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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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라는 건, 그저 운일까? 사람끼리의 만남에서 기어이 인연이라 할 만큼 잘 맞는 남녀가 제때에 만나려면 어찌해야 좋을까?

초초난난은 어긋난 시기에 만나버린 인연을 다룬다. 잇세이 영감님 말마따나 사람은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실수로 안 맞는 상대와 결혼하기도 한다. 그러니 실수했다 치고 두 사람만 생각하면 좋은 일일 테지만, 필연적으로 그 관계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이런 씁쓸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책이 참 아름답다, 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엔티크 기모노를 다루는 터라 분위기가 시종일관 침착하다. 다루는 물건이 물건이다보니 매일의 식사도, 이웃과의 다과도 어딘가 격을 갖추었다. 허투루 살지 않는다.

일본의 전통미를 과하지 않게 담아내어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이대로 충분히 좋을 듯도 했다. 워낙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서이다. 나 자신은 고리타분하고 귀찮은 전통 따위가 다 뭐냐는 식인데도, 그저 이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 내 삶이 살짝 나아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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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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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책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이나 문체만 봐서는 한없이 가벼운 책인 것 같은데, 하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니. 자꾸 그 내용을 언급하니 이제라도 다시 도전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 시도했다가 엎어진 적이 있다) 책을 끝까지 읽은 뒤에 든 생각은- 아, 이 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했구나, 였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한다니, 그렇다면--!!

이 책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키(Key)가 되는 단 선생은 체질적으로 비말 감염을 통해 타인의 미래를 잠시 볼 수 있는 능력자지만,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세상이 썩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죄의식과 무기력의 경계 즈음에 서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선생은 무기력에 빠진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청년들을 상징하는 인물일 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존재를 테러로 잃은 동우회 회원들은 또 어떤가. 남은 생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은 듯한 그들은 모여서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주 약간의 희망과 더는 어쩔 수 없는 더 깊은 절망을 선사할 따름이었다. 이들이 영원히 반복될 인생에서 절망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 걸까? 인생을 허무로 점철시키지 않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게 없느냔 말이다.

한없는 우울에 빠질 법한 이야기를 책 속의 책이라는 액자식 구성으로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라는 만담 콤비를 내세워 절묘하게 무게 균형을 맞춰내는 능력이 꽤 돋보였다. 이런게 이 작가의 특색이라면 기꺼이 다른 작품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 어디까지가 - 책 속의 - 허구인지, 어디서부터 - 책 속의 - 현실이 이어지는지, 언제쯤 이 난장이 해결될 것인지 부지런히 좇아가다 보니 500여 쪽에 달하는 이야기도 슬슬 끝이 보이더라.

되도록 스포를 하지 않으려다보니 밑도 끝도 없이 주절거리게 됐는데, 이건 분명하다. 이 책은 가볍지만 단순하지 않고, 그럭저럭 반전이 있으며, 결국엔 나쁘지 않게 마무리된다. 책 속의 우울(을 느낄 여유도 없지만)에 잠식당할 염려는 없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말하리니,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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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타고 조선 너머 샘터어린이문고 73
오진원 지음, 최희옥 그림, 이지수 기획 / 샘터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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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3대 기행문을 남긴 조선 관리 '최보'

◎ 해적으로 오해받은 진상선의 책임자 '김대황'
◎ 지혜와 예술로 살아남은 무관 '이지항'
◎ 조선 바다를 떠돈 과거 수험생 '장한철'
◎ 세 나라를 표류한 홍어 장수 '문순득'


이 5인의 공통점은? 항해 중 조난을 당해 표류하며 얻은 경험담을 글로 남겼다. 특히 최보가 쓴 <표해록>은 중국의 3대 기행문으로 꼽힐 만큼 당시 중국의 생활상과 문화를 상세히 기록했다고 하니, 역시 사람은 어디에서나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볼 일이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 만큼 제주에서 배를 띄웠다가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주에서 난파된 배가 베트남, 필리핀까지 간다고?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구나! (지알못.. 지리 취약자의 감탄사) 이중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과거 시험 보러 가려다 난파당한 '장한철'의 이야기였다. 어찌 그리 주워들은 내용이 많던지! 이 사람은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도 잘 살아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지와 용기를 갖추었고, 생존 지식도 풍부했다. 세상에 버릴 지식 따위는 없다는 말의 산증인 아닐까?


