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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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원 주인이 사정상 운영에서 손을 떼고, 새롭게 서점에 발을 들인 외부인이 기존의 직원들과 갈등과 화해를 거듭하며 폐업 위기에 몰린 서점을 정상화시키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새롭지 않다. (예를 들면, 오후도 서점이라던가) 이야기는 여기에 한 가지 흥미로운 장치를 더한다. 바로 사라와, 샬로테의 어머니 크리스티나의 과거이다. 서로만을 의지하며 런던까지 떠나온 자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수십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냈던 걸까? 둘은 세상을 떠났고, 샬로테에게 남은 건 둘의 편지와 일기 정도이다.


성공 혹은 실패, 어차피 이야기의 결말은 둘 중 하나이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결말이 뭐가 됐건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과제를 아주 훌륭하게 수행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가 있다. 아픔을 겪었다. 결국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리버사이드 서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은 여러 아픔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갈수록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가뜩이나 출판 시장이 불황인데 전자북의 출현으로 서점들은 날마다 위기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크건 작건 여러 행사를 유치하고 좋은 책을 들여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안타깝게도 전망이 썩 밝아 보이진 않는다. 당장 나만 해도 서점을 찾지 않고 인터넷 검색으로 읽을 책을 고른지 오래다. (죄송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판타지라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판타지라는 이름보다 '희망의 책'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여러 요인과의 전쟁에서 결국 서점이 이길 것이고, 사람들은 영상이나 SNS보다 책을 찾을 것이며, 오래전- 스마트폰이 출현하기 이전처럼 종이 냄새 맡으며 책장을 넘기는 일이 당연한 날이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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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마음 시인동네 시인선 205
이제야 지음 / 시인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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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디얇은 책 한 권이 몇 배나 두꺼운 책보다 더 오랜 시간을 채어간다.

조급해지는 마음으로는 행 하나를 다 읽어내지 못한다.

쉬이 호로록 넘길 수 있는 식은 숭늉 같지 않아서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한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때는 잠시 덮었다 한참 후에 다시 열어본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받아들여진다.

내 마음이 그새 이만큼 열렸나 싶다.





어느 날은 눈 딱 감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 거기에서부터 읽는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해도 그건 내 마음이니까.


속도가 생명 같은 시대에 시는 역행자다.

시를 읽는 나도, 시를 읽으라 권한 그대도.


그러나 가을은 참으로 역행자의 계절이다.


해의 마지막 분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해의 첫 마음이 어떠했나 고민해 본다.

깊어가는 가을에 <일종의 마음>을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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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별건가? - 이탈리아를 입고 먹고 마시는 남자 오세호의 쉬운 와인 이야기
오세호 지음 / 책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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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술을 안 마시니 와인이라고 알 리가 없다만, 확실히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뭔가 '알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꽤 유명했던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은 일반인을 와인의 세계에 끌어들인 한편 와인에 대한 환상을 더 퍼트린 면도 없잖아 있다. 101 이야기는 본 책에도 잠시 언급된다.) 대중화되었지만 오히려 더 마시기 어려워진 와인. 어딘가 모순된다.

사실, 와인이 뭐 별건가? 저자 말마따나 맛있게 먹고 마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나. 하지만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역시 공부가 필요하긴 하다. 디켄팅이니 스월링이니 하는 외우기도 어려운 용어 이야기가 아니다. 제일 인상적인 말은 <조화>였다. 음식과 와인의 조화. (와인 페어링이란 말보다 조화가 더 친숙하다.) 특히 같은 지역 올리브오일을 뿌린 음식에 같은 지역 와인을 마시는 게 최고의 페어링(P.122)이라는 말은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읽었던 건데, 과연 진리라는 건 지역을 따지지 않는구나 싶었다.

와인을 맛있게 마시는 방법보다도 와인을 만드는 과정이라던가 와인 산지에 대한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퍽 흥미로웠다. 스파게티를 쉽게 먹으려고 포크까지 업그레이드시켰다는 다빈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음식을 향한 이탈리아 사람의 열정에 혀가 내둘러졌다.

살면서 와인을 마실 일은 거의 없을 듯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겠다. "와인이 별건가? 맛있게 먹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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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사적인 우리를 잇는 버크만 안내서 - 별별 사람이 모여도 별 탈 없이 행복해지는 비밀
김태형 지음 / 크루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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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만이라는 이름부터 생소했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닌데 싶어 막막했다. 책장을 넘겼다 닫았다 들썩들썩. 그러다 마음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법 시간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읽을 수록 재밌다. 낯선 개념이다보니 초반엔 좀 헤맸는데, 항목마다 예시가 있어 한결 이해하기 좋았다.

이 책은 버크만 검사를 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제목처럼 버크만 검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안내서>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버크만 코리아 홍보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와 남은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머리로 알고 있지만 실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살기는 쉽지 않다. 버크만 검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다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Do not judge your neighbor until you walk two moons in his moccasins.

나는 그와 다르고, 그도 또한 나와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내가 틀렸나 전전긍긍할 필요도, 나와 다른 그에게 분노할 이유도 없다.

대부분의 예시가 기업이라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 이야기이긴 하지만,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해볼 법 하다. 그야말로 별별 사람이 모여도 별탈 없이 행복해지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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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지도 -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강재영 외 지음 / 샘터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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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는 인간과 가장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예술 장르이자 지적 설계물이다. 회화나 문학이 가지는 추상성에 비해 문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실리적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런 성격을 가졌음에도 수많은 작가와 장인들은 공예품에 모호한 - 일반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예술성을 부여했고, 별도의 설명 없이 작품을 대했을 때 그 공예품에 담긴 작가 개인의 역사나 신념, 의미를 파악하기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사물의 지도>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출품작들의 도록이자 해설집이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 때문에 작품을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그대신 10명의 큐레이터들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사진으로나마 세계 각국의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종이, 유리, 흙 등 전통의 재료에서부터 폐타이어 등 버려진 폐기물까지 인간의 손이 닿는 모든 재료가 공예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은 늘 경이롭다. 또한 그 형태와 과정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예품들에 담긴 인간의 멸망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 놀랍다. 세대가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닿아있음이 느껴진다.

단 하나,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10월 15일까지라고 하니 청주 인근에 사는 분들은 <사물의 지도>를 들고 찾으시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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