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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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개 한 마리가 질주한다. 시속 120km로 빠르게 달리는 차 사이를 이리저리 달리니 금방이라도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개를 지켜보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여섯 명의 시선이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았을 것이 분명한 개를 발견한 버림받은 사람들이 이윽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상호 작용은 없다.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된 이 책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여섯 명 각자의 이야기를 담백한 어조로 들려줄 뿐이다. 


​사연이 제각각인 만큼 달리는 개로 인해 풀어내는 결론마저 얼핏 다 다른 것 같다. 아니, 다르지 않다. 

개는 죽기 위해 도로를 달린 것이 아니다. 그저 죽으려 했다면 달리지 않고 그 자리에 누워버렸을 테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어지간해서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건 어쩌면 인간 뿐일 지도 모른다. ​


개의 날, 여섯 명의 사람들은 아마 그걸 깨닫지 않았을까. 살아야겠구나, 살아야겠구나. 


왜, 냐고 묻는다면, 개가 살기 위해 달렸기 때문, 이라고 대답해도 되는 걸까. 살아보면 그런 순간을 맞을 때가 더러 있지 않겠나. 그토록 치열한 순간을 목도할 때, 나 역시 그렇게 살아내야겠구나 결심할 때. ​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동정할 필요가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 마음 먹었다면, 금새 죽어버릴 지라도 일단은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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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의 상상 - 부산 개금동에서 뉴욕 카네기홀까지
김지윤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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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토록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제고 이 놈의 일 때려치우고 만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책의 저자( #김지윤 )처럼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그 길에서 특수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다. 왜일까.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목표가 있는가?” 목표, 밑줄 긋고 별 세 개. 포기할 수 없는, 밑줄 긋고 별 열 두 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 놈의 일’이라고 한탄하는 이유는 아마 포기할 수 없는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나 역시 처한 현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일을 이십년 가까이 하고 있다. (징그럽네..)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 일을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해 내 이름이 어딘가에 버젓이 새겨질 정도냐 묻는다면, 아유, 그럴 리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월급쟁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자칫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저렇게 화려한 조명을 받는거지”라며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지만, 결코 그런 부정적인 생각,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악마의 속삭임 때문에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많은 선생들이 이야기하듯 인생이라는건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것일 테니까.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평생 위인을 기다렸던 어니스트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위와 닮은 얼굴이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 주저앉지 말고, 매일같이 좀더 나아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흔한 자기 성공 이야기 책이려니 생각하고 쉽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구석구석, 구절 구절마다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마 그만큼 치열하고도 즐겁게 자신의 일과 인생을 가꾸어온 피아니스트 김지윤 님의 힘이겠지. 중간 중간 삽입된 쇼팽, 브람스, 드뷔시 등의 연주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다음 장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단지 피아노가 좋아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얻은 기분이다. 역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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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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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여러가지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스스로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고찰도 없이 막연하게 성적에 맞춰 진학을 결정하던 십대 시절의 나, 무리없이 목표한 대학에 진학해 비싼 등록금을 치룬 후에야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 깨달았던 이십대의 나,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해줘야지, 하며 블로그에 이런 저런 것들을 끄적이던 (애인 없는 미혼이었던) 삼십대의 나, 내 눈 앞에서 마냥 웃고 떠드는 아이를 보며 어떤 어른으로 끌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십대의 나.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평탄한 듯 그렇지 않은 듯, 남들 못지 않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지만 별다른 일 아니란 듯이 그런 고비를 넘기며 그럭저럭 살아왔다. 남들에게는 난 참 복 받았다, 인생에 어려운 일이랄게 없었다 그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정말 그랬던가 생각해보면 그래도 겪어야 할 일은 다 겪었다. 학업에서, 연애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럼에도 큰 문제없는 인생이었다 반추하게 되는건 무슨 이유일까?




​비록 주인공은 진학과 진로를 앞두고 고민하는 십대로 설정됐지만, 연령대나 처한 상황이 다른 독자들이라도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온다. 


내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세요. 

이유도 모른 채 자신에게 끌려 다니지 마세요. 

적당히 타협해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아요. 

해봐요, 일단 저질러 보면 별 거 아니에요. ​


어떻게 보면 몹시 직접적인 메시지들이 반복해서 나오니 이게 자기계발 책이었나 싶어 헛웃음이 날 지경인데,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된 건 그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살아왔음에도 그리 힘들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리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생각하게 되는 것도 아마 이 책 ‘챌린지 블루’에서 전하고픈 메시지들을 비록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내 삶에 받아들여왔기 때문 아닐까.


​나는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막상 이게 내 아이의 일이 된다 생각하니 그게 내 일처럼 마음먹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바림의 엄마처럼 아이가 차마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 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삼키도록 몰아붙이는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같은 십대가 읽으면 그저 공감하고 말 일인데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장르가 성장소설에서 공포물로 바뀌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사는게 꼭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왜 내로남불이 되는 걸까. 


