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 김강 소설집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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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부 가까이 팔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웬지 모를 찝찝함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찝찝함은 소설을 다 읽고, 바로 이어서 신문을 봤을 때 그 찝찝함의 정체가 윤곽이 드러났다. 그것은 불평등에 관한 문제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 홍보 문구에는 대개 포스텍 석사 출신의 90년대생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작가가 나올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어떤 것을 느끼지 못할까. 즉 그 사람에게 부제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곧바로 그녀의 소설속에 베어져 있었다. 소설의 문체와 내용들은 이전까지 단편들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감각적인 언어들이 있었고, 스토리 또한 상당히 흥미로웠다(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SF를 통해 우리사회의 군상을 드러내면서, 어떻게 가장 빤히 보이는 불평등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건지도 정말 신기했다. 아마 그녀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해,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우린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은 조금 다르다. ! 물론 언제나 소설이란게 내가 원하는 통찰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시대에 가장 첨예한 고민은 그 안에 담겨야 하지 않을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에는 <우리가 빛의 속도라 갈 수 없다면>에는 없는 통찰이 담겨 있다.

 

미래의 이야기인가? 현재의 이야기인가?

 

우리가 만나게 될 미래란 어떤 모습일가. 사람들은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하고, 유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어쩌면 언제나 판타스틱한 디스토피아도 혹은 유토피아도 아닐지 모르겠다. 사회라는 이름의 중력. 기술은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 안의 권력 주위를 도는 위성과 같은 존재이니 말이다. 김 강의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은 이와 간련된 다양한 방면의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물론, 이는 시사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이고, (솔직히 생각건대, 미래에도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쉽게 풀릴 문제도 아니기에 시의성을 떠나서 언제나 현재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통찰들을 여러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있다.

“ 300년 전 이곳에 흘러들어온 조상님이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단지 풍랑을 만났을 뿐인데. 아니, 따지고 보면 이곳 누구의 조상이든, 모두들 이곳에 흘러들어온 사람들인데. 수천, 수만 년 전이냐 삼백 년 전이냐 작년이냐의 문제일 뿐. ”

 

내게 가장 재미있었던 소설은 그리고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것은 바로 <알로하의 밤> 부분이었다. 특이한 성을 가진 아이를 과거에는 동경하기도 했다. ‘’, ‘’, ‘’, ‘. 이상하게 끌리는 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유치한 이유로 차별을 받는 문제일 수 있는데,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이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언어유희를 통한 장난의 경험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만연한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아라히임> 또한 제법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흔히 우리는 외계인과이 접촉을 다른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과연 우리가 됐을 때, 우리는 어떻나 상상을 하게 될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다만, 솔직히 불만을 토로하자만... 참 표지가 정말 예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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