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가 산타로살리아섬을 알아본 것은 그곳에서 우세한 종인 핀치* 덕분에 가능했다. 덧붙이자면, 이 담갈색의 작은 새들은 대부분의 관광객과 메리의 학생들에게는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지만, 젊은 찰스 다윈에게는 땅거북이나 부비새나 바다이구아나 등 그곳에 서식하는 다른 어떤 동물만큼이나 흥미로웠었다. 실은 핀치들은 생김새가 무척 비슷비슷했지만 실제로는 13종으로 분류되며 종마다 일상적으로 먹는 먹이도 다르고 먹이를 구하는 방법도 달랐다.
(209/488p)

만약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있었을 선장과 그의 일등 항해사 사이의 업무 분담은 백만 년 전에는 수많은 조직에서 쓰던 전형적인 관리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실없는 소리나 하며 얼굴마담 노릇을 하는 명목상의 대표와 실제로 일이 돌아가는 상황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파악하는 책임을 맡은 이른바 부대표를 두는 방식이었다.
(223-224/488p)

내가 살던 시절에 ‘자연 선택의 법칙’이 내놓을 수 있었던 최선의 대응은 두려워할 것이 너무나 많았음에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베트남에서 그런 사람을 몇 명 알고 지냈다. 그냥 아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그리고 ★앤드루 매킨토시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234/488p)

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진리도 그들이 과야킬에서 이제껏 봤던 것에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 단 한 가지만은 예외였는데, 그것은 바로 ‘친척들은 절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만 년 전의 도시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불행을 초래하는 믿음이었다.
(241/465p)

그리고 훗날 산타로살리아섬에서 왜 자신의 조상들이 그 섬으로 오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으면-그런 종류의 궁금증도 3천 년 정도만 지나면 마침내 사라질 테지만- 그 사람이 듣게 될 대답은 "그들은 운석이 쏟아지는 바람에 본토에서 떠나온 것"이란 이야기였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역사가 없는 민족은 행복하다.
-체사레 보네사나, 베카리아 후작(1738~1794)*

(267/465p)

그리하여 ★지그프리트 폰 클라이스트는 메리 헵번과 히사코 히로구치, ★제임스 웨이트, 셀레나 매킨토시, ★카자크를 이끌고 호텔 앞에 주차된 화사하게 꾸며 놓은 버스로 데리고 나갔다. 그 버스는 뉴욕에서 오는 명사들을 환영하기 위해 악사들과 무용수들을 공항으로 싣고 나가기로 되어 있던 버스였다. 칸카보노족 여섯 소녀도 그들과 동행했는데, ★카자크 이름 앞에 별표를 단 것은 그 개가 곧 그 소녀들에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개가 있을 때가 아니었다.
(268-269/465p)

그런데 나는 최근 들어서는 커다란 뇌가 했던 그 발상, 즉 ‘인간 노예’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지느러미와 입뿐인 사람이 어떻게 누군가를 속박할 수나 있겠는가?
(270/465p)

백만 년 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니 내 말을 믿기를 바란다. 따지고 보면, 음식이 언제든 사실상 전부인 법이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고, 도덕은 그 다음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271/475p)

★웨이트가 산타로살리아섬에서 이루어진 짝짓기에 참여하기 전에 사망한 것은 오늘날 인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그의 시한폭탄 같은 심장을 물려받았더라도 지금과 그리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아무도 그 시한폭탄이 터질 만큼 오래 살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오늘날은 ★웨이트 나이 또래만 되어도 므두셀라*처럼 완전히 장수한 노인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 노아의 홍수 이전에 969년을 살았다는 창세기에 나오는 유대 족장.
(274/465p)

만다락스 가라사대,

가장 좋은 시절이면서 가장 나쁜 시절이기도 했고,
지혜의 시기이면서 어리석음의 시기이기도 했으며,
믿음의 시대이면서 불신의 시대이기도 했고,
빛의 계절이면서 어둠의 계절이기도 했으며,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으면서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곧장 가면서 정반대 방향으로 곧장 가고 있기도 했다.
-찰스 디킨스(1812~1870)*

* 영국의 소설가. 위는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단을 인용한 것이다.
(277/465p)

인간이 옛날처럼 도구를 사용하고 집을 짓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활동을 다시 시작하자면, 이번에는 자신들의 부리로 그런 활동을 해야 한다. 이제 인간의 팔은 지느러미가 되었고, 손뼈는 거의 지느러미 속에 파묻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느러미마다 박힌 다섯 개의 작은 덩어리는 완전히 장신구 역할만 해서 짝짓기 철이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들은 사실 퇴화된 다섯 손가락의 끝부분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뇌에서 손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던 부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인간의 두개골은 이제 훨씬 더 축소되었다. 두개골이 더 축소될수록 사람은 물고기를 더 성공적으로 잡았다.

