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재단과 리더십
박상언 지음 / 이음스토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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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광활하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풀 한포기도 없나, 신기하다 등. 광활한 황무지는 인간에게 수많은 생각이 스치도록 한다. 하지만 황무지를 보는 사람 중 황무지 개간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만큼 큰 압박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아는이상, 척박한 황무지의 면적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문화일을 하는 게 이와같은 황무지 개간하는 일과 같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서울과 달리 지방의 문화는 황무지다. 서울은 적어도 척박하지는 않다. 서울이라는 땅을 한번 돌아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서울이라는 땅은 문화라는 것을 관이 개입해서 더 흥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방은 다르다. 내가 황무지라는 비유를 쓴 것을 보면 알겠지만 지방에는 과거에 만들어진 문화를 제외하면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할머니들이 부르는 조선시대 노래, 할아버지들이 치는 장구. 그 정도 이상을 생각하기란 힘들 것이다. 지방의 문활를 보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길 없는 곳에 길 내기

 

사람이 길을 잃은 이유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한치 앞을 볼 수 없을만큼 복잡한 미로속에 들어와 있을 때 그렇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걸어도 주변에 뭔가 바뀐게 없이 텅텅비어 있을 때 그렇다. 무언가 척도로 표시할게 없고, 그것들이 쌓이지 않으니 일 자체도 안되는 것이다. 저자의 <지역문화재단과 리더십>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후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어떻게 사람을 설득하고, 어떻게 이끌고, 어떻게 이 지역문화라는 황무지를 개간할지의 플랜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그 상황에 맞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역 또한 다르지 않다. 전쟁에서 사용되는 장군의 리더십과, 전쟁 후 대통령의 리더십, 산업화할 때 대통령의 리더십, 민주화 때 대통령의 리더십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화의 옥토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과 같은곳에서의 문화재단 리더십과, 문화가 척박한 지방에서의 리더십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문화재단과 리더십>이라는 책은 마치 학술서 같지만, 한 개인의 고민이 잘 녹아든 개념서 같다. 저자가 지역문화재단의 장으로서 부임한 후, 했던 고민들이 사실적으로 잘 드러나고 정리되어 있다. 어쩌면 저자는 일기를 쓰고, 거기에 대한 해결발안을 과거 자신이 공부한 것을 통해 찾은 후, 현장에서 이러한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책은 지역문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지역 문화라고 하면 생각하는게 지역 축제다. 하지만, 지역 축제는 1년에 단 일주일도 하지 않고, 이것이 잘 치러지지도 않는다. 지역의 장들도 마지못해 나는 경우다. 이들은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가꾸어 나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대충 구색만 맞춰서 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흑자를 보는 축제가 화천 산천어 축제인데, 사실 화천에는 산천어가 없다. 그냥 주변에서 양식한 산천어를 공수해와 축제를 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가 이러 정도인데 다른 지역들은 안 봐도 비디오다. 부디 많은 지역에서 이 책을 통해 자기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수립해 나가야 하는지 그 기반이라도 닦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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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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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한다는 것을 의심한다는 것.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신뢰하는 것은 그대로 놓아둔 채 다른 부가적인 것들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가령 정치를 더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정치인들이 깨끗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만들기보다, 법을 더 만들거나, 다른 제도를 만들어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21세기 인간이 사회를 움직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정치와 같은 것들은 그나마 낫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합리성. 수학에 대한 맹목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수학적인 합리성은 거의 진리의 왕자다. 이 분야는 과학보다 더하다. 수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은 거의 신의 뜻이다와 맞먹을 정도로 그 의미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수학이 진리의 왕자이고 신의 뜻인 것은 수학이라는 분야 자체에서만이다. 수학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만이 수학은 진리이고 신이고 왕일수 있다. 인간들은 수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학의 합리성을 따리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학의 합리성을 언제나 신뢰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려 한다. 이 가운데 평균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인간을 옭아매는 평균

 

평균이라는 것은 사람을 옭아매는 한 기제다. 평균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폐급 취급을 받는다. 반 평균에 미치지 못한 학생들은 반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조리돌림을 당한다. 초등학교 때 만들어진 평균에 대한 신뢰와 이를 기반으로한 문화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굳게 믿고있는 평균이라는 것은 정말 신뢰할만한 것인가? 나는 묻고 싶다. 평균은 수학적이지 않은 개개인의 능력을 강제적으로 수학적 틀에 끼워 맞춰서, 그것을 다시한번 수학적 도구를 사용해 일정한 근사값을 갖는 과정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는 산술기하평균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 평균은 개개인의 입장. 즉 측정되는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일 것이다. 이 평균이라는 개념은 객체들이 어떻게되든 상관없이, 그 객체들을 일반화하고싶은 사용자(?)의 감정이 들어가 있는 산물이다. , 사람들을 일정한 기준을 통해 평가할만간 기구가 필요한 사람의 감정이 발현되어 만들어진 것이 평균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균은 우리 개개인의 합리성, 개개인이 갖는 potential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도 미래도 평균을 사용할 것이다. 내 생각에 평균을 사용하는 이유는 집단화로 사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든 boss는 존재한다. boss는 아래 직원들을 평가할 것이 필요하다. 과연 이 책의 제목처럼 <평균의 종말>이라는 것이 올까. 나와 내 아들 딸들은 평균이 종말을 맞이한 시대에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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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물리 이야기 잠 못 드는 시리즈
션 코널리 지음, 하연희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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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는 엠 에이입니다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힘이 가속도 곱하기 질량인지. 그 의의가 무엇인지.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냥 그렇단다. 그러니 시험에 이것이 나오면 그냥 질량이라고 써 있는 것과, 가속도라고 써 있는 것을 곱해서 정해진 단위를 서서 표기하라고 한다.

