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 가설plough hypothesis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덴마크의 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세루프Ester Boserup다. 쟁기 가설이란 역사적으로 쟁기를 사용했던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만큼 성평등 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괭이나 호미처럼 손으로 쥐는 도구를 사용하는) 이동 농업*이 (대개 말이나 소처럼 힘센 동물이 쟁기를 끄는) 정착 농업보다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한다. 여성의 접근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1 -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0952 - P262

그러나 쟁기 농업과 이동 농업 간의 상대적 여성 친화성 차이는 사회적 성역할의 결과이기도 하다. 괭이질은 시작하거나 중단하기가 쉽다. 즉 자녀 돌봄과 병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힘센 동물이 끄는 무거운 도구(쟁기)는 그렇지 않다. 또 괭이질은 노동집약적인 반면 쟁기질은 자본집약적인데10 여자는 돈보다 시간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그 결과 쟁기가 사용되는 곳에서는 남자가 농업을 지배하고 이것이 다시 남자가 권력과 특권을 갖는 불평등한 사회를 낳는다고 보세루프는 주장했다. -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0952 - P264

연구자들이 일을 "주된" 활동과 "부차적" 활동으로 나누는 데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부차적 활동에 대한 데이터는 아예 수집하지 않기도 하며 수집하더라도 노동력 수치에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남성 편향이 여성의 유급 노동을 지워버리는 예다.17 여자들은 자신의 유급 노동을 부차적 활동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무급 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급 노동에 쓰는 시간이 적다는 뜻은 아니다. 그 결과 노동력 통계에서 상당한 젠더 데이터 공백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18 -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0952 - P267

여자는 가난한 농부나 소규모 농부가 많고 자신이 경작하는 땅의 주인이 아닐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27 -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0952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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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을 타고 홀로 숲에서 나온다. 열일곱살, 흩뿌리는 3월의 찬비, 마리는 프랑스 사람이다.
1158년, 세상에는 사순절 후반의 고단함이 깃들어 있다. 곧 부활절이 올 테고, 올해 부활절은 이르다. 들판에서는 씨앗들이 더 자유로운 공기 속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며 거무스름하고 차가운 흙 속에서 몸을 푼다. 그녀는 이 수녀원을 처음 보는데, 습한 계곡의 언덕마루에 희끄무레하고 냉담한 자태로 서 있고, 바다에서 끌려온 구름은 언덕을 휘감은 채 끊임없이 비를 뿌리고 있다. 이곳은연중 대부분 습한 땅에서 싹을 틔우는 식물들로 뒤덮여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빛깔이고 양과 되새와 도롱뇽이 천지에 깔렸으며 연약한 버섯이 비옥한 토양을 뚫고 나오지만, 지금은 늦겨울이라 모든 것이 회색이고 온통 음지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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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포랭Jean-Louis Forain의 줄타기 곡예사는 19세기 파리 야외서커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그림의 주인공인 곡예사는 장대를 쥐고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모습이다. 이 공연을 위해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오래도록 홀로 줄 타는 연습에 매진했을 터이다. 멋지게 성공하기보다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다쳐서 울컥하는 때가 더 많았으리라. - P4

그러나 그림 속 여인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온 신경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듯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타인의 인정과 환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것, 그동안 연마한 기술을 성공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줄 위의 삶에서 더 만족스러운 ‘내‘가 되는 것, 이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같다. 시끌벅적한 공연장에서 아주 고요히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더 높은 하늘에 닿는다면, 그 희열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그 짜릿함을 위해 그녀는 분명 내일도 적막 넘치는 연습실로 돌아가겠지. 세상의 소음에서 소외되어 홀로 반듯하게 솟구친 그녀의 모습에서 알 수없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 P6

줄 위의 숭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글을 썼다. 줄타기 곡예사의 그녀는 특별하지 않은 이가 고귀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기 선택에 충실한 삶, 자기만 아는 희열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만 내려올 마음이 아니라면 계속되는 불안과 불만에제 발을 묶어두기보다 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에 빠져드는 편이 더 숭고한 결정이었다. - P7

나의 줄타기는 현재 진행중이다. 그러나 용케 내면의 중심을 잡고서 있다. 책을 펴내는 지금, 책을 쓰기 전만큼 타인의 말과 세상의 정답에 요동치지 않는다.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 조마조마한 길이지만 여기에 나의 기쁨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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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넌에 대한 레너드의 견해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세상을 당한 자의 시선으로 매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인이 박인 드라마?이 얼마나 짜릿한 건지를 내게 다시금 일깨웠고, 우리가 왜 친구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했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7

손상의 정치를 공유하는 사이다, 레너드와 나는. 운명처럼 지워진 사회적 불평등 속에 내던져지듯 태어났다는 강렬한 감각이 우리 두 사람의 내면에서 활활 타오른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8

우리의 화두는 살아보지 않은 삶이다. 각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불평불만의 땔감으로 쓰기 딱 좋은 조건?얜 게이, 나는 짝 없는 여자*?이 우리 삶에 마련돼 있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런 불평등을 직접 만들어내기라도 했을까? 우리 우정은 이 질문에 천착한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8

문제는 우리 둘 다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린 영원히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인 것이다. 상실, 실패, 패배를 그가 드러내든 내가 드러내든 꼭 한 명은 그러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우리도 좀 달라지고 싶지만 어찌됐건 우리가 느끼는 삶이란 게 그러니까. 그리고 삶을 느끼는 방식은 결국 삶을 살아낸 방식일 수밖에 없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9

내 말본새는 남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본다. 판단하느라 노상 날이 서 있는 데다 결점과 결핍과 불완전함을 쉴 새 없이 헤아려대는 목소리. 그런 내 언사에 레너드는 툭하면 눈을 흘끗거리며 입을 다물어버린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10

행동이 되지 못한 충동은 차곡차곡 쌓여 신경을 망가트리고, 망가진 신경은 굳어져 권태가 된다. 복잡한 감정과 망가진 신경, 그리고 마비된 의지까지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그제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초조하게 올라오고 전화기를 향해 뻗는 손은 마침내 동작을 완료한다. 레너드와 내가 서로를 절친이라 생각하는 건 이런 주기가 일주일이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11

나의 도시는 전혀 아니다. 나의 도시는 우울한 영국인들—디킨스, 기싱, 존슨, 이 중에서도 특히 존슨—의 도시로, 우린 누구 하나 어디로도 가지 못 한 채 이미 거기에 있다. 거기서 우리는 낯선 이의 눈에 되비치는 자아를 찾아 이 사납고 기묘한 거리를 떠도는 영원한 밑바닥 인생이다.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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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와 미드타운의 어느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운을 뗀다. "넌 요즘 사는 게 어떤데?"
"닭뼈가 목구멍에 딱 걸린 거 같지 뭐," 레너드의 답이다. "삼키지도 못하고 토해내지도 못하고 말야. 당장은 걸려 죽지나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알라딘 eBook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중에서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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