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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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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공룡 사냥꾼은 해변으로 갔다. 2012년 다섯 번째 달의 스무 번째 날로, 구름이 잔뜩 낀 일요일 아침이었다. 에릭 프로코피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그의 딸 리버스는 세 살이 되려는 참이었다. 에릭과 그의 아내 어맨다는 게인스빌에 있는 집에서 파티용품을 차에 하나 가득 싣고 북부 플로리다반도를 가로질러 4세기 신학자의 이름을 딴 16세기 도시인 세인트오게스틴으로 향했다. - 26pp
논픽션 스토리를 거의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물론,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기만일 기대하는 태도는 딱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논픽션 스토리를 책으로 묶어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후마니타스 출판사를 통해 이번에 나온 <임계장 이야기>나 허환주 기자가 쓴 <열여덞, 일터로 나가다>, <현대 조선 잔혹사>, 한겨레신문에서 논픽션 기사를 잘 쓰는 이문영 기자의 <웅크린 말들>과 국정논단 사태 보도의 최전선에 있던 이진동 기자가 쓴 <이렇게, 시작되었다> 등을 읽어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자들이 자신들이 취재한 것을 묶어 내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또한, 논픽션 글을 써보기 위해서 안수찬 기자가 쓴 <뉴스가 지겨운 기자>를 읽기도 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작업은 기자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자신이 탐구하고 싶은 대상을 정하고 진행할 수 있고, 또 회사 또한 이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네 언론사들은 기자들에게 이와 같은 보장을 잘 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책 <공룡 사냥꾼>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말 간헐적으로밖에 나오지 않는 논픽션 스토리를 정말 읽고 싶었다. 단순히 자신들이 쓴 기사들을 이것저것 여러 개 짜깁기 한 것이 아닌, 논픽션 스토리를 통한 보도가 존중받고 또 퓰리처상에도 있을 정도로 장려되는 분위기에서 나오는 그런 스토리들 말이다.
이 책의 1장은 위의 말처럼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 군더더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앞의 말들은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룰 공룡 사냥꾼의 일대기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손색이 없는 시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코 앞에서 만들어야 하는 긴장을 위한 밑밥이 아닌,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한 밑받을 위한 밑밥으로 이 책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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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취재기에 대하여
이 책 <공룡 사냥꾼>의 특이점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논픽션 스토리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논픽션 스토리 중에서도 공룡 화석과 얽힌 우리 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조명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고,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생태계 깊숙한 곳에 들어가 치열한 취재를 통해 나온 게 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에릭은 화석 사냥꾼이다. 어린시절부터 관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변 인물 중에서 한명이 몽골에서 공룡뼈를 상업화해 성공한 것을 보고, 따라서 해당 사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에릭은 몽골에서 문제가 되는 공룡의 뼈 하나를 만나게 된다. 신장이 2미터가 조금 넘는 T.바타르가 그것이다.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당신은 공룡의 뼈를 언제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공룡뼈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번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만약 이와 같은 희귀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고, 또 국가는 여기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 <공룡 사냥꾼>을 읽기 전에 외국 기자들이 쓴 몇몇 권의 논픽션 스토리로 나온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쁜 초콜릿>이나 <바나나>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초콜릿과 바나나가 어떠한 역사에 걸쳐서 우리에게 보급된 것인지, 또 이와 같은 것을 둘러싼 정치 경제 문제를 조명한 책들이다. 하지만 으레 나는 적지 않게 초콜릿과 바나나의 생산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기호 식품을 더 추가하자면 커피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일상에서 커피나 초콜릿 혹은 바나나에 대한 통찰은 우리가 판매대 앞에서 가격을 지불할 때 끝난다. TV에서 카카오가 맛있다고 하면 초콜릿이 아닌 카카오를 직접 먹어보기도 하고, 바나나에 관한 다양한 요리법을 소비한다. 커피는 조금 다양하긴 하다. 케냐AA냐, 예가체프냐, 블루마운틴이냐, 모카마타리 등등등. 어쨌든 전부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목격하고 소비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코앞에 있는 공정을 모를 뿐이지, 우리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서 공정무역이나 노동력 착취의 문제 등은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공룡 화성’이란 분야에 대해서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주 제한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공룡 뼈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성의 바윗돌에 있는 공룡 발자국에서 그 소비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공룡 화석을 거래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우리가 가끔가다 뉴스에서 목격하는 미술품 거래와 그렇게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물론, 나는 미술품 거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공룡 화석은 그나마 내가 어릴 적 공룡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흥미가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몽골이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도구를 남겼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일족은 동맹을 맺고 싸움을 했다. 높은 벽이 올라가서 그 넓은 땅을 빙 둘러쌌다. 부족 왕국은 13세기 후반에 한 지도자가 모든 부족을 통합할 때까지 전쟁을 벌였다.
칭기즈칸과 그의 직계 자손들은 말 등에 올라 세상의 절반을 정복했다. 그들의 독일, 아드리해 그리고 거의 빈까지 말을 타고 달렸다. <더 몽골스>에서 데이비드 모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극렬한 저항을 모두 물리친 군대가 유럽에서 맞수와 마주치게 되리라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물론 그들은 어떤 맞수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몽골제국은 역사상 육지로만 연결된 제국 중에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러시아를 지배했고, 이라크와 중국도 지배했다. - 170pp
이전에 봤던 논픽션 책들은 대개 치열한 취재기 혹은 입체적인 목적의 이해. 둘 중 하나만 해당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한 주제에서 오는 ‘차별성’의 문제와 시민들이 잘 알지 영역이란 ‘낯설음’의 문제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소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공룡 화석을 보고 이름을 외우면 외웠지, 이와 관련된 배경적인 지식을 어떻게 알겠는가. 일반 사람들은 경매 시장에 들어갈 일도 없을 것이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땅을 팔 일도 없을 것이며, 이와 같은 것들이 합쳐져 심화된 세계는 더더욱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이런 문제들이 법적으로 비화된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괴리된 문제로 알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 또한 포함된다.
1985년 봄,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87년 1월 27일, 국무주 조약실, 토머스 재퍼슨의 초상화 아래에서 미국과 몽골이 마침내 수교했다. 텍사스 출신의 외무부 직원 조지프 레이크가 몽골 최초이 대사로 지명되었으며, 곧 울란바토르에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1988년 12월 7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준비를 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입성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고르바초프는 뉴욕 유연 총회에서 했던 기념비적인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209pp
책이 주목하는 것은 에릭을 중심으로 만 벌어진 사건이다. 어쩌면, 한 개인의 서사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 사냥꾼>에서는 계속해서 공룡 화석과 관련된 정치‧경제적인 문제를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충분한 콘텍스트들을 공급해주고 있다.
어쩌면 이 책 <공룡 사냥꾼>은 끝까지 읽어 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든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이 글을 너무 못써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공룡이란 것을 거의 일상에서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공룡 화석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 독특한 사건에 대해서 이해하고 또 공감까지 하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 일수도 있다. 이 책의 독틈함이 바로 독자들이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지점일수도 있다는 것이다(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멧 데이먼 주연의 <마션>을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영화”라고 이야기 했다. 우주 개발을 하거나 해당 분야에 대한 텍스트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는 교과서 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특이한 취재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까에 대한 고민(이 책은 에릭에서부터 시작됐다), 또한 이 거대한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기자에게 중요한 복잡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로서 어떻게 전달할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까지. 누군가는 공룡 화석과 관련된 특별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나에겐 논픽션 스토리를 앞으로 쓰기 위한 교과서 같은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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