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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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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니?”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이니?” “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니?” 등등. 우리는 특정 상대방에 대해서 이와 같은 질문들은 던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질문들이 과연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코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줄까? 정답은 ‘아니다’가 될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배경에 관한 질문들은 결과론적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personality를 갖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주변 정보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더 강화시켜 그 사람의 온전한 personality를 왜곡하고 이를 신뢰하지 않게 만들수도 있다(물론 그 반대일수도 있다. 좋은 학벌을 가졌다고 해서 혹은 좋은 집안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의 personality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배경을 통한 추측은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배경을 통한 추측이런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출신>을 읽다가 나는 인터넷에 ‘유고연방’을 쳐 보았다. ‘ㅇ‧ㅠ‧ㄱ‧ㅗ’라는 글을 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또 검색을 통해 나온 콘텐츠를 보면서 또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서 들은 유고연방에 관한 것 이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은 과거 ‘유고 연방’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다. “지도는 바뀐다”고 하면서, 이 세상의 나라들은 지금도 없어지고 생기기를 반복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 유고의 경우 지도의 모양이 바뀌는 과정에서 ‘인종 청소’라는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했다. 유고연방의 해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온 비극적인 장면들을 상상했다. 같은 민족들이 갑자기 적대하며 싸웠던 것을 재연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유고연방에 속했던 사람들은 과거의 아픔 때문에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적대적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고연방을 검색한 뒤의 생각은 이랬다. “어떻게 이 다민족 국가가 하나의 통일된 국가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이렇게 고유의 영토를 갖고 있고 민족과 종교 그리고 문화가 다 달랐는데 말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에서도 나온 그들의 지도자 “티토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책 저자의 할머니인 크리스티나씨도 티토를 좋아했던 것처럼 나 또한 잠시나마 경외심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티토가 유고연방을 이끌었을 당시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위대했을까?”라고 한번 생각을 해봤다.
결과론적으로 유고연방과 거기에 속해 있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분열적이었고 모순적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옛 유고연방에 속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이와 같은 편견이 강화돼 질문의 형태로 그들에게 던져질지 모르겠다.
기억을 찾아가는 사샤,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
“어디서 왔니?”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이니?” “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니?” 등은 대개 확증편향을 일으키는 선에서 그 의미를 다한다. 앞에서 내가 ‘유고’를 검색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출신을 묻는 것이 온전히 편견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해당 질문을 시작으로 더 정확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정답을 찾고자 이것은 편견의 강화가 아니라,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있어서의 첫 번째 갈등이 될 수 있다. 출신을 물었을 때의 질문은 그 사람을 알고 이해하기 위한 과도기 중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 <출신>은 그 어떤 책보다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재 내가 내어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존재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처럼 말이다. 다민족구가에서 태어난 나는, 서로에게 사람을 느낀 부모님이 만들어 낸 결실이고 고백이었다. 서로 다른 출신과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용광로”가 두 사람을 해방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아버지가 폴란드계이고 어머니가 마케도니아계인 사람도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타율과 혈통보다 자율과 혈액형을 더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 19 ~ 20pp
