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18p)
해프틀링Häftling(포로), 나는 내가 해프틀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은 174517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지니고 살게 될 터였다. (35p)
여기엔 거룩한 얼굴도 없고, 또 여기에서는 세르키오에서처럼 헤엄칠 수도 없다! *
*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21곡 48행, 거룩한 얼굴은 루카 대성당에 있는 나무 십자가상의 예수님 얼굴을 가리킨다. 세르키오는 루카 근처에 흐르는 시냇물, 죄인을 어깨에 태운 채 날개를 펼쳐 가볍게달리는 마귀들은 지옥에 도달하자마자 이탈리아 중부 도시 루카의 한 망자에게 이런 악의 넘치는 말로 빈정거리며 지상과 지옥의 차이를 강조한다. (39p)
우리는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범죄자, 정치범,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모두 줄무늬 옷을 입고 있고 모두 해프틀링이지만, 범죄자들은 상의에 박힌 숫자 옆에 초록색 삼각형을 달고 다닌다. 정치범들은 빨간색이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빨간색과 노란색의 유대인 별을 단다. (44p)
우리의 삶은 그와 같을 것이다. 매일, 정해진 리듬에따라 아우스뤼켄Ausrücken(나가다) 아인뤼켄Einrücken(들어가다), 나갔다가 들어올 것이다. 일하고 자고 먹고, 아팠다가 낫거나 죽을 것이다. (49p)
그러니까 나는 바닥에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워나간다. (50p)
빵, pane-Brot-Broid-chleb-pain-lechem-keynér, 그성스럽고 거무스레한 조각 말이다. 옆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은 너무나 크게 보이고, 내 손에 들린 것은 눈물이 날 만큼 작다. 이것은 매일 일어나는 환각인데, 사람들은 결국에는 이런 환각에 익숙해지게 된다.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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