(283/465p)

그리고 이제 모든 사람들은 무척 순진무구하고 느긋한데, 모두가 다 진화 과정에서 사람들의 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노동을 요하는 일이든 기술을 요하는 일이든
나 또한 바쁘게 살리니.
빈둥거리는 손에게는
사탄이 끊임없이 못된 짓을 저지르게 할 테니까.
-아이작 와츠(1674~1748)*

* 영국의 목사로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위는 「어떻게 바쁜 꼬마 꿀벌은」이란 찬송시에서 발췌한 것이다.

(284-285/465p)

그렇게 바이아데다윈호는 이제 남미 본토와 고물 쪽의 밧줄 단 하나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시적으로 말하자면, 그 고물의 밧줄은 모든 현생 인류의 하얀 나일론 탯줄이었다.
(298/465p)

선장은 하류로 배를 몰아 난바다로 향했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인 그 배는
작은 행성처럼 외롭고 빠르게 나아갔다.
-조지프 콘래드(1857~1924)*

* 영국 소설가.

이제 바이아데다윈호는 그냥 평범한 배가 아니었다. 인류에게 있어서 그 배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였다.

(329/465p)

바이아데다윈호는 유령선이었다. 그 배는 육지의 시계에서 벗어나 선장의 유전자와 승객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의 유전자를 싣고서, 서쪽을 향해 이제까지 백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유령선의 유령이었다. 나는 커다란 뇌를 지닌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의 아들이다.
나는 미 해병대의 탈영병이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용받아 시민권을 획득했고, 스웨덴 말뫼에서 조선소의 용접공이 되었다. 어느 날 바이아데다윈호의 선체 내부에서 일하던 중 떨어지는 철판에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목이 잘렸는데, 그때 나는 내세로 통하는 파란 터널에 발을 들여놓기를 거부했다.

(331-332/465p)

메리의 커다란 뇌의 어떤 자동 장치에서 딸칵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녀의 다리가 풀리고 뱃속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추억을 만들지 않는다.
(340/4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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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내가 백만 년 전에 가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인간의 몸을 마치 누군가가 시장에 팔려고 내놓으려는 기계처럼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면, 밝히고 싶은 요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이 이야기에서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 왔던 점인데, 바로 ‘인간의 뇌는 너무나도 큰 탓에 실용적이지 못하다.’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치아는 늘 뭔가 말썽이 생기기 때문에 대개는 평생을 가지 않는다. 우리가 입안 가득 썩어 가는 치아를 갖게 된 것은 진화상의 어떤 일련의 사건들 때문일까?’라는 것이다.
(130/488p)

만약 자연이 셀레나를 대상으로 눈이 먼 것을 실험했다면, 그녀의 아버지를 대상으로는 무정함을 실험했다. 그랬다. 그리고 자연은 헤수스 오르티스를 대상으로는 부자를 흠모하는 것을, 나를 대상으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관음증을, 나의 아버지를 대상으로는 냉소주의를, 나의 어머니를 대상으로는 낙천주의를, 바이아데다윈호의 선장을 대상으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제임스 웨이트를 대상으로는 목적 없는 탐욕을, 히사코 히로구치를 대상으로는 우울증을, 아키코를 대상으로는 털로 뒤덮인 몸을 실험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예는 무궁무진했다.
(132/488p)

세탁실에 들어간 그는 곧바로 그 상자를 열고 전화 접속선들을 뜯어 버렸다. 순식간에, 백만 년 전의 전형적인 뇌 하나가 과야킬 최고의 시민을 노략질하는 테러리스트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144/488p)

내가 여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보낸 백만 년 동안, 자연 선택의 법칙은 이 특별한 생존 체계를 진화시킬 방법을, 아니 이 문제에 있어서는 퇴화시키는 것이 진화시키는 것이므로, 퇴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148-149/488p)

그는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지구상 모든 인간의 혈관에는 폰 클라이스트와 히로구치의 피가 살짝 섞인 가운데 주로 칸카보노족의 피가 흐를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191/488p)

이 말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요즘은 일단 사람이 태어나 아홉 달만 지나면 아무도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제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요즘은 딱 아홉 달이 사람의 어린 시절이 지속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194/488p)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일찌감치 깨우치며, 자기 형제나 부모가 부주의하게 굴다가 식인 고래나 상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광경을 목격하지 않은 어른은 정말로 드물다.
(195/488p)

