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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묘한 책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이나 문체만 봐서는 한없이 가벼운 책인 것 같은데, 하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니. 자꾸 그 내용을 언급하니 이제라도 다시 도전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 시도했다가 엎어진 적이 있다) 책을 끝까지 읽은 뒤에 든 생각은- 아, 이 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했구나, 였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한다니, 그렇다면--!!
이 책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키(Key)가 되는 단 선생은 체질적으로 비말 감염을 통해 타인의 미래를 잠시 볼 수 있는 능력자지만,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세상이 썩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죄의식과 무기력의 경계 즈음에 서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선생은 무기력에 빠진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청년들을 상징하는 인물일 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존재를 테러로 잃은 동우회 회원들은 또 어떤가. 남은 생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은 듯한 그들은 모여서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주 약간의 희망과 더는 어쩔 수 없는 더 깊은 절망을 선사할 따름이었다. 이들이 영원히 반복될 인생에서 절망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 걸까? 인생을 허무로 점철시키지 않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게 없느냔 말이다.
한없는 우울에 빠질 법한 이야기를 책 속의 책이라는 액자식 구성으로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라는 만담 콤비를 내세워 절묘하게 무게 균형을 맞춰내는 능력이 꽤 돋보였다. 이런게 이 작가의 특색이라면 기꺼이 다른 작품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 어디까지가 - 책 속의 - 허구인지, 어디서부터 - 책 속의 - 현실이 이어지는지, 언제쯤 이 난장이 해결될 것인지 부지런히 좇아가다 보니 500여 쪽에 달하는 이야기도 슬슬 끝이 보이더라.
되도록 스포를 하지 않으려다보니 밑도 끝도 없이 주절거리게 됐는데, 이건 분명하다. 이 책은 가볍지만 단순하지 않고, 그럭저럭 반전이 있으며, 결국엔 나쁘지 않게 마무리된다. 책 속의 우울(을 느낄 여유도 없지만)에 잠식당할 염려는 없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말하리니,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