저자 사샤 스타시니치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디폴트 값이 되는 나라가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디폴드 값이 사라지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외지에서 본토인(?)들은 격지 않을 장벽에 부딪히고 고충을 겪는다. 나라가 사라졌을 때, 해당 사회에서 엘리트층에 속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국가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을 살아야 한다. 정치학을 전공했던 사샤의 엄마는 세탁 공장에서 그리고 아버지는 공사장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혹은 그곳에서 그들의 ‘출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연이어 만났다면 그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 졌을지 모른다. 사샤가 ‘출신’이란 것에 대해서 단순히 신분을 물어보는 단순한 발화가 아닌 ‘한번 입으면 영언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 내는 능력’과 같이 입체적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그의 인생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딴 이야기로 세어나가 보자. 나라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나는 잠시 고민해봤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오늘날을 세계화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권과 비자가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리적으로 굳이 갈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든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곳을 여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여행이라는 여가를 즐길 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직장에서 노동을 하며 파견근무를 할 때에도 지도에 있는 선명한 국경선의 존재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재 나라가 없다는 것을 느낄 때는 바로 이러한 환경 덕분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나라가 사라지면서 그 나라에 져야 할 의무도 사라졌지만, 최소한의 울타리 혹은 권리를 보장해 주던 존재의 부제를 뜻하기도 한다. 사샤와 그의 부모 그리고 주변인물들까지,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말에, 최소한의 틀이 없어진 사건을 일상에서 겪게 된 것이다.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샤와 그의 친인척들에겐 권리의 증가가 아닌 권리의 부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늘 그렇듯 역시나 출신이군’ 하고 생각하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문제군요!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 44pp
“그들은 고향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혹 얘기를 하더라도 어떤 특정 장소를 언급하진 않는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모든 ”사람들이 계획을 가장 적게 세우는 고양이지“라고 말한다. 거기에 더해 고향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소재죠, 라고 나는 덧붙인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크리스티나가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나는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 86pp
이 책 <출신>은 어쩌면 단순히 이민자 유입이 많은 독일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외지인에 대해 말이다. 지지난 해, 예멘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몇몇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나가 그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미디어에 자극적으로 비춰졌던 해당 사건만이 아니다. 농촌이나 한국인들이 많이 가지 않는 3D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떨까. 개도국에서 왔다고 하여 그들은 임금 착취부터 시작해서 노동에 대한 존중 심지어, 한국인 사용자들에게 체류를 문제로 협박을 받는 일까지 있다. 어쩌면 이 책 <출신>을 처음 받았을 때 내가 떠올렸던 것 또한 이와 비슷한 것들이었다. 사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독일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반대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 일반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연대의 목소리를 낼 책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샤는 자신의 인생사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인생사를 빈곤포르노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파극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뿌리를 덤덤히 찾아 올라가면서 그 과정에 얽힌 여러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외할머니가 콩으로 점을 쳐주는 이야기, 낚시를 좋아하는 외할아버지, 뭔가 걸크러쉬가 느껴지는 크리스티나 할머니 등. 우리나라 책 <토지>처럼 뭔가 일반인들을 통해서, 이 시대 출신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샤의 과거. 크리스티나 할머이와의 과거 추억과 현재 치매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 등. 특별한 명확하고 가시적인 목적을 위해 글을 긴장감이 멈추지 않게 글을 끌고 나가기 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연결 짓는 방식으로 출신이 다름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 방식을 통해 단순히 사샤와 같이 유고 출신이 타지에서 격는 고충 및 정체성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오르게 한다. 그들과 내가 다른 형태로 똑같은 삶을 공유하고 있고, 결코 출신이 다르다고 해서 온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인 일 이지만 나 또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둔 적이 있었고, 사샤만큼은 아니지만 외지에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출신을 차근차근 어쩌면 다소 산만한 방식으로 사샤가 찾아가는 방식은 그래서 온전히 다른 경험과 배경에서 살아온 나에게도 부담 없이 공감을 하도록 만든다.
““할머니 집이 어디예요?”
“비세그라드에 있어. 내 작은 당나귀.”
“할머니, 우린 비셰그라드에 있어요”
“여긴 비셰그라드가 아니다.”
정말이자 할머니가 옳다고 말하고 싶다. 내게도 이 비셰그라드는 나의 비셰그라드가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비유적인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다. 할머니 말은 ‘날 데려다줄 수 있니? 내 사람과 내 물건을 옆에 두고 싶구나’라는 의미다.” - 234pp
“부모님은 전문 지식을 갖고 즐겁게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몰락하지 않으려고 주어진 모든 일자리를 수용했다. 우리 유고슬라비아 친구들의 처지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고용주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이득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임금은 낮고, 초과근무는 대개 강제적이고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차별 대우였을까? 그러나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비참했을까? 당연히 그랬겠지.” - 247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