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존재하는 개 - 개 도살,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파카인 지음 / 페리버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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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작가가 러프하게 스케치한 그림들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도살당하고 있을 수많은 개들의 이야기'를.

맘 편히 쉬기 어려운 뜬 장에 갇힌 무수한 개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개가 눈앞에서 끌려나가 죽임을 당하고 피를 뽑힌다. 내 차례가 바로 다음일지 혹은 여러 날 지난 뒤일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희망이란 없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 도살장이 문을 닫고 구조되어 좋은 가족을 만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부일 뿐, 지금도 희망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는 개들이 도처에 있다.

'하잘 것 없는' 생명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같은 인간을 존중하기는 더 어렵지 않을까.

글자 하나 없이 마음을 울리는 큰 힘. 그 힘이 이 책에 있다. 더는 힘든 이야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나 현실을 마주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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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 사랑의 내공을 높이는 64편의 인문학적 사유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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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두줄?) 소개 :
사랑이 시들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이자 한 여인을 향한 인문학자의 사랑 고백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다!”

나는 병이 있다. 내가 아는 사실은 당연히 남들도 알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법한 이 유명한 문장은" 하다 작가님의 남편분이 고백할 때 했다는 사랑의 결단이다. 남의 남자의 고백에 이끌려 하다 작가님의 팬이 됐는데, 이제 그 기인의 사랑 고백서가 출간된 것이다! 이유는 하나,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서 아내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내용일까나 하며 남편에게 먼저 읽어보라 권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음,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사실 나보다 남편이 더 잘할 때가 많다.

인문학자의 에세이라길래 약간 걱정도 됐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 읽히는 문장이었다. 하다 작가님의 전작인 <독신주의자와 결혼하기>나 <웰컴 투 더 신혼 정글>에서 읽었던 부부간 에피소드의 <그 남자편> 같은 느낌이라 꽤 흥미로웠다. 관점은 달라졌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랑을 결단한 이후 보여진 남편의 행보다.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결단한 이의 행위로서 증명되는 사랑이다.

이혼이 결혼보다 쉬운 요즘, 결혼을 앞둔 모든 이들이 꼭 먼저 읽어봤으면 싶다. 하다 작가님의 책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줄글로 풀어놓았기에, 또한 사랑의 결단을 받은 이가 아니라 결단한 이의 보다 능동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좀더 명확하게 보인다. 이것은 비단 남녀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포괄적으로 적용 가능한,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지침서이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이 모든 것에 사랑을!
(마르코 안토니오 드 도미니스, 본문 중에서, 41번째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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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지음,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기획 / 원더박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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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민족에게 일어난 사건임에도 깊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TV에서 관련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는데 전혀 몰랐다.) 왜 그 일이 이리도 소홀히 다뤄지는지 의문을 가진 적도 없다.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줄을 이제야 알았다. 이 책, <1923 간토 대학살 침묵을 깨라>를 읽은 덕분에.

1923년 9월, 간토 지방에 닥친 대지진으로 10만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고 약 340 만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당시 일본 지도부는 사고를 수습할 여력이 없었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을 이용했다. 앞서 이야기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이야기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민심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일본 정부의 계획된 음모였다!

그러나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의 사과는 없었다. 한국 정부의 사과 요구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이 일을 배운 기억은 없다. 그렇게 모두가 무관심한 사이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다수의 일본인이 포함되어 있다. 오히려 그분들이 주축이 되었던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 책은 일본과 한국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왜곡되고 가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로 너무 생생한 기록에 소름이 끼쳤으나 그 정도로 학살 현장이 참혹했음이리라.

“사죄하지 않으면 불행이 반복될 것이다”

한국인도 재일교포도 아닌 순수 일본인들이 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일생을 걸었을까 궁금했다. 이것이 답이다. 부끄러운 역사라고 그저 덮어버리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 같은 선택을 하기 쉽다.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그 일은 잘못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같은 잘못이 반복될 때 그 피해는 누구의 몫이라도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왜 자꾸 지난 일을 들추냐고,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직까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반성은 커녕 일을 은폐하고 사건의 본질을 숨기려 애썼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건대, “사죄하지 않으면 불행이 반복될 것이다”

이제는 간토 대학살을 제대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불행의 반복을 막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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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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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게임 마니아인가 싶을 정도로 난 알지도 못하는 게임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게임 개발 프로세스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요즘 책들은 왜 이러나 싶게 600쪽이 훌쩍 넘는 두께에 심지어 절반 이상의 지면을 게임에 할애하는 터라 게임을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을 던져버릴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게임에 대한 책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지기에,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어 늘 서툰 인생의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의 몸부림이다. 게임은 오히려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인 게 아닌가 한다. 결코 리셋할 수 없다. 다른 생을 살아볼 수도 없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나아갈 따름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되도록 치열하게 살아보는 거다. 지금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샘, 세이디, 특별히 마크스에게- 그대들의 상처와 아픔에, 재능과 열정에, 사랑과 이별의 순간들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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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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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이야기를 멋지게 차용해 일본 고유의 시골 축제와 절묘하게 버무려냈다. 거기다 우주의 성간 이동이라는 SF 요소에 미묘한 로맨스까지, 그야말로 장르의 집합체다.

622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과연 온다 리쿠, 지루할 틈 없이 사람을 몰아간다. 작가의 이런 역량은 <꿀벌과 천둥>에서 이미 겪은 바 있기에 놀랄 일도 아니다.

1장을 채 읽기 전에 공포가 시작됐다. 정체를 안다고 생각했기에, 무엇이 두려울 지 알기에 두려운, 익숙한 것에 대한 공포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책 속 세계관에 드디어 적응했을 즈음 또 다른 공포가 다가온다.

변질,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하는 것. 누구보다 변질자에 가까우면서도 ‘인간’이라는 것에 집착하며 변질에 저항하는 나치를 보며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단지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렇게까지 애써 살려고 발버둥칠 건 뭐란 말인가. 결국 인간은 특별할 것도 없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자연의 여타의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종일 뿐일까. 그렇다면 더더욱 잘난 듯이 굴 일이 아닐텐데. 도긴개긴, 도토리 키재기일 뿐.

불멸을 향한 집착, 그것이 인간과 다른 종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르는 그 뒤틀린 욕망. 썩은- 어리석은 장미.

온다 리쿠의 이름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는 작품이다. 장르소설을 좋아한다면, 주저없이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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