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뜰에서 작은 곰자리 64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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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때로 글보다 그림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런 책을 만난다고 심장이 쿵쾅거리지는 않는다. 다만 잔잔한 척하며 공광 공광 공광 - 한다. 고요한 수면 위로 아주 작은 돌 하나가 떨어져 만들어 내는 파문 같은 것이다.

이 책의 그림을 담당했다는 시드니 스미스는 그런 파문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서슴없이 그은 듯한 굵은 붓 터치 안에 담아낸 이토록 세밀한 표현이라니, 이런 건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 부럽다 -!

화창한 아침 햇살을 등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하는 바바, 손주의 말랑한 볼을 아플 세라 살짝 꼬집고 어루만지는 바바의 손 -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기에 나는 바바의 뜰에서, 바바와 사랑을 나누며, 바바를 닮아간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사랑을 쌓아간다. 이해의 주머니를 채운다.

바바를 위해 주울 수 있는 모든 지렁이를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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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언제나 우리의 친구 레인보우 시리즈 3
사라 페르난데스.소니아 로익 지음, 최서윤 옮김, 정수영 감수 / 놀이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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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류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주제에, 산책이라는 단어와 참 무관하게 사는 주제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길을 걷는 일은 상상으로도, 실제로도 행복하다. 숲은 내게 로망이고 쉼이며 평안이다.

이 책에는 많은 글씨가 쓰여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참 많은 삽화가 실려있다. 굳이 글을 다 읽지 않더라도, 그림만 보면서도 숲에 대한 것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 우리, 지난여름에 숲에서 텐트 치고 밤을 보냈지? 그때 멧돼지들이 근처까지 와서 무서웠잖아.
- 이것 봐, 너 어릴 적에 우리도 낙엽을 이만큼 던지며 놀았었는데, 기억나? 낙엽 더미에 누웠다가 강시 놀이도 했었지.

아이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교감하기도 좋고, 마음 내키는 대로 책장을 넘기며 숲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릴 적 집에 있던 문학 전집을 1권부터 차례로 읽어야 했다면 아마 그 책들을 다 읽어내지 못했을 거다. 내게 맞는 순서대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만큼. 나머지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거다.

지인이 구름국화라는 생소한 식물을 보여줬다. 몹시 키가 작고(나처럼) 솜털이 잔뜩 나 있었다. 백두산 고산 지대가 고향이란다. 숲에 있는 것들은, 숲은, 이처럼 그 생긴 모습으로 그들이 겪어온 과거와 현재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요즘 캠핑 붐이 엄청난데, 굳이 공기 좋은 곳에 가서 불멍이랍시고 연기 들이마시지 말고 함께 숲길을 걸으며 우리가 딛고 있는 땅에 대해, 이 땅 위에 자리 잡은 숲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숲은 언제나 우리의 친구> 한 권이면 소재는 충분하다.

그런 이야기들이 멋진 그림과 함께 잔뜩 들어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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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경계에서
미카이아 존슨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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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개의 지구, 380명의 나 -


“무려 372개의 지구에서 나는 죽었다. 아니, 이제는 373개로 늘어났다.”

(1장 15쪽)


멀티버스니 뭐니 해서 꽤나 어려운 과학 얘기가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런 것 없이 이야기는 술술 읽힌다. 잘난 척 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줄줄 늘어놓는 그런 부류는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는 손이 자꾸 멈추는 건,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 때문이다.


나와 같은 얼굴을 한, 나인데 내가 아닌 존재들. 같은 지구가 아니라서 이름도 다르고 세세한 삶도 다르다. 문과인의 입장애서 평행 우주라 하면 복사해놓은 듯 모든 지구에서의 삶이 같아야할 것 같은데, 어떤 지구에서는 좀더 일찍 죽고 또 다른 지구에서는 좀더 살아남는다. 어디에선 애인 취급도 제대로 안 해주는 최하층민 신세인데 저기에선 최상위 계층에 제대로 된 연애도 한다. 그러면 그 모두는 내가 아니라 다 다른 사람으로 봐야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결국 나라서, 내가 멀쩡히 살아있는 한 그 지구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은야메가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했으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 곳에 입성하는 나. 이건 대체, 어떤 기분이란 말인가!


