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의 비극적 차원만이 아니라, 글로벌 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해당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포르노를 통해 형성된 권력관계


“몇몇 학자들은 복수가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첫째, 복수는 종종 “트라우마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환상”이다. 둘째, 복수는 “상처 입거나 모욕당하는 행위를 동반하는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안전밸브’”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피해를 표면화시켜 상처 입고 손상된 내면의 자존심과 정의가 복구되는 느낌을 받도록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전 파트너의 노골적인 성적 노출 이미지를 공개하는 식의 복수는 순전한 앙심을 품은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리벤지 포르노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해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즉, 리벤지 포르노 게시자들은 피해자가 그런 성적 노출을 한 것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떠난 파트너를 벌주려고 성적인 관습에서의 이중 잣대를 제도화”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을 인터넷의 도입이라고 보지 않는다. 즉, 물론 과거부터 문제가 됐지만, 현재에 들어와 더욱 금심한 문제가 되고 있는 ‘몰카’가 현재 리벤지 포르노의 기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몰카의 등장에 의해 자극을 받은 남성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의 성행위를 찍으며 이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인터넷의 동영상 형태로 유포되면서 만들어진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선 <허슬러>라는 잡지를 통해서 이전에 이미 이와 같은 현상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그 옛날. 물론 동영상이 있었겠지만, 왜 리벤지 포르노의 효시가 될 수 있었던 현상들이 존재한 것일까. 솔직히 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인식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과거부터 존재했던 카마수트라나 한자로도 쓰여진 야설 같은게 일종의 리벤지 포르노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남녀가 상호간에 리벤지 포르노를 만드는 정동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위에서와 같이 2개의 원인을 제공한다. ‘리벤지’라는 것은 단순한 복수의 의미인데, 나는 그동안 그 복수심을 보복의 의미로만 생각했다. 어쩌면 리벤지 포르노 제작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 경험이 없는 나에게 있어 리벤지 포르노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저작물을 생산한다는 것 자체는 내 인식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리벤지 포르노가 형성되는 데 있어 남녀간의 어떤 자극이 원인이 되는지 분석하고 있다.

 솔직히 리벤지 포르노라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볼 수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해당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발되면 당빠 처벌로 생각하기 일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근본에는 어떠한 정동이 있는지 분석하면서, 이것이 연쇄적으로 무엇을 작극하는지 또한 이야기 한다. 읽는 내내 정말 흥미롭다.


 디지털 장의사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폭넓은 정치적 활동, 젠더-섹스-페미니스트적 정치 행위와 변화를 지속하는 행동주의가 시급하다. 이는 폭력, 성폭력 그리고 (대부분의 형태의) 포르노그래피를 재생산해내는 젠더-섹스 권력 관계는 물론 인터넷, 사이버 세상의 젠더-섹스 페미니스트의 변화를 의미한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온라인의 (이성애적) 성차별주의 행위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웹은 투쟁의 현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저자가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이와 같은 통찰을 보여 주었는데, 과연 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포르노가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소비한다, 어쩌면 포르노는 고어한 ‘스너프 비디오’에 비하면 그 수위가 한참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와 같은 충격을 즐기기도 한다. 왜일까. 그리고 이와 같은 자극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있을까? 디지털 장의사 같은 것들이 해결책이 될 수있을까? 과연 양진호 같은 사람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디지털 장의사와 같은 단순한 방법은 아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권력적인 차원에서 해당 문제를 조명하고 인식적인 차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라 리벤지 포르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이것이 온라인이란 환경을 통해 리벤지 포르노로 표출됐을 때, 우리가 해당 콘텐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솔직히 약간 대안으로서 뭔가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대안에서는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통찰에 나는 놀랐다. 재미있는 책 이었고,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범죄에 대한 정동과, 그 정동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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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 밀레니얼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신원 지음 / 파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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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서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런던 사람들은 더 나은 거주 환경을 찾아 런던 외곽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교외화Suburbanization’로 인한 ‘도심공동화Urban hollwoing phenomenon’가 활발하게 이뤄진 1960년대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계층이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지역에 들어가 노후된 건물을 새롭게 복원하고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켰다. 그러자 지역의 임대료가 점차 상승하였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노동자 계층이 밀려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는 너무나도 흔한 말이 돼 버렸다. 젠트리피케이션. 하지만 그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 또한 이야기 했다. 전세계적으로 집값이 오르거나 땅값이 오르는 현상은 잡힌 것이 없다고.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 자체가 어쩌면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따져 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바가 크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솔직히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었고 또한 평범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 중에서 이토록 분석적인 책은 없었다. 그리고 이만큼 집중해서 해당 문제를 다룬 책들은 없었다.


 서울의 골목길의 퇴화


“000년대 중반 이후 20~30대 밀레니얼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태원 골목의 핫플레이스들을 SNS를 통해 발 빠르게 공유하고 확산했다.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곳에서 사업하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건물들이 증개축을 통해 카페나 레스토랑, 부티크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이러한 상업 시설과 유동인구 증가는 공시지가를 상승시켰고, 재산세와 취득세도 덩달아 증가했다. 지자체와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윈윈 시추에이션’이 되었다.”


