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be

나의 모든 관찰 행위는 아무런 긴장도 없이 그저 일어날 뿐이었다. 보편적인 생명감의 결과로서 말이다.
(172/307p)

반면에 일상적인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섬세한 움직임에는 호감이 간다. 이를테면 적절한 순간에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꺼내는 이별의 몸짓, 단호한 대답을 대신하는 정중하면서도 공감이 묻어나는 얼굴 표정, 종업원이 건네주는 거스름돈을 돌려줄 때의 근사한 제스처. 그런 모습을 볼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춤출 때 느낄 행복감과 더불어 몸이 날듯이 가벼워진다.
(173/307p)

게다가 언쟁을 벌일 때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논거가 아니라 서로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일에서의 경합이었지.
(180/307p)

물론 우연찮은 화해의 순간도 있었지. 무언가가 길을 막고 서 있어서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어느새 서로를 껴안고 있더군. 그녀가 무언가를 치우려고 내게 몸을 숙이는 찰나 갑자기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긴 적도 있어. 애당초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도 말이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휘감고 있었지. 하지만 점점 커져가는 공허를 느꼈고 결국 화가 나서 서로 떨어졌지. 이런 종류의 화해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아. (182/307p)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점점 자유로워짐을 느꼈고 그녀 역시 그러리라고 믿었지. 나는 우리가 더이상 옛날처럼 서로 허물없는 사이로 엮일 수 없고, 더이상 서로를 조롱할 필요가 없으며, 더이상 부부 간의 비밀스러운 대화, 즉 우리끼리만 이해하는 암시적인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대화에서 배제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솔직하고 정직하다고 여겼어. 우리끼리만 있는 경우가 아니라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경우, 이를테면 손님으로 레스토랑에 가거나 여행객으로 공항에 나가거나 영화 구경을 갈 때, 그리고 남을 방문하거나 남들 앞에서 일정한 역할을 연기해 보여야 할 때면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모습을 보였지. 우리는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익숙해 있었으니까. 우리가 그런 역할들을 천연덕스럽게 잘해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어. 물론 그러면서도 서로가 가까워지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지. 각자가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렀고, 상대방과 접촉하는 일이라고는 지나치는 길에 슬쩍 잡아당겨보는 정도가 고작이었어. (183-184/307p)

증오할 때는 그녀를 사물로 여기다가도, 긴장이 해소되면 존재라고 여기는 그런 적당한 거리감 같은 거. (184/307p)

나는 그녀가 하나의 ‘존재’로 거듭나도록 해주려고 그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 이 생물, 이 물건이라는 말처럼 나는 유디트를 이라는 지시대명사를 붙여 불렀다.
(265-266/307p)

그러자 유디트가 우리가 어떻게 이곳 미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동안 나를 추적하면서 많은 해코지는 물론이고 살해까지 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은 마침내 서로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가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들려주자 존 포드는 말없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보였다. (283/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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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관념론적 변증법

인류의 역사란, ‘절대정신’이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변증법적 발전 과정 자체가 ‘절대정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정신’이라는 작가가 쓴 연극의 배우가 되는 셈이죠.
(119/364p)

그래서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이 ‘물구나무서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헤겔이 세상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하는 탁월한 성과를 냈으면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절대정신’이라는 관념의 결과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관념들은 우리 외부의 사물이나 현상들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뇌에 전달되어 생기는 결과물인데, 헤겔은 이러한 결과물인 관념을 ‘절대정신’이라고 칭하며 만물의 근원에 놓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에 해당하는 우리 외부의 사물이나 현상이 오히려 관념의 결과물로 되어버렸죠. (120-121/364p)

신이란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갖는 가치 이상을 신은 갖고 있지 않다. 신에 대한 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다. 그대는 신으로부터 인간을 인식하며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부터 신을 인식한다. 인간과 신은 동일하다. 인간에게 신인 것은 인간의 정신Geist이고 영혼Seele이며, 인간의 정신·영혼·마음은 인간의 신이다. 신은 인간의 내면이 나타난 것이며 인간 자체가 표현된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숨겨진 보물이 장엄하게 밝혀지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내적인 사상이 공언되는 것이며 사랑의 비밀이 공공연하게 고백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121-122/364p)

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본질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런데 종교 비판이란 모든 비판의 전제이다. (중략) 비종교적 비판의 바탕은 이것이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카를 마르크스
(122/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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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가치론

이렇듯 마르크스는 상품 교환비율의 균형점 형성에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입니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이 창출한다’는 뜻이죠. (59-60/369p)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다. 사용가치는 상품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교환가치는 상품이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의 교환비율은 해당 상품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62-63/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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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관계로 사회형태를 구분. 노동

사회형태를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생산관계입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뤄 생존하고 생활하는 데는 노동이 필수이자 근본입니다. (27/379p)

재화나 용역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것이 노동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죠. 상품의 이런 속성을 마르크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56/379p)

《자본론》에는 상품이 교환되는 균형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가 나옵니다.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해당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겁니다.
(59-60/3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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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상학 vs. 변증법
모순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59/364p)

선과 악, 삶과 죽음, 착한 것과 나쁜 것, 좋은 것과 싫은 것 등을 딱 나누어버리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도 일종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입니다. (60/364p)

반면에 변증법적 세계관은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61/364p)

이렇게 다양한 변화 발전의 현상을 공통으로 꿰뚫는 원인이 과연 뭘까요? 헤겔은 그 원인을 ‘모순矛盾’이라고 봤습니다.
(63/364p)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변화 발전도 변증법적 세계관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연계의 힘에는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있죠. 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 말이에요. 이 두 가지 요소는 분명 서로 모순된 관계입니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그렇고, 전기의 양극(+)과 음극(-)이 그렇죠. 모든 물체의 내부에는 이런 인력과 척력이 함께 존재합니다. (66/364p)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모순되는 두 가지 요소가 사물의 내부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걸 ‘대립물의 통일’이라고 해요. (67/364p)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다른 특징 하나는, 어떤 대상을 다른 것들과 연관된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서 파악한다는 점입니다. (69/364p)

변증법적 세계관은 사물과 현상을 전반적인 상호 연관 속에서, 그리고 변화 발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입니다. 반면에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사물과 현상을 일반적으로 서로 고립된 것으로, 그리고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입니다. (76/364p)

사실 과학의 법칙이란 것은 우리 인류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법칙성’을 찾아낸 것인데, 그런 법칙들이 이렇게 수식으로 정리되자마자 거꾸로, 마치 세상을 규제하는 어떤 신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학의 법칙과 같은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세상이 그 법칙에 맞춰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게 되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학의 법칙은 분명 우리 인류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우리 외부의 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성’을 찾아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82/364p)

변증법의 기본 법칙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법칙
2. 양질 전화의 법칙
3. 부정의 부정 법칙

(85/364p)

이런 불연속적인 과정을 ‘비약’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질적 변화의 과정은 이러한 ‘비약’입니다. (99/364p)

변증법적 부정이란 이전의 낡은 것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발전적으로 취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의 씨앗은 변증법적 발전 과정의 ‘내부’에서 생겨나고요. (106/364p)

헤겔은 변증법적 세계관을 통해, 역사의 발전 과정에 나타나는 법칙을 파악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사회의 내적 모순들이 ‘부정의 부정’을 통해 지양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으로서 역사를 이해하게 된 것이죠. 사물과 현상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해나가듯이, 역사도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본 것입니다. (119/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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