그 이후로 물리관련 책들을 거의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대학 때 마치 완성된 퍼즐이 어떠한 모양인지도 모른채, 어려 퍼즐 조각을 서로 끼우듯 물리 문제를 풀었다. 참 답이 없었다. 그런데고 그 것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물 리가 어려운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일상생활이 얼마나 물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상의 영토 넘어에 있는 것들은 그 윤곽도 모른채 그냥 하라는데로 계산을 할 뿐. 나에게 물리라는 것은 초등학교 때 배웠던 사칙연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그정도 수준의 물리밖에 할 수 없었다.

대학물리를 공부한 이후로 물리책을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봤다. 물리란 것이 얼마나 일상과 밀접한 것인지, 여기에 어떤 물리 법칙이 숨어져 있는지. or을 읽는 내내 과거를 회상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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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냥이가 들어왔어요 서울대학교동물병원 Health+ 시리즈 3
신남식.신윤주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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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그런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집에 있을 때는 얼마나 말도 잘듣고 귀염성도 많은걸요. 우리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실수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느 날 집 근처를 지나다가 본 광경이다.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었던 여성은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아이를 아꼈다. ! 참고로 이 사람이 안고 있는 아이는 사람이 아이만한 치와와였다. 그 사람의 치와와가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짖고 청바지를 물어뜯으려 했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것은 그 우리가 사람이건 동물이건 똑같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잘못됐을 리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도니 버릇을 고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잣못을 더 추진할 수 있고 종래에는 자신이 잘못하더라도 책임을 질 사람을 따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라는 말은 그 아이에 대한 애정은 충만한데, 그 아이에 대한 지식이 결여돼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사회성이라곤 생각지도 모하고 자기 자신과 그 아이만의 매우 근시적인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사회성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낼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그 아이의 부모 탓이 상당한 것이다.

무식하면 단순하다. 한 객체를 키워나가는데 있어 이러한 무식은 암과도 같다. “아 귀엽다를 생각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산 뒤, 그것을 버린다. 개가 들개가 되는 것은 요즘 뉴스에 잘 나오고 있다. 고양이는 원래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쳐도 말이다. 딱히 자신의 우리와 무 계획성 때문에 그렇게 버려진 동물들이 상당히 많다. 생명체는 물건이 아니다. 물건도 그 작동방법을 알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는 사는데, 우리에게 더 영향을 많미 미치는 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그냥 키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번쯤 고양이에나 개에 대해서 그냥 귀여워서 밥매기며 키우기보다 이런 책을 통해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며 배우는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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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 만에 아는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즈니스 연구회 지음, 이해란 옮김, 주식회사 블록체인 허브 감수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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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z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문제가 발생된 근본 모순을 찾아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소련의 한 과학자가 특허 20여 만건을 분석해 얻은 결과라고 하니 나름 신뢰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트리즈 이론을 만든 것은 과학 혹은 공학계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이론의 적용 되어야 하는 범위는 과학계만은 아닌 것 같다. 모순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연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치 체제라고 하는 민주주의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지 말자는 대서 탄생한 것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지 말자는 것 이었으나, 근대를 거쳐 현대에서는 한 정부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지 말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고대나 근대 왕이 갖고 있는 힘을 필터링해 갖고 있는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삼권분립이라는 사상이 등장했고, 이원집정부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무엇이 됐건 중심은 필요하되 중심이 수 많은 사람들을 통제할만한 힘을 빼앗자는 것이다.

자 여기에서 사회판 모순이 발생한다. 중심은 필요한데, 중심에 적당한 힘도 주어야 하는데, 그 정담함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중심이 없으면 한 나라로서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되어 버리고, 중심이 너무 강하면 강력한 권한에 의해 모두의 자유가 침해 당한다. 오늘날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하더라도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중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어쩌면 인류가 정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 맥락과 닿아있다.

인류가 명망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순은 어떤 사람의 장난질과 함께 슬슬 풀리는 분위기다. 바로 블록체인 덕분이다. “비트코인이라는 화폐를 가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특정 알고리즘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날 행정부의 강력한 권한은 행정부가 갖고있는 엄청난 정보에 달려있다. 행정부에 속해있는 수 많은 관할 부서들은 수많은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를 볼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행정부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역할도 강해진다. 정보가 점점 중앙집권화 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행정부가 하고있는 정보의 독점을 완전히 파쇄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블록으로 쪼개고 체인으로 엮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결시켜 놓는다. 이 상황만 봐도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 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60분만에 아닌 블록체인>을 읽으며, 블록체인을 통해 정부가 갖고 있는 강력한 권한이 사람들에게 분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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