이제 내가 가져야할 마음은, 이거다. 버려라. 아이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마음을 버려라. 내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버려라. 그리고 또한 기억하자. 태어나버린 이상 선택은 그 삶을 살아가게 될 아이의 몫이라는 걸, 내가 가져야할 것은 응원과 격려, 필요로 할 때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의 현명함, 무엇보다 내가 바라야할 것은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챌린지 블루.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또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짐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더불어 훌륭한 책받침이 되어준 설이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자신에게 끌려 다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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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 공부 - 나의 말과 글이 특별해지는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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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 세상을 몇 안 되는 단어가 독식하고 있다. ‘숱하고 허다하며 수많으며 수두룩하고 비일비재하며 하고많고 혼전만전하다’라 말할 수 있는 상황과 대상은 ‘정말 많고, 너무 많고, 진짜 많고, 좀 많다’로 뭉뚱그려 모습을 드러낸다.

- 서문 중에서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보기도 전에, 서문을 읽다 할말을 잃었다. 저거, 내가 늘 쓰던 말이잖아? ‘와 너무 많다’ ‘지인짜 많다’ ‘끝내주게 많네’ 말 좀 하는 편이라고 어디 가서 자랑의 ㅈ도 꺼내면 안 되겠다.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러웠다.



이 책은 한국인이 많이 쓰는 어휘들 중 오십 가지를 추려내 유사한 다른 대체어들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생 처음 듣는 어휘도 많거니와 ‘아니, 이 말이 이런 뜻이었어?’하고 놀란 어휘도 몇 개 있었다. 그간 얼마나 데알던(대충 알던) 어휘가 많던지, 노트에 정리해보다 접어버렸다. 한 두 개라야 말이지.






이 책 한권 읽는다고 당장 내 어휘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릴 적, 읽을 책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두꺼운 국어 사전을 동화책 읽듯 탐독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전문 작가들 만큼 풍부한 어휘를 갖추진 못 한 것이 그 증거다. 무엇보다 이 책은 소설처럼 몇 번 읽고 던져두면 그만인 그런 책도 아니다. 가까운 곳에 꽂아두고서 ‘지금까지 사용한 문장 중에 바꿔쓸 만한 어휘가 뭐가 있을까?’ 궁금해질 때 언제든 꺼내서 살펴보고, 그 말들이 내 입에 착 붙도록 수시로 사용해줘야할 테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책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쓴 어휘들에 해낙낙해할 날이 오겠지.



​지금이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질 봄이면 좋겠다. 그러면 멋있게 ‘창 밖 볕바른 곳에 놓아둔 화분에 여린 싹이 올라온다’ 같은 말을 써볼 텐데. 지금은 여름이고, 여기는 대프리카고,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뜨겁기만 한 토요일이다. 이른 더위에 시달리며 밀린 집정리를 하고 떼꾼한 얼굴로 친구를 만나러 가겠지… 



우리의 언어 세상을 몇 안 되는 단어가 독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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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보통날의 그림책 1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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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붙인다는건 뭘까.​


태초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창조물들의 이름을 아담에게 짓게 하셨단다. 말하자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부여받고 '이름'을 짓고 '이름'을 사용하며 살게 되어있다는 얘기다.​


그래, 이름은 짓는거다. 

그만큼 지극한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름 붙이려는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꼭 맞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넓게 관찰하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잘못 지은 이름은 두고두고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남아서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름이라는건, 말이라는건 참 재미있다. 

뭐 얼마나 다르겠냐 싶지만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던가 말투 같은 것들은 생각 외로 사람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 보이지 않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건 사실 감정의 이름 자체보다 바로 그 부분-각 나라의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들에서 읽혀지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정서, 풍습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었던 '말은 얼의 거울이다'라는 문장이 뇌리에 강하게 남은 탓일 거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는 슈투름프라이(Sturmfrei,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라는 단어가 있단다. 많은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유럽 사람들이 얼마나 옆집 일에 관심이 많은지 익히 알고 있지 않나. 부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이런 말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그리스어의 볼타(Βολτα,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는 또 어떤가. 이 이름과 뜻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땅 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며 살아가는 지중해인들이 떠오르지 않겠나. (그리고 왠지 부럽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니-설사 잘못된 추론이라 하더라도- 그저 이름을 나열한 책이 아니라 각 나라들 속으로 좀더 깊이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함께 읊어보는 감정들의 이름은, 사실 내가 일상에서 쓸 일은 거의 없을 거다. 하지만 책곰에서 짚어주셨듯, 그림책에게 쓸모를 바라면 안 될 일이다. 쓸모있어야 할 책들은 다 그렇게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림을 보고, 곁들여진 글들을 읽고, 아 좋은 책이었다, 하면 될 일이다.


아, 좋은 책이었다.

슈투름프라이(Sturmfrei,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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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sdksro 2022-06-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김순희 2022-10-19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예쁜 단어들이 많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