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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났어
배명훈.김보영.박애진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7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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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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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잃어버린 세계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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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코트 심해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이수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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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armdown > 한없이 늘어지는 지루함
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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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역자로서 한 마디 붙입니다. 최근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준비하면서 책의 질에 문제가 많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지엽적인 오류야 뭐 서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함께 수정해 가면 학계에도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므로 굳이 이런 자리에서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인 오류와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도 전공자(전공자가 뭐 특별하다는 건 아니고, 해당 분야에 오래 삶의 시간을 바쳤다는 뜻이지요, 특히 이런 사유 분야에서)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말입니다.

더구나 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마디즘>이 제가 번역한 <천 개의 고원>을 직접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책 도처에서 저의 번역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응답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런 사정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격 서평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곳을 통해 조금만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발표될 글은 다른 경로로 찾아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편의상 (짧고 쉽게 해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만 들겠습니다. 저자는 <노마디즘> 2권 258쪽 주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plan은 '판'이 아니며, 무언가가 그 위에 서서 존립하는 것이란 의미의 '평면'도 아닙니다. 물론 plan이 '평면' 내지 '평면화'라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고, 그렇게 번역되는 게 더 적당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plan은 하나의 기관이 탈기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배치가 탈영토화되는 양상을 함축할 뿐이지, 기하학적 형태의 '평면'이나 '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들뢰즈의 다른 책 <스피노자, 실천 철학>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더 이상 그것은 유일 실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물체들, 모든 영혼(정신)들, 모든 개체들이 있는 내재성의 공통 판의 펼침이다. 이 내재성의 판 또는 고른판은 정신적 구상, 계획,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의 판(=구도)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의미에서의 판(=평면), 즉 절단면, 교차, 도해(=다이어그램)이다.>

참고로 아래에 불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덧붙입니다.

<Ce n'est plus l'affirmation d'une substance unique, c'est l'e'talement d'un plan commun d'immanence ou' sont tous les corps, toutes les a^mes, tous les individus. Ce plan d'immanence ou de consistance n'est pas un plan au sens de dessein dans l'esprit, projet, programme, c'est un plan au sens ge'ometrique, section, intersection, diagramme. >

Deleuze,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Minuit, 1981, p.164. (plan commun d'immanence는 강조 표시가 되어 있음)

<What is involved is no longer the affirmation of a single substance, but rather the laying out of a common plane of immanence on which all bodies, all minds, and all individuals are situated. This plane of immanence or consistency is a plan, but not in the sense of a mental design, a project, a program; it is a plan in the geometric sense: a section, an intersection, a diagram.> (윗글의 영어번역: 영역판 122쪽)

이진경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해 들뢰즈의 사상을 뒤틀고 있습니다. 이진경 씨의 주장과 들뢰즈 자신의 발언은 명백히, 뿌리부터 어긋납니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노마디즘>에서 주요 개념 거의 전부에 걸쳐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개념 번역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부분적인 잘못이야 누구나 범하는 일이니까요), 개념 이해와 설명에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단지 지면 관계상, 다른 오류를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오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반 독자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이게 한국 학계의 현주소라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상호 검증도 없고, 상호 검증할 만한 사람들도 없고... 시간이 나는 대로, 또 시간을 내서, 해설 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노마디즘>에 대한,  <천 개의 고원> 번역자로서의 소감을 구호로 정리하겠습니다. 긴장도가 한없이 떨어지는 책,. 끊임없는 오해로 중첩된 책,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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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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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역자로서 한 마디 붙입니다. 최근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준비하면서 책의 질에 문제가 많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지엽적인 오류야 뭐 서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함께 수정해 가면 학계에도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므로 굳이 이런 자리에서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인 오류와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도 전공자(전공자가 뭐 특별하다는 건 아니고, 해당 분야에 오래 삶의 시간을 바쳤다는 뜻이지요, 특히 이런 사유 분야에서)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말입니다.