그리고 분명 임신과 감기 사이에는 유사점이 하나 있었다. 감기도 아기도 점막을 가장 좋아하는 세균에 의해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197/488p)

자연 선택의 법칙이 아직 구제하지 못한 인간의 결함이 또 하나 있다. 오늘날 사람들도 배가 부르면 백만 년 전의 선조들과 똑같이 자신들이 처할지도 모르는 끔찍한 곤경을 무척 느리게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오늘날 사람들이 방심하고 상어나 고래에 대한 경계를 풀어 버리는 때이다.
(204/4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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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18p)

해프틀링Häftling(포로), 나는 내가 해프틀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은 174517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지니고 살게 될 터였다.
(35p)

여기엔 거룩한 얼굴도 없고,
또 여기에서는 세르키오에서처럼 헤엄칠 수도 없다! *

*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21곡 48행, 거룩한 얼굴은 루카 대성당에 있는 나무 십자가상의 예수님 얼굴을 가리킨다. 세르키오는 루카 근처에 흐르는 시냇물, 죄인을 어깨에 태운 채 날개를 펼쳐 가볍게달리는 마귀들은 지옥에 도달하자마자 이탈리아 중부 도시 루카의 한 망자에게 이런 악의 넘치는 말로 빈정거리며 지상과 지옥의 차이를 강조한다.
(39p)

우리는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범죄자, 정치범,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모두 줄무늬 옷을 입고 있고 모두 해프틀링이지만, 범죄자들은 상의에 박힌 숫자 옆에 초록색 삼각형을 달고 다닌다. 정치범들은 빨간색이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빨간색과 노란색의 유대인 별을 단다. (44p)

우리의 삶은 그와 같을 것이다. 매일, 정해진 리듬에따라 아우스뤼켄Ausrücken(나가다) 아인뤼켄Einrücken(들어가다), 나갔다가 들어올 것이다. 일하고 자고 먹고, 아팠다가 낫거나 죽을 것이다. (49p)

그러니까 나는 바닥에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워나간다. (50p)

빵, pane-Brot-Broid-chleb-pain-lechem-keynér, 그성스럽고 거무스레한 조각 말이다. 옆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은 너무나 크게 보이고, 내 손에 들린 것은 눈물이 날 만큼 작다. 이것은 매일 일어나는 환각인데, 사람들은 결국에는 이런 환각에 익숙해지게 된다.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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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우연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사고체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그 암묵적인 도그마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면, 그 논리적 결말로 수용소가 도출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6p)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 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15p)

거기에서 그들은 밤새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들은 삼삼오오 그들의 막사 앞으로 모여들었다. 생소한 비탄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것은 땅을 갖지못한 민족의 오래된 아픔, 엑소더스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매 세기 반복되는 아픔이었다.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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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월마트 슈퍼센터에만 최대 14만 2천 품목의 상품이 널려 있다. 다 둘러보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린다. 미국 전역에 3504개 월마트 지점이 있으니, 집집마다 차로 15분 거리에 하 나씩은 있는 셈이다. (21p)

싼값으로 이룬 아메리칸 드림이라 할까? 월마트로선 최저가 야말로 큰 돈벌이다. 미국 전역의 월마트 금전등록기에 매일 약
10억 달러(1.2조 원)가 들어온다. 미국 외 글로벌 지점 수입은 하루 2.5억 달러다. 2016년 월마트는 세계 시장 합산 4,810억 달러(570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24시간 영업한다고 가정하면, 11분에 90만 달러(10억 원)씩 번 셈이다. (22p)

월마트의 대對 중국 거래액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지출하는 총액의 10퍼센트를 넘게 차지한다. 로렌은 자신의 월급 중 일부인 달러를 지불함으로써, 싸구려 전자제품과 교환하는 글로벌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2015년 한해에만 4,830억 달러(566조 원) 상당의 상품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갔지만, 고작1160억 달러(136조 원)어치만 반대로 들어갔다. 최근 들어 엎치락뒤치락하긴 했지만, 3,670억 달러(430조 원)에 달하는 이러한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로, 월마트의 구매 습관이 여기에 일조했다고 하겠다. (25p)

흥미롭게도 샘 월튼은 먼 나라에서 수입한 상품으로 매장 진열대를 채움으로써, 외국에서 들여온 산업의 기풍을 오롯이 지켜내려 애쓰는 셈이다.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영국에서 만들어낸 그 기풍 말이다. (28p)

과거의 산업체는 가격 경쟁에 밀려 사라지고, 한때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저가 소매업체에 의존한다. 역설적으로 다른 나라들로 더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월마트의 전략 탓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작 지갑을 여는 것은 선진국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인데, 그 돈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경쟁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이런 역설의 위험을 지적 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34p)