와일리시티의 델과 애시타운 루럴스의 카라는 장벽으로 계급이 나뉘었고, 이 둘은 장벽이 존재하는 한 섞일 수 없다. 다만 카라는 “횡단자”이기에 장벽을 오고갈 수 있는- 엄밀히 말해 어느 곳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처지이다.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무릅쓰고 쉬지 않고 다른 지구를 향해 떠도는 것은 카라 자신이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바다를 찾는 행위인 것일까?


하도 여러 지구를 돌아다녀 헷갈리긴 하지만 문장이 막히는 곳은 없는 편이라 그럭저럭 이야기를 쫓아갈 만 하다. 중간중간 자꾸 뒤통수를 치니 지루할 틈도 없다. 뒤로 갈 수록 사건은 긴박해지고, 이러다 다 죽고 끝나는 건 아닐까 싶어 조바심이 난다.


경고하건대- 부디 이야기를 끊지 말고 한번에 쭉 이어보시라. 이런 책은 끊어 가면 재미가 확 줄어들기 마련이다. 다행히, 끊고 싶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 재미있다.

무려 372개의 지구에서 나는 죽었다. 아니, 이제는 373개로 늘어났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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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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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너무 특별해서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고,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가 되어버릴, 그런 기분이다. 그럼에도 시간의 힘이 기억을 능가해서 결국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 자체로 나를 괴롭게 한다. 누군가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망각을 신의 축복이라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만큼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책한다.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웃음이 멈춘다. 다시 자책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희미해지는 기억은 죄책감으로 변해 쌓인다.

그러나 잊어버렸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단지 잊어갈 뿐이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특별했던 순간 순간은 어떤 형태로든 내 속에 남아 나를 이뤄간다. 잊어도 괜찮다, 함께 하는 동안 충분히 사랑한 것이니 괜찮다고, 그러니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해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아직도 충분히 괜찮지는 않다. 충분히 사랑했던 게 맞을까,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다 해도 함께 했던 그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겨우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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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는 우리 1 - 인간은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을까 멈출 수 없는 우리 1
유발 하라리 지음, 리카르드 사플라나 루이스 그림, 김명주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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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는 진짜 목적은 죽은 사람들의 꿈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야”
(서문 중에서)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꽤나 유명하다. 심지어 책 표지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게 함정. 돌이켜 보면 한두 번쯤 읽을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용케 피해 다녔다. 솔직히 제목만 들어도 지끈지끈 머리가 아플 것 같지 않은가. 그래도 김영사에서 어린이 버전으로 나온 원고를 출판해준 덕분에 아이를 핑계로 나도 간단하게나마 저자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되었다. 김영사 굿, 유발 하라리 굿!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없을 수준이다. 인간이 아직 인간이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떻게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되었는지, 동굴에 숨어 다른 짐승들의 위협에 벌벌 떨 뿐이던 연약한 존재가 어떻게 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유일무이한 지구의 지배종으로서 어떻게 지구를 지켜야하는지-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인정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상상한 영역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사유해야 했을까.

지나치게 과격해진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록 해악한 종이 없다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에뜨랑제’라는 소설에서 저자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인간이 정착한 곳에선 어김없이 동물종의 평균 80%가 멸망한다며 비난한다. 유발 하라리 역시 이 책의 4장에서 사피엔스 때문에 사라진 거대 동물들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들 대부분도 알고 있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이 땅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인간을 제외한-사실은 인간까지 포함된- 동식물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 말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무조건 사피엔스를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기술하면서도, 그 안에 희망을 깔아둔다. 사피엔스의 잘못을 이유로 사피엔스가 가진 능력을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잘못을 바로잡을 힘이 있음을 강조한다. 사피엔스가 이 땅을 지배할 수 있었던, 오늘날 우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그 힘.

총 4권 시리즈로 기획되었고 1년에 1권씩 출간할 예정이라는데, 아무래도 못 기다릴 것 같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더라도 ‘사피엔스’를 읽어봐야겠다. 전혀 다른 사상인 듯 하면서도 묘하게 성경과 오버랩되는 부분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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