더구나 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마디즘>이 제가 번역한 <천 개의 고원>을 직접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책 도처에서 저의 번역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응답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런 사정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격 서평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곳을 통해 조금만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발표될 글은 다른 경로로 찾아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편의상 (짧고 쉽게 해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만 들겠습니다. 저자는 <노마디즘> 2권 258쪽 주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plan은 '판'이 아니며, 무언가가 그 위에 서서 존립하는 것이란 의미의 '평면'도 아닙니다. 물론 plan이 '평면' 내지 '평면화'라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고, 그렇게 번역되는 게 더 적당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plan은 하나의 기관이 탈기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배치가 탈영토화되는 양상을 함축할 뿐이지, 기하학적 형태의 '평면'이나 '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들뢰즈의 다른 책 <스피노자, 실천 철학>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더 이상 그것은 유일 실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물체들, 모든 영혼(정신)들, 모든 개체들이 있는 내재성의 공통 판의 펼침이다. 이 내재성의 판 또는 고른판은 정신적 구상, 계획,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의 판(=구도)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의미에서의 판(=평면), 즉 절단면, 교차, 도해(=다이어그램)이다.>

참고로 아래에 불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덧붙입니다.

<Ce n'est plus l'affirmation d'une substance unique, c'est l'e'talement d'un plan commun d'immanence ou' sont tous les corps, toutes les a^mes, tous les individus. Ce plan d'immanence ou de consistance n'est pas un plan au sens de dessein dans l'esprit, projet, programme, c'est un plan au sens ge'ometrique, section, intersection, diagramme. >

Deleuze,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Minuit, 1981, p.164. (plan commun d'immanence는 강조 표시가 되어 있음)

<What is involved is no longer the affirmation of a single substance, but rather the laying out of a common plane of immanence on which all bodies, all minds, and all individuals are situated. This plane of immanence or consistency is a plan, but not in the sense of a mental design, a project, a program; it is a plan in the geometric sense: a section, an intersection, a diagram.> (윗글의 영어번역: 영역판 122쪽)

이진경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해 들뢰즈의 사상을 뒤틀고 있습니다. 이진경 씨의 주장과 들뢰즈 자신의 발언은 명백히, 뿌리부터 어긋납니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노마디즘>에서 주요 개념 거의 전부에 걸쳐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개념 번역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부분적인 잘못이야 누구나 범하는 일이니까요), 개념 이해와 설명에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단지 지면 관계상, 다른 오류를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오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반 독자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이게 한국 학계의 현주소라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상호 검증도 없고, 상호 검증할 만한 사람들도 없고... 시간이 나는 대로, 또 시간을 내서, 해설 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노마디즘>에 대한,  <천 개의 고원> 번역자로서의 소감을 구호로 정리하겠습니다. 긴장도가 한없이 떨어지는 책,. 끊임없는 오해로 중첩된 책,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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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역자로서 한 마디 붙입니다. 최근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준비하면서 책의 질에 문제가 많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지엽적인 오류야 뭐 서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함께 수정해 가면 학계에도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므로 굳이 이런 자리에서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인 오류와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도 전공자(전공자가 뭐 특별하다는 건 아니고, 해당 분야에 오래 삶의 시간을 바쳤다는 뜻이지요, 특히 이런 사유 분야에서)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말입니다.

더구나 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마디즘>이 제가 번역한 <천 개의 고원>을 직접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책 도처에서 저의 번역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응답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런 사정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격 서평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곳을 통해 조금만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발표될 글은 다른 경로로 찾아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편의상 (짧고 쉽게 해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만 들겠습니다. 저자는 <노마디즘> 2권 258쪽 주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plan은 '판'이 아니며, 무언가가 그 위에 서서 존립하는 것이란 의미의 '평면'도 아닙니다. 물론 plan이 '평면' 내지 '평면화'라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고, 그렇게 번역되는 게 더 적당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plan은 하나의 기관이 탈기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배치가 탈영토화되는 양상을 함축할 뿐이지, 기하학적 형태의 '평면'이나 '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들뢰즈의 다른 책 <스피노자, 실천 철학>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더 이상 그것은 유일 실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물체들, 모든 영혼(정신)들, 모든 개체들이 있는 내재성의 공통 판의 펼침이다. 이 내재성의 판 또는 고른판은 정신적 구상, 계획,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의 판(=구도)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의미에서의 판(=평면), 즉 절단면, 교차, 도해(=다이어그램)이다.>

참고로 아래에 불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덧붙입니다.

