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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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건 그런 순간일 것이다. 달라질 거라고 믿거나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거나."

마지막 실업급여를 받은 그녀는 알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약국에 취업을 한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관'하게 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아마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국으로 출근 후 그녀는 그곳의 약사로부터 '유령'이라고 명명해진다.

유령? 책에는 유독 '유령'이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왜 유령이지? 유령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라 그런걸까. 그렇게 부르는 약사도 또 받아들이는 그녀도 왜 유령인건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숨 쉬는 법을 모르던 물고기는 숨 쉬는 법을 잊은 물고기가 되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거대했다. 끝났다거나, 실패했다거나, 돌이킬수 없다는 말보다는 유령이 되었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면 유령은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있을지도 모르는, 없다고 믿고 있는 그런 존재인가. 하지만 위의 이야기를 바꾸어 말하면 끝난 것도, 실패한 것도, 돌이킬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약국에 첫 출근을 하면서 아직 1이 되지 못한 0에 가까운 자신을 체감한다. 1이 완벽한 숫자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0이 완벽한 숫자일수도 있다. 작가가 이야기 한 것처럼 0에 어떤 숫자를 더할수도, 곱할수도, 또 다른 숫자에 기대어 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0,0000001쯤이라고 느끼던 그녀가 앞으로 발을 내딛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문득 생긴 힘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한발 더 걸어나간다. 큰 깨달음이나 엄청난 행운이 필요한게 아니었다. 마음이 한 일이었다.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이 설레면서도 우울하다고 했지만 그렇게 1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녀는 마음속의 자신과 언제든지 이야기 나눌거라고 믿는다.

''낙엽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잖아요. 지구에 활엽수가 생긴 이래로 변한적이 없는 규칙이에요. 다만 떨어진 낙엽이 바닥 어디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수 많은 요소들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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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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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가운데 욕조가 놓여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목만 내놓고 물속에서 눈을 감는다. '당신'은 그런 그녀가 더 할수없이 편안하게 보였다.

"욕조는 거대한 바다로 변했고 바다는 다시 방으로 변했다가 욕조로 변했다가 했다."

욕조는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이다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고요'
자신의 아이와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사라져버린 바다로 가기 위해 그녀는 욕조에 몸을 숨긴다.

책의 화자는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지칭하며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고 명분을 만들어 내고서야 행동으로 옮기는 남자다. 가끔은 '당신'이 주인공을 부르는 건지, 읽는 나를 부르는 건지 모를 문장을 만났다.

그는 명분이 있어야만 행동한다. 명분이 없다면 만들고야 만다. 그래야 합리적으로 자신을 설득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명분은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 행동하기 위해 의미를 만들어내고 원하는대로 움직이기 위함이 아닌가.

그녀와 '당신'은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가 있는 곳에서 우연히 만나고 사랑을 한다. 아니, 사랑인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사랑이라고 오해한 걸까? 상처를 내보이지만 상처를 감싸주지는 못하는 '당신'과 그녀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

책에 나오는 인물들 그녀, 당신, 아내,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 괜찮은 듯 살고 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고 어쩌면 그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욕조에 몸을 눕히는 '당신'은 이제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기다릴거라고 생각한다.

전에 읽은 <사랑의 생애> 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작가는 단어의 반복을 통해 문장을 완성시키는데 또 그 문장의 반복으로 서로 대조적인 의미를 가져오는 효과를 심어 주었다. 그 문장들이 너무나 좋아서 필사를 했는데 소설이 짧아서 다행이다. 필사하다 읽는데 오래 걸릴뻔😂

"대개의 사랑은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니 당신의 무지는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사랑에 빠져 있다는 오해, 즉 환상이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인 오해의 정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승우 작가님의 책은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떠오르게 했다. 아마도 둘다 사랑에 대한 고찰이 엿보여서 그런듯하다. 읽는동안 너무 재미있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님의 다른 책이 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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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읽은 작가들 버지니아 울프 전집 14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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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 탄생 140주년을 맞아 출간된 책이다. 총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리스 문학에서부터 고전문학, 현대문학, 비극과 러시아 소설까지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울프의 시선이 48편의 에세이에 담겨 있다.

몇년 전 어렵게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올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작가의 이름만으로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의식의 흐름 '이라는기법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시시각각 변하는 작가의 내면을 따라 서술하여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도 역시 어렵다.