한 편의 이야기 뒤에는 당시 등장인물이 표류했던 지역에 대한 토막 지식들이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실려있는데, 이게 또 잔잔하니 재미가 있다. 나로서도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 더러 있어 흥미로웠으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이분들 말고도 다른 표류기가 있다면 한 편을 더 내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기왕이면 이야기에 살을 더 붙여 중장편 정도로 만들어주면 청소년 이상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K-스토리, K-표류기!


솔직히 로빈슨 크루소라던가 15소년 표류기 같은 해외의 표류 관련 작품들은 재미있게 읽고 기억하면서 정작 내 나라 사람들이 겪은 일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참 부끄러웠다. 하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인데, 기술이 그토록 발전한 지금도 선박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그런 것조차 없던 과거에는 오죽했겠는가.


살아남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을 그때에, 나라 밖을 벗어나는 것이 큰 두려움이었을 그 옛날에- 기어코 삶을 붙잡고 가진 재기를 총동원해 그저 살아남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와 기록까지 남긴 선조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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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Q대학교 입학처입니다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제훈 지음 / &(앤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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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학교 입학처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1년에 걸쳐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가 실제 대학 입학처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작품을 썼다는데, 그래서인지 묘하게 상세하고 현실감 있다. 하긴,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한다 해도 직접 겪은 일만큼 정확하진 않겠지. 덕분에 등장인물들 면면이 하나같이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사계절 농촌의 일상과 먹거리 풍경을 담아낸 '리틀 포레스트'처럼 동 분량의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독님들, 보고 계신가요?


연인과의 크리스마스도, 새해 일출도 챙기지 못할 만큼 바쁜 입시처 직원, 일을 돕긴커녕 본인 입 털기 바빠 되려 일을 방해하는 꼰대 상사(나도 겪어본 바 있다), 사명감에 활활 타오르다 현자타임에 소멸해버린 중간직, 대학 입시의 이면을 너무 잘 알아 무리해서라도 제 자식은 해외로 보내고픈 부모, 입학 사정관이 꿈이라는 학생에게 "정규직이 돼라"고 충고하는 현직 입학 사정관, 어떻게 해서든 제 자식을 의대에 보내고픈 진상 스토커와 모자란 자식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말에 십수 분을 오열하는 어머니,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책 한 권을 빼곡히 채운다. 지루하지 않은 문장, 짧게 이어지는 챕터들, Q 대학교 입학처를 에워싼 사계절이 어느 틈에 한 바퀴를 돌았다.


내 수험생 시절이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하지만 모르는 척해야지) 재고 따지고 하는 것을 원체 귀찮아해서 안 되면 말고 정신으로 대충 넘어갔었는데, 이렇게까지 치열할 일인가! 분명 나도 겪었던 대학 입시인데, 그 뒷면에 얼마만큼의 노고가 담겨 있었는지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원서접수비 비싸다고 욕했었는데, 반성한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도 없고, 공짜도 없다. 사회인 만세! 힘내라!

가장 위험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자신이 평가한 걸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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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맥베스
하야세 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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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맥베스였을까. 그 어두침침한 이야기의 어느 부분이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이 밤에 옆집 노부부는 왜 또 싸우는 걸까.) 끊임없이 죽이고 죽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치고 이 책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담담하다.

해외출장이 기본인 영업직으로서 큰 공을 세웠는데도 담담, 공을 세운 직후 승진을 가장한 좌천에도 담담, 여자의 고백을 받을 때도 담담, 해선 안 될 일들을 해나가는 중에도 담담.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이 배제되다니. 유이치는 사이코패스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동료의 감정을 잘 파악해서 배려하는데?

뭔가 이상해 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어느새 절정에 올라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재미가 있는 이야기와 없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나는 문장이 유치하건 설정이 작위적이건 (이 책이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면 충분하다고 간주한다. 요약하자면, 재미있다!!!!

미스터리는 특히나 트릭이라던가 결정적인 힌트를 말할 수 없어 너무 답답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러고보니 작중 반이 초반에 한 말이 있다.

“결말은 비밀로 해주세요. 같은 이야기는 안봐도 뻔하지.”
“결말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두번 봐도 시시하다고 광고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야.”

확실히, 재미있는 책은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 세번째 보는 위기 상황도 여전히 쫄깃하다. 하지만 말이지 - 그렇다고 최초가 될 기회를 뺏는 건 잔인하잖아? 누구에게든 이야기를 처음 만날 권리가 있는 법이다.

경제 소설? 범죄 소설? 연애 소설? 그런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저 -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그가 겪을 법한 인생의 다양한 장르가 죄 언급될 뿐이다.

작가의 당부처럼, 재미있게 읽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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