<Ce n'est plus l'affirmation d'une substance unique, c'est l'e'talement d'un plan commun d'immanence ou' sont tous les corps, toutes les a^mes, tous les individus. Ce plan d'immanence ou de consistance n'est pas un plan au sens de dessein dans l'esprit, projet, programme, c'est un plan au sens ge'ometrique, section, intersection, diagramme. >

Deleuze,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Minuit, 1981, p.164. (plan commun d'immanence는 강조 표시가 되어 있음)

<What is involved is no longer the affirmation of a single substance, but rather the laying out of a common plane of immanence on which all bodies, all minds, and all individuals are situated. This plane of immanence or consistency is a plan, but not in the sense of a mental design, a project, a program; it is a plan in the geometric sense: a section, an intersection, a diagram.> (윗글의 영어번역: 영역판 122쪽)

이진경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해 들뢰즈의 사상을 뒤틀고 있습니다. 이진경 씨의 주장과 들뢰즈 자신의 발언은 명백히, 뿌리부터 어긋납니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노마디즘>에서 주요 개념 거의 전부에 걸쳐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개념 번역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부분적인 잘못이야 누구나 범하는 일이니까요), 개념 이해와 설명에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단지 지면 관계상, 다른 오류를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오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반 독자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이게 한국 학계의 현주소라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상호 검증도 없고, 상호 검증할 만한 사람들도 없고... 시간이 나는 대로, 또 시간을 내서, 해설 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노마디즘>에 대한,  <천 개의 고원> 번역자로서의 소감을 구호로 정리하겠습니다. 긴장도가 한없이 떨어지는 책,. 끊임없는 오해로 중첩된 책,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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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endo > 정상의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의학사의 이단자들 - 현대 의학을 일군 개척자들의 열정과 삶
줄리 M. 펜스터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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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서술하는 데 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대놓고 인물을 중심에 놓고 쓰면서 위인전이 빠질 수 있는 함정 - 즉,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의 행위와 사상은 모두 위대하다 - 을 피해가는 동시에 인물이 속한 역사의 문맥을 파헤치는 데 성공한다면, 그건 대단한 능력이다. 아마 글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뛰어난 역사의식을 필요로 하겠지. 이 책의 지은이처럼 말이다.

책의 원제는 [괴짜들, 기적들, 그리고 의학 Mavericks, miracles and medicine]이다. 역사학자인 동시에 글잡이인 지은이는 베살리우스, 뢴트겐, 하비, 코흐, 레벤후크와 같은 의학사의 위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낸 업적과 그 업적이 의학사 속에서 갖는 의미를 되짚는다. 그리고 그 말하는 방식은 늘 흥미를 유발하고, 그러면서도 간결하고 날카롭다. 예를 들어 코흐를 다룬 장에서는 한 강연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강연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옮긴다. 이 강연은 그 때까지 -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 인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였던 결핵의 정체를 밝힌,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룬 사건 중 하나였다. 글을 읽다 보면 그 감동과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건 비르코프 - 혹은 비르효 혹은 피르효 - 의 몰락과 훗날 투베르클린으로 결핵을 치료하려던 코흐 자신의 실패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스펙트럼은, 의외로 넓다. 이 중에는 코흐나 하비처럼 의학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사람도 있지만 제멜바이스와 같은 비운의 혁명가도 있다. 갈레노스의 전통을 깨뜨린 베살리우스가 있는 한 편 돌리를 복제한 윌머트 같은 사람도 있다. 뢴트겐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도, 프란츠 요셉 갈처럼 의학사 책을 몇 권 봤다는 나 같은 사람도 생전 처음 듣는 이름도 등장한다. 그리고 기본처럼 순진무구한 학자도, 또 마취제를 둘러싼 협잡과 공방을 벌인 장사꾼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들은 모두 확고한 목적의식을 갖고, 불굴의 의지를 발휘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무언가의 가치를 찾아내고 발휘할 줄 알았다. 그리고 제멜바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운이 좋았다. 이들은 완고하고 보수적인 학계 - 의사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의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몽매한지 아는 사람은 안다 - 에 대항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 중 일부는 학계를 변화시켰고, 대부분은 무시당했지만.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의학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정말, 하비가 혈액이 순환한다는 걸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의학의 모습은 어땠을까? 정말 누군가 그걸 발견하기는 했을까?

책은 좋고, 번역 역시 훌륭하다. 긴 책에 오자는 - 내가 찾아낸 한 - 단 두 개 밖에 없었고, 어색한 용어도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인물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의학사의 대부분을 은근슬쩍 건드리고 지나간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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