 내가 일하던 가게 또한 망했다. 2015년 초. 나는 이태원의 한 라운지바에서 일을 했다. 지하 1층이 내가 일하던 도조라는 라운지바였고, 바로 1층에서는 녹사라는 식당이 운영됐다. 제법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손님도 끊이지 않았다. 경리단 골목으로 들어가던 입구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근사한 인테리어에 현혹돼 그곳을 출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후. 그곳에 갔더나 녹사가 있던 곳에서는 GS25마켓이 있었고, 아래에는 이름 모를 술집이 들어서 있었다.

 이 책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나에 대한 회상을 자극했다. 어쩌면 나의 서울에 대한 첫 입성 또한 골목길에서 시작했다. 골목길은 무엇인가. 작은 길. 그 골목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자그마한 경제를 가꾸고,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 그 자그마한 곳에서 고유성이 만들어지고, 그 고유성의 매력은 사람들로 불러일으킨다. 딱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고유성의 매력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책 이전에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책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이 책에 나와있는 이태원이 아닌 성수동이었다. 그곳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구청장이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에 있는 주민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장면이 나왔다.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닐까. 이 책에 나와있는 수많은 통계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한가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다. “망하고 있다”와 “그런데 이 미로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가 아닐까.


 답을 찾아서


‘지금은 저성장의 시대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틴 와이츠먼은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스태그네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유경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이야기한다. 저성장시대의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갈 서울의 미래 모습 또한 자신의 소유를 남과 공유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선한 개발’이나 ‘참한 도시’ 같은 도덕적 로망에 사로잡힌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너가 공존하려면, 각자가 아닌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집값을 앙등시키는 사람들 또한 이 저성장 시대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사람들 분안하기에 끊임없이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의 값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것이 공동체에는 불합리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사람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일을 할수록, 도시는 죽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잃는다. 답은 있을지 모르기만, 현재의 상황에선 누구도 그 답에 도달할 자본을 갖고 있지 않다. 터전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기에 떠난다. 악순환이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존’이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바란다. 하지만 이 악순환만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걱정이다. 책을 읽을 때의 힘찬 생각은 없어지고, 덮을 때 긴 한숨만 남는다. 해결하고 싶다. 하지만 해결할 능력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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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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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Ted가 깔아준 무대 위에 올라 선 그대는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회사와 자기 회사가 갖고 있는 기술의 영향력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마치 스티브 잡스 같았다. 검은색 터틀넥을 입었고, 입에서는 Extraordinary와 같은 감탄어와 자신의 기술에 대해 사람들이 감탄할 수 있는 여러 수식어들을 하나 둘 씩 빼냈다. 뿐마인가. 그녀는 루퍼드 머독으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받았고, 오라클의 설립자로부터도 상당한 응원을 받았다. 뿐만인가. 젊은 금발 그리고 백인.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스탬포트 대학에 들어갔다가 사업을 위해 나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외모 그리고 그녀의 스펙에 있어서 어디 하나 흠 잡을 것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회사가 갖고 있는 기술은 바로 단 피 한 방울로 현재 갖고 있는 모든 질병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사상 최대의 사기꾼 <테나로스>의 설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생각났을까.


 클린 미트는 과연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아이디어는 색시하다.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고기를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이 아닌, 실험실과 같은 곳에서의 배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책을 읽고 ‘클린 미트’를 만들 정도로 우리의 기술이 발전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가끔가다 본 뉴스에서는 시험관에 있는 송아지나 작은 포유류 정도를 본 것 같은데,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클린미트는 마치 재배실에 있는 식물마냥 사람들에게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 있고, 이것이 개발되기만 하면, 현재 동물과 관련된 축산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아닌가. 책에도 나오지만 공장식 축산의 문제가 어디 한 둘인가. 그들에게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비료 제조를 위한 식물 제배, 그들의 방귀로 인해 발생하는 지구 온난화. 그들의 오물에서 나오는 오염문제. 공장식 축산이 갖고 있는 비위생성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의 문제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 아래에 우리가 덮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공장식 축산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모두 시원하게 한 큐에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정말 이 기술이 실행될 수 있을까? 조금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테라노스라는 회사 또한 적지 않게 사람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고, 투자의 귀재들 또한 이에 대하여 지지를 보냈다. 우리가 엘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들 도한 속은 것이다. 이것만인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고기는 완전히 안전한 것인가? 우리는 아직 GMO의 문제 또한 풀지 못했다. 몬산토와 같은 GMO회사의 문제는 우리가 모두 그냥 묻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몬산토 회사를 확인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미 여러번 해당 문제에 대해서 시민단체들에서는 언급이 돼 있다. 그런데 식물의 문제에 대한 문제도 끝나지 않았는데 고기의 문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나는 저자의 출신 또한 의심이 간다. 저자는 동물권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제안하는 그리고 그 제안이 바꾸게 될 미래의 상은 저자가 가장 원하는 세계다. 우리는 이상만 그 과정의 문제들을 모두 무시해선 안된다. 또한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실질적인 문제들을 잊어선 안된다. 


 물론... 저자가


 좀 전에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적어도 우리 세계에 왜 ‘클린 미트’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만큼은 이 책은 잘 이야기해준다. 즉, 가축들의 방목이나 혹은 목축을 통한 것 등. 가축을 키우고 우리가 먹는 여러 방식들이 있지만, 클린 미트는 모두 이를 우회해서 우리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우회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공장식 축산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 이상을 상상하게끔 하는 현실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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