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Stop; '아무것도 아닌'을 위하여 보통날의 그림책 3
토미 웅게러 지음, 김서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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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도, 나비도, 생쥐도 사라졌다. 

풀과 나뭇잎은 시들어 버렸다.

꽃들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와 건물은 텅 비었다.

사람들은 모두 달로 떠났다.


(본문 중에서)​




바스코는 홀로 남았다.

언제나 "딱 때맞춰!" 도와주는 그림자와 함께.

그러니 실은 혼자인 줄 알았으나 영영 혼자는 아니었다.

땅이 꺼지고 건물이 무너져도 바스코는 살아남았다.

"딱 때맞춰" 이루어지는 섭리가 바스코를 줄곧 인도했다. 

바스코는 어떻게 매번, 때맞춰 그림자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챈 걸까? 

이것을 섭리 외에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예수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예수와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분의 발자국이 보일 때도 있고, 한 사람분의 발자국만 보일 때도 있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발자국이 한 사람 것만 보일 때는 그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그는 예수께 크게 화를 냈다.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당신을 믿고 따랐는데 당신은 그때마다 나를 버렸군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단 한순간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네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마다 나는 너를 업고 걸었단다."


전쟁, 고물가, 취업난, 기후 위기, 고독사….. 실로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싶게 어려운 시기이다. 어쩌면 당장 처한 상황에 매몰되어 세상을 등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바스코에게 그림자가 있었듯 나에게도 그와 같은 존재가 있어 늘 내 곁에 머물며 "딱 때맞춰" 나를 인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존재가 신이건, 가족이나 친구이건, 중요한 것은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더라도 그 작은 희망이 나를 붙드는 한, 내가 그 작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 한 아직은 세상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이 아무것도 아닌 얇은 그림책 한 권이, 토미 웅게러가 외치는 음성이 가볍지 않은 그림 위로, 길지 않은 문장 틈으로 전달된다. 출판사 서평과 같이 그야말로 '희망 없는 세상에 남긴 희망의 묵시록 같은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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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여행
국지승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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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기만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바로의 여행’ 이야기를 지었다. 그리고 나라는 엄마는 내 아이가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바라는 엄마가 되길’ 바라며 바로의 이야기를 읽었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부모 뜻대로, 부모의 설계대로만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내 부모도, 내 부모의 부모도, 또 그 부모도…..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이라 생각하는 길을 알려주려 하는 거겠지만 우리는 자신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부모님이 알려주시는 최선의 길이라는 게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편집부에서 원고 독촉을 하니 빨리 다음 책을 완성해야 하는데, 작가 다영 씨의 마음과는 달리 바로는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아 한다. “왜 맨날 달려야 해요?” 급기야 다영 씨의 책 속을 벗어난 바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며 끝없이, 끝없이 걸어간다. 그 길의 끝에서 바로는 어떤 답을 찾았을까? 답을 찾아야- 하는 걸까?


이변이 없는 한 길고 긴 인생, 좀 돌아간다고 큰일이 날 것도 아니고,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세상이 무너질 것도 아닌데 우린 왜 그리 안달을 내며 가라는 대로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안타까워할까? 왜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아이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 옳으니 나를 따르라 강요하게 되었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살아온 길을 부정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나를 존중한다면, 내 아이를 존중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가 찾은 것이 어떤 답인지를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바로가 어떤 길을 가보았는지, 그 길에서 어떤 즐거운 일을 겪었는지, 그 일들이 바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물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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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 우리 시각으로 다시 보는 서양미술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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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생각났다. 출처는 모르겠지만 집에 그 책이 있었는데, 스스로 활자 중독일 것이다 말하면서도 용케 그 책만큼은 읽지 않았다. (본래 자기 계발서 류를 제일 싫어한다) 그래도 주워들은 바가 있어 대충 어떤 내용일 거다,라는 감은 있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이 책, <이주헌의 서양 미술 특강>은 그처럼 나와 다른 세상에서 발전해 온 미술을 이해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나와 같은 일반인까지 폭넓게 접근이 가능한, 미술 입문자용 책이다.


한 나라의 언어가 사용하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에는 반드시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때의 정신이 반영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 작품을 통해 그 시대를 느껴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시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작품에 더 깊이 다가갈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작가를 그렇게 만든 시대에 대해 알고, 그런 시대를 불러일으킨 역사의 흐름까지 이해한다면 2차원 평면의 그림이 문득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그런 것이 없이는 제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 한들 하품이 날 뿐이다.


