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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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굉장히 차갑다.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대립의 끝에, 존 부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감상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별다른 감동도 없다. 분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조차 새털처럼 가벼운 3자의 관찰자 시점의 분노이다.

활자로 기록된 역사의 이면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지만 후대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록되는 것은 사건일 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실패한 역사에 소속되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온 나라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부스 가족에게 링컨 암살자 존 부스는 그저 사랑하는 아들이자 동생이고, 형이었다. 정치적 견해가 달랐고, 때로 말썽을 일으켜 가족을 곤란하게 했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함께 뗏목을 타고, 반딧불을 잡고, 셰익스피어를 낭송하고, 형제의 행복을 누구 못지않게 기뻐해 주었던 가족이다.

남보다 못한 것이 가족이라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버릴 수 없는 것이 가족이란 존재 아니던가. 범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타인을 탓할 수도 없다. 국법을 어긴 아들에게 법이 정한 벌을 내렸으나 그 벌을 대신해 받았던 어느 나라의 왕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인 것이다.

저자인 캐런은 비난받아 마땅한 존 부스가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 본인이 책 후미에서 밝히듯 되도록 존 부스의 존재가 책의 중심에 놓이는 일을 피하려고 애썼다. 다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의 가족들- 연좌제는 법으로 폐지되었다지만 분명 그들을 향해 분노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극악한 범죄자를 버리지 못하고 보살피는 그의 가족에게 비난을 퍼붓는 경우는 제법 흔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이해 못 할 일인가.

증오한다. 증오하지만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족이다. 이 빌어먹을 혈연이라는 것은 이토록 끈질기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 오늘도 내 안의 편견을 한 겹 부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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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
조나단 케이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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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태어난 엘비와 플로라의 생존 일지이다. 일광병(햇볕을 쬐면 심장이 멎는 병) 백신의 핵심 원료인 제왕나비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확히는 제왕나비 중에서도 "멕시코로 이동하는" 아메리카 제왕나비 종의 비늘이다. 이 백신을 주사 맞거나 음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햇볕 아래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자 플로라는 백신의 유효기간을 영구적으로, 심지어 자손에게 유전되는 형질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왕나비 중에서도 이 "멕시코로 이동하는" 아메리카 제왕나비 종이 현재 멸종 위기 종이라는 사실이다. 이유는 뻔하게도, 인간이다. '개발'과 '성장'에만 급급한 인간들의 무분별한 벌목 말이다. 인간으로 인해 그 생의 신비가 밝혀지기도 전에 멸종될 위기에 처한 제왕나비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인간의 생존에 필수 요소가 되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설정 아닌가.

엘비와 플로라는 참으로 인간답게, 의지할 존재가 서로뿐인 절망 속에서도 애써 희망을 놓지 않은 척한다. 끝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세상이 끝나버릴 것처럼, 오늘을 인생의 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싸우고 발버둥 친다. 여전히 인간이기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약탈자들과 같이 되지 않고 다시 한번 인간을 믿는다. 다른 인간을 구한다. 다른 인간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희망을 보여준다.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 그것은- 결국, 서로를 도움으로써 미래가 이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Ps. 책 표지에서 엘비가 이토록 간절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은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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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정경아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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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게 놀이가 된 나이다. 인간의 기대 수명은 늘었으나 노화의 시계는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은퇴 전부터 작은 글씨를 읽는 일은 어려워졌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나 다리도, 허리도 에구구구. 생애 세 번째 30년, 사람에 따라서는 한숨만 나올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어차피 피할 수도, 싸울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즐겨야지!

68세의 K-그랜마 정경아 작가는 즐기는 법을 제대로 익히신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동네 문화센터에 '놀러' 간다. 무려 도품아-도서관을 품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책과 친하게 지내기도 좋다. 한자리에서 오래 읽기는 어렵지만 무슨 상관인가.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만나 차를 마시고, 서로의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눈다. 삶을 즐기는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다리, 같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친구들.

그랜마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 유쾌한 사람들의 삶을 지금부터 좀 따라 사는 것은 별문제가 아닐 것이다. 별것 있나. 나를 더 사랑할 것. 무엇을 가지려 애쓰지 말고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길 것.

명랑하다.
유쾌하다.
뒷맛이 썩 좋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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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빛날 때 (블랙 에디션) - 푸른 행성의 수면 아래에서 만난 경이로운 지적 발견의 세계
율리아 슈네처 지음, 오공훈 옮김 / 푸른숲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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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행성의 수면 아래에서 만난 경이로운 지적 발견의 세계>

이 책은 위의 한 줄 설명이 거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구 밖 저 아득한 우주만큼이나 신비로운 베일에 싸여있는 바다, 그 깊은 물속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저자 율리아 슈네처는 바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보통의 독자들을 해양의 신비에 눈 뜨게 하리라 작정한 모양이다.

영화 <조스>나 <메갈로돈> 등으로 친숙한 상어를 시작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한) 홍해파리의 생활주기(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이루려면 바닷속을 개척해야 했다), 기가 막히게 귀여운 돌고래의 언어습득 실험 등 어려운 과학용어에도 꺾이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져 도무지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이윽고 이 흥미는 요즘들어 계속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인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바닷속 생태계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기어코는, 왜 해양학자가 아닌나 같은 사람이 바다에 흥미를 가지게 해야 했는지 그 당위성을 인정하게 만들고야 만다.

저자의 문체는 그야말로 유쾌하다. 나도 모르게 큭큭 웃게 될 정도이다. 그는 내가 어려운 과학 용어나 화학식에 눈쌀 찌푸릴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책을 집어 던지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만큼 바다를 향한 사랑이 확고했고, 비록 넘실대는 파도만 바라봐도 멀미가 나는 처지이지만 어쩐지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고픈 바람도 슬쩍 들었다.

무엇보다 해양생물들-크게는 고래나 상어에서부터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우리들 인간을 위한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자연을 위하는 길이 인간을 위하는 길이다. 이기적인 인간은 스스로를 위한다는 명분을 위해서라도 지구의 다른 생명체를 좀 돌아봐야할 것이다.

푸른 행성의 영원히 지속될 번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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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리기를 합니다 - 작은 성취로 쌓아 가는 즐거움 아잉(I+Ing) 시리즈
러닝해영 지음 / 샘터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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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포함해 달리는 행위 자체를 즐겼던 기억이 전혀 없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어쨌든 러닝해영 작가가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한계에 도전하고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다면, 나는 이 '달리기' 책을 읽으며 내 한계에 도전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읽는 내내 고뇌와 번민뿐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달리기를 향한 저자의 찬미에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인생의 즐거움을 위한 수단이 그것일 뿐 아닌가. 내게는 '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달리기'를 '그림'으로 치환해 읽기 시작하니 갑자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아, 이거지.


결국 모든 취미 생활은 일맥상통한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썩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결코 피할 수 없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일단 해야 한다'.


또한 제아무리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활동을 타인과 공유할 때 그 일을 좀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탄력이 생긴다. (p.63 SNS로 공유하기) 아무리 재미있는 취미라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권태기가 오게 된다. 그럴 때는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색다른 시도를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p.95 권태기 극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다. 괜히 더 잘하려고 무리하다 즐거움마저 잊는 것보단 좀 부족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취미로서 적합하다. (p.109 집착 버리기) 이렇게 보니 달리기와 그림 그리기는 닮은 구석이 많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고작해야 취미생활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아- 글쎄요,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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