3부. <소설이라는 거울 : 19세기>

책을 받은 후에는 책의 두께에 놀랐고 또 그 내용은 더욱 어려워 놀랐다. 4부의 구성 중 한가지를 선택해 읽는 미션이었지만 일단 한 권의 내용을 끝까지 읽었다. 고전과 17~18세기에 해당하는 글은 잘 모르는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글이라 더욱 어려웠지만, 다행히 19세기 글은 제인 오스틴, 안톤 체호프, 살럿과 에밀리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허먼 멜빌, 토마스 하디 등 적어도 들어본 적이 있거나 읽어본 작가와 책이 언급되어 있었다.

''인간적 가치에 대한 완벽한 분별력을 이보다 더 많이 사용한 소설가는 없다. 친절함과 진정성과 신실함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보여줄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마음과 언제나 바른 분별력과 거의 엄중한 도덕성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표지판에 비추어 보여주는 것으로 영국문학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

이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울프의 비평의 일부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비평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고, 그녀가 읽은 수 많은 책들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와 비평은 감탄을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울프에게 있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의 작가를 알아가는 일이며 글 속에 담긴 이상과 현실과 과거와 미래까지 알아차리는 것인가 보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의 광대한 이야기가 놀라울 뿐이었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울프는 우리가 그녀를 페미니스트라고 기억하게 했지만 그렇게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울프 자신이 독자로서 쓴 이 책의 글을 읽으면, 여성으로서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읽고 쓸 수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감탄스럽다. 그녀가 읽은 수 많은 책과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 때로는 그녀만의 냉정한 비평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이 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적어도 책에서 언급하는 19세기 이후의 고전작가의 책들은 언젠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읽은 후 울프가 이야기하는 그 책의 비평을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의 질문에 울프는 올바르게 읽어야 한다는 그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르고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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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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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이다.
몇 권의 단편소설을 읽고나니 처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보다는 단편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점점 느끼게 된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디테일 하나.
책 날개의 일부를 뜯을 수 있도록 만들어 읽으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책갈피가 생기는 깨알같은 디테일이 있었다.

작가의 또 다른 책, 자서전 <숨을 참던 나날>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직접 감독으로서 영화화 작업중으로 작가가 살아온 양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에도 소수자나 여성으로서의 벼랑끝에 내몰린 삶에 대한 묘사가 많다. 소설이지만 설마, 이런일이 가능하다니...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책의 내용은 무겁다.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의 이야기, 불법장기 매매를 위해 아이들을 감금하는 이야기, 소수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 등 벼랑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벼랑위에 위태위태하게 서있는 사람들을 사회는 무심하게 밀어버린다. 그들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읽는 내내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어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다. 작가는 우리가 무얼 느끼도록 하고 싶었을까. 아픔과 슬픔만을 느끼기보다는 지금,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절망을 느끼며 서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메세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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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두스, 네가 참 좋아 - 스페셜 에디션 핀두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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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판본이 보통책의 거의 2배이고 Hard Cover 로 되어 있는지 몰랐는데 그래서 받아본 순간 감동과 함께 놀라움이!👍

이 책은 총 9권으로 구성되었던 스테디 셀러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 시리즈의 20주년 스페셜 에디션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야기와 스케치의 과정, 북한까지 전해졌다는 특별한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이미 많은 나라로 수출되었고 영화, 애니메이션, 텔레비젼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는 이 책은 고양이 핀두스와 페트손 할아버지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이야기 다섯편을 묶어 만든 그림책이다.

시골의 작은 농장에서 조금은 외롭게 홀로 지내던 페트손 할아버지에게 새끼고양이 핀두스가 오게되고 둘은 특별한 친구가 되어 펼쳐지는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 작가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직접 그렸는데 익살스러운 등장인물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미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평소 핀두스를 알고있는 독자라면 소장하고픈 마음이 뿜뿜 솟아오를듯 하다.

핀두스의 그림책은 어린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대도둑 호첸플로츠'가 저절로 생각나게 만들었다. 아마도 재밌던 내용만큼이나 그 속에 담긴 어렸던 시절의 순수한 감동과 기억까지 함께해서 가치가 더해지는 것 같다. 나의 경험처럼 핀두스 시리즈도 많은 아이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으리라.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따뜻한 기억까지 함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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