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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 여성 영웅 서사의 세계
게일 캐리거 지음, 송경아 옮김 / 원더박스 / 2025년 8월
평점 :
“우리는 이 여정들을 이야기를 위한 뼈대로 보는 대신, 우리 자신의 문화에서 생물학적으로 이분법적인 행동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른다. ‘남성 영웅은 남자여야 한다. 혹은 여성 영웅은 여자여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분법적 생물학적 성 개념이 적용되면서, 문화 속에서 분열과 구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P. 178
장르소설 작가인 저자는 이야기의 서사를 이루는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지금껏 장르문학을 즐겨 읽어온 나로서는 이게 꽤 신선한 개념이었다.
대부분 혼자의 힘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추구하는 남성 영웅의 서사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끊어진 관계를 수복하는 일에 집중하는 여성 영웅의 서사로 스토리를 구분하는 방식에 대해 읽다 보니 그간 읽고 보아 왔던 이야기들을 저자의 관점에서 되새김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제목부터 이미 이 책은 여자, 혹은 여성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내내 여자/남자, 여성/남성이라는 용어를 생물학적인 성별의 관점에서 인식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말이 쉽지, 책을 절반 가까이 읽어나가는 동안 관념을 떨쳐내지 못해 꽤 애를 먹었다.
서사를 구분하는 방식에 굳이 여자, 남자라는 헷갈리기 쉬운 용어를 붙인 것은 아마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용어가 마땅치 않았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아직 많은 세상이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있기에, 결코 그렇지 않음을 강변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별로서의 여자니 남자니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야기를 읽어내는 재미는 확실하게 배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여성 영웅의 관점에서 쓰인 것들이었다!
슈퍼맨, 배트맨을 비롯해 세계가 열광했던 마블의 영웅들에 단 한 번도 감격해 본 적이 없었다. 원피스, 해리 포터 시리즈, 전지적 독자 시점- 동료 없이는 결코 완주해 내지 못할 여정에 관한 이야기들, 결국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이야기들이 좋다. (독자를 배신하는 이야기에 대한 내용도 나오니, 배신자가 될 준비를 하는 작가들은 꼭 읽어볼 것!)
물론 이야기를 죄다 이런 관점으로만 파악할 수도 없고, 그런 시각에 사로잡혀 거기에 매몰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작가 역시 그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고 있다. 전반부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서사의 관점에 대해 학습시켰다면, 후반부에서는 저자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법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려준다. 장르문학을 좋아하고 직접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선이 더해진 만큼, 새롭고 더 생생한 이야기를 불러낼 것이다.
저자는 여성 영웅의 서사에 대한 해석을 넘어, 그동안 생각없이 ‘재미’로만 대해왔던 이야기 구조를 새롭게 읽어내는 눈을 틔워 주었다. 익숙한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던 감정의 결을 다시 짚어보게 만들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배우들을 또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더불어 내 자신이 그간 어떤 이야기에 끌려왔는지를 되묻게 한다는 점에서,
“수상쩍을 정도로 재미있다.”
- 듀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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