하지만 그림 한 장 잘 보겠다고 거창하게 공부씩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것대로 영 골치 아프다. 막말로 내가 대단한 예술가가 될 것도 아닌데 무슨 파니, 무슨 기법이니,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마치 이런 반박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책은 쉽다. 책 첫머리에서부터 저자는 '어차피 100% 다 알 수 없어, 그냥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알고 이해하면 된다'라고 안심시킨다. 전문 서적처럼 일반인은 듣는 것도 처음인 어려운 용어는 나오지도 않는다. 차근차근, 조곤조곤,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동서양의 문화와 미술의 관계,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준다. 어려운 미술 서적을 읽는 게 아니라 문화 해설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작품을 보고 설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최종장이다. 과연, 17년(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강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사람을 이렇게 홀리다니!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읽기 시작한 책을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마무리 지었다. 두 시간 남짓, 소설 한 편 읽는 것만큼이나 가뿐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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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삽시다 쫌! 인생그림책 17
하수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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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는 온통 혐오와 차별에 덮인 듯 합니다. 남혐, 여혐에 이어 맘충이니 틀딱이니 하는 보기만 해도 눈쌀 찌푸려지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꼰대니 세대차니 하는 것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통신이랄게 없었으니 크게 확대될 일은 없었겠지요. 하지만 스마트폰이 나타나고, SNS와 같은 네트워크 세상이 전 세대로 확장되면서 이와 같은 갈등은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고 매우 빠르게 우리네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 <같이 삽시다 쫌!>은 비둘기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를 그려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를 싫어하죠. 비둘기들의 울음소리도 기분 나쁘고, 비둘기가 날아오를 때면 날개에서 온갖 기생충이 떨어진다고 피하기 바쁩니다. 언젠가부터 비둘기에게 모이 주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현수막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평화의 상징이라던 비둘기의 위상은 이제는 더 떨어질 곳도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비둘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는 머물 집이 없는 들개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집이 있더라도 풀어놓고 키우는 개가 많았어요. 도시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그런 개들을 참아주지 못 하고 모조리 잡아들였어요. 지금은 어쩌다 혼자 돌아다니는 개를 만나면 저도 깜짝 놀란답니다.

고양이도 있지요. 개와 달리 높은 곳으로, 구석진 곳으로 곧잘 숨어드는 능력 덕분에(?) 씨가 마르는 일은 피했지만, 갈 수록 고양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는 높아지기만 합니다. 개 정도의 위력이 없다보니 곧잘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곤 합니다.

저는 이런 동물들에 대한 혐오가 결국 사람에게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의심해봅니다. 흔히들 연쇄살인마의 시작은 나비, 잠자리 등의 곤충에서 개, 고양이와 같은 작은 동물들을 거쳐 사람에까지 이른다고 말하죠. 혐오 정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척,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것에 대한 분노- 사람을 불편하고 불쾌하는 것들을 싫어하는게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정이란 것은 늘 확대되고 증폭되기 마련입니다. 시작은 ‘우리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 것’에 대한 혐오일 지 몰라도, 종국에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내가 아닌 전부’에 대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반드시 서로에 대한 양보와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배려하기만 하는 관계는 가족 간이라 하더라도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려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불편하다고 죄다 없애버리는 일을 언제까지 하면 딱 좋아질까요? 비둘기를 다 없애면, 고양이를 다 없애면, 노인을 다 없애면, 시끄러운 아이들을 다 없애면, 여자를 다 없애면, 남자를 다 없애면, 그런 뒤엔, 뭐가 남을까요?

우리, 같이 삽시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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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사라지다 - 삶과 죽음으로 보는 우리 미술
임희숙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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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은 누구든, 무엇이든 죽는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그 육체를 남기지 않고 이 땅을 떠난 이는 에녹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는다면) 사고하는 존재인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무수한 고찰과 그로 인한 여러 형태의 흔적을 남겼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고미술에 남아있는 바로 그 흔적- 삶과 죽음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적은 곧 역사다. 개인의 것이건 보다 큰 세상의 것이건 우리는 누군가 남긴 흔적을 통해 역사를 읽는다. 까마득히 먼 과거 언젠가 만들어졌던 미술품, 혹은 생활용품들은 그래서 늘 흥미롭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생각으로 살았던 것일지를 다른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기에 보는 이의 상상과 추론이 첨가된다. 상상력이 빈곤한 나 같은 사람은, 그래서 책을 읽으며 모자란 능력을 보충한다.


저자는 하고많은 것 중에 굳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골랐다. 태실을 통해, 무덤 속 그림과 껴묻거리들을 통해, 당대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남겨놓은 고미술품을 통해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던 자세에 대해 상상하고 사유한다. 반드시 죽을 것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살아간 삶들을 바라본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지고 살아가던 사람들, 죽었으나 그대는 살았노라 위안하던 이들, 신분고하와 생물의 종을 막론하고 치열한 삶을 다한 끝에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심하고 담백한 어조로 톺아본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입니다, 하지 않고 이것을 만들려면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았겠습니까, 한다.


그저 이름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유물들이 지닌 의미에 눈이 떠지고, 책장 속 그림들을 보며 저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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