1995년, 드디어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다. 단순히 로고만 바뀐 게 아니다. GATT가 무역을 위한 규정을 만드는 데 치중했다면, WTO는 이미 정해진 규칙을 바탕으로 더욱 자유로운무역을 관리, 촉진, 감시한다. WTO는 회원국들이 규칙을 엄수하도록 강제력을 발휘한다. 회원 가입은 자발적이지만, 회원국은 꾸준히 증가했다. 2001년, 중국이 143번째로 가입했다.
WTO 회원국은 160개를 넘었다. 뉴스 헤드라인에는 주로 강대국만 거론되지만, WTO 회원국의 3/4 이상은 산업 발전 도상에 있는 저소득 국가들이다. 그들이 무역장벽 너머로 거래를 하도록 허용한다. 사실상 WTO는 개발도상국 발전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41p)

주변 고층건물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9층짜리 건물.
첸팡 스트리트 32번지가 바로 이 건물 지번이다. 그러나 1949년설립된 중국 인민은행의 왜소한 겉모습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보기와 달리, 이곳은 전 세계 수십억의 경제 운명을 좌우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53p)

결국 1980년대, 인민은행의 상업 금융 부문이 4개(중국공상은행ICBC, 중국건설은행CCB, 중국은행BOC, 중국농업은행ABC)로 분리됐다. 이들 전문은행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국가 소유다.
(54p)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얘기다.
중국에선 모든 달러를 중앙은행을 통해서만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쉽게 가격을 정할 수 있다.
중국은 오랜 동안 달러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해왔다.
이렇게하면 위안화를 사는 데 필요한 달러는 줄어들고, 무역 용도로 달러를 사고자 하는 기업은 더 많은 위안화를 지불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달러 당 위안화 환율을 높임(위안화 절하)으로써, 이런 일을 가능케 했다.
(59p)

세계 시장에서는 환율을 시장 상황에 맡기는 변동 환율제가 일반적이다. 변동 환율이 적용된 통화는 그 가치가 정해지는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된다.
(60p)

중국이 이토록 오래 자국 통화를 강박적으로 통제해온 이유는 분명해졌다. 그동안 벌어들인 수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달러는 첸팡 스트리트 지하의 어디 매트리스 밑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니다. 다름 아닌, 중국의 미래를위해 투자되었다. (64p)

국채는 안전한 선택이다. 정부는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세원을 벌충한다. 채권 매입은 일종의 대출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가 발행한 종이, 즉 채권을 사면 여기에 이자가 붙는다. 대출 기간이 만료되면 원금은 돌려받는다. 채권은 리스크가 적지만 수익률도 낮다.
정부는 대체로 돈을 잘 갚기 때문에, 지루하긴 하지만 안전한 선택이다.
(67p)

달러는 어떻게 최고의 화폐가 되었을까?
1944년 뉴햄프셔 산악지대의 한 호텔에서 그 일은 시작되었 다. 그곳에서 국제 금융 안정을 꾀하는 회의가 열렸는데, 지명을따서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협정이라 부른다. 미국 관리들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달러는 세계 표준 준비통화로 지정됐다. (68p)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 총액과 흐름을 감시하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도 이때 설립됐다.
국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69p)

경제 성장의 척도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이다.
GDP 란 1년 동안 한 국가가 생산한 모든 물자의 총합이다.
국가 소유냐 개인 소유냐 관계없이 모든 곳에서 생산되는 것을합한다.
GDP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지출 총액 합산, 생산 총액 합산, 국민 수입 합산이 그것이다.
(73p)

중국 정부는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처럼 행동하길 원한다.
꼭 필요한 물건만이 아니라 사치를 부리는 데도 돈을 쓰길 말이다.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그런 지출이다.
많은 중국 가계가 불가피한 지출까지 감당할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 꺼내 쓸 거대한 비축고도 있다.
중국의 가계 총수입은 연간 약 5조 달러(5,900조원) 정도 된다.
(75p)

중국 정부와 국민의 마인드가 크게 변하면서 2016년 상반기에이르러 전체 성장 중 3/4가량이 내수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에값싼 물건을 팔아치워 달러를 벌어들이려는 경쟁은 뒷전으로 밀린 듯 보인다.
(75p)

세계 무역을 연결하는 힘 있는 주체, 이는 중국에게 낯선 역할이 아니다. 2천여 년 전 중국 한나라 때 서역과 동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만든 그들 아닌가.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힘을 굳건히 하기 위한 뉴 실크로드 전략,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청사진을공개했다. 그는 평화와 포용, 자유무역의 길을 개척하고, 구시대적 무역전쟁을 혁파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제외교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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