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 밀레니얼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신원 지음 / 파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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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서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런던 사람들은 더 나은 거주 환경을 찾아 런던 외곽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교외화Suburbanization’로 인한 ‘도심공동화Urban hollwoing phenomenon’가 활발하게 이뤄진 1960년대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계층이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지역에 들어가 노후된 건물을 새롭게 복원하고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켰다. 그러자 지역의 임대료가 점차 상승하였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노동자 계층이 밀려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는 너무나도 흔한 말이 돼 버렸다. 젠트리피케이션. 하지만 그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 또한 이야기 했다. 전세계적으로 집값이 오르거나 땅값이 오르는 현상은 잡힌 것이 없다고.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 자체가 어쩌면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따져 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바가 크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솔직히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었고 또한 평범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 중에서 이토록 분석적인 책은 없었다. 그리고 이만큼 집중해서 해당 문제를 다룬 책들은 없었다.


 서울의 골목길의 퇴화


“000년대 중반 이후 20~30대 밀레니얼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태원 골목의 핫플레이스들을 SNS를 통해 발 빠르게 공유하고 확산했다.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곳에서 사업하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건물들이 증개축을 통해 카페나 레스토랑, 부티크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이러한 상업 시설과 유동인구 증가는 공시지가를 상승시켰고, 재산세와 취득세도 덩달아 증가했다. 지자체와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윈윈 시추에이션’이 되었다.”


 내가 일하던 가게 또한 망했다. 2015년 초. 나는 이태원의 한 라운지바에서 일을 했다. 지하 1층이 내가 일하던 도조라는 라운지바였고, 바로 1층에서는 녹사라는 식당이 운영됐다. 제법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손님도 끊이지 않았다. 경리단 골목으로 들어가던 입구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근사한 인테리어에 현혹돼 그곳을 출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후. 그곳에 갔더나 녹사가 있던 곳에서는 GS25마켓이 있었고, 아래에는 이름 모를 술집이 들어서 있었다.

 이 책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나에 대한 회상을 자극했다. 어쩌면 나의 서울에 대한 첫 입성 또한 골목길에서 시작했다. 골목길은 무엇인가. 작은 길. 그 골목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자그마한 경제를 가꾸고,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 그 자그마한 곳에서 고유성이 만들어지고, 그 고유성의 매력은 사람들로 불러일으킨다. 딱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고유성의 매력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책 이전에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책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이 책에 나와있는 이태원이 아닌 성수동이었다. 그곳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구청장이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에 있는 주민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장면이 나왔다.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닐까. 이 책에 나와있는 수많은 통계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한가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다. “망하고 있다”와 “그런데 이 미로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가 아닐까.


 답을 찾아서


‘지금은 저성장의 시대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틴 와이츠먼은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스태그네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유경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이야기한다. 저성장시대의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갈 서울의 미래 모습 또한 자신의 소유를 남과 공유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선한 개발’이나 ‘참한 도시’ 같은 도덕적 로망에 사로잡힌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너가 공존하려면, 각자가 아닌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집값을 앙등시키는 사람들 또한 이 저성장 시대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사람들 분안하기에 끊임없이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의 값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것이 공동체에는 불합리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사람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일을 할수록, 도시는 죽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잃는다. 답은 있을지 모르기만, 현재의 상황에선 누구도 그 답에 도달할 자본을 갖고 있지 않다. 터전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기에 떠난다. 악순환이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존’이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바란다. 하지만 이 악순환만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걱정이다. 책을 읽을 때의 힘찬 생각은 없어지고, 덮을 때 긴 한숨만 남는다. 해결하고 싶다. 하지만 해결할 능력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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